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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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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부라도 배워라

소득 주도 성장 외면하고 규제 완화, 부동산 활성화라는 낡은 패러다임에 매몰된 정부
일본 재계에 임금 인상 주문한 아베
등록 2014-03-08 14:45 수정 2020-05-03 04:27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핵심은 규제 완화다. 규제를 완화하면 기업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창출돼 가계소득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핵심은 규제 완화다. 규제를 완화하면 기업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창출돼 가계소득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청와대사진기자단

핵심은 규제 완화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렇다. 공공기관 개혁과 창조경제 등 여러 방안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했지만 관통하는 열쇳말은 결국 규제 완화였다. 박 대통령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투자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과정 하나하나를 직접 챙겨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내수 활성화하려면 소비 수요 증가해야

구체적인 방안을 살펴보자. 첫째,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선택적으로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한다. 둘째, 규제를 새로 만들거나 강화하더라도 반드시 그만큼의 기존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규제총량제’를 신설한다. 셋째, 규제 존속 기간이 끝나는 즉시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하는 ‘자동효력상실제’를 도입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규제가 타당한지 재검토해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재검토형 일몰제’보다 강력한 규제 철폐 정책이다.

이러한 규제 완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면 기업이 투자를 확대해 일자리가 늘어나고 가계소득이 증가할 것이라고 박근혜 정부는 설명한다. ‘수출 주도형 경제’에서 ‘수출·내수 균형 경제’로 우리나라 경제의 진로를 바꾸면서 ‘규제 완화=투자 촉진’이라는 낡은 전략을 다시 꺼내들었다. 주요 경제단체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명박 정부도 6년 전 ‘친기업’을 내세워 대대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펼쳤다. 재벌의 무분별한 경제력 확장을 예방하는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고 금융기관의 사금고화를 제한하는 금산 분리 규제도 완화했다. 기업의 반칙을 처벌할 ‘사후적 제재’가 없는 상태에서 반칙을 예방할 ‘사전적 규제’까지 없어지자 약육강식 시대가 도래했다. 양극화, 대기업의 하도급 횡포, 골목상권 침해 등이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기업은 정부의 규제 완화에도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막대한 자금을 금고에 차곡차곡 쌓아둘 뿐이었다. 10대 그룹의 사내 유보금은 2008년 235조원에서 2012년 405조원으로 1.5배 늘었다. 올해 정부 예산 규모(357조7천억원)보다 많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렇게 비판했다. “낙수 효과 정책은 이미 실패했고 기업 투자가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입증됐다. 규제 완화는 대기업으로의 경제 집중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려면 국내 구매력, 다시 말해 소비 수요가 증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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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는 내수시장을 이끄는 또 다른 바퀴다. 국내 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다른 부문보다 크다. 소비의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0.817, 취업 유발계수는 19명으로 투자(0.773, 16.3명)나 수출(0.561, 9.8명)보다 높다. 소비가 10억원 증가하면 8억2천만원의 부가가치와 19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뜻이다(현대경제연구원 ‘소득계층별 소비여력과 시사점’).

하지만 지난 10년간 소득은 제자리걸음이고 부채만 증가해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나오던 날(2월25일),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현재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1천조원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2004년 500조원에 근접했던 가계부채가 9년 만에 2배로 불어난 것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2008년 149.7%에서 2012년 163.8%로 상승했다.

오직 부동산 경기 활활 타게 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2017년까지 가계부채 비율을 지금보다 5%포인트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방법은 빚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가계부채 구조개선 촉진 방안) 첫째, 변동금리·일시상환이 만연한 가계대출을 고정금리·분할상환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둘째,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올해 장기 모기지 공급액을 지난해보다 4조원 늘린 29조원으로 책정했다. 셋째, 영세 사업자의 연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10% 수준으로 낮추는 ‘국민행복기금 바꿔드림론’도 늘린다.


소비를 살려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가계소득, 즉 임금을 직접 끌어올리는 것이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다. 따져보면 소비 위축의 가장 큰 원인은 지난 10년간 소득이 늘지 않은 데 있다.


딱 거기까지다. 가계부채의 주요 원인인 ‘돈 빌려 집 사라’는 부동산 정책은 굳건히 고수했다. 78주 연속 오르고 있는 전셋값을 잡아야 한다는 명목에서다. 예를 들어보자. 정부는 4월부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전세보증금 4억원 이상의 주택에 대해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서를 발급하지 않기로 했다. 지방은 2억원 이하 전세 주택에 대해 주택금융공사 보증서가 발급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수도권과 지방에 관계없이 6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서는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서가 발급됐다.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서가 없으면 대출금리가 최고 2%포인트(신용대출은 최고 7.2% 안팎)가량 올라간다. 그러면 차라리 집을 사서 4% 안팎의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게 유리하다. 고액 전세 세입자에게 주택담보대출을 좀더 받아서 집을 사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셈이다.

