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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 짊어지려 그 길을 선택했을까?

해킹 프로그램 운영 실무자로 지목된 국정원 임씨의 자살 직전 행적과 행동들… 가족을 끔찍히 아끼던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결정적 압박은 무엇이었을까?
등록 2015-08-04 15:11 수정 2020-05-03 04:28

“임씨가 주도했고, 임씨가 모든 책임을 졌기 때문에 임씨가 사망함으로써 (도·감청 해킹 프로그램과 관련해) 상당 부분 알 수 없게 됐다고 국가정보원이 여러 차례 보고했다.”(7월27일, 신경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임씨’는 도·감청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한 실무자였다고 국정원이 설명한 사람이다. 다른 부서로부터 전달받은 도·감청 대상자를 상대로 해킹 프로그램을 가동한 전산 기술자였다. 국정원 출신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은 “임씨는 (해킹 프로그램을 운영한 팀의) 팀원이었다가 지난 4월 대전 지역 근무로 옮겼다”고 전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보고처럼, 지금 그 팀원(임씨)은 도·감청 해킹 사태의 ‘주도적 책임자’가 됐다. 7월18일, 새벽 4시50분께 집에서 나와 화산리(경기도 용인)의 좁은 왕복 2차선 도로를 지나 야산에서 멈춘 그가 빨간색 마티즈 승용차에서 죽음을 통해 말하려던 결론도 이것이었을까?

국가정보원 직원 임씨는 7월18일 마티즈 승용차 안에서 연기에 질식돼 숨졌다. 차는 경기도 용인의 한 야산에서 발견됐다. 그는 7월2일 중고 마티즈를 구입해 총 1100km를 달렸고, 차는 7월22일 폐차됐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국가정보원 직원 임씨는 7월18일 마티즈 승용차 안에서 연기에 질식돼 숨졌다. 차는 경기도 용인의 한 야산에서 발견됐다. 그는 7월2일 중고 마티즈를 구입해 총 1100km를 달렸고, 차는 7월22일 폐차됐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효성과 가족애 지극했던 그 사람

은 국정원 직원 임아무개씨의 유족을 만나 독점 인터뷰했다. 마티즈 승용차를 임씨에게 넘긴 전 소유주도 처음으로 만났다. 유족은 승용차를 둘러싼 세간의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임씨가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국정원 내부에서 어떤 심리적 압박을 받았던 것인지에 관한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임씨의 친인척인 ㄱ씨는 “나도 자살이 의심되어 부검 때 시신을 몇 번 보고 그랬지만 상처나 타박상도 없고, 그건(타살) 아닌 것 같다. (유서) 필체도 확인했는데 문제가 없었다. 유서를 쓴 종이도 둘째딸의 노트였다”고 했다. 다만 ㄱ씨는 ‘그가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하다”고 했다. ㄱ씨는 유족 대표로 임씨의 부검을 참관했다.

1970년생인 임씨는 3녀2남 중 막내였다. 위의 형이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여든이 넘은 노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었다고 한다. 이별을 강제로 재촉한 아들은 유서에서 “항상 마음은 엄마에게 있어요”라고 죄송한 마음을 눌러 적었다. 임씨는 학창 시절 육군사관학교 필기시험에 합격했지만 혈압이 높게 나와 신체검사 단계에서 떨어졌다. 의대 진학도 고려하던 그의 첫째딸이 올해 육사에 들어갔고, 둘째딸이 고3이 됐다. 아빠인 그가 돌연 죽음을 택한 올해는 “너는 나의 희망이고 꿈”이라던 맏딸이 넉넉한 기쁨을 준 해였으며, “웃는 모습이 예쁜 우리 아기(둘째딸)”가 중요한 시기를 통과하던 때였다.

대전의 한 개척교회 목사인 ㅅ씨에게 그 임씨의 연락이 온 건 7월1일이었다. 중고차 사이트에 ‘빨간색 마티즈’ 매매 글을 올린 지 하루 만이었다. “충남대 수의과대 앞에서 만났으면 합니다.”

자신이 정한 장소에 임씨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수동기어 방식의 빨간색 마티즈는 2005년에 생산됐다. 운전석 앞 유리에 작은 금이 갔고, 외부에 긁힌 자국이 더러 있는 차였다. 임씨에게 차가 넘어가기 전까지 주행거리가 21만9149km나 됐다.

