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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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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에게 빵과 장미를!

미국·영국 등에서 최저임금 한계 넘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생활임금 국내서 기지개
노조 만들고 싸워온 청소노동자들의 힘으로 인간다운 삶 쟁취하다
등록 2014-03-19 15:20 수정 2020-05-03 04:27
지난 3월11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본관 앞 잔디밭에 청소노동자들이 노조 간담회를 하기 위해 앉아 있다. 고려대 청소·시설관리 노동자 200여 명은 생활임금 보장 등을 요구하며 3월3~13일 본관 점거농성을 벌였다.정용일

지난 3월11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본관 앞 잔디밭에 청소노동자들이 노조 간담회를 하기 위해 앉아 있다. 고려대 청소·시설관리 노동자 200여 명은 생활임금 보장 등을 요구하며 3월3~13일 본관 점거농성을 벌였다.정용일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와 걸레를 내려놓았다. 지난 3월3일 고려대 본관 앞 잔디밭은 14개 대학 소속 1천여 명의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로 가득 찼다. 고려대와 경희대에선 매일 쓸고 닦던 일터도 점거했다. 철도를 멈추고, 컨베이어 벨트를 중단시키는 ‘세상을 뒤흔들’ 파업이 아닌지라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빨간 투쟁조끼를 입은 이들은 대부분은 50~60대 여성 비정규직이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또 다른 ‘세 모녀’일지도 모르는 이들의 외침은 절박했다. “생활임금 보장하라.” 구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노동조합이 원청인 각 대학, 용역업체와 집단교섭을 벌이기 시작한 2010년부터, 이들의 시급은 최저임금을 넘어섰다. 그래서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임금 보장이다. 여전히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전체의 11.8%다. 최저임금이 오히려 고용주가 줘야 할 ‘최고임금’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런데 저임금의 대명사로 불렸던 청소노동자들이 거듭된 집단투쟁을 통해, 학생들과의 연대를 통해 해마다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높은 임금 인상률을 ‘쟁취’해내고 있다.
현장의 언어는 때로 시대를 앞서간다. 이들은 ‘생활임금’이라는 구호를 몇 년 전부터 자연스레 외쳐왔다. 생활임금은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말한다. 미국·영국 등에선 법정 최저임금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지방자치단체부터 대학·병원 등 민간기업까지 생활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국내 정치의 언어는 한발 늦었다. 지난해에야 비로소 서울 노원구청과 성북구청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시급 기준)보다 30% 이상 높은 생활임금을 줬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한 경기도 부천시는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6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생활임금 도입’을 약속하는 후보도 나오고 있다. 생활임금을 연결고리 삼아, 노동과 정치의 현장을 살펴봤다. _편집자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길엔 아직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새벽 3시40분.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사는 박영심(62)씨는 자전거 앞에 매달려 있는 랜턴을 켠다. 자전거마저 없었더라면 출근길은 더 깜깜, 갑갑했을 터다. 버스 첫차도 다니지 않는 시간이다. 그래서 일부러 자전거 타기도 배웠다. 매일 새벽 중랑천 자전거도로를 30분 동안 달린다. 박씨가 2011년부터 일하는 노원구청에 도착하면 새벽 4시10분. 힘들지만 “출퇴근길 1시간 동안 운동하는 셈” 친다. 아니면 동료 조영복(55)씨처럼 새벽마다 4100원을 택시비로 헌납할 수밖에 없다. 조씨는 택시비 할증요금이 풀리는 새벽 4시가 ‘땡’ 치기를 기다렸다가 택시를 잡는다. 1시간을 걸어오기엔 새벽 어둠은 너무 짙다. 이들이 받는 시급은 6850원. 택시비는 36분만큼 일을 덜한 셈 칠밖에.

