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12월19일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을 같이 선고했다. 김미희·오병윤·이상규·김재연 의원(왼쪽부터)이 헌재 선고 이후 국회 본청 앞에서 헌재의 결정을 비판하면서 “진보정치는 계속될 것”이란 다짐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박근혜 정부가 정당까지 해산시켰다.
박 대통령이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론 2012년 대통령 선거 기간에 “일본군 장교였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 이름)”라고 자신의 아버지를 지칭한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의 정당을 없애버린 것이 됐다. 박 대통령의 통치 행태를 두고 ‘(1970년대) 유신 시대 회귀’란 비판도 있는데, 정당 해산 행위만 놓고 보면 ‘(1950년대) 이승만 정권으로의 후퇴’다. 이승만 정권은 1958년 진보당을 해산시키고, 이듬해 당수였던 조봉암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시켰다. 조봉암은 2011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번 정당 해산은 세계 각국의 법조인들이 국가에 의한 정치적 다원성 침해 여부를 연구하는 최신판 사례가 될 것이다. 세계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정당 해산을 박근혜 정부가 감행한 결과다. 이 모두가 박 대통령의 당선 두 돌인 12월19일에 벌어졌다. 그래서 “법치의 자리에 정치보복이 대신한 날”(노회찬 전 의원),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에게 취임 두 돌 선물을 안겼다”(이재화 변호사)는 탄식이 나왔다. 한 대학교수는 “재판관이 9명이니 해산을 하더라도 ‘6 대 3 해산 결정’ 정도를 예상했는데, 8 대 1의 보수적 판결이 나와 정치학자로서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해산까지 기습적이고, 속전속결이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비판 여론이 끓던 지난해 8월, 국정원은 이석기 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발표해 정국의 물꼬를 ‘이석기 사태’로 돌려놓았다. 그해 11월5일 정부는 헌재에 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하며 정당 공중분해 절차에 돌입했다. 올해 1월 헌재에서 1차 변론이 시작됐고, 11월25일 최종 변론이 마무리됐다. 헌재는 최종 선고 사흘 전인 12월17일에 선고일을 정부와 진보당에 통보했다. 이한본 변호사는 “민사·형사 사건의 판결일도 보통 한 달 전, 못해도 2주 전에 알려주는데 헌재가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심판 선고일을) 3일 전에 통보하는 건 이례적”이라고 했다. 연내에 빨리 정당을 해산시키라는 정부의 압박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는 뜻이다. 그 진의가 무엇이든 정부가 헌재에 해산심판을 청구한 지 13개월여 만에 해산 결정이 난 것 자체가 상당히 빠른 것이다. 독일 사회가 폭력혁명을 꾀한다는 이유로 공산당을 1956년에 해산시킬 때도 4년7개월여의 숙고 기간을 거쳤다. 특히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헌재는 이 의원의 내란음모 행위가 당 전체의 행위로 간주된다며 이를 해산의 주요 이유로 삼았다. 2심에서 이 의원의 내란음모가 무죄(내란선동은 유죄)로 나온 결과는 해산을 막는 주된 사유로 작동되지 못했다.
정상 속도를 이탈한 이러한 속도전은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의혹이 연말 정국을 강타한 상황을 돌파하려고 진보당 해산 결정을 좀더 앞당긴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노회찬 전 의원은 “이번 해산심판 청구는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사건으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던 박근혜 정부의 위기 국면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진보당 해산 결정은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사건으로 인한 박근혜 정부 집권의 최대 위기 국면에서 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정당 해산이 불러올 사회적 파장을 찬찬히 짚어봐야 한다.
