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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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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손뼉을 칠 때!

복직 가능 범위 등 서로의 셈법 다르지만 회사 쪽 결단 있으면 해결의 길 열릴 것
등록 2015-01-21 15:26 수정 2020-05-03 09:54
쌍용자동차 대주주인 마힌드라&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왼쪽)과 이유일 사장(가운데),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1월14일 평택공장에서 만났다. 2009년 정리해고와 77일간의 옥쇄파업 이후, 해고자들이 회사 경영진을 공식적으로 만난 건 처음이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쌍용자동차 대주주인 마힌드라&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왼쪽)과 이유일 사장(가운데),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1월14일 평택공장에서 만났다. 2009년 정리해고와 77일간의 옥쇄파업 이후, 해고자들이 회사 경영진을 공식적으로 만난 건 처음이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지금은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 아니겠냐.”

처음, 그것은 설렘이다. 쌍용자동차 대주주인 마힌드라&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지난 1월14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을 만나서 건넨 첫마디도 그랬다. 그는 “2009년의 아픔을 잘 알고 있고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자”고도 했다. 쌍용차 평택공장을 처음 방문한 마힌드라 회장은 지금까지 쌍용차 경영진들이 하지 못했던 ‘처음’을 내디뎠다. 해고자들과 악수하고,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눈 것이다. 이 자리에는 파완 쿠마르 고엔카 이사회 의장과 이유일 사장, 김규한 쌍용차노조(기업노조) 위원장도 동석했다.

투명인간으로 살았던 5년5개월

5년하고도 5개월이 걸렸다. 노사가 첫 대화를 시작하기까지. 그동안 쌍용차는 해고자들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2009년 옥쇄파업을 정리하면서 노조와 합의한 내용(‘8·6 합의’)에 해고자 복직 문제는 포함돼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기업노조(김규한 위원장)가 설립되고 금속노조를 탈퇴한 뒤, 복직투쟁을 벌이는 공장 밖 해고자들은 회사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뿐 대화의 상대는 아니었다.

만남은 당일 아침에 갑작스레 결정됐다. 마힌드라 회장이 공장을 방문하는 길에 만남 의사를 전달했다. 20분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나눈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다. 김득중 지부장은 “해고자들도 신차 티볼리 출시와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회사의 장기적인 비전을 위해서라도 해고자 문제가 빠르게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다.

만남의 내용은 ‘하나’다. 하지만 노사는 각자 다른 해석의 길을 걸었다. 회사가 전한 마힌드라 회장의 대화 내용은 이렇다. “현재 중요한 건 쌍용차의 경영 정상화다. 향후 티볼리 등 신차 판매 확대를 통해 경영 상황이 개선되면 2009년 퇴직했던 생산직 인원들을 단계적으로 복직시키도록 할 것이다. 현재 갈등을 우호적으로 해결하고 다 함께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길 바란다.” 여전히 ‘8·6 합의’에서 명시했던 무급휴직자, 희망퇴직자만 고려 대상이라는 설명인 셈이다. 그러나 마힌드라 회장은 1월13일 열린 ‘티볼리’ 신차발표회에서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 시간에 따라, 필요에 따라 인력을 충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언급한 충원 대상은 ‘2009년 일자리를 잃은 분’(the people who lost their job in 2009)이다. 희망퇴직자만을 뜻하는지, 해고자까지 포함한 의미인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마힌드라 회장이 회사보다 열린 태도를 가진 것은 분명하다.

2009년 합의 당시 공장 점거농성에 끝까지 남아 있던 정리해고자는 159명.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파업으로 인한 징계해고자,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판결을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포함해 모두 187명의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합의 때 공장에 남아 있던 희망퇴직자는 353명이다. 둘을 합치면 복직 대상자는 530여 명이 된다. 반면 회사 쪽은 합의 이전까지 포함한 전체 희망퇴직자 1600여 명이 우선 채용 대상자라고 주장한다.

그래도 1월14일 만남에서 노사가 의견일치를 본 하나는 있다. 정무영 쌍용차 상무는 “가장 중요한 건 대화가 이뤄졌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득중 지부장도 “공식적인 첫 만남이 이뤄졌으니 대화가 시작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흘이 지난 1월17일 현재까지 공식적인 후속 만남은 성사되지 않고 있다.

