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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개혁 태풍전야

13년 전 ‘서해 총격 허위 보고 사건’이 일러주는 ‘사드 사건’의 결말…

인적 개혁으로 군 장악 뒤 미·중 외교 실리 추구 예상
등록 2017-06-06 16:08 수정 2020-05-03 04:28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배치된 사드 포대 일부. 사드 포대는 6기로 구성되며, 현재 4기는 성주 인근에 반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일 기자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배치된 사드 포대 일부. 사드 포대는 6기로 구성되며, 현재 4기는 성주 인근에 반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일 기자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발사대 4기 보고 누락’(이하 사드 보고 누락) 사태에 대해 “충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엄중한 사태에 대해 군은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군형법 제38조는 거짓 명령·통보·보고를 한 경우 적전(敵前)이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는 ‘군사에 관한 명령·통보 또는 보고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의 경우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할 정도로 중죄다.

한반도는 여전히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정전 상태’다. 이런 상황을 아는 군인이라면 현재 사태에 대해 “제38조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에 토를 달기 힘들다. 그럼에도 지난 5월31일 여권에서 사드 보고 누락 당사자들을 ‘군형법’을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국방부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지휘체계 작동 관련 중대한 사안 </font></font>

“올 것이 왔다.”

참여정부 때 영관급이던 한 군 인사는 “‘보고 누락’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13년 전 그 사건과 당시 민정수석이던(실제로는 시민사회수석이었음) 문재인 변호사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산 법조계의 이름난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과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문 대통령은 그때와 확실히 다른 사람인 것 같다. 군은 현재 완전히 태풍 전야다.”

사드 보고 누락 사태가 터지자, 군 내부에선 자연스럽게 13년 전인 2004년 7월14일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벌어진 ‘남북 간 총격 허위·은폐 보고 사건’을 떠올렸다. 이 사건은 같은 해 6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한 지 한 달만에 터진 군사적 충돌이었다.

이 사태의 진상 파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충돌 전 남북 군 당국의 교신 여부였다. 한 달 전 남북이 체결한 합의서에 따르면, 남북 쌍방 함정이 대치하는 것을 방지하고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국제상선 공통망을 활용하기로 돼 있었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당일 저녁 교신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제상선 공통망으로 4회 경고방송을 했지만) 북한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짧게 답했다. 같은 내용의 보고가 청와대로 올라갔음은 물론이다.

기다렸다는 듯 보수언론은 대북 선전수단을 포기하며 얻어낸 남북 합의가 결국 무용지물이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군의 거짓 보고가 드러났다. 해군의 경고에 북한이 세 차례 응답한 사실을 국가정보원이 확인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합참이 청와대로 보고한 통신기록에 북한의 응답 사실과 관련 내용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당시 청와대는 △보고 누락 △주요 내용 고의 삭제 뒤 보고 등을 들어 이번 사태를 ‘지휘체계 작동과 관련한 중대한 사안’으로 규정했다.

사드 보고 누락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5월26일 국방부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제출한 최종보고서에는 “3월6일부터 4월23일까지 사드 체계 전개”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관련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1차 보고 누락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참여정부의 군 장악력 급속히 약화 </font></font>

이후 정의용 안보실장은 5월28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만나 “사드 4기가 추가로 들어왔다면서요”라고 묻자 한 장관은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두 번째 보고 누락이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 보고서 외의 별도 보고서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뒤 직접 한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 반입 사실을 확인했다. 군 통수권자가 직접 보고 누락을 확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번 사안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국방부에 강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진상 조사 과정에서 국방부 보고서 초안엔 발사대 수(6기)와 보관 장소가 기재돼 있었지만, 국방부 자체 검토 과정에서 이 내용이 빠진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보고서 독회 과정엔 위승호 국방부 정책실장 등 정책 라인과 실무진이 참석했다. 그러나 한 장관의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거치면서 참여정부 초기 군의 정권에 대한 반발을 고스란히 경험한 바 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이름이 있다.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내내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제창을 금지하고 종북 교육 논란 등으로 야권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박 전 처장이 일반인에게까지 이름을 알린 계기가 13년 전 발생한 ‘서해 총격 허위 보고 사건’이었다. 박 전 처장은 청와대가 사건 직후 청와대·국방부 합동조사단을 꾸려 ‘기망 보고’라는 결론에 이르자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군과 북한 함정 사이에 오간 교신 내용과 통지문 등 군사기밀 정보를 보수언론에 유출했다. 그는 당시 군의 대응이 정당했고, 청와대가 북한만 신뢰하며 우리 군을 억압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역습으로 인해 이 사태를 바라보는 프레임은 군의 ‘군기 위반’에서 청와대와 군의 ‘진실 공방’으로 옮아갔다. 청와대는 문제의 핵심이 군의 현장 대응이 적합했는지가 아닌 ‘거짓 보고’라고 밝혔음에도 여론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허위 보고를 주도한 해군 작전사령관과 합참 관계자들은 경징계에 그쳤고, 군에 대한 참여정부의 장악력은 급속히 약화됐다.

