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정부가 내놓은 ‘보건의료 서비스 투자 활성화 대책’의 핵심은 병원의 영리 자 회사 전면 허용이다. 자회사의 부대사업 허용 범위를 의료 행위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분 야까지 확장하겠다는 얘기다. 보건의료 단체장들은 지난해 1월14일 국회 정론관에서 의 료 영리화 저지, 국민 건강권 수호를 약속하며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김경호
천성숙(65)씨는 2012년 12월 눈길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다쳤다. 척추전문병원에선 요추 압박골절이라고 진단했다. 등골뼈를 시술로 붙이는데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돼 160만원을 내라고 했다. 문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80만원짜리 ‘척추 주사’였다. “척추를 청소하는 주사라며 ‘맞는 게 좋다’고 병원이 권하더라. 왜 맞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환자가 무엇을 더 따지겠나.” 시술이 끝나자 이번엔 ‘허리 보조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의사 진료가 끝나자 곧바로 의료기기 판매자가 입원실로 들이닥쳤다. 척추병원 안에 의료기기 판매업체가 들어와 있었다. 판매자는 허리 치수를 재더니 40만원을 불렀다. “플라스틱에 찍찍이가 몇 개 붙은 조악한 의료기기였다. 병원에선 정말 부르는 게 값이더라. 환자가 정보를 얻을 방법이 턱없이 부족하니까 말이다.”
지난해 12월 내놓은 정부의 ‘보건의료 서비스 투자활성화 대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병원이 영리 자회사를 만들어 돈을 벌도록 전면 허용하겠다는 얘기다. 현재도 병원은 장례식장·주차시설 등 ‘비의료사업’으로 수익을 올린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부대사업 허용 범위를 의료 행위와 직간접으로 연관된 분야까지 확장한다. 정부가 밝힌 이유는 이렇다. “현재 병원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부대사업이 지나치게 제한돼 있어 의료 연관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영리 자회사를 통해 수익이 늘어나면 병원 의료업은 개선되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영리 자회사의 수익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되물었다. “병원의 수익은 결국 환자가 내는 의료비다. 수익을 올리려고 병원은 과잉 진료를 일삼고 그만큼 환자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정책연구원 정재철 연구위원은 “부대사업 서비스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똑같이 사용해야 한다. 가난하면 상대적으로 더 고통을 겪어야 하는 역진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병원의 영리 자회사가 판매하는 의료기기 등을 환자가 거부하면 되지 않을까? 앞서 천씨의 사례처럼 의료서비스의 특성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케네스 애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1963년 보건경제학 논문에서 의료시장의 특성을 ‘가격에 대한 무감각과 가격경쟁의 결여’로 표현했다. 정보가 부족한 환자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서비스 공급자인 의사가 서비스의 양과 질을 사실상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의료시장에선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얘기다. 영리 자회사의 상품을 환자가 사용하도록 의사가 얼마든지 ‘유도’할 수 있다.
2005년 국내에 도입된 ‘다빈치 로봇 수술’ 사례를 보자. 로봇 수술이란 의사의 손 대신 로봇이 환자의 뱃속에 들어가 수술 부위를 절제·봉합하는 등의 시술을 하는 것을 말한다. 2005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처음 도입한 뒤 큰 성공을 거뒀다. 30억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를 대형 병원들이 앞다퉈 사들여 2010년까지 33대나 수입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다빈치 로봇 수술 기기를 갖춘 나라가 됐다.
병원은 고가 기기의 원가를 회수하기 위해 환자들을 유인했다. 로봇 수술은 일반 수술보다 6~10배나 비싸다. 2010년까지 수술 건수가 7천 건이 넘었다는 추정치가 나왔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이견이 많았다. 2011년 6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로봇 수술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내놓았다. 장기 생존율이나 재발률, 합병증 발생률 등에서 일반 개복 수술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지 않다는 게 결론이었다. 하지만 병원이 짭짤한 수익을 충분히 올린 뒤였다.