“교수님이세요?” 목사 ㅅ씨의 물음에 임씨는 “아닙니다”라고만 답했다. 임씨는 “고속도로 주행, 고속 주행이 가능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ㅅ씨는 “고속에선 차가 (좀) 흔들린다”고 했고, 클러치 페달이 빡빡해 최근 수리를 했다고 알려줬다. 시운전을 한 임씨는 ㅅ씨와 헤어진 다음날 차를 사겠다고 연락했다.

ㅅ씨는 180만원에 내놓은 차를 160만원으로 깎아줬고, 임씨는 전액 현금으로 주면서 “차를 파니 서운하시죠?”라고 말했다. 임씨는 “집(용인)에 왔다갔다 하려고 (중고)차를 사게 됐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4월 4급으로 승진하면서 대전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전산·사이버보안 전문가인 임씨가 전산시스템이 갖춰진 본사를 떠나 대전에서 어떤 근무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목사 ㅅ씨는 임씨에 대해 “약간 마르고 안경을 끼고 있었다. 점잖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임씨의 아내가 7월18일 경찰에 실종신고를 할 때 “체형이 보통이고 뿔테 안경을 썼다”고 한 외모와 비슷하다.

임씨의 친인척 ㄱ씨는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대전에서 용인을 오가기 힘들고, 용인에 사는 (임씨의) 아내가 차를 한 대 사용하고 있으니 경제적으로 부담되지 않으려고 싼 중고차를 산 것으로 안다. 대전에서 (전북 익산시) 용안면에 사는 노부모 집도 가볼 겸 사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ㄱ씨는 “가족들은 (임씨가) 1년 안에 서울 본사로 돌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임씨가 서울에 있는 국정원으로 긴급 호출을 당하면서 ‘빨간색 마티즈’는 그의 마지막을 지킨 의문의 차가 되었다. “(임씨의 죽음) 보도를 보고 국정원 4급 직원이 왜 저런 마티즈를 탔나 생각했다”던 목사 ㅅ씨의 아내는 자신들이 판 차에서 임씨가 숨진 사실을 전해듣자 “가슴이 떨린다”며 놀라워했다.

보도 뒤 파문 커지며 힘겨워해

국정원은 임씨를 7월13일부터 서울로 급히 불렀다고 설명한다. 국정원이 도·감청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해 운영했다는 사실이 국내 언론에 보도되며 정치적 파문이 커지기 시작한 직후다. 임씨가 7월13일 직전 주말에 처가댁 생신 모임에 참석한 것을 보면, 그가 받은 유·무형의 강한 압박은 7월13일부터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임씨는 이때부터 숨지기 전날인 7월17일까지 격무와 심적 부담이 극도로 압축된 5일을 보냈다.

감찰실의 조사가 병행된 것도 이 시기다. 국정원은 “(임씨가) 17일 새벽 1~3시 사이에 해킹 프로그램 관련 기록을 삭제했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밝혔다. 삭제 권한이 없는 임씨가 어떤 이유로, 아니면 누구의 지시로 원본 기록에 손을 댔는지에 대한 의문에 국정원은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임씨의)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대전에서 서울로 불려와 죽기 전까지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저녁 늦게 들어오고 회사에 일찍 나가고 그랬으니까. 혹시 사표를 내는 등 좋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로 불려와) 죽기 전까지 아내가 남편이 회사에 나가면 불안해서 여러 차례 연락을 하곤 했다고 한다”고 ㄱ씨가 전했다.

토요일이던 7월18일, 국정원으로 간다던 임씨가 탄 마티즈가 경기도 용인의 아파트를 빠져나간 건 새벽 4시50분께였다. 검정색 양복 안에 하늘색 반팔 와이셔츠를 입은 출근 복장이었다. 임씨가 출근하지 않자 국정원 쪽은 불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민감한 정보(도·감청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운영시스템)를 아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국정원의 연락을 받은 아내는 오전 10시4분께 남편의 위치 추적을 위해 119로 첫 신고를 한다. 이어 아내는 10시16분께 동백파출소에 현장 방문해 경찰에도 신고한다. 눈에 띄는 것은 아내가 119와 112에 최근 남편이 받은 업무 스트레스를 일관되게 말한 점이다.

