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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복지정책 흙빛 복지사 얼굴

상계2동 사회복지직 공무원 동행 취재기… 울리는 전화벨·쇄도하는 민원인·쌓여가는 서류, 새 정부의 복지사업에 따른 막연한 기대로 민원인 더 많아
등록 2013-04-08 14:18 수정 2020-05-03 04:27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스러져가고 있다. 지난 1월 경기도 용인시청의 사회복지직 공무원 이아무개(29)씨가 목숨을 끊었다. 다음달에는 경기도 성남시청의 강아무개(32)씨가, 그 다음달에는 울산시 안아무개(36)씨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시청이나 주민센터(옛 동사무소)에서 온갖 복지 업무를 도맡아온 말단 공무원들이었다. 이들은 평소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연쇄 자살에 누군가는 “안타깝다” 하고, 누군가는 “나약하다”고 한다.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더듬어보기 위해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서보미 기자가 지난 3월26~27일 서울 노원구 상계2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직 공무원 2명을 동행 취재했다. 이들을 제외한 주민들은 모두 가명이다.
정부가 별다른 준비 없이 열어젖힌 복지시대의 유탄을 일선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고스란히 맞고 있다. 밤낮으로 밀려드는 일을 처리하다보면 자신들을 돌볼 여유도 없다. 서울 노원구 상계2동 주민센터 소속 손영주 주무관이 지난 3월27일 한 고시원을 찾아 기초생활수급자인 박형진(73·가명) 할아버지와 상담을 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정부가 별다른 준비 없이 열어젖힌 복지시대의 유탄을 일선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고스란히 맞고 있다. 밤낮으로 밀려드는 일을 처리하다보면 자신들을 돌볼 여유도 없다. 서울 노원구 상계2동 주민센터 소속 손영주 주무관이 지난 3월27일 한 고시원을 찾아 기초생활수급자인 박형진(73·가명) 할아버지와 상담을 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어김없었다. 주민센터가 아침 9시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전화가 울어댔다. 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민원인의 궁금증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간간이 짜증도 섞여 있었다.

“한부모 가족인데 이번 분기 교통비가 아직도 안 들어왔어요.”

“지난번 영구임대 아파트 신청한 거 결과는 언제 나와요?”

“전세자금 대출 좀 싸게 받을 수 없어요?”

짧게는 5~10분, 길게는 20~30분. 전화벨이 울리는 간격도 일정했다. 사회복지 담당인 손영주 주무관(8급·7년차)과 김문규 주무관(8급·6년차)이 번갈아 응대했다. 더러는 맡고 있는 복지사업과 관련 없는 질문도 있지만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구청·병원·은행 등 다른 기관 안내도 그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사회복지 상담원과 전화교환수를 하루 종일 오고 갔다.

요즘 들어 민원인의 무리한 요구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새 정부가 복지사업을 확대한다기에 막연한 기대를 품는 주민들이 생겨난 탓이다. 그들을 이해시키려면 같은 설명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한다.
서류 빠뜨리고 와서 “제대로 알려준 게 맞냐” 항의

그나마 전화 민원은 짧고 굵은 편이다. 찾아오는 민원은 해결하는 데 시간과 품이 몇 배로 들었다. ‘복지 민원’ 창구에 앉아 있는 김 주무관은 하루 종일 꼼짝을 못했다. 점심식사를 하러 나갈 때도 대타를 불러 앉혀야 했다. 민원인이 찾아왔을 때 자리가 비어 있으면 금세 원성이 나오는 까닭이다. 주민센터에서는 주민의 민원 해결이 1순위이다보니, 사회복지사임에도 그가 맡은 일엔 대중이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이하 기초수급자)·자활근로자·한부모 가족 등에게 각종 증명서를 떼어주기도 하고, 복지 대상자가 가져오는 온갖 자료를 접수해 다른 담당자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그나마 만 65살 이상 노인에게 무료로 전철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를 발급하는 일 등은 복지도우미(기초수급자 중 자활근로의 하나로 사회복지 업무를 보조하는 인력)가 맡아줘 손을 덜었다.

이렇게 그를 찾는 민원인은 하루 수십 명이다. 그중엔 볼일이 끝나도 그를 오래 붙잡아두는 민원인도 적지 않다. 다리를 못 쓰게 돼 병원에 입원한 이웃의 기초수급자 신청을 도와주고 있는 50대 여성은 이틀 연속 주민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전날 기초수급자 신청에 필요하다며 일일이 적어준 서류 중 몇 개는 빠뜨린 채였다. 일단 그 서류들을 제외하고 신청을 접수해주기로 했지만 “제대로 알려준 게 맞냐”고 민원인은 항의했다. 실랑이하는 사이 20분이 넘게 흘렀다. 뒤에 기다리는 민원인은 3~4명으로 늘었다.

