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메르 퇴진, 쿠데타를 중단하라. 우리는 올림픽을 원하지 않는다.” 파티와 시위는 동시에 진행됐다. 8월5일 올림픽 개막식을 8시간 앞두고 4km에 달하는 코파카바나 해변에는 1만여 명의 인파가 모여 행진했다. 1923년 개장해 리우데자네이루의 상류층 역사를 여전히 위압적으로 내보이는 벨몬드 팰리스 호텔 앞에서 이층버스를 개조해 올라탄 시위대의 일부가 끊임없이 구호를 외쳤다. 같은 시각 호텔에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고위 관계자들과 각국 유명인사들이 파티를 열고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올림픽 유치 결정 뒤 매해 오른 월세</font></font>브라질 전국노조연합에서 나온 마르셀로 제마라시(52)는 “올림픽보다 중요한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약 5m에 달하는 긴 배너의 한 끝을 움켜쥔 채 구호를 외쳤다. 리우주립대학 학생회는 보수당과 재벌 미디어 그룹의 연합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브라질 전체 인구 98%가 시청한다는 남미 최대 미디어 그룹 글로부(Globo)는 수많은 뉴스 채널과 스포츠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성화 봉송과 개막식 준비 장면을 끊임없이 내보냈다. 그러나 이날의 시위는 어떤 미디어에서도 단신으로조차 보도되지 않았다. 이 북새통 속에 207개국과 난민팀의 1만1천여 명 선수단이 출전하는 지구 최대의 스포츠 쇼, 올림픽이 시작됐다.
“어차피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이 메달을 휩쓸 거잖아. 근데 왜 이 강대국들의 축제에 브라질이 돈을 다 내느냔 말이지.” 지난 4일 만난 펠리페 레모스(32)도 리우 시민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내게 반복해 분출했다. 그는 리우 주립 행정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한다. 리우 체류 기간 동안 나에게 아파트를 빌려주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버리기 직전, 그는 동네 채식주의자 식당에서 나에게 말했다. “월드컵과 올림픽이 지나면 긴 터널의 끝이 보이리라 생각했어. 그런데 끝이 안 보여.”
펠리페는 리우의 중산층 구역인 보타포구의 작은 방 2개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소셜미디어 마케팅 프리랜서로 일하는 여자친구 이오나 리코벨루(24)와 살고 있다. 그는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2009년 이후 이 지역의 집값이 매년 급박하게 올라 이제 자신들의 소득으로는 월세도 감당하기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두 사람은 리우주립대학에서 교육받고 전문직업을 가진 리우의 젊은 도시 중산층이다.
유럽과 북미, 그리고 한국 같은 아시아의 미디어들은 브라질의 정치 스캔들, 리우의 치안 부재, 빈민촌 파벨라의 갱단 문제, 환경오염 등 부정적 문제들을 집중 조명하며 과연 브라질이 남아메리카에서 처음 열리는 이 지구적 차원의 행사를 주관할 능력이 있는지 계속 질문해왔다. 반면 브라질은 이들 나라에 자신이 대등한 선진국임을 입증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는 펠리페와 이오나와 같이 새롭게 형성되는 브라질 중산층의 욕망이자 2003년부터 집권한 노동자당의 꿈이다. 이 달콤한 꿈이 지금 악몽으로 변하고 있다. “도대체 이 행사를 왜 치르는지 모르겠다.” 이오나는 한숨을 쉬었다.
월드컵과 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된 2007년과 2009년, 막 성장하는 브라질의 신흥 중산층은 민주주의 확립 및 경제 발전과 사회적 통합에 대한 낙관적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군부세력, 남부의 전통적 지주·토호 계급, 그리고 ‘커피 부르주아’들의 재집권을 노동당은 보수당과의 연정 형태로나마 제압하고 있었다. 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대통령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이라 외치며 덴마크 코펜하겐 대회장 단상에서 브라질 국기를 휘날렸다. 이날 코파카바나 해변은 축제의 장이었다.
자신감에 넘칠 만도 했다. 2003년 집권 뒤, 노동자당은 연평균 7%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2008년 전 지구적 금융위기의 직격탄도 피했다. 주요 수출품인 원자재는 중국의 경제성장과 맞물려 호황을 유지했다. ‘글로벌 사우스’라 불리는 브릭스(BRICS)의 전성기였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옛 제국들과 제3세계 국가들 앞에서 자신들이 더 이상 주변부 국가가 아님을 선포하고자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지구적 스포츠 이벤트 이후 국가경제의 추락</font></font>지구적 차원의 메가 이벤트는 그 선포의 장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010년 월드컵을, 중국은 2008년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치렀고 2022년 겨울올림픽 개최국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을 사상 최대 예산으로 개최했고 2018년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룰라의 운은 지속되는 것처럼 보였다. 2006년 ‘룰라 필드’라 불리는 80억배럴의 유전이 리우 항구에서 약 250km 떨어진 해저에서 발견됐다. 2011년 1월 룰라 퇴임시 지지율은 경이적인 80%를 기록했다. 더불어 가족수당(Bolsa Familia) 정책과 기아 제로(Fome Zero) 정책 등을 통해 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2009년 2천만 명이 극빈 상태를 벗어났다. 2003년 이후 10년 동안 평균 가계수입은 87% 증가해 소비 중산층이 전체 인구 37%에서 50%로 늘어났다. 세계 8대 경제국가가 남미 최초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브라질 중산층은 환호했다.
