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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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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의 점령

탄핵심판 가시권 들자 ‘불복론’ 나온 태극기집회…

무대의 “아스팔트에 피” 협박, 40여 명 참가자 목소리
등록 2017-03-07 02:20 수정 2020-05-02 19:28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보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는 2월24일 박영수 특별검사의 집 앞에서 열린 집회에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들고 참석했다. 그는 “이제는 말로 하면 안 된다. 몽둥이맛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팟캐스트 에 출연해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집 주소를 공개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 변호사들은 태극기집회에 나와 탄핵 각하와 기각을 노골적으로 선동한다. 인터넷에는 ‘이정미 권한대행을 죽이겠다’는 협박 글이 올라왔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테러하겠다고 말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3월1일 태극기집회에서는 흉기로 자신의 왼쪽 새끼손가락을 자른 남성이 참여했다. 그는 주변에 “좌파가 너무 심해서 그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 거리로 쏟아져나온 ‘아스팔트 보수’의 생각을 엿보기 위해 2월25일과 3월1일 태극기집회에 참여했다. 모든 무대 발언을 확인하고 집회 참가자 40여 명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_편집자
3월1일 열린 태극기집회에서 ‘육사’ 깃발을 든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3월1일 열린 태극기집회에서 ‘육사’ 깃발을 든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서울 세종대로를 축으로 동쪽으로는 종로5가, 남쪽으로는 서울시청까지 직각을 이룬 거리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서너 명씩 무리짓거나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는 태극기를 망토처럼 온몸에 둘렀다. 태극기 머리띠를 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복장을 한 사람도 있었다.

3월1일 오전 11시, 온몸에 ‘애국’을 걸친 사람들이 서울 동대문에서부터 100m 간격으로 늘어선 앰프를 따라 광화문 사거리를 향해 걸었다. 같은 시각 광화문 주변 골목엔 45인승 전세버스가 하나둘 도착했다. 교회 버스였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호차’라고 적힌 종이를 앞유리에 붙인 버스에서 태극기를 손에 든 사람들이 내렸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태극기의 물결이 합류한 곳은 ‘3·1만세운동 구국기도회’(구국기도회)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주최한 행사다. 2월27일 두 단체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를 열어 구국기도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교회 버스 타고 도착한 광화문

이날 한기총 대표회장인 이영훈 여의도 순복음교회 담임목사는 구국기도회가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탄기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순수한 기도회다”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달랐다. 구국기도회가 열린 거리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박근혜·박정희 사진을 프린트한 깃발이 어지럽게 나부꼈다.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주 예수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 얻었네.” 구국기도회가 시작된 거리에는 찬송가 260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가 울려퍼졌다. 행사 중간에는 ‘아멘’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이영훈 목사가 무대에 올랐다. 지난 기자회견 발언을 의식해서인지 연설은 경계를 오갔다. 이 목사는 “나와 틀리다고 존재하는 악성 유언비어 사라지고 대한민국 깃발 아래 하나 되게 해달라”며 “대한민국 역사가 오늘 바뀔 것이다. 공산세력 물러나고 평화통일 이뤄질 것이다. 공산세력과 불의에서 자유롭게 해주시옵소서”라고 말했다.

구국기도회의 심중은 ‘1919삼일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국민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인 강사근 장로가 무대에 올라오면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강 장로는 “우리 사회가 전교조, 민주노총, 언론노조에 의해서 마비되고 사법부의 좌파 법조인과 야당이 이 나라의 법치와 국회를 무너뜨리고 있다. 대통령을 모함하고 정권을 찬탈해 이 나라를 공산화하기 위해서 발악하는 자들을 우리가 모조리 심판해야 한다. 태극기를 흔들면서 달려가 저들을 무찌르자”고 말했다. 사람들이 들고 있던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풀거렸다.

