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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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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경제에 단비가 된 ‘보와(버섯을 일컫는 말라위말)’

느타리버섯 재배 시설 기부로 말라위 농업 경제의 새로운 혈관 만들어가는 굿네이버스의 소득증대사업
등록 2015-03-14 15:27 수정 2020-05-03 09:54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25시간 만에 당도한 아프리카 말라위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첫인상은 초록색 그 자체였다. 사하라사막 주변의 메마른 땅만 생각했다가 마주한 뜻밖의 광경이었다.
2월27일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한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 치오자 지역으로 향했다. 사흘 전 비행기에서 본 초록색 물결은 옥수수와 담배였다. 마치 다른 작물은 존재하지 않는 듯 옥수수와 담배가 이어졌다. 말라위 사람들은 옥수숫가루 반죽을 끓는 물에 익힌 ‘시마’를 주식으로 먹는다. 담배는 말라위 농촌에서 현금을 쥘 수 있는 유일한 환금작물이다. 말라위를 찾은 2월은 우기로 옥수수와 담배가 한창 자라는 시기였다.

말라위에서 느타리버섯을 생산하는 음초와 난돌로가 버섯재배사 안에 서 있다.

말라위에서 느타리버섯을 생산하는 음초와 난돌로가 버섯재배사 안에 서 있다.

2005년 가뭄이 아프리카를 강타했었다. 댐이나 수로 등 관개시설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서 비의 양은 곧장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다. 땅과 작물은 타들어갔고, 수백만 명이 아사 직전까지 몰렸다. 말라위 역시 인구 500만 명이 굶주렸다. 다음해 간신히 땅 밖으로 올라온 초록색 옥수수가 노랗게 여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면 굶어죽었다. 굶주리는 때가 많다보니 부모의 걱정이 아이들 이름에 투영되기도 한다. ‘심칼리차’(난 어차피 죽을 거예요), ‘말리로’(장례), ‘펠란투니’ (빨리 죽여주세요) 등으로 아이를 불렀다.

제 이름은 ‘빨리 죽여주세요’입니다

2015년 치오자 지역의 일부 농민들은 이런 걱정에서 벗어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가 펼치는 소득증대사업 때문이다. 농부들이 가뭄과 홍수 등 기후변화의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는 걸 막아보자는 것이다.

음초와 난돌로는 2011년부터 하늘만 쳐다보는 삶에서 벗어났다. 옥수수와 땅콩 농사를 짓던 그는 굿네이버스의 소개로 ‘보와’ 재배를 시작했다. 보와는 말라위에서 느타리버섯을 부르는 말이다. 한국에선 흔하지만, 뜨거운 말라위에서 느타리버섯은 생소한 작물이다. 굿네이버스가 들여온 느타리버섯을 보고 난돌로는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보와가 잘될지 미심쩍었다”고 했다.


말라위는 어떤 나라?


