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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논리는 어디서 왔는가

미국에서 시작된 근본주의 반복하는 한국 개신교 일부 세력… 사회적 불안을 타자화 근거로 소수자 표적 삼아
등록 2015-05-14 17:15 수정 2020-05-03 04:28

1970년대 미국. 네오콘과 손잡은 기독교 근본주의 조직들은 미 교육위원회와 유네스코가 성교육으로 가족을 파괴하고 종교적 금기를 깨뜨리며 비정상적 성관계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성교육이 국가적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공산주의자의 음모라고 설파하며, 성교육이 아닌 채플 수업을 강화하도록 요구했다.

선지자,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

이들은 1960년대에 활발하게 전개된 여성해방운동의 결과로 1972년 상원을 통과한 ‘양성평등 수정조항’(Equal Rights Amendment)에 대해서는 이혼율을 높임으로써 가족 해체를 야기하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벌였다. 동성애와 여성해방운동, 낙태 등은 미국을 무너뜨리려는 공산주자들의 음모라고 선전했다. 이후 이 흐름을 주도했던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인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와 ‘기독교연맹(Christian Coalition)은 교회 조직을 이용한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1980년과 1984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으며, 2000년과 2004년에는 부시 부자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1999년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후보가 워싱턴에서 열린 기독교연맹(Christian Coalition) 연례 회의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당시 공화당 후보 중 3위였던 그의 지지율은 개신교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치솟았다. REUTERS

1999년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후보가 워싱턴에서 열린 기독교연맹(Christian Coalition) 연례 회의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당시 공화당 후보 중 3위였던 그의 지지율은 개신교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치솟았다. REUTERS

이같은 과거 미국의 상황은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들과 많이 맞닿아 있다. 현재 한국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주장을 펼치며 이를 보수 정치권의 지지 기반으로 만들려는 보수 개신교계의 주요 단체들이 해방 이후부터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쳐온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 교단의 전략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는 대부분 동성애 관련 이슈에 초점을 맞췄지만 최근에는 성교육, 성적 자기결정권, 다문화 정책, 게임 중독, 미디어 검열까지 그 대상을 넓히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보수 개신교의 역사적 기여와 그 밖의 종교적 입장을 교과서에 서술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성소수자, 후천성면역결핍증(HIV/AIDS) 감염인, 이주민, 노동자,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비롯해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 대부분을 종북 세력 또는 공산주의자, 질병을 퍼트리고 범죄와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집단, 성윤리를 파괴해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집단 등으로 몰아간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주장이 급진적인 일부 개신교인들의 과격한 주장이거나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행동인 것으로만 치부됐지만 실상 이들의 움직임이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 강력한 보수-개신교 네트워크와 공조 관계에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 종교적 신념에 입각해 주장하고 있다는 내용이 단순한 설교나 선전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되고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선택받은 민족?

2004년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투쟁과 2007년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 등을 주도하다 뉴라이트전국연합에 참여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김진홍 목사가 이명박 정부의 당선에 핵심적 역할을 한 이후, 보수 개신교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기반을 다져왔다. 박근혜 정부 역시 후보 캠프 시절부터 중앙선거대책위원장과 부위원장, 대변인 등이 모두 개신교 인사로 채워졌고,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핵심 실장, 수석, 장관직이나 주요 기관의 임명직도 보수 개신교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성소수자 관련 내용은 언급조차 하지 말라는 지침이 담긴 ‘국가수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해 물의를 일으킨 황우여 교육부 장관 역시 ‘한국교계교과서·동성애동성혼특별대책위원회’의 공동대표이자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서울지역 상임고문이었으며,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임명된 최이우 목사는 “교과서에 동성애자의 불행한 삶을 서술하라”고 요구했던 ‘미래목회포럼’ 소속의 대표적 인물이다.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들이 네오콘을 중심으로 한 공화당 정책의 핵심적인 조직 기반이자 여론 기반이었던 것처럼 한국의 보수 개신교 역시 보수 정부의 여론전을 대행한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건국의 아버지들에 의해 미국이 기독교 국가로 창설됐다고 믿는 것처럼,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이승만 정부에서 제헌의회를 기도로 시작한 사실을 강조한다. 이들은 해방 이후 반공-애국 수호와 근대화에 보수 개신교가 기여해온 것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그리고 이것을 스스로의 정체성이자 정통성의 근거로 삼는다.

이들의 주장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맥락은 ‘자격이 있는 시민’과 ‘타락한 비-시민/반-시민’을 구분하는 것이다. 미국 네오콘의 대부로 불리는 어빙 크리스톨은 ‘차별적 복지’를 사회정책으로 내세웠다. 예컨대 부득이 생활보호 대상이 된 여성들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미혼모 등은 생활보조금에만 의존하므로 복지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시민의 자격은 자의적 기준으로 나눠지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는 차별이 정당화된다.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 조직들은 차별적 복지를 주장하는 여론을 함께 조성하면서, 사회적 불안의 원인을 끊임없이 성소수자, 이주민, 종북 세력 등에게 돌리는 데 앞장섰다. 그들이 질병, 사회불안, 범죄, 성윤리 파괴, 세금 낭비를 가져오며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위기감과 불안을 조성해왔다. 종북 세력,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건강하고’ ‘건전한’ ‘대한민국 시민’으로부터 타자화하면서 세금과 질병을 타자화의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다.

건강한, 건전한 그리고 나머지

이런 논리를 통해 ‘소수자 인권’은 사실상 사회적 소수자가 아니라, 정당한 시민 주체들의 가부장적 위치 기반을 흔드는 ‘특권’으로 자리하게 된다. ‘(하나님의 선민인) 대한민국 시민의 윤리와 건강을 타자들로부터 지켜내는 것’을 자신들의 정당성이자 사명으로 내세우고 있는 한국 보수 개신교는 가부장적 위치에서 시민들을 검열하고 통제할 가치의 담지자로 나서는 것이다.

미국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손잡고 노동자와 여성, 소수자, 이주민들에게 매우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정책을 시행하는 동시에 이라크 전쟁을 성전(聖戰)처럼 수행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디쯤에 있을까?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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