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이 늘어나면서 그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선이 늘었다. 동시에 협동조합에 시비하는 시선도 생겨났다. 부실한 협동조합에 국고를 댄다거나, 실정법을 어기는 협동조합이 많다거나, 심지어 협동조합이 시장경제에 암적 존재라는 주장까지 출몰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다양한 사회문제까지 함께 해결하기 위해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활용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모르는 데서 비롯한 일이다. 아울러 그런 세계적 기준을 따라잡지 못하는 국내 법·제도, 그리고 주무 관청의 탓도 있다.
현재 한국에는 8개의 협동조합 개별법(농업협동조합법·수산업협동조합법·산림조합법·신용협동조합법·새마을금고법·중소기업협동조합법·엽연초생산협동조합법·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과 1개의 협동조합기본법이 있다. 복잡한 법체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협동조합을 돕지 못하고 오히려 막아서는 걸림돌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의 보완재2010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생협법)이 전부 개정됐다. 이에 따라 협동조합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공급할 수 있도록 사업 범위가 확대됐다. 협동조합 간의 협동을 위한 연합회를 설립할 수 있게 됐고, 공제사업을 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공제사업은 조합원과 그 가족이 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고와 위험에 공동으로 대비하는 사업이다. 이윤을 남기려는 목적의 일반 보험에 비해 생협의 공제사업은 가입자에게 제공되는 혜택이 크다. 일본의 생협에선 매우 활성화돼 있다.
하지만 생협법 개정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의 생협들은 공제사업을 할 수가 없다. 생협이 공제사업을 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기준에 맞게 공제 규정을 만들어 인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공정거래위는 기준을 만들지 않고 있다. 감독 기준이 없으므로 생협이 공제 규정을 만들 도리가 없다. 지난해와 올해 국정감사에서 연이어 지적되고 있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늦어도 너무 늦다.
관련 법체계가 복잡한 만큼 주무 부처와 유관 부처도 복잡하다. 칸막이 행정으로 인해 이들 간의 협조와 조율이 좀체 이뤄지지 않는다. 협동조합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정책과 제도의 정비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농민은 농협 조합원이다. 농협은 지역 농산물을 공동판매하는 등의 구실을 한다. 이들 지역농협은 비영리법인으로 인정받아 법인세 등 세금을 감면받는다. 그런데 같은 지역 농민들이 농산물 공동판매를 위해 조합을 만들면, 이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법인으로 간주되어 주식회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세금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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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된 것일까? 농협은 농협법에 근거해 만들어졌고, 자발적 농민협동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일반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일반협동조합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체로 간주된다. 하지만 같은 사업을 하고 있는 농협·수협·새마을금고·신협·생협 등 개별법에 의해 설립된 협동조합들은 비영리법인으로 인정된다. 근거 법이 다르므로 혜택도 다르다는 것인데, 같은 사람이 같은 목적으로 활동하는 두 조합이 왜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부터 혼란스럽다.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관료를 만난 적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뿐이 아니다. 국내법에 따르자면,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조합원이 아닌 일반인을 상대로 사업을 하면 불법이다. 지난 10월 한국을 방문한 이탈리아의 유명한 협동조합, 레가쿱 에밀리아로마냐의 조반니 몬티 회장은 놀라워했다. 이탈리아에는 그런 법이 있지도 않지만, 그런 규제가 있다 해도 절대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협동조합연맹 생협분과의 전 사무총장 로드리고에게도 전자우편으로 자문을 구했는데, 유럽에서 비조합원의 소비자협동조합 사업이용을 불법으로 규정한 나라는 없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다른 개별 협동조합법은 조합원의 이용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일반인 상대의 사업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협동조합을 협동조합기본법이 아닌 생협법을 근거로 만들 경우에만 비조합원의 사업이용이 불법이다. 앞뒤가 맞지 않고 이치에 닿지 않는 이런 실정법을 어긴다고 협동조합을 탓하는 것은 억지가 아닐까.
복잡하고 일관되지 않은 법 적용이 걸림돌일선 협동조합에 대한 지도 점검은 보통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한다. 지난해 말, 한 협동조합에 공무원이 점검을 나왔다. 그는 “조합원의 출자금은 써서 없애면 안 되고 통장에 고이 모셔두어야 한다”고 ‘지도’를 하고 갔다고 한다. 출자금은 협동조합의 사업을 위해 유용하게 쓰여야 하는 돈이지 보물단지처럼 예쁘게 모셔둬야 하는 것이 아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관료만이 아니다. 지난 9월 한 시사주간지는 아이쿱생협이 조합원으로부터 자금을 차입받아 고유한 목적사업에 사용한 것을 ‘불법적인 유사수신행위’로 규정하고 보도한 적이 있다. 이른바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공동사업을 위해서는 출자금보다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일이 있다. 오래된 협동조합은 그동안 쌓인 자산을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수 있지만 신생 협동조합은 축적된 자산이 없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이웃 나라 일본의 많은 생협들은 조합채를 발행해 조합원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한다. 일정하게 이자를 지급하고 조합원에게서 돈을 빌리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생협도 조합원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유명한 스페인의 몬드라곤도 큰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사업에 투자·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협동조합기본법과 생협법에 의해 설립된 협동조합은 ‘출자금’ 외 다른 자금 조달 수단이 전혀 없다. 해외 협동조합은 물론 국내 농협·신협은 출자금만이 아니라 채권발행제도, 다양한 조합원·비조합원 투자제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이런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의 미비를 따지지 않고, 조합원의 자조와 자생을 위한 국내 생협의 노력을 ‘불법’으로 매도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2013년 정부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협동조합들이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가 자금 조달이다. 현행 협동조합기본법은 협동조합의 금융 또는 보험 사업을 금지하고 있다. 금융 당국의 견제와 우려가 컸다. 하지만 중소기업은행이나 산업은행처럼 협동조합을 위한 특수은행이 없고, 조합원 간의 상호금융도 할 수 없고, 일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으려 해도 담보가 없어 어렵고, 연대보증은 구성원들이 꺼리고, 신용대출은 꿈도 꾸기 어려운데, 무슨 수로 자금을 구할 것인가.
이 때문에 협동조합에 관심을 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도 변경만 바라지 말고, 협동조합을 돕는 협동조합 금융을 협동조합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분출하고 있다.
미국·일본과 달리 꽉 막힌 자금 조달세계적으로 보아 협동조합의 역사는 200년 가까이 된다. 한국의 협동조합은 이제 걸음마 수준이다. 그나마 기초적 법률인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진 것이 겨우 3년 전이다. 제대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 많지 않다거나, 자립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려 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관련 법·제도를 제대로 정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협동조합 혼자 알아서 날고 뛰라고 하는 게 오히려 무리 아닐까. 그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제대로 된 협동조합,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협동조합이 곳곳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김대훈 사회적협동조합 아이쿱협동조합지원센터 이사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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