우선 진보당 하나 해산하는 것으로 끝나겠느냐는, ‘공안적 불안감 확산’에 대한 우려다. 이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박한철 헌재 소장 등 공안 검사 출신 3명이 진보당 해산 청구(정부)와 해산 결정(헌재)의 주체로 나선 상징성 때문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소 안팎 공안파의 완승”이라 평하면서, “(박 대통령이 집권 3년차인) 2015년에 종북 국면으로 모든 걸 밀고 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 대통령이 내년에 경제 살리기를 전면에 내세우겠지만, 한편으론 진보당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이들을 종북 세력으로 고립화하는 ‘공안적 공세’를 통해 정부 비판 여론의 규합을 막으려 할 것이란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보당이 해산된 직후인 12월19일 오후 청와대에서 국민 추천 포상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독일에서도 공산당 해산에 그치지 않고, 해산 이후 공산당 관련자 12만여 명을 수사했으며, 이들 중 6천~7천 명을 형사처벌한 전례가 있다. 진보당의 한 인사는 “독일 공산당 해산의 후폭풍에서 보듯,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들고 진보당의 주요 당직자와 당원, 2012년 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에서 이석기 의원을 찍은 이들 중 일부를 잡아들이려고 나서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진보당 변호인단의 일원인 이재화 변호사는 “진보당 해산 청구는 진보당만을 겨냥한 화살이 아니다. 진보당 전신인 민주노동당 출신 정치인들도 위헌 정당의 꼬리표를 달게 됐고, 진보당과 선거 연대를 한 새정치민주연합도 (종북 공세의 파장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 쪽 대리인으로 나선 검사들은 진보당 인사들이 폭력혁명이란 숨은 목적이 있다며, 이들의 머릿속 생각까지 예단하려고 나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진보당 쪽 변호인단의 반박을 부르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주류적 입장과 다른 주장을 한다고 해서 정당을 정치공론의 장에서 추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포기.” -진보당 변호인단 단장 김선수 변호사
이번 해산 결정은 시민들이 어떤 정당을 선택할 권리뿐 아니라, 선택하지 않을 주체적 권리를 정부가 강제로 앗아간 비민주적 조처라는 비판도 있다. 어떤 정당이 당장 폭력을 동반해 사회체제를 전복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정당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판단은 시민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당 변호인단 단장인 김선수 변호사는 “우리 사회의 주류적 입장과 다른 주장을 한다고 해서 정당을 정치공론의 장에서 (강제) 추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포기”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도 “정당 해산 결정은 헌재가 아니라 국민과 유권자가 투표로 심판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헌재가 민노당 창당부터 진보당 해산까지 이어진 진보정당 14년은 ‘폭력혁명을 시도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 시간’이란 정부 쪽 주장을 수용함으로써 진보정당 역사도 국가에 의해 통째로 부정당하게 됐다. 소수·약자를 대변하는 진보의 가치에 호응한 당원과 시민도 종북 정당을 지지했다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게 됐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헌재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진보당 해산에 반대한 김이수 재판관은 “진보당을 해산하면 피청구인(진보당)을 지지한 국민을 반국가단체 지지자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자인 정상호 서원대 교수는 “민노당 때부터 진보정당에 표를 준 유권자는 (결국 폭력혁명이란 숨은 목적을 모른 채) 속임수에 놀아난 우중이 되는 것이다. 진보정당을 지지한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을 폄하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정당을 해산한 것은 시민들의 판단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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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산 결정이 가져올 위험성 중 하나로 진보적 용어 사용의 퇴출과 정치적 신념의 위축도 거론된다. 정부는 변론 과정에서 진보당 강령에 담긴 진보적 민주주의, ‘자주·민주·통일’이 북한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이고, 민중주권과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정당’ 등이 특정 계급(고소득층)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며 위헌 정당임을 내내 강조해왔다. 헌재가 정부 쪽 주장을 수용함으로써 진보적 민주주의, 자주·민주·통일, 민중주권 등 오랫동안 진보·평화 추구 인사들이 사용한 용어들이 우리 사회에서 언어적 존재감을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부른다. ‘인민’이란 말이 북한에서 많이 사용된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심리적 금기어가 된 것과 비슷한 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에 표를 줬던 유권자의 소신 투표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상호 교수는 “(그간 총선에서) 지역구는 당선 유력 정당을 찍고, 정당 투표는 자신의 소신에 맞는 신념 투표를 했는데, 이런 유권자의 선택이 위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 교수는 정의당이란 원내 진보정당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을 내세운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14년’이 무너지면서 정치권에 노동문제를 대변할 정당이 약화된 것도 큰 문제로 봤다. 그는 “한국 정치에서 노동의 대표성이 폭탄을 맞게 됐다. 이제 노동이 (노동자 수에 비해) 과소 대표되는 문제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가 (진보개혁 세력에게) 과제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시민사회 원로인 김상근 목사도 “민주주의는 진보와 보수가 양 날개로 날아야 하는데, 지금 그것이 무너지는 위험한 경계선상에 와 있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대한 정부의 공안적 관리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진보당 해산 직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하거나 이에 도전하는 어떠한 시도나 행위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이에 단호히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의 다원성이 위축된 이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 구내식당의 식사를 직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며 취임 두 돌을 자축했다. 그러나 같은 날,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이 취임 뒤 최저치인 37%를 기록한 여론조사(한국갤럽) 결과가 발표되며 국정에 대한 여론의 불안감도 동시에 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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