“그런데 노동자당은 숙제를 안 한 거야. 계산이 완전히 잘못됐어.” 브라질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 파다리아의 바에 서서, 닭살을 으깬 코시니아를 먹으며 호세가 말했다. 이벤트는 메가급인데 재정 운영은 동네 수준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리우에서 회계사로 일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올림픽 틈탄 권력 찬탈과 기본권 박탈</font></font>그의 푸념처럼 정부가 계산서에 넣지 않은 요소가 하나둘 등장했다. 중국의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원자재 수출이 불안해지고 원유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새로 발견된 유전도 거대한 소금층으로 인해 시추에 엄청난 재정 투입을 요하면서 그 가치가 의심되고 있다. 심지어 브라질 경제의 13%를 차지하는 초대형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시장가치는 2016년 초 27%나 하락하여 2008년 5130억헤알(약 151조원)의 7분의 1 규모인 737억헤알(약 22조원)로 축소됐다. 두 메가 이벤트가 끝나는 2016년을 지나면 브라질 경제 규모는 외려 2%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에는 심지어 -3.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월드컵에 150억달러, 올림픽에 120억∼160억달러 정도를 퍼부었는데도 이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의 경제 침체는 월드컵 후폭풍에 불과하다는 점이 불안을 더욱 가중한다. 메가 이벤트의 재정적 충격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체감된다는 점을 감안하면(그리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 상태를 보라!) 포스트 올림픽의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계산할 여력이 없다.
결국 ‘빵’도 ‘서커스’도 다 잃었다는 이야기다. 급속히 확산되는 불만의 기운을 감지한 보수집단의 반격이 시작됐다. 이들은 페트로브라스의 의장을 맡았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횡령으로 공격하다 무혐의로 드러나자 재정 조작 혐의로 기어이 탄핵했다. 대통령 직무는 정지됐고 올림픽 직후 상원의 투표로 탄핵의 법적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연정 파트너인 보수당의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은 이미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맡아 브라질 정부를 보수당 중심으로 재조직했다. 군부독재에 저항한 여성 대통령을 축출하자마자 아마존 개발업자, 창조론을 신봉하는 급진 기독교인을 포함해 ‘백인 남성’만으로 내각을 구성했다.
“쿠데타다. 선출되지 않은 보수집단이 올림픽 기간 동안 권력을 빼앗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한다.” 리우 주정부 산하 한 연구소에서 공공정책을 담당하는 알렉산데르 피레스 도밍게스(42)는 긴 대화 중 ‘쿠데타’라는 말을 반복했다. 리우의 2호선 전철 종착역인 파브나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알렉산데르는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해 공무원이 됐다. 공립대 대학원까지 공부할 수 있게 해준 민주화와 공공복지의 성과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 깊다. 그는 “대안이 뭔지 모르겠다”며 침울해했다.
3일 리우 주정부 등의 주최로 열린 ‘스포츠 메가 이벤트의 지속성’이란 학회에서 만난 알렉산데르는 나를 리우주립대학 철학사회과학 앞 광장에서 열린 또 다른 토론회로 데려갔다. 오후 6시부터 3시간여 동안 무려 15개에 이르는 주제를 당사자들이 각 10여 분씩 발표했다. 올림픽파크로 향하는 전용 고속도로를 낸다고 집이 허물어진 철거민, 마라카낭경기장 옆에 대형 주차장을 만든다고 인디언 박물관을 허물려는 계획에 저항하는 원주민, 월드컵이 열린 2014년 이후부터 제자리였던 월급이 이젠 그나마도 나오지 않는다는 대학 교직원, 동네에 건립되던 병원이 중간에 공사가 멈추었다는 지역 건강의료 활동가 등이 전방위적으로 토론했다.
