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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말하지만, 처음에는 ‘사람책’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책과 마주 앉아 마음속 편견·선입견·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휴먼라이브러리의 지향점이라지만, 기자를 향한 편견이 뭐 어디 한두 가지랴. ‘국민 밉상’으로 손꼽히는 기자가 사람책이 돼봤자 괜히 상처받는 대화나 주고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안은 채, 사람책 책꽂이로 향했다.
‘매우 똑똑하고 거만한 사람일 것’행사 한 달 전, 희망제작소 휴먼라이브러리 관계자를 만나 사람책의 제목과 간략한 목차를 정했다. ‘김 기자의 소심한 바로잡습니다’라고 제목을 정했다. 기자 사람책의 초청 이유는 이랬다. “흔히 기자를 떠올릴 때 그려지는 분야의 기사를 쓰고 있다.” 행사 전 희망제작소가 일반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기자는 피도 눈물도 없고, 공공기관·기업에서 주는 정보로 대충 기사를 쓰고, 이들과 나눈 대화는 사생활 보장이 안 된다” 등의 다양한 편견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마디로, ‘그럴 것 같은’ 기자라는 뜻이다.
사실 기자는 질문을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질문을 받은 경험이 별로 없다. 그러나 2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나비정원 행사장에서는 그랬던 기자의 ‘일반적인 팔자’가 뒤바뀌었다. 6번 대출대로 걸어나온 기자 사람책은 뚫어져라 쳐다보는 대출자의 시선을 맞으며 어색하게 땀만 흘려댔다.
<i>쑥스러운 듯 건네는 사람책의 인사에 테이블의 어색한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기자라면 보통 어떤 사람이 연상될까? 인간 군상의 집약체인 텔레비전 드라마만 봐도 기자는 날카롭고 지적인 사람으로 묘사되는 게 보통이다. 나 역시 사람책 소개 책자의 사진만 보고 ‘매우 똑똑하고 거만한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대화 내내 “제가 이런 대박 사건을 단독 취재했는데 말이죠”라는 식의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것처럼 말이다. </i>김혜수(직장인)
“어떤가요? 저, 기자스럽게 생겼나요?” 전화 통화로 대화를 한 뒤 직접 취재원을 만나는 경우, 대부분 “덩치가 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생각보다 나이도 어려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던 경험을 털어놨다. 곱씹어보면 기자의 딱딱하고 고압적인 태도가 내비쳐진다는 뜻이다. 기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됐다. 곧이어 등 한국 영화 속에서 비열하거나 별로인 인물로 그려지는 기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격하게’ 동의하는 대출자들의 반응을 보며 편견 깨기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파고들었다.
사람책의 대화는 자연스레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기까지의 자서전이 돼가고 있었다. 대학 새내기 때 기자라는 직업을 동경했던 기억을 끄집어냈고, 실제 기자가 된 뒤 실망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로 살을 붙였다. “대학생 때는 기자라는 직업이 선한 에너지로만 가득하다고 믿었죠. 그런데 실제로 보니 꼭 그렇지는 않더군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대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야 할지 갈등하게 됐다. 그래도 ‘기자=냉철한 이성’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남겨야 하는 게 아닐까. 문득 덴마크·영국 등에서 사람책 참가자들에게 알렸다는 주의사항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하거나 특정 캐릭터를 만들어내려 하지 마라. 독자들은 금방 알아차리게 될 것이고 당신은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래, 사람책의 신뢰를 위해 내 민낯을 보여주자. 적어온 글을 덮었다. 곧 말을 더듬고, 대화의 주제도 횡설수설 방황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화려한 직업은 아니네요”<i>요즘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데, 사실을 전달하는 직업으로서 기자가 어떻게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지 사람책에게 그 고충을 직접 듣고 싶었다. 예전에도 기자를 만나보긴 했다. 흔히 우파·좌파라고 말하는데, 그런 성향이 강한 기자를 만나서 보다 중립적인 기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i> 김동광(아동복지센터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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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3부(입법·사법·행정)와 견준다는 의미에서 쓰는 ‘권력의 제4부’라는 단어와 인터넷 등에서 ‘기자+쓰레기’를 뜻하는 ‘기레기’라는 말을 꺼내봤다. 자연스레 대화는 최근 언론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한 대출자가 이렇게 말했다. “요즘에는 기사를 봐도 진실을 모르겠다.” 입맛대로 사실을 가공해 쓰는 기사가 많은 탓에 기자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모든 기사에 주제를 정하고 규정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전체 사실 가운데 의도적으로 특정 부분만 부각해서 쓰는 경우도 있고요.” 처음 의도한 바와 다르게 기사를 썼던 경험, 오보를 내 항의를 받았던 경험도 털어놓았다. 마치 간증하듯이 말이다.
<i>“특정 언론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기보단 여러 기사를 읽고 판단해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지만 에 항상 응원을 보내고 있던 나는 순간 뜨끔했다. 사람책의 말을 들으며 믿음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사 조직에 몸담고 있는 당사자가 한 말이라 더 와닿았다. ‘기레기’라는 말이 생기게 된 원인에는 기자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기자의 소신을 넘어 시스템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이를 인지해야 한다는 말도 이어졌다. </i>김휘연(대학생)
“기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화려한 직업은 아닌 것 같네요.” 질문과 답변이 오가던 중 한 대출자가 말했다. “그 ‘화려함’이라는 단어 안에도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게 아닐까요.” 기자의 화려함이 정치·경제 권력과 가깝게 지낸다는 의미로 해석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자 “그렇다면 언론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곧이어 다른 대출자가 “기자는 천직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기자가 하는 일 자체가 선택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냐는 뜻이었다. “오히려 자기 확신이 없이 접근하는 기자가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기자라는 직업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것처럼, 경험을 쌓으면서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책 읽고 내 편견 깨지지 않았다”<i>그 대답에 나는 반은 고개를 끄덕이고 반은 고개를 저었다. 천부적인 작문 능력, 인터뷰이를 사로잡는 능청스러운 매력을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람책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자가 된 것처럼, 오히려 기자는 천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7년차 기자인 사람책에게 기자 생활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는 7년차 결혼 생활 중인 남편처럼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눈동자는 애정으로 가득해 보였다. 세상 어디에 7년이란 시간 동안 애정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야말로 기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천직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i>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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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동안 종이 울렸다. 40분으로 정해둔 대출 시간이 곧 끝난다는 알림이었다. 사람책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대출자들과 편견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에는 대출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러나 사람책과 마주 앉은 이들은 활자가 아닌 눈빛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경험을 얻었다. 그렇다면 기자 사람책은 편견의 딱지를 떼어내는 데 조금이나마 역할을 했을까.
<i>기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선입견은 “기자의 한마디로 사람 하나 쓰러뜨릴 수 있다”였다. 한 번 기사를 올리면 마구 몰아치니까. 사람책 제목처럼 편집국장이 편파적인 기사를 주문했을 때 기자가 현장에서 가치중립성을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 그걸 지키기 위해 어떻게 소심하게 바로잡는지를 듣고 싶었다. 독자 입장에서는 기자의 사실 전달을 진실로 믿으니까. 그러나 결국 사람책을 읽고 내 편견은 깨지지 않았다.” </i>김동광
<i>기자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고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잘 몰라 궁금해서 대출을 했다. 기자에 대한 고정관념은, 말을 잘하고 따지듯이 물어보고 똑똑하고 그런 거였다. 사람책을 만나고 나서 변화가 생겼다. 기자도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이구나. 그 생활에서 스트레스도 받고 고민도 하는구나. 좀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i>박○○(시민단체 활동가)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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