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말라위에서는 ‘안녕하세요’를 이렇게 말합니다. 말라위에서 어쩌면 ‘안녕’은 중요한 말인지 모릅니다.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말라위에서는 때때로 덮치는 가뭄과 홍수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습니다.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부족한 의료 서비스는 출산기 여성의 건강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말라위를 찾아 ‘굿시스터즈’(좋은 자매들)와 ‘보와’(느타리버섯)를 만났습니다. 굿시스터즈 캠페인은 말라위의 관습인 조혼 대신 여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게 해주자는 운동입니다. 한국에서 건너간 느타리버섯은 가난한 농부의 삶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었습니다. “굿시스터즈, 보와, 지코모 쾀비리!”(감사합니다) _편집자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짧은 청치마에 은색 귀걸이를 한 여성이 나타났다. 도로 위엔 가로등도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자 이번엔 검정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서 있었다. 말라위 운전사는 이들을 가리키며 성매매 여성이라고 알려줬다.
2월25일, 아프리카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 밤 9시30분께 릴롱궤의 술집이 모여 있는 르완디로로 갔다. 도시 인프라가 부족한 이곳은 불 켜진 주유소와 술집 등을 지나면 바로 어두운 길로 빠져든다. 그 캄캄한 길 위에 10명 남짓의 여성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낮에는 볼 수 없던 짧은 옷차림이었다. 전날 만난 프레드릭 첼레와니 말라위 가족계획협회 매니저는 “말라위의 성매매는 조혼이나 이른 임신과 연결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이른 결혼과 임신으로 인해 여성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뒤 여러 이유 등으로 남편과 헤어지게 되면 여성은 생계를 위해 성매매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말라위는 조혼이 심각한 나라로 꼽힌다. 말라위 국가통계청의 조사 결과(2012)를 보면, 전체 여성 가운데 19살 이전에 결혼한 여성의 비율이 49.6%에 달한다. 이른 임신과 출산 비율도 상당한데, 말라위 15~19살 여성 1천 명 가운데 193명은 출산을 경험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청소년 출산율(여성 1천 명당 118명)이 높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뚜렷이 높은 수치다. 유엔새천년개발목표 보고서(2013~2014)는 이를 두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청소년 출산 문제가 1990년 이래 상대적인 비율과 절대적인 숫자에서 개선 속도가 가장 느린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조혼(18살 이전)은 여전히 일반적이며 청소년 출산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19살 미만 여성 둘 중에 한 명은 결혼다음날 릴롱궤에서 차로 1시간30분을 달려 카춤와 지역으로 향했다. 수도와 지방을 잇는 도로에도 자동차가 별로 없어 말라위 운전사들은 2차선 도로에서 시속 120km가 넘는 아찔한 속도를 낸다. 카춤와 지역은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가 말라위의 조혼 문제 개선을 위해 굿시스터즈 활동을 펼치는 곳이다. 13~18살 여학생들의 동아리인 ‘굿시스터즈’는 성교육 및 여성 인권 교육 등을 받는다.
[%%IMAGE2%%]카춤와 초등학교에서 만난 굿시스터즈는 자신들의 행진을 먼저 선보였다. 60여 명의 여학생들은 ‘조혼을 반대한다’는 펼침막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굿시스터즈는 최소 5명의 친구나 이웃에게 자신이 받은 교육과 조혼 금지 캠페인 등을 전달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이들이 부르는 아프리카 특유의 흥겨워 보이는 노래 속엔 ‘우리의 권리를 지키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최주용 굿네이버스 말라위지부장은 설명했다.
굿시스터즈 회원인 샤카라 시마(14)는 “마을에서 조혼이 일반적이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굿시스터즈 활동 뒤 생각이 바뀌었다. 친구를 만나면 공부를 마친 뒤에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카춤와 초등학교의 지붕은 양철로 만들어졌다. 열대기후 속 무섭게 내리는 비는 양철지붕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우기에는 이런 비가 하루에 한두 차례씩 내린다. 비가 양철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마치 피아노를 마구 두드리는 것처럼 시끄러워 과연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굿시스터즈는 이런 환경 속에서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변화하는 국제 구호·기부 현장
엄마 마음 놓이게 하는 ‘맘센터’
말라위 카춤와 지역의 ‘맘센터’에 들어서자 탁아시설에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동행한 김양희 굿네이버스 말라위지부 현장활동가는 “얼굴이 흰 사람을 보면 아이들이 겁을 낸다”고 했다. 탁아시설 옆방에서는 순회 간호사가 산모들을 진료했다. 또 다른 방에서는 탁아시설에 아이를 데려온 엄마들이 출산 뒤 건강에 대해 교육받고 있었다.
말라위는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말라위의 의료 서비스는 전문의 수(2011년 기준)가 260명에 불과할 정도로 낙후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발표를 보면, 말라위는 전세계에서 전문의가 가장 부족한 나라다. 간호사 수 역시 7264명밖에 되지 않는다. 의료 서비스 등의 부족으로 말라위 임신부의 출산 중 또는 출산 직후 사망률은 10만 명당 1100명에 이른다. 북한(370명)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의료·교통 서비스가 빈약하다보니 출산을 앞둔 시골의 산모가 자전거를 타고 흙길을 달려 병원을 찾는 일도 많다고 한다.
이를 본 굿네이버스는 산모와 아동의 건강 및 교육을 지원하는 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날 맘센터에서 만난 알리포시나 윌리엄(20·여)은 “근처 은살루 병원까지 가려면 버스 탈 돈도 없고, 거기까지 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집 주변에 맘센터가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서 1시간을 걸어 맘센터를 찾았다.
