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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보도 배후 왜 못 밝혔나

미완에 그친 ‘채동욱 혼외자’ 불법 사찰 수사…

청와대 ‘윗선’ 못 찾아 <조선일보> 보도 배후도 오리무중
등록 2018-07-24 14:05 수정 2020-05-03 04:28
2013년 9월13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뒤 대검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13년 9월13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뒤 대검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숨겼다.’

2013년 9월6일 는 이런 제목의 기사를 1면 톱으로 올렸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임아무개씨와 사이에 혼외 아들을 두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로 채 총장은 취임 180일 만에 물러나야 했다. 그는 국가정보원이 18대 대통령 선거 때 저지른 ‘불법 댓글 공작’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박근혜 정권의 압력에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박 전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행위였다.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의 불법 선거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은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 큰 흠집을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 자신감 넘친 보도 근거는?

기사에는 임씨와 아들의 가족관계등록부, 항공권 발권 기록, 교육행정 정보, 아파트 입주자카드, 채 총장의 가족관계등록부 등이 등장했다. 언론이 ‘공식 루트’로는 얻을 수 없는 정보였다. 나중에야 드러났지만, 이런 정보를 수집한 국정원의 행위도 불법(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언론이 이를 합법적으로 입수할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는 당시 채 전 총장의 반론도 듣지 않고 혼외자의 존재를 단정해서 기사를 썼다. 오보일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불 보듯 뻔한 이슈였는데도 본인에게 확인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정론지를 자처하는 언론의 공직자 사생활 관련 보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태도였다. 그만큼 ‘팩트’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었을까. 무엇이 의 자신감 넘치는 보도를 가능하게 했을까.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이 지난해 11월 착수한 ‘채동욱 전 총장 혼외자 의혹 관련 불법 정보 조회 사건’ 수사는 이런 의문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앞서 국정원 적폐청산 티에프(TF)는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에게 보고된 채 전 총장의 혼외자 관련 첩보 문건을 국정원 데이터베이스(DB)에서 발견했고, 이를 열람하려는 DB 로그인 기록이 수십 건임을 확인한 뒤 불법 사찰을 지시한 ‘성명불상자’를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7개월 이상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지만 지난 6월15일 발표된 수사 결과는 이런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검찰은 채 전 총장의 혼외자에 대한 불법 사찰을 지시한 남 전 원장과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 송아무개 정보관 등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또 혼외자 관련 정보를 국정원에 알려주고도 재판에서 허위 증언을 한 임아무개 전 서초구청 과장과 김아무개 전 가족관계등록팀장, 조아무개 전 청와대 행정관을 위증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남 전 원장은 2013년 6월 검찰이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검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서 차장 등에게 채 전 총장 혼외자 첩보 검증을 지시했다. 그러자 송 정보관은 같은 해 6월10~11일 학생생활기록부와 가족관계등록부를 각각 확인해 국정원 지휘부에 보고했다.

국정원 수사팀의 수사 결과는 4년 전 ‘박근혜 검찰’이 내린 결론과 완전히 달랐다. 2014년 채 전 총장이 사퇴한 뒤 불법 사찰 의혹이 제기되자, 검찰은 송 전 정보관의 진술에 근거해 ‘송 정보관이 국정원 지휘부 지시 없이 서초구 소재 한 식당 화장실에서 우연히 첩보를 듣고 혼자 확인했다’고 결론 내렸다. 국정원과 청와대에 모두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번 국정원 수사팀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채 전 총장 사찰에 관여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검찰은 국정원에서 확인한 정보를 2013년 6월10일께 민정수석실도 보고받아 알고 있었고, 같은 해 6월 중순 민정수석실 특감반 직원이 해당 초등학교 관할 경찰서에 요청해 혼외자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무산된 사실도 파악했다. 검찰은 “사진 촬영이 무산돼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는 직권남용죄 적용이 어렵다고 보고 입건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배후는 곽상도?

검찰은 국정원의 불법 사찰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청와대에서 불법 사찰을 지시한 윗선이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또 ‘불법 사찰의 결과물’로 의심받는 보도의 ‘배후’에 대해서도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수사팀장을 맡았던 박찬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청와대에서 누가 지시했는지는 진술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막히니까) 보도 경위 수사로 나갈 근거도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채 전 총장 불법 사찰을 지시한 것으로 의심받는 인물은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채 전 총장 혼외자 의혹이 터진 직후인 2013년 9월 박지원 당시 민주당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곽상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채 전 총장 불법 사찰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곽 수석이 서천호 국정원 차장과 채 총장 사찰의 밑그림을 그렸고, 이중희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작업을 주도했다고 폭로했다.

실제로 이번 검찰 수사에서 채 전 총장 혼외자의 가족관계등록부 내용을 알려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임아무개 전 서초구청 과장이 2003년 서울중앙지검에 파견돼 당시 특수3부장이던 곽상도 전 민정수석,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과 함께 일한 경력이 있다. 따라서 임 과장이 곽 전 수석 등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청와대 특별감찰반에 파견돼 혼외자에 대한 사진 촬영 등을 일선 경찰서에 요청한 경관이 청와대 윗선의 지시를 받았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박찬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임 과장이나 청와대 특감반 파견 경관한테서) 청와대 인사와 관련된 진술은 없었다”고 밝혔다.

조응천 의원도 연루 의심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청와대의 불법 사찰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다. 고위 공직자 감찰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고유 업무이기 때문이다.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도 지인들에게 ‘조 의원이 지휘한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사찰을 주도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 의원 쪽은 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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