첫차보다 일찍 새벽 여는 이들

이수덕(63)씨도 10년 전에는 어둠 속을 걸어다녔다. 그의 직장은 서울 성북구 안암로 고려대. 새벽부터 일해봤자 월 65만원을 받던 시절이었다. 돈암동 동네 주민인 동료가 길벗이 돼주지 않았다면, ‘야행’ 30분은 감행하지 못했을 거다. 동료가 그만둔 뒤로는 새벽 4시30분 버스 첫차를 탄다. 근무 장소인 문과대 서관에 도착하면 5시. 박영심씨와 이수덕씨의 정해진 출근시간은 아침 6시다. 그런데도 이들은 1~2시간씩 일찍 나온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일찍 나온다고 초과근로수당을 더 쳐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서둘러 나오지 않으면, 하루에 정해진 일을 다 마칠 수 없어서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에 있는 카이스트 서울캠퍼스에서 일하는 박순화(58)씨의 출근시간은 그래도 아침 7시라서 조금 여유로운 편이다. 이문동 집에서 25분을 걸어다닌다. 미아리 방면에서 오는 동료들은 첫차를 타고 출근하면 항상 6시30분에 맞춰 도착한다. 첫차보다 일찍 새벽을 여는, 이들은 청소노동자다.

이들의 하루는 아침 9시까지가 가장 바쁘다. 지난 3월11일. 박씨는 출근하자마자 노원구청 6층 여자화장실에 딸린 작은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6층 사무실 7곳과 화장실 2곳을 다 치우려면 항상 시간이 빠듯하다. 쓰레기통을 다 비우고, 다시 종이·플라스틱 등을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야 한다. 수북하게 모은 쓰레기더미를 1층으로 내려주고 나면 아침 7시. 일찍 출근하는 공무원이 많아서 그 전에 바닥 걸레질을 다 끝내려면 “뛰어다녀야” 한다. 이날 아침엔 계단까지 닦느라 더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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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경영대학원 2호관 4층을 청소하는 박순화씨도 이날 아침엔 유난히 마음이 분주했다. 박씨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 카이스트분회장을 맡고 있다. 서경지부 소속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3월3일부터 ‘생활임금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이날 낮에는 전면 파업 중인 고려대에서 노동조합 대표자 회의가 잡혀 있다. 카이스트분회는 지난해 11월 설립된 신생 노조다. 조합원도 22명밖에 되지 않는다. 노조 활동만 전담하는 전임자가 없다보니, 분회장인 박씨가 시간을 쪼개써야 하는 형편이다. 노조 때문에 못 마친 업무는 남은 동료들이 나눠 맡는다. 박씨의 윗입술에는 새끼손톱만 한 물집이 부풀어올랐다.

이수덕씨는 답답한 가슴팍을 꾹꾹 누르며 3월11일 아침을 맞았다. 고려대에선 지난 3월3일부터 본관 점거농성 중이다. 200여 명의 조합원이 본관 1층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은색 매트 하나만 깔고 먹고 잔다. 하루씩 교대로 집에 가서 편히 자고 돌아오지만, 없던 병도 생길 판이다. 더구나 월요일인 3월10일 새벽, 이씨는 1시간 넘게 추위에 떨어야 했다. 주말에 농성장을 비웠더니 학교 쪽이 본관 건물을 잠갔다가 아침 7시에야 열어준 탓이다. 이날 새벽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4℃. 올 3월 들어 꽃샘추위가 가장 성질을 부린 날이었다. 꽁꽁 언 몸을 제대로 녹일 새도 없이 차가운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운 게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3월11일 농성장을 찾아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관계자는 “체했다”며 약을 지어줬다.

