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지금 모시러 가고 있습니다.”
현실은 사장 아닌 사원이지만, 차에 타니 잠시 사장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지난 8월27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무실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우버 앱을 열었다. 서울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고급 리무진 서비스인 ‘우버블랙(Black)’ 서비스를 이용해보기 위해서였다. 스마트폰 위성항법장치(GPS)로 표시된 위치에서 목적지를 입력하고 차량을 요청했다. 곧 낯선 번호의 전화가 울렸다. 앱에서 얼굴 사진과 함께 차종과 차 번호·이름을 일부 가린 채 맺어진 ‘우버 기사’였다.
우버 서비스 전부터 일 시작한 기사사옥 앞에 도착한 검정색 에쿠스에서 내린 기사가 손님을 맞이했다. 조수석을 앞으로 한껏 밀어 넓은 공간을 확보한 뒷자리에는 생수와 껌 등이 준비돼 있었다. 애초 서울 시내를 통해 동대문까지 가는 여정을 입력했지만, 기사는 “어떤 길로 가는 게 편하시냐”고 다시 한번 물었다. 우버 앱에서 계산한 예상 금액은 2만~2만6천원이었다.
이날 만난 차량기사 김아무개씨는 우버코리아의 직원이 아니다. 그는 100~200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법인 영업을 상대로 하는 렌터카 업체가 고용한 직원이다. 그는 서울역 근처에서 우버 앱에 뜬 차량 요청을 확인하고 달려왔다. 그가 속한 ‘서울역팀’에는 에쿠스와 벤츠 E 클래스, BMW 5시리즈 등 모두 10여 대의 차량이 우버블랙 서비스를 하고 있다. “광화문·이태원·강남역 등 서울 시내의 지역 거점에 모두 10여 팀, 200여 대의 차량이 우버블랙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버 앱을 통해 기사는 운행과 휴식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렌터카 업체가 요구하는 실적이 있기 때문에 우버 기사 대부분은 아침부터 나와 저녁까지 일하거나, 늦게 나와 새벽까지 일한다.
그가 우버 기사로 나선 건, 국내에서 우버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인 지난해 5월이다. 앞서 그는 “임원급 차량 운영을 위해 정규직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렌터카 업체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 여의도 증권가 등에서 외국인 임원 등의 출퇴근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최근 증권·보험사 등 외국계 업체들이 불황으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용 기사·차량 대신 교통비 지급 등으로 바뀌면서 렌터카 업체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그즈음 다른 렌터카 업체의 동료 소개로 우버 서비스를 듣고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저는 ‘프리랜서 기사’죠.” 그는 우버블랙 기사로서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예전 일자리에 견줘 나아진 건, 승객의 일정에 매이지 않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버 앱을 통해 기사가 운행과 휴식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운행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렌터카 업체가 요구하는 실적이 있기 때문에 우버 기사 대부분은 아침부터 나와 저녁까지 일하거나, 늦게 나와 새벽까지 일한다. 손님이 저녁에 몰리기 때문이다. “낮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저녁에만 우버 기사로 뛰는 동료도 있다.” 김씨는 렌터카 업체로부터 월급과 인센티브를 받는다. 보증금을 내고 스마트폰(아이폰·영업 초기에는 아이패드)을 받아 우버 기사용 단말기로 쓰고 있다. 그가 벌어들이는 운행 수익 가운데 20%는 우버의 몫이다.
현장에서는 우버의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했다. 실제 이날 그는 오후 4시께 이미 5번째 승객을 태웠다. “서울시가 우버의 불법화 등을 언급한 뒤, 손님이 확 늘었다.” 영업 초창기 하루 2~3명에 그치던 손님 수가 지금은 10명이 넘는다. 많을 때는 20건을 소화하는 경우도 있다. “(언론 등에 소개되면서) 지금은 좀 대중화됐지만, 초창기에는 미국 등 해외에서 우버를 써본 외국계 업체 임원과 교포 등이 주로 이용했다. 연예인, 연예기획사 대표 등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도 많았다.”
1만5천원 택시비 거리에 3만4500원 결제우버코리아에서는 렌터카 업체에 운영 지침 등을 통보하지만, 기사 개인에게도 영업과 관련한 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일단 운행 요청을 받고 거절을 하면 평점이 깎인다. 손님이 없는 경우, 우버 쪽에서 수요가 많은 곳을 안내해준다.” 이날도 ‘서울역팀’은 밤 9시께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근처에서 큰 파티가 있을 것이라는 우버 쪽의 연락을 받았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역에서 도산공원 쪽까지 이동하는 손님이 많아 대부분 그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 이 운행을 마치면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가 콜을 받아 나갈 것이다.”
그러나 우버 기사에게도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운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렌터카 업체가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 기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또 앱 서비스를 제공하고 우버코리아가 떼어가는 수수료도 너무 높다.” 그는 한국사무소에 극소수의 인원(3명)만 두고 운영하는 우버가 갑자기 한국 시장에서 철수해버릴 수도 있어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꽉 막힌 도심을 뚫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기사가 차량에서 내려 배웅했다. 회원 가입 과정에서 등록한 카드로 예상 금액보다 많은 3만4500원이 자동 결제됐다. 일반 택시비(1만1천~1만5천원)보다 비싼 금액이다. 그 밖에 별점(★)으로 기사를 평가해야 한다. 승객도 평가를 받는다. 별점이 낮으면 기사·승객 모두 우버 서비스 세계에서 퇴출을 당한다.
지난 8월28일 우버코리아가 내놓은 두 번째 서비스인 ‘우버X’의 경우는 좀더 논쟁적이다. 우버블랙과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지만, 고급 대형 차량이 아닌 개인이 소유한 준중형 차량으로도 영업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우버코리아는 한 달 동안 무료로 우버X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는데, 안내 전자우편을 따라 우버X 영업에 나설 수 있는 ‘테스트 드라이버 등록’ 과정을 체험해봤다.
기사가 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우버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 진행하는 등록 과정에는 기본적인 개인정보와 차량 상태를 물었다. “2005년식 이후 만든 상태가 양호한 4도어 세단·SUV”가 가입 조건이었다. 해외에서 영업 중인 우버와 비슷한 업체인 리프트·사이드카 또는 택시 운행 경험이 있는지 추가로 묻는 질문도 있었다. 운전면허증을 직접 찍어 올리는 등 기본 확인 절차를 거친 뒤, 우버코리아에서는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 며칠 뒤 연락하겠다고 통보했다. 가입 마지막 과정에서 제공하는 우버 기사를 위한 약 13분짜리 동영상에서는 기본적인 운행 에티켓을 안내했다. “생수를 제공하라, 승객에게 팁을 요구하지 마라, 좋은 평점을 달라고 하지 마라.”
“좋은 평점을 달라고 하지 마라”그동안 논쟁을 불러온 우버블랙 서비스는 모범택시의 콜서비스나, 호텔 리무진 서비스와 닮아 있었다. 오히려 서울시가 우려하는 택시업계에 타격을 줄 만한, 혹은 택시업계와 큰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은 건 우버X 서비스로 보였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우버X 서비스가 시작된 다음날 “자가용으로 승객을 태우고 대가를 받는 행위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서울시에 단속을 지시했다. 이에 우버코리아는 “우버X는 라이드셰어링 또는 유사 카풀링 서비스 개념으로 서울시에서도 유사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는 공유경제의 사례 모델로 서울에서 추진하고 있는 합법적인 서비스”라고 반박에 나섰다. 어쩌면 우버가 서울에 불러온 파장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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