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16 쿠데타의 ‘얼굴마담’은 장도영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다. 박정희가 남로당 프락치 혐의로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장도영은 정일권·백선엽 등과 함께 자신의 직속 부하인 박정희의 구명운동을 벌였다. 석방 이후 박정희를 다시 군으로 복귀시킨 이도 장도영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박정희의 ‘생명의 은인’이다. 1961년 5월16일 새벽, 방송을 통해 공표된 ‘군사혁명 선언문’의 명의도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육군 중장 장도영’이었다. 쿠데타 이후 장도영의 직함은 무려 5개로 늘어난다.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자 내각 수반이었고, 국방부 장관인 동시에 육군참모총장이었다. 계엄사령관도 겸했다. 하지만 그는 김종필을 앞세운 박정희 세력에 의해 불과 한 달 보름 만에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제거되고 만다.
싸우고 숙청당한 ‘넘버 3’들박정희 전 대통령이 18년의 재임 기간에 보여준 용인술은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유·무형의 빚을 지고 있는 인물들은 하나 둘 밀려났다. 그는 ‘쓴소리’를 참지 못했다. 주변은 주군의 의지에 반하지 않고, 충성 경쟁에 열을 올리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사위원장을 시작으로 감사원장까지 지낸 이석제씨는 1995년 발간한 라는 제목의 책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박 대통령은 자기 의견에 반대하거나 분에 넘치는 요구를 하면, 그 사람을 상당히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자신에 대한 도전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고, 한번 수가 틀리면 감정이 상당히 오래갔다. 수많은 동지들이 대열에서 떨어져나간 것도 어쩌면 권력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충성을 다했던 인물들도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거나, 자신의 입지에 도전하면 숙청했다. 김종필·김성곤·윤필용·이후락·김형욱 등 박정희 체제를 떠받치던 기둥들이 차례로 제거되거나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전락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공식 취임했다. 박 대통령의 용인술 역시 아버지 시대의 그것을 닮았다. 박 대통령이 정치적 빚을 지고 있는 인물들은 대선 이후 모두 2선으로 밀려났다. 정치권에선 그 대표적 사례로 김종인·안대희·이상돈을 꼽는다.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존재는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라는 상품에 ‘경제민주화’라는 포장을 가능케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상돈 전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은 특히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안철수 전 후보의 부상으로 ‘정치 쇄신’ 요구가 거세게 일자 안대희 전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영입해 맞불을 놨다. 이들은 모두 박 대통령한테 특별히 빚진 게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꾸로 이들의 존재가 박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과정에서 이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이들 모두 중용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당장은 듣기 싫어도 결국 약이 되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을 사람들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 이후 세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것도 결국 그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반대로 박 대통령이 빚지지 않은 인물들이 속속 요직에 발탁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윤창중·김행 청와대 대변인이다. 윤 대변인은 언론인 시절에 보여준 비뚤어진 역사관과 상대 진영에 대한 끝 모를 증오심뿐 아니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을 지내는 동안 보여준 무능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용됐다. 2002년 대선 때, 현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지냈고, 당시 대선 하루 전날 “노무현 지지 철회”를 공식 발표한 당사자인 김행 대변인도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최악의 인사로 꼽힌다. 대선 과정에서 각종 종합편성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정치평론가로 변신한 그를 박 대통령이 눈여겨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 |
한 정치평론가는 “김종인 전 위원장 등을 내치고 친박 인사들 중에서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았던 인물을 중심으로 당·정·청의 진용을 짠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윤창중·김행 대변인의 경우 본인들의 처지에서는 박 대통령이 얼마나 고맙겠느냐. 아마도 충성을 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시대의 ‘파워엘리트’로 꼽히는 당·정·청의 핵심 실세들의 면면도 마찬가지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고 지난 2월27일 서울 현충원 국립묘지 참배를 시작으로 공식 일정에 들어간 정홍원 국무총리는 취임사에서 ‘윤활유 총리론’을 제시했다. 그는 “기업과 개인, 시민사회가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원활히 돌아가도록, 또 공직자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도록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책임총리’와 관련한 메시지는 없었다.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 낙마와 ‘불통·만만디 인사’로 인한 사상 초유의 정부 출범 지연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책임총리제’에 이어 ‘책임장관제’를 거론하며 후퇴하던 박 대통령 주변에선 이제 그런 목소리마저 실종된 지 오래다.
차례로 인사청문 절차를 마치고 있지만 정부조직법 개편을 둘러싸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아직 임명장을 받지 못해 ‘후보자’ 딱지를 떼지 못한 장관 후보자들 중에선 그나마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정도가 ‘실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두 사람 모두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인수위에서 당선인 대변인을 지낸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도 박 대통령의 일정을 수행하고 현장의 발언 등을 전하는 역할을 해왔다. 모두 박 당선인과 물리적 거리가 가장 가까웠던 인물들이다.