요즘 들어선 무리한 요구를 하는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 새 정부가 여러 복지사업을 확대한다기에 막연한 기대를 품는 주민들이 생겨나는 탓이다. 막무가내인 그들을 이해시키려면 같은 설명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한다. 고영실(62) 할머니는 남편이 사망한 뒤 갈 곳 없게 된 지인이라며 강수경(44)씨의 손을 잡고 민원석에 앉았다. “몸이 아파 일을 할 수도 없는 사람이니 먹고 잘 방도를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사정은 안됐지만 아직 일할 나이인데다 몸이 매우 안 좋다는 진단서도 없어 주거 지원은 어렵다”고 하자 이번엔 자신에 대한 하소연이 이어졌다. “차상위 계층이다.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 먹고 자고 하는데 (영구임대) 아파트를 하나 얻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한참 설명을 듣고 난 뒤에야 할머니는 아쉬운 표정으로 주민센터를 나섰다. 김 주무관은 “새로운 복지사업이 늘면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권리가 아닌 것도 요구하는 분이 있어 곤란할 때가 많다. 그래도 주민들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민원인을 대하는 그의 표정은 늘 같았다. 부드러우면서도 무덤덤했다. 민원인의 무리한 요구에 짜증을 내지도, 간절한 호소에 흔들리지도 않았다. 민원인 상대에 일희일비했다가는 괜히 하소연을 듣거나 욕먹는 시간만 길어지기 때문이다.

일반행정 공무원과 달리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형편이 어려운 주민의 가정을 직접 방문해 생활 안정을 돕도록 돼 있다. 그러나 주민센터에서 민원을 처리하고 공문을 만들다보면 일주일에 한두 번 현장을 나가기도 어렵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일반행정 공무원과 달리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형편이 어려운 주민의 가정을 직접 방문해 생활 안정을 돕도록 돼 있다. 그러나 주민센터에서 민원을 처리하고 공문을 만들다보면 일주일에 한두 번 현장을 나가기도 어렵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정작 어려운 사람 돕지 못해 회의감”

그러나 정작 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찾아와도 도와주지 못할 땐 그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문희(78) 할머니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기초수급자 신청서류를 내밀었다. 그러나 그중엔 부양의무자인 7남매 중 막내아들의 ‘금융정보 등 제공 동의서’가 빠져 있었다. 10년 전 연락이 완전히 끊긴 아들이었지만, 법적으로는 부양의무자인 탓에 할머니가 기초수급 대상자가 되려면 어떤 식으로든 그와 연락을 해야 했다. 할머니는 “내 새끼가 일곱인데 1년 동안 한 명도 얼굴 한 번 못 보고 살아요. 새끼들이 잘 살면 왜 여기를 왔겠어요. 내 신세가 너무 서러워요”라며 눈물을 흘리다 돌아갔다. 그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됐는데 현장에 와보니 현실은 많이 달랐다. 생활이 정말 곤란한 분들은 도와주지 못하고, 생활이 괜찮은 분 같은데 지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답답하고 회의가 들기도 한다”고 했다.

민원인이 없을 때도 한숨 돌릴 틈은 없다. 민원석은 종종 갈 곳 없는 동네 노인이나 노숙인 차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세 한탄이 길어지거나 욕이 튀어나와도 묵묵히 들으며 짜증을 삭이는 수밖에 없다. 고시원에서 혼자 생활하는 홍철주(90) 할아버지는 이날도 김 주무관을 찾았다. “돈이 안 들어왔다”며 들고 온 통장에는 며칠 전 기초노령연금과 장애인연금 등이 입금된 것으로 찍혀 있었다. 차근차근 설명을 하는 사이에도 할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만 했다. “내가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다 점령했어요. 그러다 6·25 전쟁이 나서 참전했다 다리에 총을 맞아 생계가 곤란해져서 이렇게 살고 있소. 그래서 지팡이에 의지해 여기까지 왔어요.” 그렇게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자랑과 푸념을 늘어놓았다.

