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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었다. 주민센터가 아침 9시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전화가 울어댔다. 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민원인의 궁금증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간간이 짜증도 섞여 있었다.
“한부모 가족인데 이번 분기 교통비가 아직도 안 들어왔어요.”
“지난번 영구임대 아파트 신청한 거 결과는 언제 나와요?”
“전세자금 대출 좀 싸게 받을 수 없어요?”
짧게는 5~10분, 길게는 20~30분. 전화벨이 울리는 간격도 일정했다. 사회복지 담당인 손영주 주무관(8급·7년차)과 김문규 주무관(8급·6년차)이 번갈아 응대했다. 더러는 맡고 있는 복지사업과 관련 없는 질문도 있지만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구청·병원·은행 등 다른 기관 안내도 그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사회복지 상담원과 전화교환수를 하루 종일 오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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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전화 민원은 짧고 굵은 편이다. 찾아오는 민원은 해결하는 데 시간과 품이 몇 배로 들었다. ‘복지 민원’ 창구에 앉아 있는 김 주무관은 하루 종일 꼼짝을 못했다. 점심식사를 하러 나갈 때도 대타를 불러 앉혀야 했다. 민원인이 찾아왔을 때 자리가 비어 있으면 금세 원성이 나오는 까닭이다. 주민센터에서는 주민의 민원 해결이 1순위이다보니, 사회복지사임에도 그가 맡은 일엔 대중이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이하 기초수급자)·자활근로자·한부모 가족 등에게 각종 증명서를 떼어주기도 하고, 복지 대상자가 가져오는 온갖 자료를 접수해 다른 담당자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그나마 만 65살 이상 노인에게 무료로 전철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를 발급하는 일 등은 복지도우미(기초수급자 중 자활근로의 하나로 사회복지 업무를 보조하는 인력)가 맡아줘 손을 덜었다.
이렇게 그를 찾는 민원인은 하루 수십 명이다. 그중엔 볼일이 끝나도 그를 오래 붙잡아두는 민원인도 적지 않다. 다리를 못 쓰게 돼 병원에 입원한 이웃의 기초수급자 신청을 도와주고 있는 50대 여성은 이틀 연속 주민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전날 기초수급자 신청에 필요하다며 일일이 적어준 서류 중 몇 개는 빠뜨린 채였다. 일단 그 서류들을 제외하고 신청을 접수해주기로 했지만 “제대로 알려준 게 맞냐”고 민원인은 항의했다. 실랑이하는 사이 20분이 넘게 흘렀다. 뒤에 기다리는 민원인은 3~4명으로 늘었다.
요즘 들어선 무리한 요구를 하는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 새 정부가 여러 복지사업을 확대한다기에 막연한 기대를 품는 주민들이 생겨나는 탓이다. 막무가내인 그들을 이해시키려면 같은 설명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한다. 고영실(62) 할머니는 남편이 사망한 뒤 갈 곳 없게 된 지인이라며 강수경(44)씨의 손을 잡고 민원석에 앉았다. “몸이 아파 일을 할 수도 없는 사람이니 먹고 잘 방도를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사정은 안됐지만 아직 일할 나이인데다 몸이 매우 안 좋다는 진단서도 없어 주거 지원은 어렵다”고 하자 이번엔 자신에 대한 하소연이 이어졌다. “차상위 계층이다.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 먹고 자고 하는데 (영구임대) 아파트를 하나 얻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한참 설명을 듣고 난 뒤에야 할머니는 아쉬운 표정으로 주민센터를 나섰다. 김 주무관은 “새로운 복지사업이 늘면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권리가 아닌 것도 요구하는 분이 있어 곤란할 때가 많다. 그래도 주민들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민원인을 대하는 그의 표정은 늘 같았다. 부드러우면서도 무덤덤했다. 민원인의 무리한 요구에 짜증을 내지도, 간절한 호소에 흔들리지도 않았다. 민원인 상대에 일희일비했다가는 괜히 하소연을 듣거나 욕먹는 시간만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찾아와도 도와주지 못할 땐 그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문희(78) 할머니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기초수급자 신청서류를 내밀었다. 그러나 그중엔 부양의무자인 7남매 중 막내아들의 ‘금융정보 등 제공 동의서’가 빠져 있었다. 10년 전 연락이 완전히 끊긴 아들이었지만, 법적으로는 부양의무자인 탓에 할머니가 기초수급 대상자가 되려면 어떤 식으로든 그와 연락을 해야 했다. 할머니는 “내 새끼가 일곱인데 1년 동안 한 명도 얼굴 한 번 못 보고 살아요. 새끼들이 잘 살면 왜 여기를 왔겠어요. 내 신세가 너무 서러워요”라며 눈물을 흘리다 돌아갔다. 그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됐는데 현장에 와보니 현실은 많이 달랐다. 생활이 정말 곤란한 분들은 도와주지 못하고, 생활이 괜찮은 분 같은데 지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답답하고 회의가 들기도 한다”고 했다.
민원인이 없을 때도 한숨 돌릴 틈은 없다. 민원석은 종종 갈 곳 없는 동네 노인이나 노숙인 차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세 한탄이 길어지거나 욕이 튀어나와도 묵묵히 들으며 짜증을 삭이는 수밖에 없다. 고시원에서 혼자 생활하는 홍철주(90) 할아버지는 이날도 김 주무관을 찾았다. “돈이 안 들어왔다”며 들고 온 통장에는 며칠 전 기초노령연금과 장애인연금 등이 입금된 것으로 찍혀 있었다. 차근차근 설명을 하는 사이에도 할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만 했다. “내가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다 점령했어요. 그러다 6·25 전쟁이 나서 참전했다 다리에 총을 맞아 생계가 곤란해져서 이렇게 살고 있소. 그래서 지팡이에 의지해 여기까지 왔어요.” 그렇게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자랑과 푸념을 늘어놓았다.
