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조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전국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전국기초단체장들의 업무추진비 내역을 검토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시의회 이창섭 운영위원장은 2013년 12월23일 낮 12시42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설렁탕집에서 39만2천원을 내고 식사를 했다. 10명이 설렁탕집에서 식사를 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1인당 4만원 가까운 비싼 식사를 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4시25분 이창섭 위원장은 역시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일식집에서 45만원어치의 식사를 했다. 참석자는 12명이었다. 역시 1인당 4만원 가까운 비싼 식사였다. 불과 4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두 번의 꽤 거한 식사를 했는데, 식대는 모두 세금으로 계산됐다. ‘업무추진비’로 계산한 것이다.
이 두 번의 식사 자리 명목은 ‘운영위원장 현안 업무추진을 위한 간담회 경비지급’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의회 운영위원장의 업무가 왜 서울시의회나 서울시청이 있는 중구가 아니라 강서구 화곡동의 식사 자리에서 ‘추진’되었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에 두 번씩이나 비싼 식사를 하면서?
이창섭 위원장의 이상한 업무추진은 강서구 화곡동에서 계속된다. 12월24일 저녁에도 37만5천원(참석자 10명), 12월26일 저녁에도 48만원(참석자 13명)의 업무추진 식사가 강서구 화곡동에서 이뤄진다. 서울시의회 기본조례에 따르면 의회 운영위원회의 소관사항은 ‘의회운영에 관한 사항’ ‘의회사무처 소관에 속하는 사항’ ‘특별위원회 구성에 관한 사항’ ‘시장비서실 소관에 속하는 사항’ ‘정무부시장실 소관에 속하는 사항’으로 강서구 화곡동과 관련된 것은 당연히 없다. 그런데 그는 왜 강서구 화곡동에서 이렇게 식사를 많이 한 것일까?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는 있다. 이창섭 위원장의 지역구는 강서구 제1선거구다. 화곡제1동, 화곡제2동, 화곡제3동, 화곡제8동, 발산제1동이 지역구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의 업무를 자주 봐온 것이다.
금액이 1인당 4만원에 약간 못 미치게 끼워맞춘 듯 되어 있는 비밀도 간단하다. 안전행정부의 ‘지방자치단체 세출예산 집행기준’에 따르면 간담회 때 사용할 수 있는 식대는 1인당 4만원 이하로 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이 공금인 업무추진비를 지역구 활동을 하는 데 쓴 것으로 볼 여지가 많은 편이다. 이창섭 위원장은 2013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사용한 35건의 업무추진비 중에서 91.42%를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강서구에서 사용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창섭 위원장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녹색당이 2013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4개월 동안 사용한 서울시의회의 업무추진비 지출 내역과 영수증을 정보공개 청구해서 분석한 결과, 이런 행태는 서울시의회에 만연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서울시의회의 의장 직무대리(의장은 비리로 구속 중), 부의장과 상임위원장들이 사용한 업무추진비 중에서 자신의 지역구가 속한 자치구에서 사용한 비율이 무려 평균 51.64%에 달했다.
업무추진비 사용 건수 중에서 자신의 지역구가 속한 자치구에서 사용한 비율이 50%를 넘는 경우는 이창섭 운영위원장 외에도 김기옥 보건복지위원장(강북구 제1선거구) 81.63%, 김용성 환경수자원위원장(강서구 제3선거구) 65.95%, 유광상 도시안전위원장(영등포구 제4선거구) 61.11%, 채재선 교통위원장(마포구 제3선거구) 59.57% 등이다. 김광수 행정자치위원장은 48.93%, 성백진 의장 직무대리는 45.28%, 김인호 재정경제위원장은 41.66%를 기록했다. 서울시의회 의장단 및 상임위원장단 14명(의장 제외) 중 8명이 지역구가 포함된 자치구에서 업무추진비의 40% 이상을 사용했다.
물론 비교적 깨끗하게 사용한 상임위원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를 이끌어가는 핵심 구성원들 중 상당수가 공금을 자기 주머니의 ‘쌈짓돈’처럼 써왔다.
의회 전체를 총괄하는 의장의 문제도 심각하다. 서울시의회 의장은 본래 김명수 의원(당시 민주당·구로구 제4선거구)이었다. 그런데 그는 재건축과 관련해서 철거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를 대리해 부의장인 성백진 의원(중랑구 제1선거구)이 의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다.