빈곤의 병 앓는 아프리카의 심장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라는 별칭을 가진 말라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수도 릴롱궤로 가는 길에 차를 잠깐 주유소에 멈추자 아이들이 다가왔다. 이들은 차 안에 먹다 남긴 플라스틱 생수병을 받아가지고 돌아섰다. 이들에겐 빈 병과 플라스틱 생수병도 쓸모 있는 생활용품이다.
구매력지수(PPP)로 계산한 1인당 국민소득은 900달러(2013년 기준)에 불과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을 보면, 말라위의 국민소득은 전체 228개 나라 가운데 221위다. 산업 기반이 없어 경제는 대부분 사람이 손으로 직접 짓는 농업에 의존한다. 담배가 주요 수출품이다.
화폐는 콰차를 쓴다. 환율은 1달러당 425콰차 정도다. 정부가 달러 보유를 강하게 통제해 일반인이 달러를 사려면 허가가 필요하다. 달러를 파는 것은 쉽다. 슈퍼마켓에서 칼스버그 맥주 1병은 400콰차, 생수(500㎖) 1병은 180콰차 정도에 살 수 있다. 주식은 시마라고 끓는 물에 익힌 옥수숫가루 반죽을 먹는다. 밀가루 1kg 가격은 500콰차 정도다.
도로 위에선 벤츠나 BMW 등 고급차도 눈에 띈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불평등은 심하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31.9%(2004년 기준)를 가져간다. 시골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지만 수도에선 젊은이들이 삼성 갤럭시와 애플 아이폰 등 첨단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말라위는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 국가다. 탄자니아·모잠비크 등에 둘러싸여 있다. 영국 식민지였다가 1953년 짐바브웨·잠비아 등과 중앙아프리카연방을 만들었으나, 1963년에 탈퇴하고 1964년 독립했다.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말라위 호수가 있다.
인구는 1737만 명이다. 종족은 체와(32.6%)족이 많고 롬웨(17.6%)족과 야오(13.5%)족도 적잖은 수를 차지한다. 공용어로 체와어와 영어를 쓴다. 결혼할 때 지참금을 여자가 내기도 하고 반대로 남자가 내기도 하는 등 지역별로 문화적 차이도 있다. 종교는 기독교(82.6%)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내와 아이까지 8명을 부양해야 하는 그는 옥수수만 쳐다볼 수 없었다. 버섯 농사를 시작하기 전 그의 소득은 월 30달러도 되지 않았다. 이제 그가 집 한켠에서 재배한 느타리버섯은 릴롱궤의 고급 레스토랑과 슈퍼마켓 등으로 팔려간다. 말라위에서 느타리버섯 1kg을 팔면 약 3달러를 벌 수 있다. 최주용 굿네이버스 말라위지부장은 “말라위 사람들도 점차 느타리버섯 맛을 알아가고 있어 판로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난돌로는 지난해 버섯 재배자 60명 가운데 수확량이 가장 많았다. “보와로 지난해 10만5천콰차를 벌었다. 옥수수 씨앗이나 비료를 사기에 충분한 돈이다.” 말라위 농부들은 옥수수 씨앗이나 비료를 살 돈이 없어 고리대출을 받거나 농사를 포기하는 등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옥수수는 농사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 수입이 들쭉날쭉해 생활하기에 어려웠다. 이제는 버섯 농사로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니 집 앞에 작은 가게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10만5천콰차는 그에게 한 달 평균 20달러의 소득을 더 안겨줬다.

굿네이버스는 난돌로뿐만 아니라 버섯 재배 주민 60명의 월평균 수입이 지난해 9달러씩 증가했다고 밝혔다. 난돌로의 집을 나와 버섯 재배 농민들이 모여 있는 옥수수 창고로 향하니 주민들이 반겼다. 농민들은 버섯 재배 기술을 전수한 최주용 말라위지부장을 기대에 차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기자 앞에서 주민들은 최주용 지부장에게 자신들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옥수숫대를 자를 작두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 작두가 있으면 버섯을 쉽게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자른 옥수숫대는 버섯 종균의 먹이로 쓰인다.

마을에서 돌고 도는 선한 투자비

굿네이버스는 주민들에게 버섯 재배 시설 등 초기 투자비를 지원했다. 무상 지원은 아니었다. 버섯을 재배한 뒤 투자비를 갚게 했다. 갚은 돈은 굿네이버스로 돌아오지 않고 마을개발기금으로 적립했다. 투자비가 마을 발전의 종잣돈이 되게 하는 방식이다.

초기 투자와 교육뿐만 아니라 한국의 버섯 재배 전문가도 불러 이들을 도왔다. 지난해 3월 말라위에 온 김동균씨는 현지 주민들을 교육해 버섯 재배 기술을 향상시켰다. 그가 온 뒤 종균 오염률은 27% 감소했다고 한다. 김씨는 “한국은 첨단 기술로 자동화 재배를 하지만 말라위는 물을 뿌리고 자연 환기를 해주는 게 재배법의 전부다. 그래도 굿네이버스의 종균 생산 설비와 기술은 말라위 국립농업대학의 수준보다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굿네이버스의 소득증대사업은 보와에 머무르지 않는다. 곡물창고 운영과 양돈사업 등 말라위에서 사회적 경제를 일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라위의 옥수수 농사는 우기인 12월에 파종을 시작한다. 3월까지 내리는 비를 맞으며 자란 옥수수를 4~5월에 수확해 건기를 버티는 식량을 만든다. 9월까진 옥수수가 풍족하지만 12월에 이듬해 쓸 씨앗과 비료를 사면 농가의 돈은 거의 바닥난다. 1월이 되면 말라위 농가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추수철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옥수수가 크는 시절이 춘궁기다.