구국기도회 발언에 나선 이들은 ‘반공’ ‘거짓’ ‘유언비어’ ‘국론 분열’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강 장로의 발언을 바탕으로 이들의 말을 꿰어보면, 공산세력은 거짓 유언비어로 대통령을 모함하고 국론 분열을 꾀하고 있다. 태극기를 흔들며 달려가 이들을 무찌르는 것이 구국이다. 구국은 곧 반공이다. 구국기도회가 겨냥하는 것은 ‘촛불’로 보였다.

같은 무대 쓰지만 “아무 관계 아니다”
3월1일 태극기집회는 세월호 농성장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려 충돌 우려가 나왔다. 김진수 기자

3월1일 태극기집회는 세월호 농성장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려 충돌 우려가 나왔다. 김진수 기자

오후 2시, 구국기도회에서 사용한 무대는 한기총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탄기국 집회 무대로 변신했다. 대한민국재향경우회 군악대가 태극기집회를 알리는 군가 ‘전선을 간다’를 연주했고, 손상대 뉴스타운 대표와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가 집회 사회자로 무대에 올랐다. ‘탄핵 무효’ ‘탄핵 기각’ ‘국회 해산’ ‘특검 구속’ 구호가 이어졌다.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친박 정치인도 대거 참여했다. 김진태·박대출·조원진·윤상현·이우현·홍문종·전희경·서청원·백승주·이완영·이헌승·장석춘·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그 주인공들이다.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자리를 노리는 이인제·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참가했다.

태극기집회의 단골손님 김진태 의원은 “망나니 특검이 짐을 싸서 집으로 가 속이 다 시원하다”며 “자유한국당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돈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믿는가?”라고 하자 좌중이 “믿는다”고 화답했다.

조원진 의원은 집회 참가자들과 “대통령님 힘내십시오”를 삼창했다. 조 의원은 이어 “문재인씨는 보수를 불살라버리겠다고 한다. 여기 있는 500만을 불살라버리겠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언론을 향해선 “양심 고백을 하라”고 윽박질렀다.

대표적 친박계인 윤상현 의원은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할 사람들이 있다”며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대한민국을 찬탈하려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윤 의원은 이어 “미국과 일본도 갖지 못한 여성 대통령을 임기도 못 채우고 쫓아내는 게 말이 되냐”며 박 대통령을 감쌌다. 또 “야당은 대통령도 탄핵, 황교안 권한대행도 탄핵하라고 한다. 입만 열면 탄핵, 탄핵, 핵핵거리는 사람들이 북핵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이 없나”라고 비꼬았다.

박대출 의원은 “고영태 일당이 음모를 시작해서 태블릿 조작하고, 언론은 왜곡하고, 촛불은 선동했다”며 “졸속 수사, 졸속 소추, 졸속 심판을 했기 때문에 이번 대선은 졸속으로 이뤄지고 졸속 대선이 이뤄지면 졸속 대통령을 뽑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우현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 돈 많이 받았지만 그 사람들 탄핵 안 됐다. 그들이 이북에다 얼마나 많은 돈 갖다 줬나. 북한은 그 돈으로 핵폭탄 만들어서 대한민국 여러분들 죽이려고 한다. 사드를 반대하는 민주당을 심판해달라”며 ‘야당 심판론’을 부르짖었다.

‘거리의 변호사’로 변신한 박근혜 대통령 법률대리인들도 무대에 올랐다. 김평우 변호사는 이날 손을 부르르 떨며 발언을 시작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김평우!” “김평우!”를 연호했다. 뜨거운 호응을 가라앉힌 김 변호사는 “(촛불집회 참가자는) 박근혜 대통령님과 대한민국을 저주하는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했다. 또 “경찰과 군인이 나라 지키다 목숨 잃을 때 받는 돈의 몇 배를 세월호 조난 사고 학생들에게 주고도 모자라 끝내 박근혜 대통령님의 목숨까지 내놓으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님이 애국시민들의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태극기집회를 이어갈 것이다. 광화문광장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자”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서석구 변호사는 “하느님이 탄핵을 기각하려고 하는 저희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태극기집회에서는 찬송가 대신 군가가 흘러나왔지만 ‘주적’은 같았다. 성균관대 구국동지회 소속 배영복 전 육군정훈감은 “젊은 사람들이 전교조에 의해 잘못된 교육을 받아서 뭘 잘 모르기 때문에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것”이라며 “자식, 손자가 아무리 예뻐도 그들을 혼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공산화되고 있으며 공산화가 되면 모두 죽는다”며 “설문조사를 하면 학생들 70~80%가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다고 나온다”고 주장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삼일절을 맞아 열리는 촛불집회에서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 달린 태극기를 나눠주는 것을 두고 ‘괴국기’라 부르며 “노란 리본을 붙여서 태극기를 훼손한 자들은 반란군”이라고 말했다.

