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을 찾기 위해 여야 열람위원들과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들이 지난 7월21일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다.사진공동취재단
새누리당이 7월26일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한 정쟁의 중단을 공식 선언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인 승리요, 민주당과 야권 전체의 완전한 패배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제부터 새누리당은 NLL과 관련한 일체의 정쟁을 중단하겠다. 검찰 수사에 모든 것을 맡기고 민생 현장으로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소속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이 거론한 ‘육성 파일’의 공개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전날 새누리당은 대화록 실종 사건과 관련된 인사 전원을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단독으로 고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될 수밖에 없는 국가정보원의 댓글 공작, 정치 개입, NLL 대화록 유출과 정치적 활용 등의 문제와 달리 대화록의 ‘실종’은 박 대통령이 비교적 자유로운 이슈다. 홍지만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문재인 등 참여정부의 기록물 담당자, 이명박 정부의 국가기록원 담당자 등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철저히 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NLL 포기’ 발언이 있었다면 정계 은퇴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던 문재인 의원 역시 7월23일 “대화록이 없더라도 정상회담 전후의 기록들만으로도 진실을 규명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NLL 논란을 끝내야 한다”고 밝힌 만큼 ‘대화록 정국’은 사실상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단독으로 검찰 고발을 강행한 새누리당과 달리 야권에선 특검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추진할 동력은 없어 보인다.
백령도 가려다 평택 2함대 간 민주 지도부논란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새누리당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원문 공개’를 주도함으로써 결정적 패착을 저지른 민주당은 여전히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7월26일 서해 평택에 위치한 2함대를 방문했다. 백령도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기상 악화로 급히 변경된 일정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우리 민주당이 집권했던 당시에 용감한 젊은 해군들의 피와 죽음으로 NLL을 지켜냈다. 지금도, 미래도 NLL을 사수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도 “(새누리당은) NLL 논란으로 쓸데없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NLL을 오히려 흔드는 못난 짓을 그만두기 바란다. NLL을 사수하고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자는 제안을 넘어 NLL 논란의 영구 종식을 선언하자”고 했다. 여야 공동의 ‘NLL 수호 선언’과 ‘논쟁의 종식’은 새누리당 쪽이 앞서 여러 차례 언급한 논란의 ‘출구전략’이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이에 호응하는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반면 문재인 의원은 같은 날 ‘NLL 진실과 대화록 규명은 별개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새누리당의 책임론을 다시 거론했다. 그는 지금까지 확인된 대화록의 내용만으로도 ‘NLL 포기’가 아니었음이 확인됐으므로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사과하고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지를 펴며 이렇게 주장했다. “대화록이 없다는 상황의 규명은 별도로 하면 될 일이고, 대화록이 없다고 하는 이유를 내세워 ‘NLL 포기’ 논란의 진실을 덮어서는 결코 안 된다. 혹여 내가 몰랐던 나의 귀책 사유가 있다면 내가 비난을 달게 받고 상응하는 책임을 질 것이다. 그러나 NLL 포기 논란을 일으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덮듯이 또다시 대화록이 없다는 것으로 NLL 포기 논란의 진실을 덮어선 안 된다. (중략) 그렇게 주장한 사람들이 응당 책임져야 한다. 사과할 사람은 사과하고 사퇴를 약속한 사람은 약속대로 사퇴하거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정성호 원내 수석부대표는 “일방적으로 검찰에 고발해놓고 다음날 정쟁을 그만하자는 건 있을 수 없는 행태다.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우리가 좋다고 받으면 국회의 위상과 야당의 존재 이유는 뭐가 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화록 정국은 이대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누리당의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와 민주당의 ‘사분오열’이 낳은 합작품이다.
