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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싸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원전, 천문학적 해체 비용과 폐기물 고려하면 경제성·안전성 무색… 대안에너지 친환경성과 고용 효과, 확장성에서 원전 압도
등록 2012-12-28 22:25 수정 2020-05-03 04:27

원자력발전이 시작된 1950년대, 원전을 홍보하는 문구 가운데 하나가 “너무 싸서 계산할 필요가 없다”(too cheap to meter)였다. 선전은 썩 잘 먹혀들었다. 원자로에 들어가는 1g의 우라늄 235가 석탄 3t과 맞먹는 에너지를 발생시키니, 효율성 면에서 원자력이 석탄보다 300만 배 높다는 단순 계산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의 경제성 문제는 핵 관련 시설 건설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 비용이 고려돼야 한다. 2004년 10월 전북 부 안 주민들이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백지화를 요구하며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다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원자력발전의 경제성 문제는 핵 관련 시설 건설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 비용이 고려돼야 한다. 2004년 10월 전북 부 안 주민들이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백지화를 요구하며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다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원전 확대론자들도 더는 경제성 안 내세워

원전이 다른 에너지원보다 싸다는 주장은 원자력발전이 시작된 지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까지도 원전 옹호론을 지탱하는 강력한 논거가 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원자력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원이란 주장까지 덧붙여졌다.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조차 2010년 2월 연설에서 “커져만 가는 에너지 수요와 기후변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원자력 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0년 펴낸 ‘전력생산비용’ 통계를 보면, 원자력이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물론 석탄·가스 등 화석에너지에 비해서도 생산비가 저렴한 것으로 나온다. 한국의 경우 1메가와트(MWh)당 비용이 석탄 66~68달러, 가스 91달러인 반면 원자력은 29~33달러 수준인데, 미국 역시 원자력(49달러)이 석유·석탄보다 20달러 이상 싼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상반된 통계도 있다. 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펴낸 보고서 ‘원자력발전의 미래’에는 원자력의 생산원가(6.7센트/1kWh)가 석탄(4.3센트)이나 가스 발전(4.1센트)보다 비싼 것으로 나온다. 이 대학이 2009년에 낸 보고서 역시 수치에 차이만 있을 뿐 원자력이 더 비싸다는 결론엔 변함이 없다. 흥미로운 대목은 보고서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원전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쓰였다는 사실이다. 원전 확대론자들도 자신이 원전을 옹호하는 근거로 원전의 경제성을 더 이상 내세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가별 발전 비용 차이를 비교한 2005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발전 비용은 해당 에너지원의 국내 자급률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스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독일·체코 등은 가스발전이 원자력발전에 비해 비싸지만, 석탄 생산량이 많은 미국·독일은 석탄화력발전이 원자력발전보다 저렴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원전의 경우 건설비와 대출이자율에 따라서도 가격경쟁력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원전 건설비와 대출이자는 전력 생산원가의 70~80%를 차지할 만큼 그 비중이 압도적이다. 2013년과 2014년 완공되는 신고리 3·4호기는 책정된 건설비만 6조4800억원인데, 같은 용량의 화력발전소보다 6~7배 비싼 수준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선 어떤 계산 방식으로 발전 원가를 산출하는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공개된 발전 원가를 둘러싸고 찬반 양쪽의 ‘숨은 비용’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942 기획연재

942 기획연재

해체 비용 발전소 1기당 1조원 추정

더 근본적인 쟁점은 사후 처리 비용이다. 원전은 전력을 생산하고 나면 불가피하게 사용후핵연료 같은 고준위 폐기물과 폐기물 여과 필터나 장갑·작업복 등 중저준위 폐기물이 나온다. 그뿐이 아니다. 수명을 다해 폐쇄된 원전은 그 자체로 거대한 폐기물이 된다. 이런 이유로 이중원 서울시립대 교수는 “원자력 에너지의 경제성은 투입된 일부 비용 대비 에너지 효율이 아니라, 전주기과정(Life Cycle)에 드는 비용 대비 에너지 효율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후 처리 비용에는 우선 발전 설비를 해체하고 방사성물질을 제거하는 비용이 포함되는데, 원자로의 형태에 따라 최대 10배, 해체 공법과 작업 방식 등에 따라 ±60%의 비용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식경제부는 원전 해체 비용을 발전소 1기당 3251억원(2003년 불변가격 기준)으로 추정하는데, 실제 비용은 1조원에 이를 것이란 주장도 만만찮다. 비용이 2003년 말을 기준으로 책정돼 있을 뿐 아니라 해체 기준이나 방식, 시기 등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정됐기 때문이다.

폐기물 처리 비용도 간단치 않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산출되는 고준위 폐기물은 1만t, 중·저준위 폐기물은 20만t 규모다. 원전을 가동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원전에 폐기물 처리 비용 적립금을 쌓도록 하고 있지만 이 비용만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전문가 대부분은 회의적이다. 결국엔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매년 국가 예산 2500억원이 원자력 연구·개발에 지출되고 있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1988년부터 20년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입된 연구·개발비(5500억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매년 전력기금에서 100억원이 원자력 홍보비로 사용되는 것도 논란거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1950~60년대 발전하기 시작한 원자력 기술은 국가 차원의 막대한 지원 없이는 서구 민주주의 산업국가에서 결코 유지될 수 없었고, 앞으로도 핑크빛 미래만 기대할 수 없게 됐다”(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는 진단도 나온다.

사고 피해까지 포함할 경우 원전의 경제성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메릴린치증권은 앞으로 2년간 도쿄전력이 부담할 손해보상 금액이 11조엔(약 149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일본경제연구센터(JCER)가 추산한 후쿠시마 사고 수습 비용은 20조엔(약 270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추산조차 어려운 환경 비용과 사회적 갈등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당장의 생산원가는 원자력이나 화석연료에 비해 높지만, 기술 수준의 가파른 상승과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생산원가가 빠르게 떨어지는 추세다. 매출 규모와 고용시장에 끼치는 파급력도 주목해야 한다. 2010년 국내 원자력 산업 분야의 매출액은 16조7590억원에 인력 분포는 2만3835명이다. 매출액이 8조780억원이었던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고용 인원이 1만3651명이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이 동반되면 경제적 규모는 빠르게 커진다. 녹색 일자리의 성장 잠재력을 고려하더라도, 원자력에서 재생에너지로의 방향 전환이 고용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원전보다 많은 전력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이런 진단의 정당성은 세계 에너지 산업의 동향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전세계적으로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총 전력 생산량의 13%를 차지하는데, 이는 1차 에너지 소비량의 5.5%를 충당하는 수준이다. 반면 총 전력 생산량의 19%를 차지하는 신재생에너지는 1차 에너지 소비량의 10%를 제공한다. 원전보다 현저히 많은 전력을 생산하며 산업 파급효과가 크고 환경 부담도 적은 에너지원을 이 나라가 마다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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