집회 진행을 맡은 손상대 대표는 “저 광화문을 보라. 무슨 현수막이 공동묘지도 아니고 북한의 아오지 탄광도 아니고 무시무시한 귀신이 나올 것 같다”며 “광화문 쪽으로 외치자. 야, 좀비들아. 태극기 말 좀 들어라. 어른들 말 좀 들어라”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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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두른 거리의 변호사들

이 이날 집회에서 만난 40여 명의 생각도 무대 위 발언과 다르지 않았다. 서울 구로구 한 교회에서 온 50대 남성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불법이고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라며 “선조들이 일궈놓은 나라를 북한에 바치려고 하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어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쟁에 다녀온 60대 남성은 “혼자 나왔다. 요즘 우리나라가 공산화될까봐 걱정이 돼서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그래서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교인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60대 여성은 “아들이 교사인데 거의 전교조나 마찬가지라서 자주 싸운다”며 “TV 보면 만날 (박 대통령이) 성형수술 했네, 보톡스 맞았네 하니까 너무 안타깝고 언론이 국민을 우롱하는 것 같아 약이 올라서 나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극기집회 참가자가 ‘공산당’과 더불어 가장 미워하는 대상은 언론이었다. 서울 구로구에서 교인들과 함께 온 40대 주부 이민영씨는 “좌파 언론 방송에 국민들이 선동되어 지금 상황을 잘 모른다. 적화통일이 될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일행 20여 명과 온 60대 황아무개씨는 “우리 애국시민들은 유튜브에서 많은 정보를 접한다”며 “종편 방송이 애국집회는 항상 축소 보도해 안 본다”고 했다. 황씨는 또 “촛불을 민심이라고 하는 사람은 좌편향 종북주의자라고 본다”며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이석기를 석방해달라고 하고, 사회주의가 답이고, 북한이 우리 미래라고 한다”며 분노했다. 친구 3명과 집회에 참가한 60대 여성은 “아무리 돈을 줘도 이 고생을 굳이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언론이 편파적이고 나라가 위험하니까 힘들어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 만난 집회 참가자들이 가장 즐겨 찾는다고 밝힌 언론은 보수 성향의 팟캐스트 와 탄핵심판 기간에 박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로 유명해진 인터넷 방송 였다. 등 보수 신문은 물론 믿었던 종합편성채널마저 ‘배신’을 했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에 배신당한 사람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탄핵인용 결정을 내리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람도 많았다. 서울에서 지인과 함께 온 40대 남성은 “탄핵이 인용돼도 계속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면서 저항할 것”이라며 “아스팔트에 피를 뿌리겠다는 말이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시에서 가족과 함께 나온 50대 여성 김아무개씨는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아이들을 다 데리고 집회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충남에서 45인승 버스 10대와 함께 올라왔다는 70대 김아무개씨는 “박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면 국민적 저항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 70대 남성은 “탄핵이 인용되면 법이니까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탄핵 심판에 대한 불복 의지는 헌재 심리 종료를 앞둔 2월25일 14차 태극기집회에서부터 불붙기 시작했다. 전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부장 출신 권영해 탄기국 대표는 이날 “만일 헌재가 2월27일 심리를 종결한다면 헌재 앞에서 무기한 단식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헌재가 심리를 종결하자 약속대로 2월28일부터 헌재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날 집회에서 장수덕 미국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 나라 법치주의를 구하기 어려울 때는 국제사법재판소까지 갈 각오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헌재에 악마의 재판관 3인이 있다. 잘못되는 경우 아스팔트에 피를 흘리는 것을 넘어서겠다”며 “어마어마한 참극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교조가 망친 대학생을 태극기로”