정치권의 논란과 별도로 학계와 전문가 집단은 대통령기록관에 대화록 원본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기록관리단체협의회, 한국국가기록연구원, 한국기록학회 등 7개 단체는 7월24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기록물을 둘러싼 정쟁 과정에서 기록 관리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대화록 원본이 ‘실종’되거나 ‘폐기’된 것이 아니라 아직 찾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이들은 별도의 설명 자료를 통해 “대통령 지정·비밀 기록의 보존과 관리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해진 기한 내에 이뤄진 검색의 결과로 대화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짓는 것은 성급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여야 열람위원들의 열람 과정에선 노무현 정부 시절 사용된 이지원 시스템에 대한 검색이 이뤄지지 않았고, 전자 자료가 아닌 녹음테이프나 CD가 보존된 서고도 검토되지 않았다. 이들은 특히 “대통령 지정·비밀 기록은 장기보존포맷파일(XML) 단위로 암호화되어 저장되며 (검색을 위한) 인덱스 데이터베이스도 생성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문에 등장하는 키워드를 검색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 여전히 “대화록 못 찾았을 가능성”누구보다 독립적이어야 할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의 수상한 행태도 여전한 논란거리다. 지난 7월15일과 17일 이뤄진 1·2차 예비열람에서 국가기록원은 “해당 문서를 찾을 수 없다”는 답변을 여야 의원들에게 내놨다. 기록원 쪽은 “여야가 제시한 ‘남북 정상회담’ 등 7개 키워드를 입력해 검색했지만 회의록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 7월18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확인됐다. 운영위에 출석한 기록원 소속 실무자는 “전자문서의 경우 본문을 검색하기 위해서는 문서에 설정된 암호를 풀어야 하는데, 이같은 방법을 이용한 본문 검색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자리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사과드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기록원장에 임명된 그는 “대화록을 찾지 못했다”고 여야가 최종 발표한 뒤 페이스북을 통해 “마치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내 주변에도 나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손길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황당한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대통령기록관장은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김선진씨가 물러난 이후 현재까지 공석으로 남아 있다.
[%%IMAGE2%%]이번 논란은 대통령기록물이 정략에 따라 이용된 최악의 사례다. 해방 뒤 55년 동안 8명의 전직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은 모두 합쳐도 33만여 건에 불과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만8천여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만2천여 건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5년간 모두 825만 건의 기록을 남겼다. 그중 36만 건이 지정기록물, 9700건이 비밀기록물이었다. 대통령기록물은 일반·비밀·지정 기록물의 세 단계로 구분된다. 비밀기록물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지만, 차기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들은 볼 수 있다. 외교안보와 관련된 이슈가 불거졌을 때 전임 정부의 대응을 일종의 매뉴얼로 참고하기 위한 목적이다. 지정기록물은 기록물 생산의 주체인 해당 대통령 본인과 대통령이 지정한 대리인은 열람할 수 있지만, 후임 대통령은 볼 수 없고 15년부터 최대 30년까지 봉인된다. 최근 NLL 대화록의 원본 공개 합의처럼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거나 검찰 등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열람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엄격하게 보호받는다.
대통령기록물조차 정략에 이용된 최악 사례이명박 정부는 집권 4년 동안 불과 54만 건의 기록물만을 생산했을 뿐이다. 양으로만 놓고 봐도 전임 정권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치다. 그러다 집권 마지막 해 ‘기록물 폭탄’이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퇴임과 함께 모두 1088만 건의 기록물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했다고 발표했다. 4년 동안 매년 십수만 건에 불과하던 기록물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셈이다. 전진한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참여정부에서 825만 건의 기록을 생산했다는 것과 비교해 숫자를 끼워맞췄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5년 내내 관심도 보이지 않다가 1천만 건의 기록을 생산했다고 자랑하는 대목에서는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불편하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후임 정부가 유사시 참조할 수 있는 비밀기록물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민감한 기록물 전체를 ‘지정기록물’로 묶어버렸다. 본인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파렴치한 일은 또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과 함께 전임자를 향해 대통령기록물 논란을 제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과 함께 대통령기록물을 봉하마을로 가져갔다며 공세를 퍼부었다. 당시에는 전직 대통령이 온라인으로 자신의 재임 기간 중 생산한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회고록 집필 등의 이유로 법률에 명시된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을 보장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로 가져간 기록물을 모두 반환해야 했다.
퇴임 앞서 전 대통령 ‘온라인 열람권’ 신설한 MB현재 대통령기록관에는 동일한 이지원 시스템이 두 개 존재한다. 퇴임과 함께 기록관으로 이관한 시스템과, 논란 끝에 봉하마을에서 2008년 7월 기록관으로 반환한 시스템이 그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쪽은 기록물 논란이 자신들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알았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전직 대통령의 ‘온라인 열람권’과 관련된 조항이 2010년 2월 추가됐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2012년 7월부터 연말까지 6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직 대통령의 온라인 열람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임자 상처 내기에 혈안이 돼 ‘기록물 전쟁’을 벌였던 이 전 대통령은 현재 자신의 사저에서 기록물을 마음껏 열람하며 측근들과 함께 회고록을 집필하고 있다.
‘선의’가 늘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의’를 정당화할 것인가. 기록물을 남기는 행위에 대해 과도할 정도의 집착을 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관리와 사후 활용 문제로 전임 정권을 범죄집단으로 몰아가거나 아예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덮기 위해 활용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물고 물리는 ‘기록물 잔혹사’를 역사는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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