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황이 가장 낮은 사람들을 할퀴고 지나가듯 진보정치의 위기는 매 시기 노동당을 제일 먼저 강타합니다.”
진보정치가 통합과 재편을 거듭할 때마다 탈당과 분당의 위기를 겪는 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김상철 위원장이 지난 7월15일 “진보정치 가장자리에서 가장 민감한 변화를 겪고 있는” 당원들에게 보낸 글의 일부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2011년 진보신당이 그랬던 것처럼, 2016년 총선을 앞두고 2015년 노동당은 위기를 겪고 있다. “진보정치 가장자리”에 영향을 끼치는 진보결집의 여파다.
지난 6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노동당, 정의당,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 대표가 모여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4자연대’의 공동선언은 “우리가 함께 하고자 하는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은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자유·평등·생태·평화·연대의 가치가 실현되는 노동존중 대안사회 건설을 목표”로 한다며 “9월을 전후해 구체적 성과를 국민에게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4자 결집을 통해 새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6월28일 서울 강서구민회관에서 열린 노동당 2015년 정기 당대회에서 ‘진보결집 당원 총투표 부의의 건’이 부결됐다. 이로써 ‘진보결집 당원 총투표’를 공약으로 한 나경채 대표가 사퇴했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나경채 전 대표 등은 노동당을 탈당해 ‘진보결집+(더하기)’를 결성했다. 2012년 진보신당 당대회 결정에 반발해 탈당한 이들은 ‘통합연대’를 결성했다. ‘4자연대’는 노동당 대신에 ‘진보결집+’가 참여하는 ‘3자+알파(α)’로 통합 논의를 지속한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당한 통합진보당은 진보 결집 논의 대상이 아니고, 이들과 출발과 지향이 다른 녹색당은 4자연대 회의에 참여하지 않는다.
지난 6월18일 정의당 3기 지도부 선거에서 심상정 후보가 당선됐다. 진보정치 2세대의 목소리를 담은 ‘조성주 바람’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1차 투표에서 노회찬 후보는 43%(3179표), 심상정 후보는 31.2%(2312표), 조성주 후보는 17.1%(1266표), 노항래 후보는 8.7%(643표)를 얻었다. 하지만 결선투표에서 심상정 후보가 52.5%(3651표)를 얻어 47.5%(3308표)의 노회찬 후보를 역전했다. ‘팀 정의당’을 강조한 심 후보의 전략이 호응을 얻었고, 신입 당원이 대세를 정했다는 평가다.
지역별 득표에 주목할 부분도 있다. 노 후보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근소한 차이로 심 후보를 앞섰지만 심 후보는 인천, 전북, 전남에서 강세를 보였다. 두 후보의 표 차이는 인천 204표, 전북 285표, 전남 179표였다. 자주파가 강세인 지역에서 표 차이가 컸던 것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학생회 몰락 이후’ 20~30대 활동가들‘3자+알파(α)’에는 민주노동당 출신이 상당수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대중운동의 정치적 결집체였다.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등을 주도한 활동가 다수도 노동운동, 학생운동, 농민운동 등을 통해 성장했다. 이들의 경험과 문화는 진보정치의 강점이자 한계였다.
하지만 양상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진보정당에서 시작하고 성장한 진보정치 2세대의 부각이다. 정의당에는 조성주씨뿐 아니라 30대 지역위원회 위원장이 있고, 노동당에도 청년노동운동과 독립예술활동을 통해 단련된 이들이 당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당원 ‘구성’도 달라지고 있다. 정의당은 지난 1년 동안 5천여 명의 당원이 늘었다. 정의당 관계자는 “생애 첫 정당에 가입한 신입 당원이 다수”라고 전했다. 노동당에 가입하는 이들도 이전과 다르다. 김상철 비대위원장은 “선배가 끌어서 오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사회운동 경험을 하면서 노동당을 선택한 이가 많다”고 전했다. 녹색당은 여성이 당원의 절반을 넘는 최초의 한국 진보정당이다. 이렇게 ‘학생회 몰락 이후’에 성장한 20~30대 활동가들이 진보정당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이들을 당의 상징으로 발굴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절박하다. ‘한국의 진보정당에는 왜 치프라스 같은 젊은 지도자가 없을까?’ 같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다시 재정비의 계절이다. 정의당 새 당대표가 선출되고, 노동당 입장이 나오면서 ‘3자+알파(α)’는 7월 말 다시 협의를 시작한다. 진보결집 논의를 담당하는 김형탁 정의당 부대표는 “지금 모인 세력의 총합을 넘어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전 진보통합 논의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나경채 ‘진보결집+’ 공동대표는 “진보정치 혼란의 와중에도 마을운동, 협동조합 등을 통해 풀뿌리 정치를 해온 30~50대가 있다”며 “이들의 경험이 녹아든 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민중의 집’ 등을 만들어온 이들이 ‘진보결집+’에 함께한다. 사실상 정의당으로 흡수통합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양기환 국민모임 사무총장은 “국민모임에는 문화인, 학자 등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이 있다”며 “외연 확장을 통해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진보결집에 대한 동의가 확고하지만, ‘3자+알파(α)’ 앞에는 당 대 당 통합이 아닌 당명을 유지할지 변경할지 등에 대한 난제가 없지 않다.
새정치의 헛발질, 강력한 배후에도노동당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고투를 벌인다. 김상철 비대위원장은 “진보정당은 보수정당의 구조를 차용해왔다”며 “국실별 칸막이를 없애고 재정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당의 결정을 당원의 지도자들이 거스르지 않는 ‘정치공동체’로서 진보정당, 국고보조금 없이도 당비로 생존 가능한 정당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통합과 분당을 거듭할 때마다 당원의 규모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가 됐다.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2만~3만 명 가운데 절반 정도만 진보신당으로 왔고, 2011년 진보신당에서 탈당한 3천여 명 중 1천여 명만 정의당 당원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롭게 시작하는 진보정당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보의 재구성’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오지 않은 미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헛발질이라는 강력한 배후가 있음에도 진보정당이 대안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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