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차 다이빙: 4.8m 23분, 2차 다이빙: 4.5m 20분
수심 18m까지 들어갈 수 있는 ‘오픈워터(바다를 의미하는 개방수역) 다이버’가 되려면 3일간의 교육이 필요하다. 서울 잠실에 위치한 ‘레드씨다이브팀’ 사무실에서 국제 다이빙 단체 패디(PADI) 강사인 황진훈 코스디렉터와 만나 이론 교육을 받았다. 코스디렉터는 강사를 교육할 수 있는 강사란다. 같은 날 5m 수심의 잠실 다이빙풀에서 실전에 들어갔다.
장비 조립하기, 물속에서 호흡기를 뗐다가 다시 착용하는 방법, 마스크에 들어온 물을 제거하는 방법, 압력평형, 수중 유영 등을 연습했다. 모두 안전한 다이빙을 위한 필수적 기술이라고 했다. 코를 덮는 마스크를 쓰자 호흡이 불편해졌다. 입으로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이렇게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구나. 귀에서 느껴지는 압력을 조절하며 5m 깊이의 수영장 바닥으로 서서히 내려가니 내가 숨 쉬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물속은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숨을 잘 쉬고 원하는 높이에 적당히 잘 떠서 움직이는 것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것이 없는 세상이라니. 한 마리 물고기가 된 기분으로 천천히 유영했다. 황 강사와 3년 전 다이빙을 시작했다는 송호균 기자가 고래도 춤추게 할 기세로 칭찬했다. 음, 다이빙 천재 탄생의 예고편쯤 되려나.
사진기자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것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다. 남들이 찍지 못한 장면을 카메라로 담고 싶은 욕망이다. 스쿠버다이빙에 대한 호기심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됐다. 왠지 푸른 바닷속에 들어가면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다.
수영장에서 하강을 시작하자 귀 안에서 압력의 변화가 느껴졌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불편함과 비슷했다. 침을 삼키거나 코를 잡고 ‘킁’ 하며 숨을 밀어넣으면 ‘퐁’ 하고 귓속이 뚫렸다. 이 과정을 ‘압력평형’이라고 한다. 예전에 전투기를 타려고 비행 교육을 받다가 고막의 모세혈관이 터져 피가 났던 일이 떠올랐다. 바늘로 귀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다. 깊은 물속에서 증상이 재발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첫날엔 압력평형이 잘 안 됐다. 나의 ‘버디’(다이빙을 함께 진행하는 짝)인 신소윤 기자는 훨씬 수월해 보인다. 나만 통증을 느끼는 것 같다. ‘킁킁킁’ 압력평형을 계속하자 통증은 줄어들었지만, 신 기자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내가 수영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신 기자는 세 바퀴째 돌고 있다. 자신감이 사라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수영장에서 살짝 코피를 흘렸는데, 내가 심리적으로 위축될까봐 황 강사가 몰래 닦아줬다고 했다. 미리 알았으면 두려움은 더 컸으리라.
[DAY 2] 5월6일 제주 서귀포항 동방파제
1차 다이빙: 5m 29분, 2차 다이빙: 5.8m 36분“무엇으로부터의 위로도, 해방도 아닌 절대적인 평화, 마치 육체가 완벽히 투명해지는 듯한 상태를 맛보고 싶은가? 그러면 바닷속 세상을 음미하는 법을 배우라.” 최윤의 소설 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겨우 수영장 교육을 받고서 나도 그 비슷한 말을 떠들어대고 다녔다. “물 밖에서의 모든 고민과 번뇌가 사라지는 것 같아.” 그런데 소설의 문장 바로 뒤에는 이런 말이 이어진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한다는 것, 그건 아마도 내가 아직 바닷속 세상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랬다. 바닷속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 바닷속에 뛰어든 날, 물로부터 받은 ‘위로’와 ‘절대적 평화’는 산산이 깨졌다.
