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 결정의 시간이 다가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시장 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해달라”고 주문한 ‘데드라인’(3월)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비정규직 관련 제도 및 노·사·정 합의에는 몇 차례 결정적인 장면이 있었다.
첫째, 1998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시행.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김대중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를 서둘렀다. 서비스·행정 등 32개 업종에 파견직 사용을 허용했다. 제조업에는 파견이 금지됐지만, ‘도급’이라는 이름을 빌려 현대자동차 등 파견이 금지된 공장 담벼락 안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넘어가는 ‘불법파견’이 이때부터 움텄다.
둘째, 비정규직 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입법 예고되고 시행된 2004~2007년.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위원장은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국회 앞 천막농성을 벌였다. 2년 이상 고용된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고 만든 법이 시행되자, 엉뚱한 ‘풍선 효과’를 낳았다. 기업들은 약삭빨랐다. 기간제로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늘렸다.
그리고 세 번째, 2014~2015년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35살 이상 기간제 비정규직의 고용 허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55살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에게는 파견 허용 업종을 전면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뼈대다. 노사정위에서도 정부 정책과 비슷한 방향으로 공익위원(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여지고 있다. 다만 노사정위는 ‘비정규직 보호’라는 기존 틀 대신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혁’이라는 표현을 쓴다. 좋게 말하자면 일종의 ‘프레임 전환’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비정규직은 생각하지 마!’다. 노동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대립을 부추기는 프레임”이라고 반발한다.
정부와 노동계는 ‘장그래’를 두고서도 샅바싸움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19일 주요 일간지 1면 하단에 실린 광고에 드라마 의 ‘장그래’(탤런트 임시완)를 등장시켰다.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청년 일자리가 해결됩니다. 내 아들과 딸의 취업이 열립니다. 노·사·정 대타협!”이란 문구와 함께. 민주노총이 지난 3월18일 비정규직 종합대책 폐기를 내건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장그래 본부)를 출범시킨 것에 대한 맞불 성격이 짙다. ‘장그래 본부’에는 시민사회단체 360여 곳이 함께 참여한다.
불안한 청년 비정규직 ‘장그래’를 살리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데는 정부나 노동계나 모두 공감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깊고도 오랜 불신의 강이 흐른다.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강을 건너자는 쪽(김대환 노사정위원장)과, 비정규직을 오히려 양산하는 법과 제도를 전면 폐기해야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쪽(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각각 만나 접점을 찾아봤다(66~70쪽 참조). 통상임금, 근로시간, 정년연장 등 노사정위에서 논의 중인 ‘3대 의제’에 관한 의견도 물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노사정위 바깥에 민주노총과 불안정 청년·여성 노동자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노·사·정 협상 테이블을 만들자”는 제3의 해법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비정규직 관련 법·제도 대부분은 ‘보호’보다는 ‘덫’에 가까웠다. 2015년 3월, 또 다른 덫이 만들어질 것인가. 아니면 노·사·정이 함께 덫을 걷어치우는 새로운 국면이 열릴 것인가. 900만 ‘장그래’의 운명이 달려 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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