아내 김아무개씨의 119 신고 녹취록을 보면, “119죠?”라고 물은 아내는 수화기 너머에서 “예, 맞습니다”라고 답하자, 곧바로 “저희 남편이 회사에서 한동안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요”라고 얘기한다. 어떤 불길함의 원인을 남편이 최근 국정원에서 받았던 어떤 압박의 무게감과 직감적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동백파출소의 이아무개 경사도 파출소에 온 아내를 대신해 10시25분께 112로 남편의 위치 추적을 요청하는 신고를 하면서 “남편분이 최근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대요”라고 말한다. 112 쪽에서 아내를 바꿔달라고 한 뒤 ‘남편에게 (평소) 지병이나 우울증이 있었냐’고 묻자, 아내는 “없었다”고 답한다. 하지만 아내는 ‘요즘 회사일 때문에 힘들어하셨던 건 있으시고요?’란 물음에는 지체 없이 “예”라고 말한다.

기자는 임씨의 아내가 파출소에 찾아와 대면 신고할 당시 있었던 이 경사를 만나려고 동백파출소를 찾았지만, 파출소 쪽은 “이 경사가 인사발령이 나 용인동부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 말하며 이번 사건과 관련한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폐차, 친인척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나

임씨의 위치 추적 과정에 국정원도 따로 움직였다. 국정원이 직원들의 휴대전화에 깔아놓은 위치 추적 장치를 활용한 것이다. 임씨는 야산으로 차를 몰고 가며 자신의 전화기를 끄지 않았다. 국회 정보위 소속 야당 의원은 “국정원이 임씨의 위치를 추적한 뒤 그곳으로 국정원 직원을 보내 소방대원과 같이 찾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임씨는 운전석에서 조수석 쪽으로 쓰러져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임씨가 발견된 야산은 그의 집에서 13km 떨어진 곳이다. 그가 죽음의 공간으로 삼으며 각종 의혹을 낳은 빨간색 마티즈는 부검이 끝난 직후인 7월19일 그의 친인척 중 한 명이 폐차를 요청해 발인 다음날인 22일 폐차됐다.

폐차를 요청한 임씨의 친인척은 7월30일 기자와 만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이후 경찰이 이제 다 끝난 거라고 해서 아는 사람에게 연락해 폐차를 의뢰했다”고 했다. 의뢰 업체가 국정원에 납품 이력이 있는 서울의 한 타이어 업체였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날 기자와 통화한 그는 “더 이상 (이번 일과 관련해) 말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끊었다.

임씨는 해킹 프로그램의 구입·운영, 기록 삭제에 대한 국정원의 해명 과정에서 ‘임 과장’, 또는 ‘임씨’란 이름으로 모든 행위의 주체자로서 등장한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국정원이 이번 사태의 탈출로 선택한 카드가 뒤집어씌우기, 꼬리자르기다. 기술직에 불과한 임 과장이 모든 걸 주도했다는 취지”라고 지적했다.

해킹 목표물을 정해서 임씨에게 넘겼던 수사 부서, 해킹 프로그램 구입 결정과 예산 배정의 책임자 등이 ‘임씨’ 뒤에 가려져 있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전·현직 국정원장을 고발한 데 이어 해킹 프로그램을 임씨와 함께 운영한 의혹과 연루된 국정원 3차장 산하 기술연구개발단 관계자들, 해킹 프로그램 최초 구매 당시 예산 책임자였던 목영만 전 기획조정실장을 추가 고발하기로 했다.

임씨의 친인척 ㄱ씨는 “(임씨의) 가정이 화목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까지 (친인척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노부모 등 가족들이 국가공무원인 ‘국정원’에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했다. 임씨가 모든 짐을 혼자 떠안고 가려 했다는 국정원 내부의 일부 시각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기 가족이 더 중요했을 텐데…”

“(국정원의 모든 논란을) 다 짊어지려고 그랬을까? 자기 가족이 더 중요했을 텐데.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모르지만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는데….”

그는 용인 ‘평온의 숲’ 봉안당에 안치됐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 압박은 무엇이었을까? 십자가와 ‘집사 임××’가 찍힌 작은 유골함에서 임씨는 말 없는 영면을 취하고 있다.

용인·화성(경기도)·대전=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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