김 주무관이 민원 창구에서 씨름하는 동안 손 주무관은 모처럼 짬을 내 기초수급자 방문에 나섰다. 그는 2007년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된 뒤부터 생활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자주 찾아가 살피겠노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관리하던 한 기초수급자가 집에서 사망한 지 나흘 만에야 발견된 뒤부터 죄책감에 시달리다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해마다 처리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방문 횟수가 줄더니 이젠 일주일에 한두 번 현장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저소득 노인(1219명)·장애인(910명)·한부모 가족(193명)은커녕 기초수급자(280가구·395명)만이라도 1년에 한 번씩 방문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인 것이다.
본래 업무는 야근과 주말 근무로 처리주민센터를 나온 손 주무관은 평소 외로움을 많이 타는 곽성철(81) 할아버지 집부터 찾았다. 할아버지는 텔레비전도 꺼진 작은 방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방바닥엔 얼룩진 옷과 이불이 음식물 찌꺼기와 뒤엉켜 오물 냄새가 심했다. 할아버지는 “막막하다. 이젠 밖에 나갈 수도 없게 됐으니 너무 외롭다. 죽어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손 주무관은 할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집 안 살림을 꼼꼼히 점검한 뒤 “곧 도움을 줄 사람들과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그는 곧바로 기초수급비를 받으며 동생과 단둘이 지내는 최해지(16)양을 만났다. 며칠 전 동생에게 심하게 폭행당한 해지양은 학교도 빠진 채 친척 집에 머물고 있었다. 손 주무관이 “주민센터에서는 생계비밖에 못 드리지만 구청의 사례관리 대상자가 되면 동생도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주거비나 학원비도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어요. 제가 방법을 찾아볼게요”라고 약속했다. 1~2시간 안에 세 집을 방문하느라 한 곳에서 집 안 상태를 살피고 상담하는 시간은 10~20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직접 만나서 살피면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확실히 알 수 있어 다행”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민원이 잠잠해지고, 가정방문을 다녀오니 퇴근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시 퇴근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민원을 해결하고 가정방문을 하느라 뒤로 미뤄둔 업무가 산더미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기초생활보장 업무, 한부모 가족, 의료 급여, 결연사업, 생명존중 사업, 소년소녀가장, 저소득 틈새계층 업무 등 본래 업무는 대부분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나와 처리한다. 그래도 노원구에선 보육료 지원, 장애인·노인복지 업무 등은 다른 일반행정직 동료가 나눠 처리하고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다.
본래 업무라는 것의 8할, 9할은 문서 작업이다. 3년 전만 해도 기초수급자, 한부모 가족, 긴급지원비 등에 관한 신청이 들어오면 대상자로부터 각종 서류를 받아 구청 등 상급기관에 보내주는 걸로 끝이었으나, 이젠 하나하나 공문을 만들고 각종 서류를 컴퓨터 파일로 전환한 뒤 전자결재시스템에 올려야 하는 탓이다. 민원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정방문에서 상담한 내용도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하 사통망)에 일일이 기록해둬야 한다.
게다가 보건복지부·서울시·노원구청 등 상급기관에선 시도 때도 없이 지시가 날아든다. 이들의 전자결재시스템 문서함에는 하루에 적게는 1~2개, 많게는 10개까지 확인하고 이행해야 할 전달사항이 쌓여 있다. 특정 기한까지 특정 사안을 조사해 보고하거나, 정부에서 결정된 사안을 복지 대상자들에게 전화·문자 등으로 통보하라는 식이다. 그러니 해도 해도 일은 끝이 없다. 손 주무관은 “일에 쫓기면서 하게 된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면 또 일이 쌓여 있다. 가정방문을 다녀오면 일이 늘어나 있고, 앉아서 업무 처리만 해도 일은 줄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이틀 내내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셔터가 내려간 주민센터 안에서 낮보다 더 바쁘게 일했다. 낮에 받은 신청서류들을 전자결재시스템에 올리고, 민원 내용과 방문 상담 결과도 사통망에 입력했다. 여기에 ‘이웃돕기 성금지원 대상자 서면 심의 요청’ ‘한부모 가족 자녀 교통비 2차 지원 대상’ ‘복지급여 관련 변경사항 요청자(4월)’ ‘휴먼서비스 신규 대상자 의뢰’ ‘2013년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및 정비사업 대상가구 제출’ 등 위에서 내려온 지시사항도 처리했다. 그나마 손 주무관은 아직 6살인 아이가 마음에 걸려 일을 다 마치지 못했다. 그만큼 내일 할 일은 또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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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임신 중인 손 주무관은 두세 달 뒤면 출산휴가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껏 출산·육아휴직을 한 여성 공무원의 대체 인력이 제때 투입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사회복지 업무를 지원해주던 일반행정직 인력도 조만간 2명에서 1명으로 줄어든다. 자잘한 업무를 대신 처리해주던 복지도우미도 내년엔 주민센터를 떠나야 한다. 정부가 주민센터의 사회복지 정원을 늘린다고 하던데 어찌 된 일인지 되레 인력을 빼가는 셈이다. 김 주무관 혼자서 동료 직원 1명의 도움을 받아 2만2천 명이 넘는 주민들의 온갖 사회복지 사업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손 주무관은 “첫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에 들어갔을 때 인력이 몇 달간 안 나와서 동료가 십수kg이 빠질 정도로 고생을 했다. 아직도 미안한 마음에 (그를) 보지 못한다. 지금도 다들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까지 또 휴직하면 부담을 더 주는 거라 벌써부터 걱정이다”라고 했다. 남들의 복지를 챙기느라 정작 그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볼 여유도 없는 듯했다.
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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