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시대’ 검찰의 입지는 독보적이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총동원해 정권의 전위를 자처했다. 그 권세는 박정희 정권이 사랑한 중앙정보부에 비견될 만했고, 그렇게 얻은 총애는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와 치안본부에 버금갔다.
조직 전체는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머리에 얹고 살았지만, 정치검사 몇몇은 승진을 거듭하며 영달을 이어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문민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포장한 검찰은 20여 년간 제국의 절정을 누리다가 어느 순간 몰락으로 치달았다. 박근혜 정부, ‘박통 시대’에는 누가 그 검찰을 대신하게 될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입에 달고 사는 경제민주화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경제민주화의 얼굴마담인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팽’시킨 전례에서 보듯, 경제민주화가 껍데기 수사라는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기업·재벌에 대한 일정한 압박은 불가피하다. 경제민주화 열망을 확인한 이상 보수 언론의 요구대로 공약은 공약일 뿐이라며 ‘쌩까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일이다. 박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나머지 48%의 욕망까지 끌어안는 제스처가 필요하다.
기업을 압박하고 움직이는 것은 감독기관, 과세기관, 수사기관이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국민 통합 액션을 위해서라도 골목상권 보호는 필요하고 재벌도 다스려야 한다. 대기업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수사는 맨 나중”이라고 했다. 기업과 국세청 사이의 소송을 맡고 있는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기업하는 사람들에게는 국세청이 검찰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고 했다. 형사처벌이라는 강압적 수단이 동원되는 검찰과 경찰은 가장 끝줄에 선다는 얘기다. 게다가 검찰은 현재 개혁 대상이지 누굴 개혁하는 데 앞장설 처지가 아니다. 결국 감독·과세 기관인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이 박근혜 정권 초기에 일정한 역할을 보장받으며 동시에 가시적인 성과까지 요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에 대해 박 당선인은 ‘투명한 세정과 세무조사의 공정성’을 강조한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국세청 개혁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읽히기도 한다. 복지예산 확보 역시 부자증세보다는 세원을 넓히는 데 방점이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수는 부족한데 예산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세원 확보가 고민”이라고 했다. 이래저래 국세청에 요구되는 역할이 많다는 얘기다.
반면 검찰 개혁 과정에서 국세청과 금감원이 가진 계좌 추적 권한, 공정위 전속고발권 등으로 개혁의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검찰과 달리 국세청, 금감원, 공정위 등은 개혁 대상으로 노출된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두드려 맞을 곳이 많다는 얘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도 “4대 권력기관 가운데 국세청은 가장 견제를 받지 않고 있다. 기업의 민주화, 시장의 민주화를 얘기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관련 감독기구 등의 민주화다. 본격적으로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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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통 시대,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역할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두 기관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선인 쪽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대선 막바지에 이르러 국정원 여직원의 대선 여론 조작 의혹이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16일 열린 3차 대선 후보 방송토론회에서 박 후보는 이 문제를 먼저 거론했다가 문재인 후보의 반격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수세에 몰렸다. 도우미로 나선 것은 경찰이었다. 경찰은 3차 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 “여론 조작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한 줄짜리 중간 수사 결과를 서둘러 발표했다. 이 발표는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장이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도 같은 날 밤 곧바로 야당 쪽을 비난하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박 후보의 승리로 대선이 끝나고 보름 뒤인 1월3일, 경찰은 뒤늦게 국정원 여직원의 여론 조작 정황이 일부 드러났다는 수사 내용을 알렸다.
국정원은 대놓고 활동하기가 애초에 불가능한 조직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사실상 무시됐지만 국가정보원법은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명확히 한정하고 있다. 대공, 대정부 전복, 방첩, 대테러, 국제 범죄조직 관련 정보 등만 수집할 수 있다. 민간인 사찰 등은 모조리 불법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박근혜 당선인은 아버지 시대의 중앙정보부를 보고 자랐다. 그 때문에 반대로 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권력에 붙은 정보기관의 힘 못지않게 그 폐해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국정원을 더 모질게 대할 것이라는 ‘우려’다. 경찰의 경우 검찰과의 수사권 조정이 예정돼 있어 정권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만큼 정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돼있기도 하다. 검찰에 가려 개혁 대상이라는 이미지가 크지 않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 못지않았던 경찰의 ‘부역’이 또다시 부각되면 수사권 조정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그럼에도, 여전히 정권이 믿을 것은 검찰이라는 말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분명히 이번에는 검찰도 바뀔 수밖에 없다”면서도 “새로운 권력은 항상 검찰 개혁을 외쳤지만 결론에 가서는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다. 일부 넘겨줄 것은 넘겨주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권력자 처지에서는 10만 명(경찰)을 관리하는 것보다 1만 명(검찰)을 관리하는 것이 훨씬 쉽다. 검찰을 버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경향도 감지된다. 검찰은 범죄첩보 수집 부서인 대검찰청 범정기획관실 소속 직원 규모를 일부 줄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전임 한상대 검찰총장 시절 일선 검찰청에서 파견받았던 직원들을 원대 복귀시키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검토할 검찰 개혁 사항과 맞물린 부분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검찰이 전면에 나설 경우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사법적으로 다시 풀어야 했던 지난 5년간의 소모적 과정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사법부에서 출구 찾으려는 흐름 커질 것법원 관계자는 “2016년 총선까지 3년 넘게 남은 상황에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행정부와 국회는 물론 수사기관까지 쥐게 됐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또다시 일방 독주 5년이 예상된다. 결국 사법부로 정치적 출구를 찾으려는 흐름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권의 전위에 나서는 것은 ‘세풍’이 낯설지 않은 국세청일까, 역시나 국정원일까, 뻔한 경찰일까, 또다시 검찰일까. 스스로 잘 생각해서 한발씩 뒤로 물러서자. 그게 국민이 살고 조직이 살고 정권도 사는 길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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