평균연령 59.9살, 생계 책임 비중 52.6%

50~60대 여성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세 사람이 청소를 직업으로 삼은 이유는 다른 듯 비슷했다. 만 10년 넘게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수덕씨는 개인택시 운전을 하던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일터로 나섰다. 가정주부로만 살았던 세 아이의 어머니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뭔지도 모르고, 월 65만원을 첫 월급으로 주길래 그냥 받았다. “월급명세서는 안 나오냐”고 용역업체 소장한테 물었더니 “여긴 원래 없어요”라고 시큰둥하게 답했다.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이씨는 10년 넘게 고려대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그새 용역업체는 4곳이나 바뀌었다. 자식 둘을 결혼시키고, 지금은 막내딸과 둘이 살지만 아직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박순화씨는 손 여기저기에 100원짜리 동전만 한 습진이 얼룩덜룩하다. 식당 일을 오래 해서 남아 있는 흔적이다. 한때 그는 식당 ‘사장님’이었다. 남편과 같이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했다. 60평 넘는 제법 큰 한우 식당이었지만, 2007년 문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식당 ‘아줌마’가 됐다. 설거지를 비롯한 식당 허드렛일은 고달팠다. 게다가 남편은 무혈관성 괴사라는 병에 걸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몸을 움직이기 힘든 남편은 취직이 어려워졌다. 생계 책임은 고스란히 박씨한테 넘어왔다. 카이스트 서울캠퍼스와의 인연도 구내식당에서 먼저 맺었다. 하루 5시간 일하고 일당 3만원을 벌었다. 청소 일이 조금 더 편할까 싶어서 2009년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근무시간은 하루 8시간으로 길어졌는데 월급은 80만원밖에 못 받았다. 씀씀이를 줄이려고, 모든 체크·신용카드는 해지했다.

노원구청에서 일하는 박영심씨는 외벌이는 아니다. “영감님은 만 60살에 퇴직하고 경비 일을 나가신다.” 아들이 결혼해서 손주도 둘이나 생겼지만, “나이 먹으니까 다른 직장에선 안 받아주고 손주들 용돈이라도 쥐어주려면” 손에서 빗자루를 내려놓을 수 없다. 노원구청에서 같이 일하는 여성 청소노동자 17명은 만 55~65살로 모두 엇비슷한 처지다. 원래 용역업체 소속이던 이들은 구청장이 바뀌면서 2011년 노원구서비스공단에 직접 고용됐다. 용역업체가 중간에서 떼가던 돈이 없어지니, 월급은 95만원에서 115만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만 55살 이상의 고령자라서 정규직 전환 대상자가 안 됐다. 9개월마다 계약이 갱신되기 때문에,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들은 어디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청소노동자의 전형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3월 내놓은 보고서 ‘서울시 대학 비정규직 노동실태와 개선방안’을 보면, 설문조사한 대학 청소노동자 273명의 평균연령은 59.9살이었다. 본인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구주인 비중도 절반이 넘는 52.6%였다.

‘생활임금’. 요즘 이 세 사람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들의 임금 현실과 생활임금에 대한 태도는 비슷한 듯 달랐다. 세 사람의 2013년 11월 임금명세표를 직접 받아서 각종 수당 등 구체적인 항목들을 비교해봤고, 2014년 임금 변화와 근무시간 등도 따져봤다(표1, 2 참조).

노원구청에서 일하는 박영심씨는 지난해부터 ‘생활임금’을 받고 있다. 노원구청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원구서비스공단에 소속된 청소·주차 노동자 등 68명에게 지난해 생활임금 제도를 적용했다. 2013년 최저임금(시급 4860원)보다 높은 시급 6493원이 기준이 됐다. 이에 따라 박씨는 지난해 월 131만7천원을 받았다. 올해는 시급이 6850원으로 올랐다. 명절 상여금이 포함된 1월에는 149만여원, 근무일수가 적었던 2월에는 134만여원을 받았다. 박씨는 오는 5월에는 같이 일하는 동료 7명과 2박3일로 제주도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생활임금이 시행된 뒤 월 2만~3만원씩 곗돈을 부었는데 첫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울릉도 여행상품을 예약해놓은 동료도 있다. 노원구청 청소노동자들은 “생활임금이 도입되면서 삶의 여유를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이들에게도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지자체 선거로 구청장이 바뀌면 생활임금이란 제도 자체가 사라질까봐, 9개월 단위 재계약 심사에서 탈락할까봐 걱정이다.

박씨에게 생활임금은 ‘주어진’ 것이지만, 이수덕씨에게는 ‘확보한’ 것이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에게서 ‘생활임금 보장’이라는 낯선 구호가 등장한 건 2011년 무렵부터였다. 2010년 공공노조 서경지부 단위로 첫 집단교섭이 진행됐다. “그해 최저임금이 시급 4320원이었는데 대학·용역 업체들과 4600원에 합의했다. 항상 최저임금만 받다가 처음으로 최저임금을 넘어선 것이다.” 고려대분회장 출신의 윤명순 서경지부 부지부장의 회고다. 여러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뭉쳐서 얻어낸 결과였다. 2007년만 해도 100여 명에 불과했던 서경지부 조합원은 현재 1400여 명으로 늘었다. 집단교섭에 참가하는 대학이 14곳, 용역업체가 22곳이다.

