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font color="#991900">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전국 주택·땅의 공시가격은 ‘규칙’이다. 재산세·취득세 같은 9개 세금·부담금의 부과 기준이 되는 건 기본이다. 정부가 공익사업을 위해 부동산을 수용하면서 보상을 해줄 때나, 법원이 경매로 넘어온 부동산에 가격을 매길 때 산정 근거가 되는 것도 공시가격이다. 공시가격은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고 주택청약가점제가 적용되는 무주택자를 판정하는 데도 활용된다. 이렇게 부동산 공시가격의 쓰임새는 행정 분야에서만 60여 가지에 이른다. 공시가격이 부동산 보유자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삶의 규칙이 과연 공정하게 만들어졌고, 투명하게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해봤다. _편집자</font></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여기 규칙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자료가 하나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에 제공한 ‘30대 재벌 회장 자택의 공시가격 현황’이 그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30대 대기업집단 총수 가운데 주소가 파악되지 않거나 아파트·연립주택 등 공동주택에 사는 총수를 제외하고, 단독주택에 사는 20명의 총수가 보유한 주택의 공시가격을 분석한 결과가 담겼다.
보고서는 정부가 지난 4월30일 공개한 ‘2013년 개별주택가격’에서 개별토지가격(2012년 기준)을 빼 순수 건물값의 추정치를 계산했다. 이 때 관행상 개별주택가격은 실제 평가가격의 80%만 공시되는 점을 감안해 실제 평가가격의 100%가 반영되도록 수치를 조정했다. 그 결과 재벌 회장 20명 중 15명이 보유한 단독주택의 평(3.3㎡)당 건물값이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의 기본형 건축비(평당 530만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왔다. 재벌 회장이 사는 고가의 단독주택 건물이 평범한 아파트보다 적은 돈으로 지어졌다는 의미다. 국내 최고 부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도 평당 건물값이 631만원으로 기본형 건축비를 조금 웃돌았다. 심지어 7곳의 단독주택은 평당 건물값이 공공임대주택을 지을 때 적용되는 표준건축비(평당 320만원)보다 낮았다.
<font size="3">조양호 구기동 집 평당 건물값이 112만원?</font>특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서울 종로구 구기동 자택(112만원),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172만원),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서울 종로구 화동 자택(228만원)의 건물값은 굉장히 ‘저렴’했다. 물론 개별 단독주택의 가치를 평가할 때는 ‘일체평가’를 하는 만큼 주택 가격을 구성하는 땅값과 건물값을 무 자르듯 구분해 계산해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부가 공시한 개별주택가격에서 개별토지가격을 제외해보니 건물값이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책정될 만큼, 애초에 개별주택가격이 형편없이 낮게 산정됐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감시팀 부장은 “최고급 자재로 만든 호화 주택의 건물값이 서민들 아파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게 나오는 것은 개별주택가격이 얼마나 엉터리로 조사됐는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책정된 개별 단독주택 가격은 시세와 얼마나 차이가 날까. 국내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평가된 이건희 회장의 이태원동 자택의 올해 공시가격은 130억원이었다. 워낙 고가의 주택으로 실거래가 되지 않는 터라 시세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경실련은 주변 주택의 시세 등을 조사한 뒤 최소 310억원(2011년 기준)에 이를 것이란 추정을 내놓았다. 그동안 땅값이 오른 점을 생각하면 올해 공시가격이 시세 대비 30%대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시세보다 크게 낮은 주택 가격은 세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올해 공시가격에 따라 이건희 회장이 내야 하는 재산세·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보유세는 1억6천만원 정도다. 그러나 시세대로라면 이보다 25% 많은 2억원가량을 내야 한다. 재벌 총수에게는 ‘껌값’ 정도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총수나 기업이 보유한 전체 부동산이 전반적으로 저평가돼 있다고 가정한다면 낮은 공시가격으로 재벌이 누리는 혜택은 결코 적지 않다.
이건희 회장뿐 아니라 부유층이 선호하는 고가 단독주택의 경우, 시세 반영률이 30~50%에 불과하다는 게 경실련과 감정평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감정평가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개별 단독주택의 가격은 대표성을 띠는 표준주택의 가격을 근거로 정해진다. 이때 표준주택은 말 그대로 평범한 소득·자산을 가진 이들이 거주하는 평범한 주택이다. 온갖 고급 자재로 지은 고가 주택의 안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표준주택과 비교해 적정가격을 산출해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재벌 회장이 보유한 단독주택은 공시가격과 시세 간 괴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는 부동산 시장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개별주택가격 산정의 기준이 되는 표준주택가격의 올해 실거래가 반영률은 59.2%에 불과하다. 2011년(58.8%)보다 소폭 상승한 정도다. 연쇄적으로 수많은 개별주택가격이 시세와 벌어졌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그나마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 공동주택은 실거래가 반영률이 74%로 비교적 높았다. 전국 땅값의 기준이 되는 표준지공시지가의 실거래가 반영률은 61.2%에 그쳤다. 말 그대로 개별 부동산의 기준이 되는 표준주택과 표준지인데도 지역마다 실거래가 반영률이 들쑥날쑥했다. 실제 표준주택에서는 광주(68.3%)와 울산(49.2%) 간 20%포인트가량 차이가 벌어졌다. 그나마 실거래가 반영률은 시장에 형성된 시세가 아니라 실제 거래된 극소수의 주택·토지를 근거로 산출됐다는 점에서, 공시가격이 부동산 시장가격을 제대로 좇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근거로 삼기에는 취약하다는 게 경실련의 비판이다.