김 주무관이 민원 창구에서 씨름하는 동안 손 주무관은 모처럼 짬을 내 기초수급자 방문에 나섰다. 그는 2007년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된 뒤부터 생활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자주 찾아가 살피겠노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관리하던 한 기초수급자가 집에서 사망한 지 나흘 만에야 발견된 뒤부터 죄책감에 시달리다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해마다 처리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방문 횟수가 줄더니 이젠 일주일에 한두 번 현장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저소득 노인(1219명)·장애인(910명)·한부모 가족(193명)은커녕 기초수급자(280가구·395명)만이라도 1년에 한 번씩 방문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인 것이다.

본래 업무는 야근과 주말 근무로 처리

주민센터를 나온 손 주무관은 평소 외로움을 많이 타는 곽성철(81) 할아버지 집부터 찾았다. 할아버지는 텔레비전도 꺼진 작은 방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방바닥엔 얼룩진 옷과 이불이 음식물 찌꺼기와 뒤엉켜 오물 냄새가 심했다. 할아버지는 “막막하다. 이젠 밖에 나갈 수도 없게 됐으니 너무 외롭다. 죽어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손 주무관은 할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집 안 살림을 꼼꼼히 점검한 뒤 “곧 도움을 줄 사람들과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그는 곧바로 기초수급비를 받으며 동생과 단둘이 지내는 최해지(16)양을 만났다. 며칠 전 동생에게 심하게 폭행당한 해지양은 학교도 빠진 채 친척 집에 머물고 있었다. 손 주무관이 “주민센터에서는 생계비밖에 못 드리지만 구청의 사례관리 대상자가 되면 동생도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주거비나 학원비도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어요. 제가 방법을 찾아볼게요”라고 약속했다. 1~2시간 안에 세 집을 방문하느라 한 곳에서 집 안 상태를 살피고 상담하는 시간은 10~20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직접 만나서 살피면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확실히 알 수 있어 다행”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회복지직 공무원인 김문규 주무관이 지난 3월26일 민원인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민원인이 그가 담당하는 ‘복지 민원’를 찾아 도움을 요청한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사회복지직 공무원인 김문규 주무관이 지난 3월26일 민원인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민원인이 그가 담당하는 ‘복지 민원’를 찾아 도움을 요청한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민원이 잠잠해지고, 가정방문을 다녀오니 퇴근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시 퇴근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민원을 해결하고 가정방문을 하느라 뒤로 미뤄둔 업무가 산더미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기초생활보장 업무, 한부모 가족, 의료 급여, 결연사업, 생명존중 사업, 소년소녀가장, 저소득 틈새계층 업무 등 본래 업무는 대부분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나와 처리한다. 그래도 노원구에선 보육료 지원, 장애인·노인복지 업무 등은 다른 일반행정직 동료가 나눠 처리하고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다.

본래 업무라는 것의 8할, 9할은 문서 작업이다. 3년 전만 해도 기초수급자, 한부모 가족, 긴급지원비 등에 관한 신청이 들어오면 대상자로부터 각종 서류를 받아 구청 등 상급기관에 보내주는 걸로 끝이었으나, 이젠 하나하나 공문을 만들고 각종 서류를 컴퓨터 파일로 전환한 뒤 전자결재시스템에 올려야 하는 탓이다. 민원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정방문에서 상담한 내용도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하 사통망)에 일일이 기록해둬야 한다.

게다가 보건복지부·서울시·노원구청 등 상급기관에선 시도 때도 없이 지시가 날아든다. 이들의 전자결재시스템 문서함에는 하루에 적게는 1~2개, 많게는 10개까지 확인하고 이행해야 할 전달사항이 쌓여 있다. 특정 기한까지 특정 사안을 조사해 보고하거나, 정부에서 결정된 사안을 복지 대상자들에게 전화·문자 등으로 통보하라는 식이다. 그러니 해도 해도 일은 끝이 없다. 손 주무관은 “일에 쫓기면서 하게 된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면 또 일이 쌓여 있다. 가정방문을 다녀오면 일이 늘어나 있고, 앉아서 업무 처리만 해도 일은 줄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이틀 내내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셔터가 내려간 주민센터 안에서 낮보다 더 바쁘게 일했다. 낮에 받은 신청서류들을 전자결재시스템에 올리고, 민원 내용과 방문 상담 결과도 사통망에 입력했다. 여기에 ‘이웃돕기 성금지원 대상자 서면 심의 요청’ ‘한부모 가족 자녀 교통비 2차 지원 대상’ ‘복지급여 관련 변경사항 요청자(4월)’ ‘휴먼서비스 신규 대상자 의뢰’ ‘2013년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및 정비사업 대상가구 제출’ 등 위에서 내려온 지시사항도 처리했다. 그나마 손 주무관은 아직 6살인 아이가 마음에 걸려 일을 다 마치지 못했다. 그만큼 내일 할 일은 또 늘었다.

