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2월9일 변론일 헌재의 탄핵 인용 예상했다”

국회 탄핵소추위원으로 참여한 박주민 의원 인터뷰…

“새로운 사회 만드는 것이 1500만 촛불에 보답하는 길”
등록 2017-03-21 23:27 수정 2020-05-03 04:28

3월10일 오전 11시21분.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는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말이 울려퍼졌다. 최고권력을 권좌에서 내려앉힌 힘은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든 15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의지였다. 이 의지를 받아안아 헌재 대심판정에 선 이들이 있다. 국회의원 9명으로 구성된 탄핵심판 소추위원단이었다.
소추위원으로 참여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3월16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박 의원은 박근혜 파면이 “국민이 주권자임을 확인하고 대통령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계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시민의 목소리를 적폐 청산으로 이어가는 것, 형사재판에서도 박근혜의 죄를 분명히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탄핵 결과는 예상했나.

인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탄핵심판 전날에도 크게 걱정은 안 했다. 막상 선고날이 되니 긴장되더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결정 요지를 읽어 내려갈 때 손이 갑자기 차갑게 얼어붙었다. 파면 결정이 나니까 긴장이 확 풀려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탄핵 당일 손이 차갑게 얼어붙어” 심리에는 자주 참석했나.

두 번 정도 빼고 다 참석했다. 일주일에 2~3일 헌재에 있다보니 지역구에 잘 가지 못했다. 그래도 지역 주민들이 “그게(탄핵) 더 중요한 일이니까 이해한다”며 응원해주셨다. 인용된 뒤에도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소추위원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나.

조금씩 있었다. 특히 초기에 소추위원단의 위임을 받아 탄핵심판 실무를 진행하는 변호사들을 지정할 때 몇 가지 이견이 있었다. 검찰에서 넘어온 기록을 공개하는 문제 등에서도 견해 차이가 있었다. 탄핵소추위원장인 권성동 바른정당 의원이 소추위원단과 합의되지 않은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정미 헌재 권한대행 후임을 임명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나, 탄핵심판이 끝난 뒤 개헌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다른 부분은 큰 이견 없이 잘 진행됐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결정 요지를 읽어 내려갈 때 손이 갑자기 차갑게 얼어붙었다. 파면 결정이 나니까 긴장이 확 풀려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초기에는 권성동 위원장이 여당 출신이란 점 때문에 탄핵소추위원단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권 위원장이 신속한 재판 절차 진행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많이 했다. 성실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도 여당 출신이라 우려스럽다는 여론을 인식했던 것 같다. 한번은 권 위원장이 심판정에서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해달라”고 강하게 말한 뒤 돌아서서 “나 잘하지 않았나? 믿어도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해서 한참 웃었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임기가 끝나는 3월13일 이후로 재판을 미루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이 권한대행이 헌재를 떠나면 탄핵 결정은 7명의 재판관이 내려야 한다. 탄핵 인용의 결론이 나오더라도 헌재 재판관 정원 9명 중 7명만 참석해 내린 결정이라고 흠을 잡기 좋다. 특히 8명일 경우 탄핵 기각을 위해서는 3명이 필요하지만, 7명일 때는 2명만 있으면 된다.
무더기 증인 신청은 대통령 대리인단의 재판 지연 전술 중 하나였다. 헌재는 2월7일 제11차 변론에서 대통령 쪽이 추가 신청한 증인 15명 중 8명을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2월9일 제12차 변론에선 “납득할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는 증인들에 대해서는 재소환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박 의원은 이때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탄핵 인용될 거라고 언제쯤 예상했나.

2월9일이었다. 2월7일 변론 상황을 보니 헌재가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에 끌려가는 분위기였다. 변호인들이 (1월25일 9차 변론에서) “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발언한 뒤 대통령 쪽 요구를 계속 들어주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소추위원단끼리 인터뷰 등에서 (무더기 증인신청 등 재판 절차 지연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자는 교감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 변론일인 2월9일 헌재가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할 의지를 강하게 보이더라. 그때부터 인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평우 변호사가 그 뒤에 선임됐다. 통상적인 재판 지연 전략으로는 안 될 것 같으니 절차가 공정하지 않다고 흠집을 내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꾼 것으로 보였다. 초기부터 참여했던 변호사들은 탄핵 절차가 위법하다거나 위헌적이란 주장을 하다가 모두 접었다. 이들이 다시 같은 주장을 하긴 힘드니까 다시 절차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새 인물을 선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월9일부터 바뀐 흐름
탄핵소추위원들이 2월1일 헌법재판소 10차 변론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탄핵소추위원들이 2월1일 헌법재판소 10차 변론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판 도중에도 박 전 대통령 쪽은 모든 범죄나 헌법 위반 사실을 부인했는데.

