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중국, 러시아, 노동자 그리고 티볼리.
쌍용자동차의 현재와 미래를 알려주는 다섯 요소가 지난 1월13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티볼리’ 신차 발표회장에 모두 모였다. 쌍용차의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은 축사를 통해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을 전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는 너는 동방의 등불이 되리라.” 티볼리 출시 행사에서 ‘동방의 등불’을 언급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티볼리는 마힌드라그룹이 쌍용차를 5225억원을 들여 인수한 뒤 처음으로 낸 신모델이다.
신차 판매량, 복직 문제 해결의 열쇠중국과 러시아의 자동차 판매 딜러들도 이날 티볼리 발표회장에 떼지어 입장했다. 국내 신차 발표회장에 외국 딜러들이 등장하는 것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쌍용차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쌍용차가 이곳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짐작하게 했다.
노조의 모습도 쌍용차가 처한 상황을 보여줬다. 행사장 바깥에서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행사장 안쪽에선 2009년 파업 뒤 금속노조와 갈라선 쌍용차 기업노조 위원장이 마힌드라 회장과 손을 잡았다. 2009년 정리해고 당시 극한 노사 갈등을 겪은 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한국 사회 내에서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아이콘’이 됐다.
이들이 모두 함께 바라본 것은 소형 스포츠실용차(SUV) 티볼리다. 티볼리의 성공이 흑자 전환 등 쌍용차를 회생시킬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티볼리의 판매량은 경기도 평택공장의 가동률로 연결된다. 가동률이 높아지면 2009년 쌍용차에서 희망퇴직한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해 대법원이 ‘쌍용차의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을 내리며 법적으로 공장으로 돌아갈 길이 막힌 상태에서, 생산 물량의 증가로 인한 고용 확대 또는 노사 간의 타협만이 해고자 문제를 해결할 길로 남았다. 티볼리가 꽉 막힌 해고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등불로 떠오른 셈이다.
티볼리는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먼저 티볼리의 크기는 소형 SUV라고 부르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커 보인다. 실용적이라는 평가다. 커 보여도 디자인은 날렵했다. 차체 앞부분은 각지게 세련됐고, 뒷부분의 디자인 역시 자동차 담당 기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채윤석 유화증권 연구원은 “2천만원 이하로 책정된 가격을 고려했을 때 소비자에게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평했다. 쌍용차는 티볼리 차값(1635만~2347만원)을 예상보다 낮게 책정했다. 경쟁 모델인 르노삼성의 QM3(2280만~2495만원)와 한국지엠의 트랙스(1953만~2302만원)와 비교해 경제적인 가격이다. 아반떼 등 2천만원 이하 준중형 세단을 첫 차로 고르는 이들에게 티볼리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진 셈이다.
다만 티볼리의 엔진은 강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1600cc급 가솔린엔진을 장착한 티볼리는 최고출력 126마력(6천rpm), 최대토크 16kg·m/4600rpm의 힘을 낸다. 1400cc급 트랙스(140마력, 20.4kg·m/rpm)보다 수치상 힘이 떨어진다. 티볼리의 연비(복합기준·가솔린)는 12km/ℓ로 디젤엔진의 QM3(18.5km/ℓ)과 비교하기 어렵다.
티볼리가 공략할 국내외 시장의 여건은 무르익고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소형 SUV 시장이 커지고 있어 작은 차급인 티볼리가 공략할 만하다”고 전망했다. “하반기 티볼리 디젤 모델이 나오는 것을 봐야 하는데, 무릎에어백과 아이신6단 변속기 등을 단 티볼리의 가격 대비 상품성이 좋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의 흐름을 보면 지난해 처음으로 세단보다 SUV가 더 많이 팔렸다. 중국 시장(2014년 1~11월 기준) 역시 소형 SUV가 많이 팔리면서 전체 SUV 시장의 규모가 34.1% 확대됐다. 유럽도 SUV 차종이 자동차 판매 확대를 이끄는 등 전세계적으로 소형 SUV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 역시 2013년 말에 출시된 르노삼성의 QM3이 지난해 1만8191대나 팔리는 등 소형 SUV 시장이 열린 상태다.
희망 내다보이는 소형 SUV 시장쌍용차의 국내시장 점유율(2014년 기준·수입차 제외)은 4.8%였다. 6만9036대를 팔았다. 2009년 1.6%까지 떨어졌던 시장점유율을 2006년 수준(4.8%)까지 끌어올렸다. 공장 가동률은 함께 올라왔다. 완성차 공장에서 가동률은 실제 생산량을 생산능력으로 나눈 수치다. 가동률이 높아지면 설비 투자나 고용 확대로 이어지게 돼, 가동률은 ‘쌍용차 정상화’의 지표로 사용된다.