그런데 성백진 의장 직무대리의 업무추진비 집행 실태를 보더라도 지역구에서 사용한 부분이 꽤 된다. 그는 2013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총 48건에 걸쳐서 그의 지역구가 있는 중랑구에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대부분 식대였고, 명목은 ‘의정활동 간담회’였다. 이 기간 동안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총 106건 중에서 중랑구에서 사용한 비율이 45.3%에 달한다. 서울시의회 의장 직무대리로서의 업무 중 45.3%가 중랑구에서 있지는 않았을 것이니, 의장 직무대리가 자신의 지역구 활동을 위해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들은 대부분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후보로 출마한다. 이들이 지역구 활동을 위해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면, 선거에 임박한 시점부터는 선거운동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시민의 세금이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런 행태는 서울시의회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 1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방의회 의원의 업무추진비 부당집행 행위가 다수 적발됐다고 발표했다. 자기 집 주변에서 의정활동 외 용도로 사용하거나 공휴일이나 심야시간대(밤 11시 이후)에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이 다수 적발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용이 금지된 노래방·주점 등에서 사용된 경우도 발견됐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서울시의회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방의회의 업무추진비가 부당 집행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에도 이런 행태는 계속됐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솜방망이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공금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면 그것은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권익위원회는 잘못 사용된 사실을 확인하고도 검찰에 고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해당 지방의회에 통보를 했을 뿐이다. 그리고 어떤 지방의회에서 어떤 부당집행 행위가 있었는지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도, “○○시의회 부의장은 자택 인근 지역에서 의회 의정활동과 관계없이 간담회 명목으로 숙박비 45만원을 업무추진비로 집행” 같은 식으로만 되어 있다. 이는 공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행위를 덮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지방의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것은 수없이 많다. 업무추진비를 위법·부당하게 사용하는 것 외에도 관광성 해외연수, 이권 개입, 권위만 내세우는 행태 등이 계속 문제로 지적돼왔다. 의장 선거와 관련해서 돈을 주고받았다가 구속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빠져 있으면서 의회가 해야 할 본래 역할은 소홀히 해왔다. 집행부 견제·감시, 조례 입법활동은 뒷전으로 밀렸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끊임없이 지적돼왔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방의회가 부활한 지 23년이 돼가지만 늘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무리 잘못된 행태를 보여도 이후의 선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선거제도는 지방선거를 할 때 정당 기호만 보고 광역단체장·광역지방의원·기초지방자치단체장·기초지방의원까지 일률적으로 투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동일한 번호로 기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평소의 의정활동을 평가받아 다음 선거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 양대 기득권 정당의 공천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당락을 사실상 결정한다. 그러다보니 의정활동보다는 지역구 관리와 공천권자 눈치 보기가 우선이다.
서울시의회·경기도의회 같은 수도권 의회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서울시의회·경기도의회 의원 선거 결과는 완전히 널뛰기를 해왔다. 어떤 때는 새누리당(이전에는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하고, 어떤 때는 민주당(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싹쓸이를 해왔다. 2006년 당시 한나라당은 서울시의회 지역구 의석 100%를 싹쓸이했다. 참여정부에 대한 정권심판론을 내세워 의석을 싹쓸이했다. 2010년에는 민주당이 74%의 의석을 차지했다. 거의 3분의 2 가까운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100%든 74%든 견제가 어려운 절대다수 의석이다. 이렇게 양대 정당이 돌아가면서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이유는 광역지방의원(시·도의원) 선거구제가 소선거구제인 데서 비롯된다. 소선거구제는 이론적으로 득표율 2%의 차이가 의석수 100%의 차이로 나타날 수 있는 제도다. 어느 정당이 모든 선거구에서 51%를 얻고 다른 정당이 49%를 얻을 경우 51%를 얻은 정당이 100% 의석을 싹쓸이하게 된다. 선거구별로 1등만 당선되기 때문이다.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바로 대한민국의 수도권 광역의회 선거다. 단 몇%의 지지율 차이가 의석수에서는 압도적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
소선거구제는 양대 정당 외의 다른 견제세력의 등장을 어렵게 한다. 국회에는 제3의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있지만, 지금 서울시의회에는 양대 정당 소속 지방의원들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어떤 때는 서로 대립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리와 특권을 나눠갖는 공생관계에 있다. 의회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 자리를 나눠갖는 것이다. 그리고 자리를 차지하면 목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고, 업무추진비도 펑펑 쓸 수 있다. 두 정당만 있다보니, 서로의 묵시적 합의만 있으면 시비를 걸 사람도 없다.
그래서 서울시의회를 비롯한 지방의회의 업무추진비 문제는 한국 지방의회가 서 있는 현주소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 사례다. 이런 지방의회를 두고 지방자치가 제대로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방자치부터 썩어 있는데 국가 정치가 제대로 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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