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숙(65·가명)씨는 정부가 발표한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2·26 전·월세 대책)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애초에 발표한 원안은 물론 일주일 만에 번복한 수정안도 알았다. 이번 정부 대책으로 직격탄을 맞은 집주인이기 때문이다. 오씨는 두 아파트에서 월 110만원을, 한 상가에서 월 40만원을 받아 연간 1800만원의 월세 수입을 올린다. 10년 전 맞벌이 부부가 은퇴하며 받은 퇴직금을 털어넣어 만들어낸 ‘노후대책’이다. 지난 10년간 임대소득을 신고한 적도, 세금을 낸 적도 없지만 오씨는 할 말이 많았다. “다른 소득이 없으니까 매달 150만원씩 월세를 받아도 생활비는 늘 쪼들린다. 정부가 세금을 걷어간다면 월세를 올릴 수밖에 없다. 세입자도 안됐지만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부동산에 물어보니 분위기가 다 그렇다더라.”
“세입자만 죽이는 거다”“세입자만 죽이는 거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정부의 전·월세 대책을 혹평했다. “‘대출 지원해줄 테니 집을 사라.’ ‘전세 가격이 높아졌으니 대출을 지원해주겠다.’ ‘월세가 늘어나니 세제 지원을 해주겠다.’ 집값을 떠받치는 정책만 정부가 펼치니까 이익은 언제나 집주인 몫이다. 반대로 손해는 세입자가 온통 뒤집어쓴다. 집주인들에게 세금을 걷겠다고 나섰다가 그마저도 포기하지 않았나.”
정부의 전·월세 대책이 거센 후폭풍을 맞아 일주일 만에 주저앉았다. 정부는 지난 2월26일 올해부터 주택 월세의 한 달치 정도를 세금 환급 형태로 되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늘어나면서 서민층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자 내놓은 대책이다. 월세 비중은 2013년 평균 35.4%에서 올 1월 46.7%로 높아졌다.
서민 1천만 명 정도가 이번 전·월세 대책의 ‘사각지대’로 밀려난 반면 고액 소득자는 수혜 대상에 새로 포함됐다. 정부가 세금 혜택 대상을 연소득 5천만원에서 7천만원의 근로자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혜택 대상을 연간 소득 7천만원 이하의 근로자로 정했다. 이들이 연말정산 때 연간 월세 지급액의 10%(최대 75만원)를 세액공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1년간 월세로 600만원을 썼다면 60만원을 돌려받는다는 얘기다. 특히 집주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임대차계약서와 월세 납입 증명서(계좌이체 확인서)만으로도 세액공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이번 전·월세 대책을 정부는 민생 안정과 내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책’이라고 자랑했다. 월세 가구의 세금 부담은 줄어들고 과세 사각지대였던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 추징은 늘릴 수 있으니 말이다.
세법상 집주인은 세를 놓으면 거기서 생긴 수입을 무조건 신고하고 세금을 최고 38%까지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전·월세 임대소득 납세자는 8만2천 명에 그친다. 집을 2채 이상 보유해 임대소득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136만5천 명(2012년 기준)의 고작 6% 수준이다. 월세가 적어 소득 신고를 하지 않는 집주인이 많고 국세청도 소득 파악이 힘들어 과세에 나서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이번 전·월세 대책에 따라 세입자가 세금 혜택을 신청하면 집주인의 소득이 드러나고 정부도 세금을 물리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그래서 정부는 소규모 임대소득자를 위한 대책을 함께 내놓았다. 보유 주택이 2채 이하고 연간 임대소득이 2천만원을 넘지 않을 경우 사업자 등록 의무를 면제하고 단일 세율(14%)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연소득이 높을수록 세금 혜택 많아져어쨌든 집주인 처지에선 세금을 새로 물게 됐으므로 거부반응이 쏟아졌다. 별다른 소득 없이 월세를 받아 살아가는 오지숙씨 같은 은퇴자나 노년층이 특히 들썩였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통적 여당 지지층을 들쑤셔놓은 셈이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기획재정부는 청와대와 협의해 부랴부랴 후속 대책을 만들었다. 지난 3월5일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당초 계획을 대폭 수정한 ‘보완 조처’를 발표했다. 첫째, 월세 소득이 한 해 2천만원 이하인 2주택 보유자에 대해 2년간 과세를 미룬다. 둘째, 2년 뒤인 2016년 이후 과세를 시작할 때도 월세 수입의 60%(현재 45%)는 경비로 인정해 과세 대상 소득에서 뺀다. 그러면 다른 소득이 없고 연간 월세 수입이 1천만원 이하인 2주택 보유자는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게 된다. 셋째, 2주택 보유자의 전세 임대소득에 대해서도 2016년부터 세금을 물린다. 그동안엔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서만 정부가 과세해왔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월세를 전세로 전환하려는 집주인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소득 없이 임대소득만으로 사는 은퇴자 집주인라면 전세보증금 8억7450만원까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또 기준시가 3억원을 넘지 않는 국민주택(85㎡) 규모 이하의 주택도 과세 대상에서 아예 벗어난다.
뿔난 집주인을 달래느라 정부는 정작 저소득 세입자를 외면했다. 세액공제는 태생적으로 세금을 내는 근로소득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소득이 적어서 세금을 내지 않는 저소득층(과세미달자)이나 자영업자는 아예 제외된다. 아무리 월세를 많이 내도 이번 전·월세 대책으로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국세청의 2013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2년 4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소득 2064만원이면 과세미달자로 분류되는데 전체 근로소득자 1577만 명 가운데 516만 명(33%)이나 된다. 또 2013년 우리나라의 자영업자와 무급가족 종사자 수는 687만명이다. 저소득자들이라 월세 세입자가 많지만 세금 혜택은 전혀 받지 못한다. 3월5일 집주인을 위한 보안 조처를 발표할 때 저소득 세입자 대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정부는 “올해 10월부터 주거바우처가 도입돼 저소득층 97만 가구를 지원하게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주거바우처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하던 주거급여의 지급 대상을 73만 가구에서 97만 가구로 늘리는 정책을 말한다. 부동산 정책과는 거리가 있는 복지정책인 셈이다.
서민 1천만 명 정도가 이번 전·월세 대책의 ‘사각지대’로 밀려난 반면 고액 소득자는 수혜 대상에 새로 포함됐다. 정부가 세금 혜택 대상을 연소득 5천만원 이하에서 7천만원 이하의 근로자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1년에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월세 금액 한도도 500만원에서 750만원으로 높였다. 그 결과 연소득 5천만원이 넘는 근로소득자 300만 명 가운데 절반(150만 명)이 추가로 편입됐다. 세금 혜택도 연소득이 높을수록 많아진다.
정액 지원하는 주거급여 정책으로 가야또 다른 문제는 외벌이 가구가 맞벌이 가구보다 불리하다는 점이다. 월세 세액공제 대상을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인별로 정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외벌이 가장이 연봉 7천만원이 넘을 경우 월세를 살아도 세금 혜택이 전혀 없다. 하지만 맞벌이 가구에서 남편이 연봉 1억원, 아내가 연봉 6천만원이라면 월세를 아내 명의로 해서 세액공제 헤택을 받을 수 있다. 아내의 연소득이 7천만원 이하이기 때문이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이번 전·월세 대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월세의 10%를 세금에서 깎아주는 것보다는 기초연금처럼 정액으로 지원하는 주거급여 정책이 더 낫다. 또 월세 세입자라 하더라도 소득이 상위 20%에 해당하는 고소득층은 수혜 대상에서 빼고 반대로 저소득층을 더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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