우리나라의 약제비(약품비+조제비)가 높고 의약품 리베이트가 뿌리 뽑히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약효가 같을 경우 더 싼 의약품을 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비싼 약품이 선택된다. 정부가 정해놓은 ‘상한금액’에 맞춘 의약품을 의사가 처방하는 대신 리베이트를 따로 챙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약제비는 2011년 16조3천억원으로 전체 건강보험 총진료비의 35.5%를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약품비 비중(14.5%)의 2배가 넘는다.
병원이 영리 자회사의 의약품을 판매하게 되면 과잉 진료는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사람을 잘 고치는 의사가 존경받았다. 이제는 사업 수완이 좋아 돈을 잘 버는 의사를 병원이 치켜세운다. 영리 자회사까지 생기면 모든 의사가 매출과 실적에 쫓겨 본말이 전도될 것이다.” 제약회사 영업직원의 말이다.
영리사업으로 판매될 의료기기나 화장품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환자들은 병원에 가서 써야 할 돈이 크게 늘었는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니까 민간의료보험에 더 의존하게 된다. 권기헌 성균관대 교수는 논문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민간의료보험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진료비 부담이 증가하는데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지 않으면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급격하게 지속 팽창한다. 합리적인 개인이라면 진료비 부담을 대비할 자구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2011년 현재 민간의료보험 시장 규모는 약 17조원으로 건강보험의 보험료 수입(32조원)의 53% 수준이다.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를 신규 가입자들은 두 가지로 꼽았다(2008~2008년 한국의료패널 조사). ‘질병·사고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46.31%)와 ‘건강보험 보장이 부족해서’(35.48%). 실제로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성은 OECD 평균(80%)을 한참 밑도는 60% 안팎이다(예를 들면 의료비가 100만 원이 나오면 60만원은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고 40만원은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 반면 의료비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중 1위를 달린다. “의료비가 증가하면 건강보험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초래한다. 공공의료 보장성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다. 의료보장률이 50% 미만으로 떨어지면 당연지정제(병원은 건강보험 환자를 거부할 수 없다)가 지켜져도 건강보험이 유명무실해진다.” 우석균 정책실장이 전망하는 암울한 미래이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영리 자회사가 허용되면 의료비 부담이 늘고 건강보험이 흔들리는 건 분명하다. 반면 병원 의료업이 개선되고 일자리가 생길지는 미지수다. 손실은 현금 지출처럼 명확한데 이익은 어음처럼 불명확하다. 그것도 부도어음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부의 보건의료 투자 활성화 정책으로 누가 수혜를 입을까. 손가락은 ‘삼성’을 가리킨다. 삼성그룹은 ‘의산복합체’의 진용을 갖췄기 때문이다. 의산복합체란 의사, 병원, 의과대학과 보험회사, 제약업체, 의료기기 공급업자, 기타 영리회사의 연합체를 말한다. 엄청난 정치·경제적 힘을 획득해 공공정책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군산복합체와 일맥상통한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은경 연구원은 “헬스케어 산업이라고도 총칭하는데 재벌집단의 미래 먹을거리로 부상 중이다. 삼성이 한발 앞서 진출했다”고 설명했다.
2010년 5월 삼성은 미래에 그룹을 먹여살릴 5개 신사업 분야를 선정하고 그 분야에 2020년까지 총 23조3천억원을 투자해 50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신성장동력 사업’은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였다. 의료 분야가 두 가지나 된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10년 안에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에서 선두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삼성이 올해 처음 투자한 분야는 바이오 사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6천억원을 투자해 인천 송도에 두 번째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삼성은 이미 국내 최고 수준의 대형 병원과 생명보험 회사도 가지고 있다. 기존 사업과 신성장 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 장벽을 허물며 정부도 지원군으로 나섰다. 이은경 연구원은 “정부안(투자 활성화 대책)을 보면 의료기기·의약품을 연구하는 데 의료법인의 수익금을 전부 쓸 수 있다. 세제 혜택도 받는다. 의료기기나 의약품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크게 단축한다. 나아가 원격의료 등 헬스케어 인프라를 까는 데 정부가 세금을 쓰겠다고 나섰다”고 말했다.