국토부도 실거래가 반영률이 부정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거래가 워낙 없는데다, 이뤄지더라도 급매물 가격에 팔리기도 하고 매우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해 실거래가 반영률을 쓰는 게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방식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시가격이 관련 법에서 정한 ‘적정가격’을 산출해내지 못하는 건 애초에 부동산 가격공시제도가 허술하게 설계된 탓이 가장 크다. 가격공시제도는 1989년 토지를 대상으로 먼저 도입됐다. 당시 건설부·내무부·재무부·국세청 등 기관이 개별적으로 계산하던 땅값을 하나의 공식적인 땅값으로 일원화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의 위탁을 받은 감정평가사가 표준지공시지가를 산출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근거로 지역의 개별 토지에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었다. 시장가치에 맞는 부동산 가격을 정해 부동산 정책에 활용하고, 과세 형평성도 높이기 위한 조처였다.
그러나 정밀한 가격 산정으로 조세 부담이 높아지면 국민적 저항이 일 것을 우려한 정부가 표준지공시지가를 처음부터 낮게 책정한 게 패착이었다. 허강무 한국부동산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의 설명이다. “공시지가가 도입되기 전 개별 토지의 기준시가는 시세 대비 20~25% 수준이었다. 표준지공시지가도 이 기준점에서 처음 형성됐다. 그 뒤에도 표준지공시지가는 조금씩밖에 현실화되지 못했다. 반면 시세는 팍팍 뛰었다. 둘 사이 괴리가 점점 벌어지더니 지금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표준주택가격도 비슷한 한계를 갖고 태어났다. 정부는 종부세가 도입되기 직전인 2005년 주택 가격을 제대로 평가하겠다며 주택 가격에도 가격공시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국민적 반발에 대한 우려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국민에게 급격한 세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감정평가사가 표준주택가격을 정하면 정부가 이 가격의 80% 정도만 공시하기로 한 것이다. 개별주택가격이 시장가격의 80%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통제된 셈이다.
물론 공시가격 현실화에 구조적 한계만 있는 건 아니다. 공시가격을 정하는 주무부처인 국토부의 애매한 태도도 한몫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고가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공시가격을 현실화하라고 감정평가사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공시가격은 세금 부과는 물론 각종 복지 대상자 선정 등 60여 가지 행정 분야에 활용되기 때문에 일시에 갑자기 올리면 여러 분야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토부가 다른 부처의 반발에 밀려 감정평가사들의 공시가격 현실화를 가로막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감정평가사는 “2012년 표준주택가격 산정 업무를 할 때 국토부와 국회 등에서 현실화율이 낮다는 문제제기가 있자 감정평가사들이 일제히 표준주택가격을 올렸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국토부가 다시 가격을 낮추라고 요구해 감정평가사들이 몇 차례나 수정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러 분야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어느 정도 공시가격을 현실화하는 것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가장 큰 이유가 부동산 보유자 간 형평성이다. 비슷한 가격의 부동산을 갖고 있더라도 지역·용도에 따라 누군가는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누군가는 복지 혜택을 덜 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font size="3">‘공시가 현실화’ 더는 못 미룬다</font>줄줄 새는 세수도 문제다. 김태호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주택의 경우 최대 시장가격의 80%만 공식 개별주택가격으로 잡힌다. 여기에 지방세인 재산세를 매길 때는 개별주택가격의 60%만 과표로 인정하고 있다. (보유한 주택가치의) 일부에만 세금을 물리는 셈이다. 재산세·취득세 같은 부동산 관련 세원이 전체 세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지자체들이 공시가격의 현실화를 지방 재정 확충의 주요 방안으로 내놓는 이유다.”
중요한 건 현실화 방식이다. 공시가격을 시세에 근접하게 올리면 재벌은 물론 중산층과 서민들의 각종 부담도 덩달아 커지는 탓이다. 허강무 실장의 대안은 이렇다. “공시가격은 정확한 기준이 돼야 한다. 국토부가 한쪽에선 ‘내려라’, 또 다른 쪽에선 ‘올려라’ 하는 것에 휘둘린 나머지 현실과 동떨어진 공시가격을 내놓아선 안 된다. 국토부는 일단 시장가치로 정밀하게 공시가격을 매겨야 한다. 그다음에 각 부처가 정책 목적에 맞게 이를 적절한 비율로 활용하면 된다.” 공정한 규칙을 만드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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