이번에는 어떨까. 한 국방부 관계자는 “그때는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알고 차분하게 피했다면 지금은 바짝 엎드려 있다. 저쪽에서 칼자루를 쥔 건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도려낼지 짐작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군 수뇌부의 대대적인 인사 개혁이 이뤄지지 않겠냐는 질문에 “역습당한 느낌이다. 알고 당하니 좀 분하기도 하다”고 답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보수언론 먼저 나서 논점 흐리기 </font></font>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를 방문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맨 왼쪽),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 두 번째)과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를 방문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맨 왼쪽),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 두 번째)과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현재 군 내부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지나는 동안 합참의장-국방부 장관-청와대 안보실장 등 요직을 거치며 외교·안보 라인을 쥐락펴락해온 김관진 전 안보실장 라인과 현직인 한민구 국방부 장관 라인 등이 있다. 이번 사태로 대대적인 군 인사 개혁 소문이 돌자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쪽 사람’으로 언급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정도가 됐다. 심지어 여권 일부에서 주장하는 ‘알자회’(육사 34~43기로 구성된 사조직)나 ‘독사파’(독일 사관학교 유학파 모임·김관진 전 실장,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등으로 분류만 되더라도 다가올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본다. 군의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갈라치기 하다가는 (육사) 기수별로 남아나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인적 개혁도 좋지만 군 장성급 이상 수뇌부는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이 분위기를 틈타 보수언론이 먼저 나서 이번 사건의 논점 흐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13년 전처럼 ‘보고 누락’이라는 핵심엔 눈감고 ‘진실 공방’ 쪽으로 논의 방향을 이끌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야권도 가세했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브리핑을 언급하며 ‘배치’와 ‘반입’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다가 실수를 했다고 주장했다. 배치는 사드 발사대를 경북 성주 골프장에 운용 가능하도록 설치한 것이고, 반입은 관련 장비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여왔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현재 사드 6기 중 2기는 현장 ‘배치’됐고, 나머지 4기 ‘반입’은 됐지만 ‘배치’는 아직 안 됐다는 것으로, 한 장관의 “그런 게 있습니까?”라는 반문은 팩트 그대로라는 것이다. 군 자체 검토 과정에서 삭제된 보고서 초안도 ‘6기 발사대’ ‘모 캠프에 보관’ 등의 문구는, 2기는 성주에 배치됐고 4기만 미군기지에 보관돼 있으니 틀린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사드 보고 누락 사태의 당사자인 한민구 장관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 장관은 5월31일 기자들과 만나 이번 논란에 대해 “관점과 뉘앙스의 차이다. 조사가 끝나면 그때 한 말씀 드리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판은 13년 전과 비슷하게 깔려 있다. 제2의 ‘박승춘’은 나올 수 있을까. 청와대는 여론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청와대는 5월31일 보고 누락에 관여된 한 장관과 국방부 내 핵심 정책 라인을 상대로 속도전을 치르듯 조사를 마쳤다. 사드 도입부터 배치까지 전 과정에 관여한 김관진 전 실장도 당연하다는 듯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청와대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드 배치 전 과정을 꼼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명분을 단단히 쌓고, 장관 인선 뒤 이뤄질 군 인사를 통해 인적 개혁의 시동을 걸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13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 청와대가 서둘러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보다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이다. 늦어진 국방부 장관 인선 등 외교·안보 라인의 임명과 6월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하는 사정도 있지만, 본격적 개혁을 위한 호흡 조절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문제는 통제할 수 없는 해외 변수 </font></font>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깊이 관계된 한 인사는 “서해 총격 사건 때 보고 누락 사태와 견줘보면 이번 사건은 그때보다 훨씬 더 위중하다. 당시는 일부 군의 반발이지만 이번 보고 누락은 장관이 포함된 군 핵심 라인이 청와대에 반기를 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거듭해서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따져보겠다고 했으니, 대통령께 사드 관련 장비의 반입과 배치, 운용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앞에 놓인 외교적 현실은 여전히 난맥상이다. 문 대통령은 당장 6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에 나서야 한다. 사드 배치로 냉각된 한-중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중요한 외교적 과제도 풀어야 한다. 이 인사는 “이처럼 위중한 상황에서 군 통수권자는 (사드 같은 전략 사안에 대해) 세세한 것까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게 당연한데 (한 장관과 국방부가) 이를 두루뭉술하게 보고해놓고 오히려 청와대를 향해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거나, 다른 진실이 있는 것처럼 하는 태도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분노에 대해 ‘뉘앙스’ 운운하는 태도를 보인 한 장관의 태도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그렇다고 이번 사건을 직접적인 군 개혁의 도화선으로 만드는 급격한 선택보다는 차분하게 절차를 밟아 개혁을 본궤도로 올리는 쪽을 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해외 변수다. 6월1일 문 대통령을 만난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한국이 사드를 원치 않으면 우리는 (사드에 들어갈) 9억2300만달러를 다른 곳에 쓸 수도 있다’고 문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청와대는 이 인터뷰 내용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재빨리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미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미국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드 배치 철회 압박을 강화하려는 중국의 자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6월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사드 진상 조사가 한-미 동맹 관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에 충분히 설명했다. 외교부를 통해 (보고) 누락 경위를 조사하게 된 배경을 미국 쪽에 전달하고 1차장도 한미연합사령관을 방문해 같은 내용을 전했다”고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문재인 대통령의 ‘담대한 도전’ </font></font>

현재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 과정을 거치는 등 국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 배치 자체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 보고 누락 사태를 최대한 활용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실리를 거둘 수 있을까. 또 국방부 등 외교·안보 라인 내에 누적된 적폐를 성공적으로 청산할 수 있을까. 누구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문재인 대통령의 ‘담대한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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