헌재 심리 종료로 박 대통령 탄핵이 가시권으로 들어온 3월1일 집회에서도 탄핵이 인용될 경우 ‘피가 흐를 것’이라는 경고가 계속됐다. 정광용 대변인은 이날 “언제까지 우리가 무저항 비폭력을 유지해야 할지는 정국에 달렸다. 제가 제일 먼저 피를 흘리겠다”고 말했다.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 오후 4시부터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이 시작됐다. 경로는 세월호 농성장 등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을 우회해 청와대로 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극기집회가 광화문광장과 워낙 가까운 곳에서 열려 며칠 전부터 충돌 가능성이 제기됐다.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며 120일 가까이 농성을 하고 있는 ‘광화문 캠핑촌’은 집회 전날인 2월28일 보도자료를 내 “보수 세력들이 특공대를 200여 명 조직해 광화문을 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밝혔다.

광화문광장을 둘러싼 긴장은 전날 밤부터 3월1일까지 이어졌다. 캠핑촌에서 생활한 지 110일이 넘었다는 박교일(53)씨는 “어젯밤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잠을 거의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밖에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3월1일) 새벽 1시30분이 되자 광화문광장에 배치된 경찰들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캠핑촌 사람들이 ‘우리 스스로 대비하자’며 2인 1조로 밤새 불침번을 서서 농성장을 지켰다”고 덧붙였다. 캠핑촌의 길정순(65)씨는 “(태극기집회 쪽이) ‘광장을 쓸어버리겠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며 “경찰에게 ‘믿고 자도 되겠는가?’라고 물었고 ‘네, 편안히 주무세요’라는 답을 들었지만 잠들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태극기집회와 같은 시간대에 광화문광장에서는 국민주권선언대회가 열렸다. 송경평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는 “바로 지금이 70년 동안 이어진 적폐 청산을 할 기회”라며 건너편에서 열린 태극기집회를 향해 “기득권이 무너져가는 (상황에서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화문광장에서는 “박근혜 구속 만세” “박근혜 탄핵 만세” “황교안을 탄핵하라”는 만세삼창이 울려퍼졌다. 차벽 반대편에서 돌아오는 메아리는 “탄핵을 각하하라” “전교조가 망쳐버린 대학생들을 태극기로”였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다섯 군데 도로를 이용해 행진할 예정이었으나 주최 쪽이 인원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일부만 행진할 것을 권유했다. 참가자들은 세종대로에서 동화면세점으로 빠져 경복궁역을 지나 청와대로 향했다.

사람들은 “탄핵 무효” “탄핵 각하” “민주당 탄핵”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 “손석희 구속” “박영수 구속” “고영태 구속”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청와대에 도착하자 과격한 구호가 사라졌다.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만세” 등의 응원이 이어졌다. 청와대로 향하는 사람들은 청와대에서 돌아오는 무리를 향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모르는 사이에도 먼저 악수를 청했다. 언론도, 국회도, 사법부도 자신을 외면했다던 사람들은 서로에게 극진했다.

허공을 가른 젖은 태극기

어스름이 깔린 저녁 6시쯤 청와대를 향해 마지막으로 행진하던 집회 참가자들이 다시 세종대로에 모였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돌아온 인원은 출발 인원보다 훨씬 줄었다. 집회가 끝날 때쯤 무대 위 스크린에는 4분짜리 영상이 재생됐다. ‘대한민국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직면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영상에서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6·25의 노래’였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한국전쟁, 남파간첩, 촛불시위 영상이 재생됐다.

손상대 대표는 “우리는 몇 달간 쓰레기도 없는 집회를 하고 있는데 광화문광장에는 술판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장이, 경찰이 눈을 감고 있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구해야 한다”며 집회 마무리 발언을 했다. 사람들은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내내 젖은 태극기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그리고 거리를 떠났다.

김서진·이승진·이은주 교육연수생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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