대실망. 몸이 왜 이렇게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가. 수영장 교육에서 조금 우쭐했던 것이 무색해졌다. 바다로 나서자 부풀었던 마음은 금세 쪼그라들었다. 바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낮은 수심의 포인트를 찾았지만 부력 조절을 제대로 못해 한없이 가라앉기만 했다. 정신을 차리고 강사가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이려는데 기우뚱거리는 몸은 계속 의지를 배반했다. 바닷속은 수영장보다 훨씬 아름다웠지만 이런저런 바닷속 생물을 감상할 처지가 아니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몸, 커다란 바위틈 어디론가 빨려 들어갈 듯한 기분이 드는 바다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수영장에서의 편안했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발로 바닥을 차고 손으로 바위를 붙들었다. 바둥거리며 바다 생물에게 상처만 주는 것 아닌가. 초보 다이버는 이렇게, 기껏 자란 산호를 깨부수고 바위틈에서 잠자던 물고기를 깨우는 ‘바다의 파괴자’가 돼버렸다. 반짝이는 멸치떼가 콧방귀를 뀌며 지나갔다. 물속에서 나는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였다. 차라리 ‘실패기’를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처음으로 바다 다이빙에 도전하는 날이다. 제주의 하늘은 바람 한 점 없이 청명했다. 숙소인 오션트리리조트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장비를 챙겨 서귀포항 동방파제에 도착했다. 파도마저 숨죽인 바다는 고요했다. 이런 바다를 다이버들은 ‘장판’이라고 부른단다. 무게 25kg에 달하는 장비를 메고 걷는 일은 버거웠다. 신 기자는 더 힘들겠지. 황 강사의 인도로 드디어 물속에 들어갔다. 바닷물은 실내풀장보다 훨씬 찼다. 수중 시야도 4~5m로 그다지 좋지 않았다. 또 귀 안의 통증을 느낄까 싶어 열심히 코를 풀어댔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금세 5m 깊이의 바닥에 닿았다. 어? 이번엔 귀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이빙이 편해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실내풀장과는 다른 세계다. 신기하다. 세상과의 단절이었다. 해외의 어느 곳을 가도 세상과의 단절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바닷속은 전혀 달랐다.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우주인이 유영을 하는 것처럼 몸이 붕 떠올랐다. 바닥에 엎드려도, 서 있어도, 물속에 떠 있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바닷속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쉬자 옆에 있는 물고기들과 같은 세계를 공유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이웃들이 바뀌었다. 공기는 물로, 풀과 나무는 미역과 말미잘로, 지상의 동물은 청줄돔·가시복 등 수많은 물고기로.
다이빙이 조금 익숙해지자 사진기자의 본능이 발동했다. 새로움은 사진기자를 흥분시킨다. 이 세계를 직접 카메라로 기록하고 싶었다. 아직 다이빙 자세가 사진을 찍기에 충분치는 않지만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뷰파인더로 바라본 세계는 이제까지 봐온 어떤 것보다 새롭다. 내가 본 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댔다. 숙소에 돌아와선 이론교육을 마무리짓고 필기시험을 치렀다. 다행히 우리 모두 재시험 없이 한 번에 합격했다.
| |
[DAY 3] 5월7일 제주 문섬 새끼섬
1차 다이빙: 15.1m 44분, 2차 다이빙: 13.6m 41분, 3차 다이빙: 15.6m 29분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추웠다. 어제의 실패로 조금 의기소침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서귀포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 문섬에 도착했다. 오늘은 황 강사와 더불어 역시 패디 강사인 ‘오션트리’ 양충홍 대표도 카메라를 들고 합류했다. 바위 위에서 발을 넓게 벌리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맘때 제주 바닷속에 지천으로 자라는 해조류인 모자반숲을 헤치며 자리돔떼와 함께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쳤다, 는 거짓말이고 여전히 부력 조절이 힘들어 떠오르고 가라앉고를 반복했다.
물에 들어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강사와 마스크에 물을 가득 채워 빼는 연습을 했다. 코로 한 호흡에 공기를 불어내 마스크의 물을 빼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부르르 숨을 내쉬는데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왔다. 바닷물이 목을 조이는 듯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사에게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물고기는 육지가 궁금해 뭍과 바다의 경계를 넘어서는 법이 없다. 우리는 왜 인간의 호흡법을 포기하고 기어이 물속으로 들어가 다른 세계를 만나려 하는가. 나는 집념은 없고 포기가 빠른 인간이다. 이제 그만 물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마루처럼 평평한 새끼섬에 누워 해나 쪼이면 좋을 텐데. 그러나 강사는 나가라는 말 대신 준비가 되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자고 토닥였다. 나중에 들으니 이때 내가 흘린 콧물이 눈썹에 붙어 있었다고 했다. 좌충우돌 끝에 다시 들어가니 버디인 김명진 기자가 다른 일행과 함께 마치 독립투사처럼 비장하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대기 중이다.
몇 가지 기술 연습을 마친 뒤 다시 유영을 시작했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물속에 몸을 내맡기니 오히려 편해졌다. 유영이 수월해지자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들어왔다. 단풍처럼 펼쳐진 연산호 무리, 몸에 보름달 같은 무늬를 새겨넣은 달고기, 붉은빛의 커다란 돔. 떼지어 다니는 작은 물고기 사이에 끼어들어 함께 움직였다. 눈앞을 가리는 모자반을 헤치고 나갈 여유도 생겼다. 함께 들어간 강사들과 함께 물속에서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뛰며 움직이는 씬벵이를 한참 들여다봤다. 물속 시간은 바깥과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걸까. 세 차례 바다에 뛰어들고 나오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정오가 훌쩍 지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다이버가 됐다.
처음으로 문섬에 상륙해 장비를 착용했다. 입수 방법은 이제까지와 달랐다. 약간 높은 암반 위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파도는 거세고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살짝 겁이 난다. 잘못 뛰어내리면 파도에 의해 바위와 부딪힐 것 같다. 한 발을 허공에 딛는다. 몸이 바닷물에 빠졌다가 다시 떠오른다. 파도에 몸을 맡기며 주변 사람들을 찾는다. 다행히 황 강사와 신 기자가 주위에 있다. 이제야 안심이 된다.