쌍용차 평택공장 가동률은 2010년 67%였다. 생산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2013년 107%를 찍었다. 쌍용차는 가동률이 높아지면서 2013년 무급휴직자 453명을 전원 복직시켰다. 2009년 정리해고 당시 쌍용차 노사는 무급휴직자를 우선 복직시키기로 한 바 있다. 평택공장의 조립라인 3개 가운데 한 라인을 주야간 2교대로 바꾸며 고용을 늘렸다. 당시 이유일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주야 2교대 재개를 계기로 올해 판매목표 14만9300대를 달성하고, 2014년엔 흑자 전환 기점인 16만~17만 대, 2015년엔 20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현재 인력으로 가동률 100%(14만여 대 생산)에 다다른 평택공장은 원래 24만 대 생산이 가능한 설비여서 판매량이 더 늘면 추가 고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2014년 쌍용차는 흑자 전환에 실패했다. 예상치 못한 세계경제의 변수가 생겼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영토분쟁을 하면서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 제재에 들어갔고,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의 가치가 떨어졌다. 루블화 가치가 떨어지면 쌍용차가 러시아에서 파는 차 가격이 비싸진다. 결국 수출 주력 시장인 러시아에서 판매량이 줄면서 쌍용차의 수출은 전년 대비 11.8% 감소했다. 쌍용차 판매량(14만1047대)은 목표인 16만 대에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평택공장의 가동률은 93%로 떨어졌다.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없었던 것도 평택공장의 가동률 상승에 브레이크를 거는 장애물이다. 자동차 회사는 연구·개발에 꾸준히 투자하며 신차를 계속 내놓아야 돈을 벌고 고용과 기술력을 유지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를 보면, 쌍용차의 연간 연구·개발비는 2005년 중국 상하이차에 인수되기 전 1400억~1600억원이었다. 상하이차에 인수된 뒤 연구·개발비는 2006년 1289억원 등 오히려 줄어들었고, 경영 사정이 어려워진 2009년(891억원)과 2010년(992억원)에는 1천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동차 회사들이 보통 4~5년에 걸쳐 다음 차종을 개발하는 것을 볼 때 쌍용차는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가 부실해진 셈이다. 정부가 철저한 검토 없이 투자를 하지 않는 상하이차에 쌍용차를 넘긴 부작용이다.
쌍용차는 2013년 연구·개발비를 1535억원으로 올렸지만, 이미 다른 국내 업체와의 격차는 커진 상태다. 2013년 현대차의 연구·개발비는 1조8490억원, 기아차는 1조2415억원이었다. 한국지엠은 5643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르노삼성의 연구·개발비는 1405억원으로 쌍용차보다 적었지만, 신차 등 연구·개발의 상당 부분을 모그룹인 르노에서 진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가 어렵다.
선순환 발목 잡는 뒤처진 개발 경쟁력고태봉 연구원은 “미래 자동차 업체의 키워드는 ‘친환경차’ 개발 경쟁력인데, 쌍용차의 연구·개발 규모로는 이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반면 차기웅 쌍용차 차장은 “티볼리 이후 다른 모델 등 SUV를 착실히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쌍용차는 일단 티볼리가 회사 구조를 선순환으로 반전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티볼리의 올해 판매목표는 3만8500대다. 쌍용차는 1월15일 기준으로 티볼리 사전계약 대수가 4천여 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쌍용차는 티볼리 디젤과 롱바디 모델이 모두 판매되는 내년엔 총 10만 대 이상 파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기존 모델인 대형 세단 체어맨과 SUV 렉스턴의 판매량이 줄고 있지만, 티볼리가 이같은 성적을 낸다면 평택공장의 가동률을 높이는 것은 희망적이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쪽은 “해고노동자를 복직시키면 티볼리의 성공과 회사 정상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쌍용차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내쳤는데 이런 회사에서 좋은 차를 만들 수도 없고, 소비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줄 수도 없다. 해고자를 복직시키면 쌍용차 정상화에 대한 응원 물결이 퍼져 티볼리의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가수 이효리씨가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응원하며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고 올린 것도 티볼리를 알리는 데 역할을 했다. 이른바 ‘노이즈마케팅’과 같은 효과다.
금속노조 쪽은 앞으로 추가될 티볼리 디젤 생산을 위해선 추가 고용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쌍용차 사업보고서를 보면 2013년 14만여 대를 생산했을 때 생산직 노동자 수는 3185명이었다. 비슷한 물량(13만여 대)을 생산했던 2005년(4906명)에 견줘보면 인원은 2천 명 가까이 줄어든 상태다.
회사는 생산 물량이 충분히 늘어야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시적인 물량 증가에 따라 인원을 늘렸다가 나중에 물량이 줄면 다시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구조조정의 상처는 노사 양쪽 모두에 크다. 곽용섭 쌍용차 홍보팀장은 “시간당 생산대수(HPV)를 보면, 쌍용차가 1대를 생산하는 데 걸린 시간이 예전엔 현대·기아차의 2.5배였다. 지금은 1.5배 수준으로 생산성이 좋아졌다. 이제는 예전만큼 인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다”라고 반박했다.
2000년대 중반 한국지엠의 정리해고자 복귀 과정도 쌍용차 노사가 따져볼 만하다. 한국지엠은 2001년 정리해고(당시 대우자동차)를 했던 노동자들을 2003~2006년에 복직시킨 적이 있다.
“다시 돌아온 직원은 남달랐다”김상원 한국지엠 홍보팀장은 “회사가 정리해고자를 먼저 복직시키겠다고 노조에 확약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경영진은 경력이 있는 노동자가 신입보다 숙련도에서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한국지엠은 생산량이 2003년 39만 대에서 2005년 65만 대로 증가하고, 30%까지 떨어졌던 공장 가동률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생산 인원을 늘려야 했다. 김상원 팀장은 “회사로 다시 돌아온 직원들은 남달랐다. 한번 힘든 일을 겪었기 때문에 더 열심이었다”고 했다.
하나의 자동차 브랜드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많은 돈과 노력을 쏟아야 하고 소비자와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야 한다. 노사관계 또한 소비자에게 믿고 살 수 있는 차라는 믿음을 주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 “타고르 시인의 예언(동방의 등불)이 쌍용차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 마힌드라 회장에게 쌍용차 정리해고의 상처는 이제 아물고 가야 할 숙제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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