대통령 대리인단도 동의했던 증인인 차은택씨 등이 나와서 국정 농단의 실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대통령 쪽은 ‘말이 안 된다’는 태도를 넘어 재판관이나 국민을 협박하는 발언까지 했다. 이런 상황을 접하고 이 나라의 주류로 불렸던 이들이 책임감을 넘어 도덕적 감수성이 부족하거나 상황 인식을 아예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분들이 지금까지 정치를 이끌었다는 것에 굉장히 화가 났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태극기집회’에 나와서 강하게 발언하기도 했다. 과거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법조계에선 금기시하거나 자제하는 일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니 보수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왔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들은 매번 민중총궐기 같은 집회가 있으면 민주노총이나 야당이 배후 세력이라며 엄청나게 비판하지 않았나. 그런데 태극기집회에선 정치인들이 거리낌 없이 연단에 올라가서 탄핵 각하 등을 선동했다.

대통령 대리인단에 대한 방청석 분위기는 어땠나.

김평우 변호사나 서석구 변호사는 인기가 많았다. 탄핵에 반대하는 분들이 방청객으로 와서 꽃 같은 것을 전달해주고 그랬다. 기자들의 관심도 마찬가지였다. 내 주위에는 기자가 한 명도 안 왔는데, 서석구 변호사가 나가니까 구름처럼 모여들더라. (웃음) 그래도 심판정에서 큰 소란은 없었다.

헌재 재판관들은 어떤 분위기였나.

주심 강일원 재판관은 매번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이진성 재판관도 세월호 참사 등의 부분에서 질문을 잘했다. 서기석 재판관은 “문화, 체육 재단 관련한 일에 왜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이 움직이냐?”라고 물었던 것이 기억난다. 재판관들이 다들 예리한 질문을 해서 소추위원단 쪽에서 질문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기본적으로 재판관들이 모두 ‘스터디’가 잘된 것 같았다. 이번 사건의 중요함을 잘 아는 것 같았고 무척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헌재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았다.

(고 김영환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헌재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때 청와대와 교감을 했다는 의혹이 나온 적이 있다. 그런 교감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국민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 재판관들도 잘 알았던 것 같다.

재판관들의 송곳 질문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

차은택씨가 증인으로 나와서 2015년 최순실씨가 통일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놀랐다. 통일이나 남북관계는 고도의 보안이 필요한 정보 아닌가. 2015년에는 박 전 대통령도 통일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닐 때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이 국가 정책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강일원 재판관이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이) 대통령 공약을 시행하는 좋은 사업인데 왜 경제수석이 그렇게 증거를 인멸하고 위증을 지시했냐”고 물었을 때는 통쾌했다.

세월호 참사는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헌재의 판단이 박 전 대통령의 행위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었다. 특히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보충의견에 “국정 최고책임자의 지도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국가 구조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전형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전쟁이나 대규모 재난 등 국가 위기가 발생하여 그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흘러가고 이를 통제·관리해야 할 국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때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4월16일이 바로 이러한 날에 해당한다”며 헌법 제69조 및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 따라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부여된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를 위반했다고 명시했다.세월호 참사를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은 점에 대한 논란이 있다.

“세월호 참사를 탄핵 사유로는 판단하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잘했다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모두 잘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탄핵 사유로는 판단하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잘했다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모두 잘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정미 권한대행이 선고할 때 “(세월호 참사는) 어떤 말로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이 낸) 보충의견에서는 대통령이 세월호 같은 참사를 맞았을 때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재판 과정에서도 재판관들이 세월호 문제를 무겁게 생각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런 차원에서 이해되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분들이 서운해하는 것은 마음이 아팠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탄핵 인용 뒤 전화와 문자가 많이 왔다.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 않은 것을 서운해하는 분들도 있었고, 인용돼서 다행이라며 이제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들도 있었다. 너무 슬퍼서 우시는 분들도 있었고,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나는 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다. “아이가 이렇게 좋은 날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말도 들었다.

대통령 탄핵이란 것이 큰 비극이기도 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자체가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이 주권자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고, 대통령도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걸 일깨워준 일이라 얻는 것도 많았다.

박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린다는 관측도 있다.

법정 투쟁을 하지 않을까. 검찰이 이제 나머지 수사를 할 텐데 우려되는 점이 많다. 아직 우병우 라인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검찰을 지배한다는 의혹도 있다. 수사가 잘 안 되거나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면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도 ‘억지 탄핵’ ‘조작된 탄핵’이었다며 재기하려 할 수도 있다. 이후 검찰 수사와 재판 진행이 잘 되도록 신경 써야 한다.

“사기극 청산하고 새 사회 만들어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국민이 아닌 사익을 위해 정치를 한 세력의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다. 국정 농단을 넘어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이 사기극을 청산할 기반을 마련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몇몇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고쳐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1500만여 시민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추운 겨울을 났던 걸 보답하는 길이다.

정환봉 기자 boong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