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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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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그림’ 법안 조속한 통과를

야당은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 연관시켜 법률안 심의 거부, 공익을 인질로 잡아선 안 돼
등록 2015-01-17 17:43 수정 2020-05-03 04:27

새해를 맞아 아이와 함께 국립한글박물관을 방문했다. 조선시대에도 계몽 효과를 높이려면 문자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림이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세종대왕은 이를 깨닫고 삼강행실도를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훈민정음으로 해설을 달게 했다. 그 지혜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보건총감이 담배 유해성을 공식적으로 보고한 지 51년이 지났지만 담배 유해성을 그림경고로 표시하는 입법은 해를 넘겨서 지체하고 있다. 국회, 특히 보건복지위원회는 정부가 수년 전부터 제시한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법안’의 통과를 더 이상 미루지 말기 바란다.

담뱃세는여당안대로 통과시키고는

캐나다·홍콩 등지에서는 우리나라의 담배조차도 경고그림이 들어가 있다. 2013년 12월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경고그림 삽입 촉구 1인시위를 하면서 마련한 전시회에 전시된 담배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제공

캐나다·홍콩 등지에서는 우리나라의 담배조차도 경고그림이 들어가 있다. 2013년 12월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경고그림 삽입 촉구 1인시위를 하면서 마련한 전시회에 전시된 담배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제공

언론 보도를 보면, 김용익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진주의료원 처리에 관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약속 위반을 문제 삼아 장관의 사과나 사퇴 전까지 법률안 심의를 거부한다고 한다. 김 의원은 서울의대 교수로 누구보다 담배 유해성을 잘 아는 의사이며, 한때 청와대에 근무하며 건강 증진을 위해 담뱃값 인상을 주장했었다. 그런데 야당 의원이 된 이후 서민 증세라는 이유로 담뱃값 인상을 반대하고 경고그림 등 비가격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마찬가지로 의사 출신인 안철수 의원, 치과의사 출신이자 보건복지위 위원장인 김춘진 의원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었다. 그런데 정작 담배 가격, 즉 담뱃세 인상은 여당의 요구에 따라 통과시키고 그보다 강조했던 비가격정책의 핵심인 경고그림 입법을 지체하고 있다.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혹시 본인들이 흡연하기 때문에 담뱃갑에 부착되는 그림에 혐오감을 느끼는가? 정말 끔찍한 일은 담배로 인해 폐암이나 뇌혈관질환 등이 발생하는 현실이지 그림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금연정책을 강조하면서 회원국에 그림경고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홍콩 등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담배조차 그림경고가 부착돼 있다.

담배 가격 인상과 경고그림으로 흡연율이 대폭 낮아져 현 정부의 보건정책에 대한 지지가 높아질 것을 우려하는가? 설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러면 흡연율이 너무 빨리 낮아져 세수가 감소하면 보건복지 정책 실현 재원이 줄어들까 걱정하는가? 담뱃값 인상을 통해 늘어난 세수가 장차 흡연으로 인해 늘어나는 질병 대처 비용에도 못 미칠 것이므로 이 역시 정당한 이유라 할 수 없다.

전세계가 경쟁적으로 금연정책

보건복지부 장관의 공공의료 정책에 대해선 당연히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게 국회의원의 본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실하게 필요한 올바른 정책 시행을 방해하듯이 협상 대상으로 삼는 건 지혜롭지 못해 보인다. 여당 의원들이야 입법 개선 지연에 대해 야당이 반대한다면서 생색이라도 내지만 야당은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는 아무리 공익에 도움이 되더라도 가로막겠다는 심산인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구시대적 흑백논리 발상은 언제나 사라질지 걱정이다.

보건복지위의 다수당이 외면하는 사이에 오직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홀로 경고그림 입법 지연을 규탄하고 있다. 국회가 경고그림은 제외하고 담뱃세 인상안만을 통과시킨 뒤 경고그림 입법을 촉구하는 1인시위가 국회 앞에서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청와대가 나서서 경고그림 입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마당이다. 이웃나라 중국도 새해 들어 담뱃값 인상과 금연구역 확대 등 금연정책을 강화했다. 전세계가 경쟁적으로 금연정책을 펼치는 현실에서 적지 않은 의석을 가진 제1야당이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전에는 의안 심의를 일체 보류한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언제까지 고집할 것인가.

김성수 의사·변호사·한국금연운동협의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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