업무를 지원해주던 2명의 행정 직원이 곧 1명으로 줄어든다. 잔업무를 도와주던 복지도우미도 내년엔 주민센터를 떠난다. 정부는 주민센터의 사회복지업무 정원을 늘린다던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일손은 줄어만 간다.
사회복지 정원 늘린다더니…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임신 중인 손 주무관은 두세 달 뒤면 출산휴가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껏 출산·육아휴직을 한 여성 공무원의 대체 인력이 제때 투입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사회복지 업무를 지원해주던 일반행정직 인력도 조만간 2명에서 1명으로 줄어든다. 자잘한 업무를 대신 처리해주던 복지도우미도 내년엔 주민센터를 떠나야 한다. 정부가 주민센터의 사회복지 정원을 늘린다고 하던데 어찌 된 일인지 되레 인력을 빼가는 셈이다. 김 주무관 혼자서 동료 직원 1명의 도움을 받아 2만2천 명이 넘는 주민들의 온갖 사회복지 사업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손 주무관은 “첫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에 들어갔을 때 인력이 몇 달간 안 나와서 동료가 십수kg이 빠질 정도로 고생을 했다. 아직도 미안한 마음에 (그를) 보지 못한다. 지금도 다들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까지 또 휴직하면 부담을 더 주는 거라 벌써부터 걱정이다”라고 했다. 남들의 복지를 챙기느라 정작 그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볼 여유도 없는 듯했다.

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지침서 높이가 1m 넘어”
담당 복지사업은 몇 개?
읍·면·동사무소의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은 정부 복지사업의 최전선에 있다. 각 부처와 광역자치단체가 만들어낸 각종 복지정책의 상당수가 이들을 통해 저소득층·노인·한부모 가족·장애인 등에게 전달된다. 과연 이들의 손끝에서 처리되는 복지사업은 몇 개나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어렴풋이 추정만 가능하다. 일단 정부의 292개 복지사업 중 지방자치단체가 직간접적으로 수행하는 사업은 202개다. 국민이 일상적으로 접근하기에 읍·면·동사무소가 가장 편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읍·면·동사무소와 이들의 상급기관인 시·군·구가 시행하는 자체 사업으로 지역에 따라 100~200개가 추가된다. 대부분 읍·면·동사무소마다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1~2명씩 배정된 것을 감안하면 1명당 150~400개의 사업을 끌어안고 있는 셈이다. 인천 부평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주민들에게 양질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공무원이 그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도 내가 무슨 일들을 하고 있는지 다 알지 못한다. 올해 새로 시작됐거나 내용이 바뀌어서 (보건복지부에서) 내려온 지침서를 쌓으면 1m가 넘는다”고 했다.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부담이 가중된 데는 그간 복지 수요가 폭발하면서 신규 사업이 계속 늘어났는데도 인력은 늘려주지 않은 영향이 컸다. 실제 복지 예산은 2007년 61조원에서 지난해 93조원으로 52% 급증했다. 그만큼 공무원들의 손길이 닿는 복지 대상자가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저소득층 학비지원사업 담당이 올해부터 교육청에서 지자체로 바뀐 것처럼 예산은 그대로인데 사업 주체만 지자체로 변경된 사업이 여럿이다. 그런데도 전체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같은 기간 1만113명에서 1만2367명으로 22%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7년 지자체 총액인건비제가 도입된 이후 지자체는 안전행정부가 통제하는 인건비 내에서만 인력을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업무 강도가 더 세질 것이란 위기감이 일선 사회복지직 공무원 사이에서 높아졌다. 생애주기별로 맞춤형 복지시대를 열기 위해 주민센터의 복지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이 새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됐지만 그에 걸맞은 인력 수급 계획은 마련되지 못한 탓이다.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자살이 잇따른 뒤에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지난 3월28일 서울 성동구의 한 주민센터를 찾은 자리에서 △올해 계획된 1800명의 복지 인력 확대를 조속히 실현하고 △인사 평가 때 복지직에 가산점을 부여하며 △현재 3만원인 수당을 인상한다는 등의 방안을 근무 여건 개선 대책이라며 제시했다. 김재훈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간사는 “자살한 공무원들의 유서를 보면 과중한 업무와 경직된 위계질서 등 폭력적인 환경에서 처절하게 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사회복지 현장에 대한 실태조사나 철저한 원인 규명 없이 사람을 몇 명 늘리고 돈을 얼마 올려주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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