생활임금 받고 난 뒤 삶의 여유 가져

이수덕씨가 지난해 받은 시급은 5700원이다. 평일 아침 6시~오후 4시, 토요일 아침 6시~오전 11시 꼬박 근무하고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30만~145만원이었다. 그나마도 올해는 학교가 토요근무를 없애겠다고 하면서 월급이 10만~20만원씩 쪼그라들게 생겼다. 문제는 토요근무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토요일에 할 일을 월요일 아침에 더 일찍 나와서 하라는 심사”라고 이씨는 분노한다. 올해 시급은 6200원 안팎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이씨가 속한 (주)C&S자산관리는 연세대·고려대·경희대 등 서울 시내 주요 사립대학 청소를 맡고 있는 큰 용역업체다. 경희대에서는 지난 3월10일 학교가 시급 6200원을 책임지겠다고 노조에 약속했다. 고려대를 비롯한 다른 대학도 비슷한 수준에서 임금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00원에 이어 올해도 500원 임금 인상을 관철해낸 것이다. 시급 6200원은 최저임금 5210원보다 1천원 가까이나 많은 액수다.

“우리도 C&S자산관리로 용역업체가 바뀌면 임금을 올려줄까요?” 박순화씨는 지난해 경희대분회장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뭘 몰라도 한참 몰랐다. 지난해 시급 4860원에 딱 맞춰서, 매달 96만8860원만 겨우 받아온 카이스트 서울캠퍼스 청소노동자들은 ‘착한’ 용역업체가 오면 나아질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지난해 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용역업체는 2014년 임금 인상안을 들고 찾아왔다. 시급을 올해 최저임금인 5210원에 맞춰주고, 나머지 각종 수당을 월 10만원으로 포괄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포괄임금제는 ‘비정규직 노동자 자유이용권’이라고 불리며 악용되는 임금체계다. 놀이공원 1만원 자유이용권처럼, 각종 연장근로수당이나 식대 등을 무조건 퉁치고 비정규직에게 시간외근무 등을 강요하는 탓이다.

이들의 묵묵한 빗자루질 멈추지 않으리

첫 임금교섭에 참여한 박씨는 다른 대학 노조들처럼 시급 6200원을 받을 수 있을지 지금도 반신반의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 법원 청소노동자에 대해 ‘국가계약에 관한 법령’을 준수하라고 권고하면서, 인건비 기준단가를 최저임금이 아니라 공공기관이 일반적으로 따르는 ‘제조부문 직종별 평균 조사 노임’을 기준으로 책정하라고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공공기관인 카이스트는 시중 노임단가인 7천원을 지급해야 한다.

이처럼 ‘생활임금’은 청소노동자들에게 투쟁의 언어다. 약하다고만 여겨졌던 50~60대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함께 어깨 겯고 싸우면서 임금 인상을 끌어내온 역사가 고스란히 이 단어에 담겨 있다.

청소노동자들의 하루는 일찍 저문다. 박영심씨는 보통 오후 3시가 넘으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출근했던 중랑천 자전거도로를 되짚어간다. 피곤에 지친 다리가 페달을 밟는 속도는 출근길만 못하다. 박순화씨는 오후 3시까지 근무하지만, 요즘은 종종 퇴근시간이 더 늦어지곤 한다. 최저임금을 넘어 생활임금을 따내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수덕씨는 지난 3월14일부터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전날 고려대분회는 역대 최장 기간인 11일간의 파업을 중단하고 교섭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세 사람의 묵묵한 빗자루질은 내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회 밑바닥에 드리워진 어둠은 점점 깊어만 간다. 그래도 새벽은 온다.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들려오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새벽을 알려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뒤흔들면서.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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