2011년 18개 농가가 시작한 느타리버섯 재배가 성공을 거두자 2015년 60개 농가로 늘어났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2011년 18개 농가가 시작한 느타리버섯 재배가 성공을 거두자 2015년 60개 농가로 늘어났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춘궁기가 힘든 것은 말라위 농민들이 파종 때부터 빚을 져 돈이 없기 때문이다. 1에이커에 뿌릴 옥수수 씨앗을 사는 데 1만콰차가 필요하다. 가난한 농민에게 큰돈이다. 담보가 없는 농민은 은행 문턱을 넘기도 힘들다. 결국 시골 고리대금 업자를 찾는다. 이들의 연이자는 200%에 이른다. 결국 곡물값이 싼 추수기에 옥수수를 팔아 빚과 많은 이자를 갚으면 다음 파종기 때 또다시 돈을 빌려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말라위 농민의 ‘빚의 악순환’에는 다국적 농업기업의 욕심도 한몫한다. 2000년대 초반 말라위에 다국적 농업기업의 옥수수 씨앗이 들어왔다. 이 씨앗을 뿌리면 수확량이 늘어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씨앗은 1년짜리였다.

치오자에서 2에이커의 옥수수 농사를 짓는 앤더슨 와일리스는 “옥수수를 재배한 뒤 얻은 씨앗을 다음해에 심으면 옥수수가 몇 개 열리지 않는다. 그 뒤로도 잘 자라지 않는다. 결국 매해 새 씨앗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토종 옥수수를 재배할 때는 남은 옥수수를 다음해 씨앗으로 뿌려도 됐지만, 다국적기업의 씨앗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와일리스는 ‘파머스월드’라는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다국적 농업기업의 씨앗과 화학비료를 매해 샀다. 그는 “빚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지구 반대편 다국적기업의 이윤을 위해 말라위 농민이 빚의 악순환에 빠지는 셈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부가 국제사회의 식량 원조에 익숙해진 것도 문제라고 의 저자 윤상욱씨는 지적한다. 세네갈 주재 참사관을 지낸 윤씨는 “아프리카 나라들이 농업에 무관심하다보니 개량 종자의 배포나 농민들에 대한 신용대출도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가 무상으로 보급하겠다던 개량 종자들은 그저 기록상으로만 남아 있을 뿐 부패한 공무원들이 이를 가로챈다”고 했다.

굿네이버스는 빚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으로 곡물창고를 만들었다. 먼저 굿네이버스는 파종기 때 무담보·무이자로 씨앗과 비료를 농부들에게 빌려줬다. 농부들은 추수를 한 뒤 굿네이버스가 지은 곡물창고로 옥수수의 일부를 보냈다. 저장한 옥수수는 추수기 때 싼값에 팔지 않고 말리고 가공한 뒤 춘궁기 때 비싸게 팔았다. 비싸게 파니 굿네이버스에 진 빚을 쉽게 갚을 뿐만 아니라,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다음해 씨앗과 비료를 살 돈까지 마련했다.

기반 마련부터 경제 교육까지

최주용 지부장은 이를 두고 “한 해 소득을 다 쓰지 않고 남겨 농부들이 저축하게 만드는 일종의 경제 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농부들에게 빌려준 옥수수 상환율이 95%다. 세계식량계획(WFP)도 상환율이 70% 이상이면 성공으로 본다”고 자랑했다. 상환된 돈은 버섯 농사처럼 마을개발기금으로 적립한다. “소득증대사업은 돈을 많이 벌자는 사업이 아니다. 주민들이 함께 살고 자립하는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동안 유럽·미국 등 원조국가와 비정부기구(NGO)가 아프리카에 투입한 돈은 천문학적이다. 2010년 한 해에만 1천억달러 가까운 원조가 있었다. 그러나 말라위는 여전히 낙후돼 있다. 굿네이버스의 소득증대사업은 이런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험은 한 발씩 내딛고 있다.

■ 참고 문헌: 윤상욱 , 윌리엄 캄쾀바

릴롱궤·치오자(말라위)=글·사진 이완 기자 wani@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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