최근 국제 구호의 경향은 일대일 아동 결연에서 벗어나 맘센터처럼 학교·병원 등 시설을 기부하고 지원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맘센터 역시 개인과 기업의 지정 후원이 큰 힘이 됐다. 맘센터 후원 문의는 전화 1599-0300(굿네이버스).
굿시스터즈의 활동이 마을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2월24일 차세타 지역에서 만난 미혼모 퍼트리샤 레티아스(17)는 굿시스터즈 친구를 만나 이른 임신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임신을 피하지 못했다고 했다. 레티아스는 2013년 임신한 뒤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어머니 역시 20살 때 그를 낳았다. 이른 임신은 대물림됐다. 레티아스의 친한 친구 2명 역시 조혼을 한 상태라고 했다. 말라위에서 낙태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낙태가 가능하더라도 가난한 레티아스는 병원까지 갈 돈이 없다. 레티아스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했지만 그에겐 이제 다다르기 힘든 목표다.
지역의 분위기는 여전히 조혼을 장려한다. 카춤와 초등학교에서 만난 마을 지도자(치프) 조지 화이트는 “여성은 15살에 결혼하는 게 적당하다”고 말했다. 부족 개념이 남아 있는 말라위에서 마을 지도자는 행정권과 사법권 등을 행사하는 힘을 가졌다.
조혼, 교육 단절, 빈곤의 악순환화이트는 ‘조혼 때문에 여성들이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질문에 “여성들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 교육을 받아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지 않은가. 시간과 돈 낭비다.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비정부기구(NGO) 등 마을 외부에서 조혼 반대 캠페인을 하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는 똑같다”고 덧붙였다. 화이트는 굿시스터즈의 행진을 보았지만, 완강한 말을 남겼다.
빈곤도 조혼의 큰 이유다. 한 가구에 많은 아이가 태어나기 때문에 입 하나를 덜기 위해 빨리 시집을 보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절대 빈곤층의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그러나 강제로 결혼한 여성은 고등교육 단계로 진학하는 대신 집안일과 농사일을 해야 했다. 조혼이 싫은 여성은 집을 나와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위기는 통계로 드러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고등교육 단계의 성별 평등지수는 2000년 0.66에서 2011년 0.61로 하락했다. 여학생들이 초등교육에서 고등교육으로 진학하는 비율이 줄었다. 성별 평등지수는 1에 가까울수록 평등한데 성별에 따른 격차가 더 커졌다고 유엔새천년개발목표 보고서는 말했다.
그러나 말라위 여성들은 멀어 보이지만 여성 인권을 향한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카춤와 초등학교에서 만난 또 다른 마을 지도자(시니어 치프) 잠보(여)는 “말라위의 조혼문화에 변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NGO, 굿시스터즈 등의 활동을 통해 조혼에 반대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 나도 치프들에게 조혼을 금지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마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지역에는 조혼이 없다.”
굿시스터즈 여학생들이 면생리대를 만드는 것을 지켜본 뒤 학교를 떠나 릴롱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는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농업이 경제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라위에서 굿시스터즈 여학생들이 조혼을 피해 고등교육을 받아도 진로를 찾기란 쉽지 않다.
다음날 릴롱궤에서 만난 말라위의 여성단체 여성법률센터(Women’s Legal Resources Center)의 로마신다 음테마 매니저도 이런 고민에 동의했다. 음테마는 “말라위의 실업률이 높아 여성들이 교육을 받더라도 일자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초등교육만 받아서는 일자리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음테마는 조혼을 찬성한 마을 지도자 화이트와 달리 교육의 가능성을 달리 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이 시골에 모기장과 정수기를 배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교육을 받은 이와 받지 못한 이는 다르다.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모기장이 필요하다고 해도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은 모기장을 다른 용도로 써버리기도 한다. 교육의 부재가 건강을 위협하거나 더 큰 가난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직업을 당장 구하지 못하더라도 교육은 필요하다.”
음테마는 조혼을 하지 말고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가 통하려면 말라위에 학교 시설이 더 확충돼야 한다고도 했다. “국제사회나 NGO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학교다. 학교가 확대되지 않거나 교육의 질이 보장되지 않으면 조혼 금지 캠페인은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음테마는 반가운 소식도 전했다. “지난주에 법이 바뀌었다. 대통령이 아직 서명하기 전이지만, 이제 18살 미만 여성이 결혼을 하려면 부모가 법정에 가야 한다. 말라위에서 조혼이 없어지는 데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교육 전제돼야 조혼 금지 캠페인도 통할 것말라위에서 조혼에 대한 법적 규제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터키에선 부모가 17살 미만의 자녀를 결혼시키면 처벌받을 수 있지만, 전체 결혼 건수 가운데 25%가 17살 이하 결혼이라고 터키 의회는 밝혔다. 조혼이 많은 사우디아라비아도 법무부가 결혼 최저 연령을 법으로 규정하겠다고 했지만 번번이 관습 등에 막혔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조혼의 주원인으로 조혼을 용인하는 법체계, 사회적 관습, 종교법의 영향, 경제적 빈곤 등을 든다.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조혼이 사라진 한국에서도 조혼이 남아 있는 말라위에서도 ‘시차’만 있을 뿐 같은 여성의 날이다. 연대와 응원이 필요하다.
카춤와·차세타·릴롱궤(말라위)=글·사진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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