부동산 시장의 마지막 규제로 꼽히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에도 손댈 작정이다. LTV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을 때 집값의 얼마까지 담보로 인정해주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LTV 한도가 50%고 집값이 1억원이라면 5천만원까지만 빌릴 수 있다. 현재 적용되는 비율은 50~70%다. DTI는 매년 갚아야 하는 대출 원금과 이자가 연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수도권에 한해 60~70%로 묶고 있다. 예를 들어 연소득이 1억원이고 갚아야 할 원리금이 5천만원이면 DTI는 50%가 된다. 둘 다 부동산 가격 폭등기인 2006년 도입됐다. 대출 금액을 제한해 주택시장에 풀리는 돈을 줄여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서였다.

2010년 이후 아파트값이 떨어졌으니 LTV·DTI 규제에 손질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중에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대한 세부 계획으로 “LTV·DTI의 합리적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LTV·DTI 규제를 완화하면 당연히 가계부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활활 타오르게 하겠다는 생각뿐이다. 일단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빚지고서라도 집을 사려 할 테니까. 2012년 말 가계부채 비율이 급증한 것도 정부의 부동산 경기부양책 때문이었다. 불행히도 경기 정책과 서민 보호 정책이 맞부딪칠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은 경기 대책이다.”

소비 위축시키는 월세 장려하는 정부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추세에도 정부가 기름을 부었다. 연봉 7천만원을 받는 직장인의 월세 한 달치(최대 75만원)를 세금으로 돌려주겠다고 나선 것이다(주택임대차 시장 선진화 방안). 오르는 전셋값을 잡으려면 전세 수요를 월세로 더 전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월세 비중은 2012년 35.4%에서 올 1월 46.7%로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해 말 현재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1천조원을 돌파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돈 빌려 집 사라’는 부동산 정책을 굳건히 고수하고 있다. 2013년 7월 국회 가계부채 정책 청문회에 출석한 현오석 경제부총리(왼쪽 세 번째)의 모습.한겨레 이정우

지난해 말 현재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1천조원을 돌파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돈 빌려 집 사라’는 부동산 정책을 굳건히 고수하고 있다. 2013년 7월 국회 가계부채 정책 청문회에 출석한 현오석 경제부총리(왼쪽 세 번째)의 모습.한겨레 이정우

하지만 집주인이 정부의 월세 정책에 협조적일지 의문이다. 세입자가 세액공제를 신청하면 그간 내지 않았던 임대사업 소득세를 집주인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동의가 없어도 세입자가 신청할 수 있다고 정부는 밝혔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집주인이 월세계약서를 쓸 때 세금 혜택을 받지 않겠다는 특약을 세입자에게 요구할 수도 있고, 추가로 내는 소득세를 얹어 월셋값을 올릴 수도 있다. 따라서 월세 지원 정책으로 세입자의 추가 부담이 더 늘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렇지 않더라도 월세는 전세보다 주거비 부담이 늘어서 소비를 위축시킨다. 2010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를 보면, 전세 가구의 연평균 주거비는 180만원이지만 월세 가구는 312만원에 이른다.

그렇다면 소비를 살려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가계소득, 즉 임금을 직접 끌어올리는 것이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다. 따져보면 소비 위축의 가장 큰 원인은 지난 10년간 소득이 늘지 않은 데 있다.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000년 69%에서 2012년 62%로 줄었다. 반대로 기업소득 비중은 17%에서 23%로 커졌다. 가계소득이 절댓값으로는 늘고 있지만 경제성장률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의미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가계소득과 소비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소득층은 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소득이 높아지면 곧바로 소비가 늘어난다. 의식주 해결을 위해 늘릴 수밖에 없다. 반면 고소득층은 돈을 잘 안 쓴다. 총량으로는 많아도 소비성향이 낮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사회 안전망 구축처럼 소득분배 정책이 잘 이뤄지면 (고소득으로 흐르던 소득이 저소득으로도 흘러들면서) 소비가 전반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 곳곳에서 최고지도자들이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월15일(현지시각) 주례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지난 4년간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도 850만 개나 늘었지만 평균임금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며 미 의회에 노동자 최저임금 인상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현재 미의회에서는 최저임금을 현행 7.25달러(약 7600원)에서 10.10달러(약 1만원)로 올리는 법안을 심의 중이다. 미 경제정책연구소는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의 37%에 그쳐 실질구매력이 1953~83년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캘리포니아·뉴욕·뉴저지 등이 연방정부에 앞서 최저임금을 올렸다.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한 경제정책이다.

경제도 날마다 뒷걸음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아베 신조 총리가 나서 재계에 임금 인상을 요구해왔다. ‘임금 인상→소비 증가→내수 회복→기업 실적 회복→경기 회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아베노믹스)가 정착하려면 주요 기업들의 임금 인상이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의 대표 제조업체인 도요타자동차와 히타치제작소가 결국 6년 만에 기본급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집권한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2년차에 규제 완화와 부동산 활성화라는 낡은 패러다임으로 돌아갔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철저히 외면한 채 체납 임금 성격이 강한 통상임금마저 떼먹을 태세로 말이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도 날마다 뒷걸음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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