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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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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물질로 청소할 때 옆에서 밥 먹었어요”

승무원 암 발병률이 높은 이유는…

기내 청소약품, 야근,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
등록 2018-06-19 16:51 수정 2020-05-03 04:28

“발암물질로 청소할 때 우리는 그 옆에서 밥 먹었어요.”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으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K씨의 이야기(제1216호 표지이야기 ‘KAL의 황유미’)가 보도된 뒤 로 전·현직 승무원들의 제보가 잇따랐다. 암에 걸린 승무원들은 기내 청소약품에 포함된 발암물질을 중요한 발병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업무 환경 탓에 평소 해당 약품을 자주 흡입했기 때문이다. 야간·교대 근무와 과로, 스트레스 등도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주장이 뒤따랐다.

1급 발암물질로 기내 청소

4월23일 CBS 는 대한항공 청소노동자들이 기내 식탁과 의자의 얼룩을 지울 때 발암물질이 담긴 청소약품을 썼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청소약품의 이름은 ‘템프’(TEMP)와 ‘CH2200’이었다.

치약처럼 생긴 템프는 보통 타일이나 금속에 묻은 이물질을 긁어내는 데 쓰는 산업용 연마제로, 주성분인 쿼츠는 국제암연구소가 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또 다른 성분인 에틸렌글리콜은 여성의 반복 유산과 불임의 원인이 된다. 물과 섞어 분무기로 뿌려 사용한 액체인 CH2200은 ‘장시간, 반복 노출시 장기 손상과 태아와 생식 능력에 손상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김태일 공공운수노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은 4월24일 CBS 라디오 에 출연해 “(약품을) 쓰기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었다”며 “제가 조사한 바로는 (최근) 1년 안에 유방암 등으로 5명이 퇴사한 걸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객실승무원들도 청소노동자들이 기내를 청소할 때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경우가 잦다. 이 인터뷰한 A씨(유방암)는 “‘단거리 퀵턴’ 때 주로 해당 약품에 노출됐다”고 말했다. 단거리 퀵턴은 국내선, 중국, 일본 등 가까운 지역을 비행할 때 정차 시간을 길게 두지 않고 ‘찍고 바로 돌아오는’ 비행을 말한다. A씨는 “단거리 퀵턴 때는 승무원들이 비행기에서 아예 내리지 않는다. 승객들이 내리고, 다음 승객이 탈 때까지 한 시간 반 남짓 짧은 시간 안에 밥 먹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차 시간이 워낙 짧다보니 청소노동자들도 바쁘게 움직인다. 승무원들이 비즈니스석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청소노동자들이 발암물질 청소약품을 분무기로 뿌리며 청소하는 식이다. W씨(갑상샘암)씨는 그 약품이 자신의 입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청소약품이 묻은 트레이(식탁)나 오버헤드빈(선반)을 만지고 손도 못 씻어요. 화장실 사용은 승객들 우선이니까. 그 손으로 배고파서 허겁지겁 음식을 주워 먹어요.”

야근·밤샘근무로 생체리듬이 깨지고 휴식시간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 열악한 근무환경도 발병 원인으로 지적된다. W씨는 “승무원 근무규정상 16시간 이상 비행 뒤에는 12시간 이상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출·퇴근 시간과 브리핑 등 비행 준비 시간을 휴식 시간으로 치기 때문에 실제 휴식 시간은 훨씬 짧다”고 말했다.

스트레스와 감정노동도 발병 영향

눈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와 감정노동도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A씨는 “기내면세품이 수백 개인데 10원만 안 맞아도 퇴근을 못한다”며 면세품 판매 스트레스를 털어놨다. J씨(유방암)는 “팀원을 자기 시녀처럼 부리려는 팀장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비행을 할 때는 자살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롭다”며 중간관리자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무시 못한다”고 전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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