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요.” 간혹 이런 내용의 전자우편이 날아듭니다. 창간 20주년 기념으로 ‘한겨레21, 다큐 7일’을 보여드릴게요.
제1001호에 실린 ‘리바이벌21’ 제2탄 소개글에 이런 문구가 있었죠. “글을 쓰는 건 인간이 아니라 마감이라는 놈입니다.”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기자들에겐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마감’은 인간의 얼굴마저 한순간에 바꿔버립니다. 마감이 찾아오면 기자들의 ‘몰골’은, 말 그대로 비주얼해지죠. 현재 시각 3월14일(금요일) 오후 3시30분. 제1003호 마감을 위해 숨죽인 채 자판을 두드려대고 있는 기자들의 비주얼을 생중계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가장 말짱한 몰골을 하고 하나둘 출근하는 날은 월요일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발걸음만은 아닙니다. 한 주 지면의 얼개를 짜는 기획회의가 열리는 탓이죠. 취재·편집·사진·디자인 인력이 모두 참여하는 기획회의는 오디션, 일종의 팀 배틀 시간입니다. 자신 또는 팀의 아이템을 ‘세일’하는 묘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기획회의가 끝나면, 이제 ‘출격’입니다. 원고를 청탁하고 취재를 섭외하는 전화를 돌리느라 한순간 분주해집니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들이 제각각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날입니다. 무작정 지방으로 달려갈 때도 부지기수죠. 기자가 취재를 위해 찾아가는 곳이 우아한 국회의원 의원실만은 아닙니다. 때론 고공농성을 벌이는 송전탑을 맨손으로 기어올라야 합니다. 바람 부는 천막 농성장에 쪼그려앉기도 해야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야, 한 곳이라도 더 찾아가야, 마감 고통이 그나마 줄어들 것이란, 믿음 때문입니다.
목요일 아침 눈을 뜨면 벌써 심장박동 수가 달라진다고 말하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목요일 오후 무렵부터 기자들의 개인 페이스북 계정엔 ‘마감 걱정하다, 잠시 딴짓하는 중’ 따위의 포스팅이 줄을 잇습니다. 하지만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게 마감입니다. 마감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목요일 밤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건물 4층은 기자들의 숙소로 때아니게 용도 변경하기도 합니다. ‘기사가 안 풀린다며, 제목이 잘 안 떠오른다며, 딱 한잔만’ 하러 회사 앞 호프집과 사무실을 쉴 새 없이 오가는 발걸음도 빨라집니다. 최종 마감 D-데이인 금요일 아침은, 이처럼 고통과 한숨 속에 기어코 밝아옵니다.
이즈음 바빠지는 곳이 또 있습니다. 한 층 위에 자리잡은 디자인 사무실입니다. 취재기자가 공들여 쓴 원고는 편집기자와 교열기자를 거쳐 디자이너의 손에 도착합니다. 숙련된 손놀림으로 텍스트와 사진을 한데 버무려 매주 화려한 지면으로 탄생시키는 요술의 산실이죠.
어느덧 금요일 저녁. 대부분의 기사 대장엔 하나둘 ‘OK’ 글자가 적힙니다. 인쇄를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뜻이죠. 그래도 마지막 관문이 하나 남았습니다. 바로 의 ‘얼굴’, 표지 이미지를 정하는 시간입니다. 그 어느 경쟁지에 견줘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여러 가지 시안을 놓고 늘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때론 투표를 통해, 때론 목소리 큰 사람에 떠밀려, 때론 의견 조율을 빙자한 편집장의 독단에 의해 ‘당선작’이 결정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오늘은 1003권째를 만듭니다. 평가는 독자의 몫입니다.
이제 모든 건 사무실과 이별합니다. 토요일 어스름한 새벽. 경기도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인쇄소 윤전기가 서서히 기름칠을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전국 곳곳의 독자들에게 새로운 얼굴의 을 선물하기 위해 윤전기는 토요일 오전 내내 힘차게 돌아갑니다.
글 최우성 편집장 morgen@hani.co.kr·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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