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는 청년 문제의 원인이자 결과다. 청년층이 구직 활동에 오랫동안 매달리는 것도, 그마저 포기하는 것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대기업이 성장을 거듭할 때도 신규 채용에 인색했다. 최근 경기가 침체되면서 좋은 일자리가 더욱 줄어들었고 노동시장을 떠나는 청년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 가운데 취업이나 구직 활동, 가사 등 특별한 일 없이 말 그대로 ‘쉬는 20대’가 34만6천 명(2013년 9월)이나 된다. 전년 같은 기간(2012년 9월)보다 15.5% 늘어나 사상 최고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눈높이를 낮춘다고 해결되나눈높이를 낮추라고 기성세대는 조언한다. 하지만 청년층이 대기업 정규직 취업에 목매는 이유는 눈이 높아서가 아니다.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성 탓이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가 낸 을 보자. 그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30명 이상 중견·대기업의 정규 노동자를 기업 내부의 노동시장에 속한 사람으로, 10명 미만 기업에 고용된 정규직과 전체 비정규 노동자를 외부 노동시장에 속한 사람으로 나눴다. 내부 노동시장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81만원인 데 비해, 외부 노동시장의 임금은 145만원으로 절반에 불과하다. 평균 근속기간 역시 8.9년과 2.5년으로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사회보험 적용 비율과 근로기준법 적용 비율도 격차가 크다. 무엇보다 내부 노동시장 규모는 전체 노동자의 32%(2010년 기준)에 그친다. 첫발을 대기업 정규직에 내딛지 못하면 비정규직으로 평생 맴돌며 불안한 삶을 견뎌야 한다는 얘기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김수현 연구원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로 가는 사다리가 되지 못한다. 그런 좋지 않은 일자리에 계속 머물기보다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는 스펙을 쌓는 길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철저히 외면했다. 2011년 11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완전고용 상태에 도달했다”며 “고용 대박”이라고 말했다. 당시 실업률이 2.9%로 9년 만에 3% 이하로 떨어졌다. 속 빈 강정이다. 우리나라 실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2위를 다툴 정도로 낮지만 고용률은 60% 안팎으로 중·하위권에 머문다. 그 이유는 실업률 지표에서 빠지는 ‘비경제활동인구’가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인구 실업률 지표는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라 설문조사로 작성된다. 문제는 취업준비생이 굳이 구직 활동을 한다고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밝혀도 실업수당 등 사회적 메리트가 별로 없어서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나쁜 일자리’를 만드는 데 세금을 마구 썼다. 청년창업지원과 청년인턴제가 그것이다. 몇 개월, 몇 년 뒤면 사라질 일자리지만 단기적 고용지표에는 반짝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대신 좋은 일자리 확대는 대기업에 읍소해왔다. 정부가 대기업을 지원하면 대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늘릴 거라는 ‘낙수 효과’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결과는 허망하다. 대기업이 선심 쓰듯 신규 고용 목표치를 높게 발표하지만 나중에는 모르쇠로 돌변한다. 이런 대기업을 정부가 제재할 방법도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우리가 기업으로부터 고용이나 투자 계획을 받을 때 개별 기업의 규모는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있다. 기업의 내부 정보라 기업 쪽에서 민감해하기 때문이다. 연말에 (고용과 투자 계획 대비) 실적을 조사해 발표하고는 있지만, 개별 기업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점검하기는 불가능하다.”
고용률 70% 로드맵, 방향은 긍정적이지만…이명박 정부에 비해 다행히 박근혜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다소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업률이 낮다고 자화자찬하지 않고 낮은 고용률을 끌어올리겠다고 나섰으니 말이다. ‘고용률 70% 로드맵’이 그렇다. 김민수 기획팀장은 “방향은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문제는 각론이다.
2017년까지 238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그중 93만 개가 ‘시간제 일자리’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를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차별이 없으며 △4대 보험이 보장된 좋은 일자리라고 설명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간제 일자리는 임금수준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하며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나쁜 일자리의 전형이다.
통계청 자료가 그렇게 말한다. 시간제 일자리의 시간당 임금은 2006년 전일제 노동자의 62.3%에서 2012년 50.7%로 떨어졌다. 정규직 시간당 임금은 연평균 6%(9500원→1만3400원) 증가했지만 시간제 임금은 2.4%(5900원→6800원) 늘어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공적연금, 고용보험 가입 비율은 10%대에 머문다. 퇴직금, 상여금 지급 비율도 마찬가지다. 시간제 일자리를 노동자가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시간제 일자리가 자발적인가, 비자발적인가’라는 질문에서 응답자 56%가 ‘비자발적’이라고 말했다. OECD 국가의 평균치(13.1%)보다 4.3배나 많은 수치다.
현대경제연구소 이준협 연구위원은 “시간제 일자리 시장은 저부가가치 기업과 저숙련 취업 애로 계층으로 구성된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할 여건이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김수현 연구원은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이 전체 노동시장의 질적 수준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복지 서비스 부문 등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노동정책이다. 시간제 일자리처럼 즉각적인 고용지표에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지만 빈곤·불평등·양극화 등 사회문제를 완화하고 내수 중심의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장기적으로 이끌 수 있다.”
청년 고용 유도할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청년고용할당제는 좋은 일자리를 확대할 정책이지만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이다. 공공기관은 내년부터 매년 지원 정원의 3% 이상을 34살 이하 직원으로 신규 채용해야 한다. 청년 고용은 당초 권고 사항이었지만 지난 6월 의무고용으로 바뀌었다. 이 제도는 2016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제도를 창안한 벨기에에서는 공공기관은 물론 공기업, 대기업에도 청년고용할당제를 도입했다. 방법은 인센티브를 주거나 규제를 강화해 기업의 참여를 유도한 것이다. 그 결과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겼다. 김수현 연구원은 “투자를 늘리면 법인세를 깎아주는 세금정책을 신규 고용을 늘리면 혜택을 주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또 연령을 기준으로 고용을 나누기보다는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청년을 끌어내는 데 중점을 더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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