마힌드라 회장은 “이유일 사장과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이른 시간 안에 해결하자”며 이 사장에게 공을 넘겼다. 이 사장은 ‘티볼리’ 신차발표회에서 “노사 합의서를 보면 정리해고자는 없다”고 잘라 말하는 등 해고자 문제에 강퍅한 태도를 보여온 인물이다. 그가 어떤 새로운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3월 주주총회에서 이유일 사장이 연임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차기 사장 후보의 이름까지 거론된다. 이 사장으로선 연임을 위해 ‘해고자 문제 해결’이라는 성과가 필요할지 모른다. 회사 쪽은 구체적인 후속 만남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회사는 그동안 굴뚝농성을 먼저 해제해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노조는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나와야 굴뚝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굴뚝인들이 땅으로 내려오는 전제조건 자체도 평행선을 그리는 셈이다.

종교·정치계·여론의 강한 압박 있어야

실타래를 풀어줄 몇 가지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대법원 판결까지 나서 사법적인 해결이 힘들어졌다면 정부가 나서거나, 종교계 등 시민사회 원로가 나서거나, 정치권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중재 노력에 나선 건 종교계다. “7대 종단 종교인 모임을 통해 쌍용차가 새 직원을 뽑을 때 해고자 중에서 뽑는 문제 등을 실무자 선에서 협의하고 있다.”(1월14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신년 기자회견)

정치권은 적극적인 중재보다는 사회적 압박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응답하라 쌍차 챌린지’ 캠페인에 국회의원들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힘내라! 김정욱 이창근, 응답하라 쌍차!’라는 문구를 들고 인증샷을 찍은 뒤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3명을 지명해 동참을 촉구하는 캠페인이다. 문재인·한명숙·이인영·우원식·한정애·김성태 의원 등이 동참했다. 쌍용차 국정조사 약속을 흐지부지하게 만든 정치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이다.

회사에 가장 무거운 압박을 가한 건 여론이다. 이효리씨의 트위터 글이나, 배우 김의성씨가 “김정욱 이창근이 만드는 티볼리를 타고 싶어요”라는 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한 데서 시작된 ‘굴뚝데이’ 인증샷 운동, ‘응답하라 쌍차 챌린지’ 캠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병훈 교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기업의 결단 혹은 선처다. 기업이 외부의 압박에 의해 결심하거나, 내부적으로 착한 기업의 모습을 보여서 소비자들한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문제를 풀 최종 열쇠는 노사의 책임으로 다시 돌아온다. 김정욱과 이창근은 1월14일 이후 굴뚝 아래에서 올려보내는 음식을 거부한 채 육포와 생수 등으로 연명하고 있다. 대화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마힌드라 회장이 “지속적인 대화 노력”을 강조한 터에, 조건을 내세워 대화를 미룰 이유는 없다. 우선 조건 없는 대화가 먼저다. 마힌드라 회장은 김득중 지부장에게 명함을 건넸다. 국내 경영진을 거치지 않더라도 트위터, 전자우편 등을 통한 ‘핫라인’이 개설된 셈이다. 마힌드라 회장과 인도에 돌아간 고엔카 이사회 의장이 국내에 들어오는 1월21일께 새로운 대화의 장이 열릴 가능성이 점쳐진다.

만약 구체적인 대화가 이뤄진다면 양쪽은 어느 선에서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까? “해고자 중에서 신규 직원을 뽑는다”는 자승 스님의 언급에 실마리가 숨어 있다. 회사 쪽은 티볼리 생산에 따라 600~800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본다. 희망퇴직자와 해고자 530여 명을 받아들일 여력이 생기는 셈이다. 충원할 인력 가운데 해고자를 포함시킬지 말지를 회사가 ‘결단’하면 될 일이다. 복직 시점, 비정규직과 징계해고자 포함 여부, 충원 인력 가운데 해고자 비중 등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기업이 해고자들을 받아들이겠다고 결단하면, 노조도 ‘당장 전원 복직하는 게 어렵다면 단계적으로라도 복직시키는 데 합의하겠다’는 식으로 유연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손뼉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 손뼉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1월13일 티볼리 신차 출시 행사장 앞에서 해고자들이 들고 있던 팻말에 쓰인 인도 속담이다. 마힌드라 회장은 일단 해고자의 손을 잡아줬다. 지난 6년의 시간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도 노사는 지금 가까이 있다. 물밑에서도 끊임없이 손을 내미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 소리는 나지 않았다. 손뼉을 마주치려면 더 다가서야 한다. 회사나 해고자나 품고 있는 희망은 하나다. ‘함께 살자.’ 티볼리가 많이 팔려서 회사가 흑자를 내고,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는 꿈. 그 꿈길에서 서로 다른 길은 하나로 포개질 것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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