일흔한 번째 봄이다. 한라산 자락에도, 제주 바당(바다)에도 밀물처럼 밀려오는 봄이다. 노랑이, 분홍이, 선홍의 산 것들이 온다. 미세먼지를 뚫고. 오름 기슭 안 보이는 곳에서도 꽃들이 눈을 떴으리.
이토록 봄눈 뜨는 것들을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봄이었다. 71년 전 제주의 봄. 섬은 사력을 다해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목소리를 내보냈다. 그때 언 땅에서 소리쳤던 사람들이 꿈꾸던 세상은 하나된 나라였고 평화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것은 닿지 않았다. 과연 그 정신은 70년 넘어 어디쯤 닿아 있을까.
왜 그랬을까. 집 떠난 오라버니 때문에, 중산간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고사리 때문에, 고운 것 때문에, 제주 사투리 때문에…. 섬의 한 바퀴, 걸 수 있는 돌부리는 다 걸어놓았던 광기의 시간. 뒷걸음질하면 떠날 곳 없는 절벽이었다. 왜? 해방공간 1947년 3월1일부터 1954년 9월24일까지 3만여 명이 국가공권력에 희생된 섬. 섬 도처에 생의 구덩이를 파놓았을까. 국민을 지켜줘야 할 국가는 그때 어디에 있었던가.
그럼에도, 섬을 찬란하게 피워낸 이들은 늙은 미소였다. 그럼에도, 한라산으로 가는 숲과 나무들과 저 검은 돌에 스몄던 상처 위로 위무의 봄이 온다. 살아보니, 안다. 그냥 찾아오는 미래란 없다. 진실은 없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찾아오는 자유란 없었다. 소리치지 않고 오는 평화는 없었다. 70년이 지났으나 지금도 펑펑 흐르는 눈물을 지울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제주땅은 기억의 섬이다. 생의 극한을 견뎌온 사람들의 섬이다. 그러니까 정말 힘겨운 순간이 당신에게 올 때 이 말을 떠올려도 좋겠다. 저 섬의 광풍을 견뎌온 사람들이 용기를 냈던 말. “사난 살았주.”(사니까 살았지.)
“봄이 오고 있습니다”라고 70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은 말했다. 진정 봄은 왔을까. 얼마 전 적법한 절차 없이 형을 살았던 제주4·3 수형인 18명이 국가를 상대로 한 긴 싸움 끝에 공소기각, 명예회복을 했다. 그럼에도 수형의 삶을 살았으나 행방불명된 이들, 세상을 떠난 이들은 그렇게 싸울 수도 없다. 분명 제주4·3이 어린 소녀의 몸을 가격했고, 후유장애의 삶을 살게 했음에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뒤틀린 호적으로 온전한 성씨와 이름을 찾지 못한 70년 맺힌 한의 가슴들도 있다. 덧씌워진 이념의 굴레에 갇혀 우는 2세들의 슬픔도 엄연하다. 이제는 국가 공권력에 희생된 이들에게 국가가 배·보상을 할 때가 되었다. 찬란한 봄 그늘에 가리어진 아픔을 일으키는 길은 많은 제주4·3 미해결을 담아낸 4·3특별법 개정안이다. 이 법이 70년 한을 지닌 채 지금 국회에서 1년 이상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섬의 가슴 위로 선홍의 깊은 동백이 무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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