새누리당에선 당분간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서병수 사무총장 등 원조 친박 인사들에게 힘이 실릴 전망이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여야를 통틀어 특별한 적이 없는 황 대표는 대통령의 의지를 거스르지 않는 ‘비서형 여당 대표’로 평가된다.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대선 이후 황우여 대표가 한 게 도대체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정부 출범 과정의 진통이 계속되고, 김병관(국방)·황교안(법무) 등 문제적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자진사퇴론이 새누리당 지도부 내의 친이 혹은 비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황 대표는 여전히 “청문회를 열어봐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4월과 10월의 재보선 결과에 따라 여권 내에서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황 대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은 두텁다. 새누리당의 고위 당직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당·청 관계 모델은 아무도 자신에게 도전하지 않는 ‘지금 이대로’다. 황 대표 체제가 당분간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왕수석’ 노릇 하게 될 이정현내각과 여당이 주춤하는 사이 권력의 중심은 청와대로 이동했다. 그중에서도 허태열 비서실장, 이정현 정무수석이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3선 의원을 지낸 허 실장은 ‘섹스관광’ 등 부적절한 언행 논란과 동생의 공천 비리, 대필 의혹까지 인 복사 수준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파문 등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시대’의 핵심 요직인 청와대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박근혜의 입’으로 통해온 이정현 수석은 말 그대로 ‘왕수석’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부실한 정무 라인 탓에 정무수석 외에 특임장관을 따로 뒀지만, 새 정부는 특임장관을 폐지하고 국회를 상대하는 정무 기능을 정무수석실로 집중시켰다. 이 밖에 이 수석은 18대 국회의원 시절 자신을 보좌했던 음종환·이현진 전 보좌관을 각각 정무수석실과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앉히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박 대통령을 오랜 기간 보좌한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존재다.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그룹인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모두 청와대에 합류했다. 의원실 보좌진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웬만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보다 이들의 힘이 셌다. 이들은 ‘정치인 박근혜’의 눈과 귀였고, 손과 발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청와대 살림과 대통령의 일정, 메시지 등을 다시 담당하게 됐다. 인수위 국정기획분과 간사를 맡으며 부상한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정도가 새롭게 떠오른 실세로 꼽힌다. 공식적 역할은 맡지 않고 있지만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박 대통령의 ‘5인 공부모임’ 멤버였던 최외출 영남대 교수 등도 외곽의 조언 그룹으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내부에선 개각 등 인사 요인이 발생하면 박 대통령의 시선이 가장 먼저 이들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 |
결국 진용은 ‘충성’과 ‘순종’의 순도에 따라 짜이고 있다. 물론 미묘한 균열의 조짐도 보인다. 진앙지는 새누리당이다. 우선 4월 재보선에서 일찌감치 부산 영도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김무성 전 의원의 ‘화려한 복귀’ 여부에 지역 정치권뿐 아니라 여권 전체의 시선이 쏠려 있다. 한때 ‘친박의 좌장’으로까지 불렸던 김 전 의원은 2010년 세종시 논란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불화했다. 김 전 의원은 ‘정치인 박근혜’를 향해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과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박 대통령은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선언하며 결별했다. 지난해 4·11 총선에선 김 전 의원이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일부 친이 세력의 ‘독자 세력화’ 기획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당 잔류를 선언하며 여권의 분열을 막는 일등 공신이 됐고, 대선 과정에선 박근혜 캠프 총괄선거대책본부장으로 복귀해 ‘군기반장’을 자임하며 대선 승리를 진두지휘했다.
김 전 의원의 출마에 대해 청와대 실세로 부상한 허태열 비서실장은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의 맹주’를 둘러싼 경쟁이 불가피해진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국회의원 배지도 김 전 의원이 15대 국회에서 먼저 달았고, 허 실장은 16대에 와서야 국회의원이 됐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한나라당(현재의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2005년(김무성)과 2006년(허태열) 나란히 지내기도 했다. 당 최고위원에도 김 전 의원이 먼저 진출했다.
새누리당의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의 말이다. “정치적 비중으로 따지면 허태열 실장보다 김무성 전 의원이 우위라고 봐야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진으로 시작한 허 실장과,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배운 김무성 전 의원은 출발점이 다르고 서로를 마음속에서 인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상당히 미워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허 실장은 비서에 가깝고, 김 전 의원은 ‘자기 정치’에 대한 뜻이 있는 사람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김 전 의원이 재보선을 통해 복귀하더라도 박 대통령은 아마 허 실장에게 더 힘을 실어줄 것으로 봐요.” 이 밖에 오는 5월까지가 임기인 이한구 원내대표의 후임을 노리는 친박계 인사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최경환·서병수·홍문종·이주영 의원 등의 출마설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원내대표 진출을 노리는 서병수 사무총장은 최근 황우여 대표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지만 서 총장 쪽은 부인했다. ‘박근혜 시대’의 개막과 함께, 여권 내부의 ‘파워게임’도 이미 시작됐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국민이 바보로 보이나”…30만명 ‘김건희 특검’ 외쳤다
“윤-명태균 녹취에 확신”…전국서 모인 ‘김건희 특검’ 촛불 [현장]
해리스-트럼프, 7개 경합주 1~3%p 오차범위 내 ‘초박빙’
에르메스 상속자 ‘18조 주식’ 사라졌다…누가 가져갔나?
로제 아파트는 게임, 윤수일 아파트는 잠실, ‘난쏘공’ 아파트는?
거리 나온 이재명 “비상식·주술이 국정 흔들어…권력 심판하자” [현장]
노화 척도 ‘한 발 버티기’…60대, 30초는 버텨야
“보이저, 일어나!”…동면하던 ‘보이저 1호’ 43년 만에 깨웠다
이란, 이스라엘 보복하나…최고지도자 “압도적 대응” 경고
구급대원, 주검 옮기다 오열…“맙소사, 내 어머니가 분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