삼성과 정부가 손발이 척척 맞는 것은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다. 2007년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의료서비스 산업 고도화의 과제’ 보고서를 보면 ‘영리의료법인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과제로 꼽았다. 이듬해 기획재정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 비슷한 대목이 등장한다. ‘의료서비스 규제 완화’를 위한 세부 실천 방안 두 가지를 보면,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다양화를 위해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검토”하고 “의료 분야 투자 확대와 다양한 의료서비스 확충을 위한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이러한 정책 변화의 혜택은 물론 삼성으로 향한다. 우리나라의 첫 영리병원은 삼성이 지분을 가진 인천 송도의 국제병원이고, 민간의료보험 업계의 선두주자는 삼성생명이니까.
보건의료 분야가 정말로 신성장동력일지도 모른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1년 9월 내놓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를 보면, 정부가 폭넓게 보건의료 규제를 완화할 경우 한 해 26조7천억원의 생산액과 10조5천억원의 부가가치액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9년 한국은행도 영리병원의 경제적 효과를 한 해 24조원으로 어림잡았다. 하지만 타일러 코언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경제학)는 에서 “수많은 연구는 보건의료 분야에 들인 비용이 실제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표시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보건의료에 많은 돈을 썼지만 국민을 더 건강하게 만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1인당 보건의료비는 6931달러로 일본인(2580달러)의 3배, 칠레인(772달러)의 10배에 이르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미국인의 수명은 77.9살로 일본인(82.6살)이나 칠레인(78.6살)보다 짧다. 김창엽 교수가 말한다. “의료 상업화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바닥을 향한 경주’를 피할 수 없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전재수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현금 4천, 까르띠에·불가리 시계” [단독] 전재수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현금 4천, 까르띠에·불가리 시계”](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0/53_17653253287748_20250911503391.jpg)
[단독] 전재수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현금 4천, 까르띠에·불가리 시계”
![[단독] 윤영호 “전재수, ‘복돈’이라 하니 받아가더라…통일교 현안 청탁 목적” [단독] 윤영호 “전재수, ‘복돈’이라 하니 받아가더라…통일교 현안 청탁 목적”](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0/53_17653564336892_20251210503477.jpg)
[단독] 윤영호 “전재수, ‘복돈’이라 하니 받아가더라…통일교 현안 청탁 목적”
![[단독] “하이브 소유 피알회사가 민희진 ‘역바이럴’했다”…미국서 피소 [단독] “하이브 소유 피알회사가 민희진 ‘역바이럴’했다”…미국서 피소](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0/53_17653630444751_20251210503717.jpg)
[단독] “하이브 소유 피알회사가 민희진 ‘역바이럴’했다”…미국서 피소

‘친윤’ 인요한 의원직 사퇴…“희생 없이 변화 없어”
![그래, 다 까자! [그림판] 그래, 다 까자! [그림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5/1210/20251210503747.jpg)
그래, 다 까자! [그림판]
![[단독] “유족을 우리 편으로”…쿠팡의 대외비 ‘산재 대응 문건’ [단독] “유족을 우리 편으로”…쿠팡의 대외비 ‘산재 대응 문건’](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0/53_17653665410729_20251210503779.jpg)
[단독] “유족을 우리 편으로”…쿠팡의 대외비 ‘산재 대응 문건’
![통일교 ‘지뢰밭’ [그림판] 통일교 ‘지뢰밭’ [그림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9/53_17652774471853_20251209503585.jpg)
통일교 ‘지뢰밭’ [그림판]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정동영 장관 “11일 입장문 낼 것”

서울교육청 “2033학년도 내신·수능 절대평가…2040 수능 폐지”

쿠팡 새벽배송 직접 뛴 기자…300층 오르내리기, 머리 찧는 통증이 왔다
![[단독] ‘세운4구역 설계 수의계약’ 희림 “시간 아끼려고”… 법 절차 생략 시인 [단독] ‘세운4구역 설계 수의계약’ 희림 “시간 아끼려고”… 법 절차 생략 시인](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5/1202/2025120250367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