암벽과는 약간 거리를 두고 황 강사의 신호에 따라 부력조절기(BCD)의 공기를 빼고 하강을 시작한다. 공기를 너무 많이 뺐다. 몸이 중심을 잃고 ‘ㄴ’자 형태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마치 바다 밑에서 누군가 발을 잡고 끌어당기는 것 같다. 부력조절기에 공기를 더 넣어 중성부력(물속에서 몸이 가라앉지도 뜨지도 않는 상태)을 유지해야 하지만 그럴 정신이 없다. 연신 손으로 코를 잡고 압력평형을 하기 바쁘다. 다이빙 수심도 이전보다 훨씬 깊어졌다. 거친 파도가 출렁이는 수면과 달리 바닷속에선 약한 물의 흐름만 느껴졌다. 조용했다. 호흡기를 통해 빠져나가는 공기방울의 소리만 들린다. 시야가 좋지 않은 곳에 혼자 있으니 두렵기도 했다.
신 기자가 바닷물을 먹고 황 강사와 함께 수면으로 떠오른 뒤 다른 일행과 가만히 기다렸다. 곧 다시 합류한 신 기자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중 환경이 동방파제와는 확연히 달랐다. 빨강·노랑·보라의 형형색색 연산호 주변에선 작은 해파리들이 자기 몸을 반짝였다. 어른 키의 몇 배나 되는 모자반이 조류에 따라 흔들렸고, 수많은 물고기떼가 그 사이를 헤엄쳐갔다.
처음 다이빙을 시작할 때는 한국에서 과연 다이빙이 가능한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제주도 문섬의 바다는 태평양의 어느 바다에도 뒤지지 않았다. 귀엽게 생긴 씬벵이, 자리돔떼, 줄도화돔떼, 오징어, 달고기 등 다양한 생물들의 보고였다. 항상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하는 사진기자에게 문섬은 매력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이런 세계가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다. 남들이 한두 달 만에 마스터하는 자유형도 3개월 이상 걸렸고, 수영의 네 가지 영법을 익히는 데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몸치인 나에게도 다이빙은 그리 버겁지 않았다. 짧은 교육 기간을 거쳐 내 활동 공간이 물속으로까지 확장됐다.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거기서 기다리는 건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다.
제주 서귀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
“제주 바다의 유명세에 비해 다이빙을 위한 제도적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다이버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문섬뿐 아니라 섶섬·범섬 등 인근 다이빙 포인트로 들어가려면 배가 필요한데, 다이버를 실은 선박은 승객에게 돈을 받을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어민들의 유어선을 이용하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이런 ‘관행’은 다이빙 업체와 어민들 사이에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현재 제주도 지역의 다이빙 업체들은 각자 혹은 공동 출자로 보트를 구입해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이버들을 싣고, 영리 목적으로 인근 바다를 오가는 선박’은 비법의 영역에 방치돼 있다. 한 다이빙 업체 관계자는 “서귀포시에서는 지난해부터 다이빙 관광을 유치한다며 바다올레길 축제까지 개최하고 있지만 제도적 문제의 해결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여야 국회의원 1명씩만 다이빙 문화의 발전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또 다른 걱정거리는 다름 아닌 2010년부터 공사가 진행 중인 해군기지다. 문섬에서 해군기지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7.5km밖에 되지 않는다. 공사가 시작된 뒤 조금씩 수중 환경이 바뀌었다. 조류가 심한 곳에서 조류가 약해졌고, 물이 불었다가 빠지는 물때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이맘때 문섬 바닷속을 가득 메웠던 붉은멍게도 자취를 감췄단다.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한 수중 사진가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해군기지 때문에 문섬의 바다가 달라졌다고 단언할 순 없다. 하지만 생태계가 이미 달라졌고, 계속 달라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어느 시점에서든, 문섬의 수중 생태계 변화의 이유는 규명될 것이다. 하지만 그땐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아침햇발]
최상목 “한덕수 탄핵은 내각 전체에 대한 탄핵” [전문]
헌재, 윤석열 탄핵심판 오늘 시작…윤 대리인단 출석
“백령도 통째 날아갈 뻔…권력 지키려 목숨을 수단처럼 쓰다니”
[단독] 정보사, 계엄 10여일 전 몽골 북 대사관 접촉 시도…‘북풍’ 연관됐나
한덕수 대행 탄핵안 오늘 표결…국회의장, 정족수 결론은?
박지원 “한덕수, 대통령 하려 혼란 만들어…무속 충고 받나”
안철수 “한덕수 탄핵 동의 못해…헌법재판관 즉시 임명해야”
[영상] 이재명 “국회 담 넘던 무한 책임감으로 한덕수 탄핵”
[속보] 윤석열 쪽 “오늘 대리인단 헌재 탄핵 변론준비기일 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