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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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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만 남은 박근혜 의료복지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핵심 보건의료 복지 정책들 대부분 축소… 영리병원 허가 등 의료 민영화 추진될 가능성 높아
등록 2013-03-23 15:08 수정 2020-05-03 04:27

박근혜 대통령은 실낱같은 희망이다. 진주의료원을 지키려는 직원들과 경남도민들에겐 적어도 그렇다. 경남도의 막가파식 폐업 결정을 박 대통령은 막아줄 것이란 기대에서다. 나름의 근거가 있다. 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지역·계층 간 의료 양극화를 없애는 방안으로 공공의료기관 활성화를 한결같이 주장해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채택한 국정과제에도 이같은 원칙이 포함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진주의료원을 지켜줄지는 의문이다. 그가 철석같이 약속했던 핵심 보건의료 정책들마저 이미 대폭 쪼그라들어 구호만 남은 탓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의료비 부담 제로’를 내세워 유권자의 환심을 샀으나, 당선되자마자 핵심 공약들에 대한 말을 바꿔버렸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6일 광주의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을 찾아 물리치료를 받는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의료비 부담 제로’를 내세워 유권자의 환심을 샀으나, 당선되자마자 핵심 공약들에 대한 말을 바꿔버렸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6일 광주의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을 찾아 물리치료를 받는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의료비 부담 제로’ 대국민 사기극?

박 대통령의 대선 보건의료 공약의 슬로건은 ‘의료비 부담 제로’였다. 민주통합당이 주장한 무상의료까지는 아니더라도, 환자에게 꼭 필요한 의료비에 대해선 정부가 크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였다. 한마디로 의료의 공공성 강화다. 핵심 정책은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보장’이었다. 암·심장·뇌질환·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해선 상급병실료·선택진료비·간병비 등 3대 비급여 항목을 포함한 진료비 일체를 국가가 부담하겠다는 것이었다. “심장은 되고 간은 안 되느냐”는 식의 질병 간 차별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 공약은 ‘박근혜식 복지’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두 달여 만인 지난 2월21일 인수위는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4대 중증질환 진료비 보장 원칙에서 3대 비급여 항목을 모두 제외해버렸다. 당장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실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 3월6일 열린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선거 캠페인용”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애초 공약에 3대 비급여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선거 구호라 간명하게 나가는 과정에 오해의 소지가 생겼다”는 취지의 해명을 달았다. 황당한 해명에 논란은 더 커졌다. 그로부터 이틀 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박 대통령과 진 장관을 사기·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대표의 비판이다. “대선 공약집을 보면 ‘현재 75%인 4대 중증질환 보장률(비급여 포함)을 2016년까지 100%로 확대’라고 돼 있다. 이 수치에는 상급병실료와 선택진료비가 포함된 것인 만큼 ‘비급여 항목은 처음부터 제외했다’는 해명은 거짓말이다. 지금도 4대 중증질환은 보장률이 90~95%에 이르는데, 애초에 비급여를 제외했던 것이라면 ‘100% 보장’이라는 공약은 무의미했다.”

노인 임플란트(인공치아) 공약도 크게 후퇴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65살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임플란트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당선되자 내년엔 만 75살 이상에 대해서 지원한 뒤 2016년에 만 65살로 확대하겠다며 말을 바꿨다. 그나마 애초 인수위는 임플란트 적용 치아를 어금니로 한정하고 건강보험을 적용하더라도 환자 본인에게 절반의 비용을 물리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여론의 반발에 밀려 슬그머니 철회했다.

“교육·주거 등 다른 분야처럼 보건의료 분야 공약들도 제대로 지켜진 게 하나도 없다. 공약이 크건 작건 간에 모두 실종됐다. 이전 정부에서는 출범 초기엔 (공약 실천을) 해보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우석균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박근혜 “영리병원에 대한 정부 정책 존중”

‘본인부담 상한제’ 개선 공약 역시 뒷걸음질했다. 공약에선 환자의 소득에 맞게 의료비 부담을 지우기 위해 현재 3단계인 소득기준을 10단계로 늘리겠다고 했으나 결국 7단계로 축소됐다. 최하위 소득계층의 상한금액을 50만원(현재 200만원)까지 낮추겠다던 약속도 120만원으로 후퇴했다. 우석균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의 지적이다. “교육·주거 등 다른 분야처럼 보건의료 분야 공약들도 제대로 지켜진 게 하나도 없다. 공약이 크건 작건 간에 모두 실종됐다. 이전 정부에서는 출범 초기엔 (공약 실천을) 해보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에선 의료의 공공성이 오히려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호시탐탐 의료 민영화를 노리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각종 정책에 그간 별다른 비판의식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영리병원(투자개방형 의료법인) 허용이다. 이명박 정부의 뒷심으로 지난해 10월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특별자치도에 영리병원이 들어올 수 있는 법적인 조처는 모두 마무리된 상태다. 외국인 투자자나 민간기업 등도 일정 조건만 갖추면 정부에 영리병원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는 의미다. 첫 타자로 가장 유력했던 인천시가 지난 2월 영리병원 설립 계획을 백지화하긴 했지만 제주자치도는 여전히 중국 의료법인과 영리병원 투자 계획을 타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의지만 있다면 임기 중에 첫 영리병원이 들어설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문재인·안철수 후보와 달리 영리병원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시민단체 등과의 질의에서 “영리병원에 대한 현 정부의 정책을 존중한다. 건강보험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추후 정책 추진을 판단하겠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진영 장관이 인사청문회 당시 영리병원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송도 지역에서만 시범적으로 설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박 대통령의 의중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제안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

제18대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제안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

보건·의료산업 집중 육성 국정과제로

부분적으로라도 의료 민영화가 추진될 가능성은 또 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라는 명목을 달고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서비스 분야 정보기술(IT) 활용 촉진 방안’을 발표하며 건강생활(관리) 서비스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체성분분석기, 혈압기 등을 통해 건강 상태를 관리하는 서비스를 의료기관이 아닌 민간기업도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의미다. 우회적인 의료 민영화다. 그 뒤 정권이 바뀌긴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 사업의 추진을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도 후보자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인수위는 ‘IT·소프트웨어(SW), 문화·콘텐츠 분야, 보건·의료 서비스 등 유망 서비스산업의 집중 육성’을 국정과제로 정했다. 우석균 정책실장의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는 영리병원을 허가하는 것은 물론 민간기업에 건강관리 서비스를 하도록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 우회적이고 부분적인 의료 민영화가 추진될 것이란 의미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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