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국가유공자 심사 기준이 너무 엄격해요.”
이희용 변호사(이희용법률사무소)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군대에서 훈련받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생긴 사람을 대리해 2015년 ‘국가유공자 요건 비해당 결정’ 취소 소송을 냈고, 재판에서 이긴 변호사다. 전례를 찾기 힘든 승소였다.
군 복무를 하다 전투나 훈련 때문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가끔 있다. 2013년 당시 새누리당 성완종 의원이 국가보훈처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05~2013년 8월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국가유공자를 신청한 건수는 221건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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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가유공자로 최종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221건 중 인정받은 사례는 79명(35.7%)에 불과했다. 이 변호사가 대리한 전직 해군 장교 박아무개씨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박씨는 2011년 3월 진해해군교육사령부 야전교육대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다 연습용 수류탄이 오른쪽 귀 옆에서 터지는 사고를 당한 뒤 군 병원에서 이명, 난청,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다.
진료기록 꾸준히 모아야 유리박씨는 이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대인관계가 나빠졌으며, 수류탄이 터지는 꿈을 반복해서 꿨다. 밤에 잠을 설치고 무기력감과 우울증, 불안, 자살 충동 등으로 고생하다 결국 2014년 5월 전역했다. 그리고 6월 창원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를 신청했지만 여러 질환 중 오른쪽 이명만 국가유공자 요건으로 인정받았다. 박씨는 2015년 왼쪽 이명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역시 인정해달라고 창원지방법원에 소송을 냈고, 법원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추가로 인정하라고 판결했다.
중요한 점은 박씨가 소송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사고가 난 뒤부터 꾸준히 진료를 받으며 진단서를 보관해뒀다. 2011~2015년 10개 군·민간 병원에서 받은 20여 건의 진료기록을 재판에 제출했다(판결문에 인용된 기록 기준).
이희용 변호사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군인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증거자료 부족’”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정신질환이 생겨도 사회적 시선 때문에 병원을 잘 가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판결문에 적힌 박씨의 진술을 보면 그 역시 병원을 다니기 쉽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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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에 원망이 많이 생깁니다. 군에 와서 수류탄이 터져서 돌발성 난청이 생기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자살 충동, 우울증 등) 병이 생겼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문제 해결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려고 하면 꾀병 부리지 말라고 하면서 핀잔 주고 억압하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납니다.”
이런 상황은 이 앞서 보도한 천안함 생존 장병들 사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제1221호 표지이야기 ‘살아남은 게 죄입니까’). 병원 진단서 등 증거자료가 부족해 국가유공자 신청에서 떨어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과 ,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팀(김승섭·윤재홍)은 6월5~21일 생존장병 58명 중 24명을 대상으로 ‘천안함 생존자의 사회적 경험과 건강 실태조사’(천안함 실태조사)를 했다.
천안함 실태조사에서 17명이 국가유공자를 신청했는데 이 중 14명은 떨어진 경험이 있다. 떨어진 이유를 묻자 12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인정받을 만한 증거자료가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현재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 중 신체적 부상 없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만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사람은 2명뿐이다.
이희용 변호사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 개인도 병원을 꾸준히 다니며 진단서를 모아야 하지만, 보훈심사위원회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이 너무 빡빡하게 인정 범위를 제한해요. 심사 기준을 완화하고 당사자의 진술을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진단서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피해자를) 세심하게 관찰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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