토론회와 집회가 열린 상프란시스쿠 광장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또 하나의 광장은 ‘올림픽존’이라 불린다. 개막식을 초대형 스크린으로 중계하고 시민 수천 명이 모여 도시의 스펙터클을 이룬다. 이곳은 리우시 당국이 추진한 ‘경이로운 항구’ 프로젝트의 중심이다. 미국 뉴욕,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어 아메리카의 3대 항구로 불리던 리우를 올림픽을 통해 재개발하려는 열망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초국적 자본·엘리트 집단의 ‘순수한 섬’</font></font>이 개발의 욕망은 공간과 토지 가치를 재창출하고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속화한다. 올림픽을 등에 업고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자되고 이익은 사적 차원에서 취득된다. 지난해 개관한 ‘내일의 박물관’은 이를 상징한다. 이 세련된 공간에서 나는 홍콩에서 온 올림픽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개막식을 지켜보았다. 영화 를 감독한 페르난두 메이렐리스가 연출진으로 참여한 개막식은 디지털 스크린을 광범위하게 이용하면서 도시의 스펙터클을 전세계 관중에게 보여주었다. 유럽 중심주의에 저항해온 문화적·예술적 자부심을 내심 기대했지만, 개막식은 경이로운 미래에 집중했다.
올림픽이 현란한 스펙터클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재개발된 공간은 아주 구체적인 이해를 창출한다. 그 이익은 파벨라(브라질 빈민촌)의 빈민에게도, 리우의 중산층에게도 돌아가지 않는다. 초국적 자본과 리우의 엘리트 집단에만 배당된다. 선수단 숙소로 쓰이는 올림픽 빌리지는 23억헤알의 공적자금을 받아 브라질 최대 개발업자들이 건설했다. 개발업자를 대표하는 부동산 개발 재벌 칼르루스 카발루는 이 빌리지가 올림픽 이후 리우와 전세계 엘리트 그룹을 위한 고급 콘도로 분양될 것이라 거리낌 없이 발표했다. 콘도 단지는 ‘순수한 섬’(Ilha Pura)이라 불린다. 상위 지배층만을 위한 도시 내 배타적 도시라는 의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결과, 올림픽 도시 리우는 통합의 공간이 아닌 배제의 도시가 되었다. 애초엔 리우 중산층도 이 개발 욕망에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편승했다. 빈민들의 희생은 ‘진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비용으로 합리화했다. 빈민은 리우의 치부이고 이는 교정돼야 한다는 시각을 받아들였다. 위생과 환경을 개선해 문명화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했다. 제국이 식민을 보듯,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보듯, 내부자가 외부자를 바라보듯 말이다.
플로라 다몬(34)은 코파카바나 바로 옆 차페우 망주에이라 ‘파벨라’에서 리우 주정부의 사회인권 담당자로 얼마 전까지 일했다. 수없이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걷고 주민들과 식사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플로라는 나에게 파벨라가 몇 세대에 걸쳐 형성된 공동체임을, 커피 노예로, 항구 노동자로 리우에 정착한 이들이 만들어낸 집단적 경험과 삶의 공간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 누구도 이들에게 이주를 명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올림픽 준비 기간에 리우의 중산층들은 빈곤하다는 이유만으로, 교육받지 못했다는 명분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일부 시민을 이 도시로부터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이제 그 모든 비용이 도시와 국가 전체에 전가되고 자신들이 피해받고 배제되기 시작하자, 비로소 빈민과 연대해 저항하려 한다. 그 저항은 너무 작고, 연대는 너무 늦었다.
브라질 공화국이 탄생한 1889년 11월19일 공식 채택된 브라질 국기에는 공화국의 첫 수도 리우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연합체를 상징하는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국기의 디자인은 사회철학자 하이문두 테이셰이라 멘데스가 주도했다. 프랑스 실증주의 사회학의 창시자 오귀스트 콩트의 추종자답게 멘데스는 ‘질서와 진보’라는 이념을 국기에 영원히 수놓았다. 수학과 과학, 합리성에 근거한 근대화를 달성하려는 젊은 국가의 패기 넘치는 지향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상징과 이념의 기원을 들여다보던 나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콩트의 글에 따르면, 그의 핵심 원리는 두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가 아닌가. 콩트가 죽기 직전 발표한 에 실린 원문은 다음과 같다. “원리로서의 사랑, 그리고 기반으로서의 질서, 목표로서의 발전.”
<font size="4"><font color="#008ABD">‘질서와 진보’란 이름 뒤에</font></font>그러니까 브라질 국기에는 세 가지 원리 가운데 사랑이 빠져 있다. 멘데스가 어떤 이유로 질서와 진보만 선택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사랑은 과학적이지 않고 감정적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짐작해본다. 타자에 대한 공감, 상호 인정, 그리고 평등한 연대가 사랑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면, ‘존중’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설정한 이번 브라질 올림픽의 정신도 사랑과 맞닿아 있으리라. 며칠 후면 폐막식이다. 리우의 시민들이 올림픽 스펙터클로 감추려 한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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