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닷새 남긴 2009년 마지막 일요일 저녁. 잘 나오던 KBS 화면이 로 바뀌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멀리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에 있습니다.” 생방송 기자회견에 등장한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가 400억달러(약 47조원) 규모의 UAE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 건설 사업을 따냈다는 소식을 직접 전했다. 일주일 뒤 그는 대통령 신년사에서 “협정이 체결되던 날, 부르튼 입술 사이로 ‘대한민국 국운이 열리고 있구나’ 하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 달 뒤, KBS는 까지 열었다.
입술이 부르틀 정도였다던 그의 활약상은 곧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확대재생산됐다. 사실상 사업 유치에 실패했다는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의 보고를 접한 이 대통령이 직접 UAE 왕세자에게 6차례 전화를 걸어 마음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는 게 협상 뒷이야기라며 소개됐다. MB는 사업 수주액을 10% 깎아 경쟁력을 확보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내렸단다. 대통령의 적극성과 전문성으로 한국형 원전(APR+) 수출의 물꼬가 트여 한국에 곧 ‘제2의 중동 붐’이 불어올 듯했다.
그러나 MB발 원전의 ‘장밋빛 미래’는 곧 ‘검은 의혹’으로 뒤바뀌었다. 정부가 원전 건설비의 전체 수주액 186억달러 가운데 100억달러(약 12조원)가량을 수출입은행을 통해 대출해주기로 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UAE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한국이 대출 상환 기간 28년 동안 비싼 금리로 돈을 빌려와 싼 금리로 UAE에 빌려줘야 해 막대한 손해를 볼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수출입은행이 약속한 100억달러의 대출금을 조달하지 못해, 2010년 말 1차 공사 기공식이 2011년 3월로 늦춰진 바 있다.
원전 사업을 따내려고 ‘특전사 파병’을 약속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은 원전 수주 발표 직전 ‘한국-아랍에미리트 간 포괄적 군사교류협정’(MOU)을 맺고 UAE에 특전사 훈련 병력 130명을 파견하기로 약속했다. 그는 2010년 11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나와 “특전사의 UAE 파병이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수출에 도움이 되도록 적극 협력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증언했다.
정부가 물불 안 가린 원전 비즈니스에 뛰어든 배경에는 이 대통령의 경력이 자리잡고 있다. UAE 원전 사업 컨소시엄을 보면, 주계약자인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현대건설,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등 오랫동안 국내 원전 사업을 주도해온 이들로 짜여 있다. 이 가운데 현대건설은 이 대통령이 근무할 당시, 국내 원전 27기 가운데 12기의 사업을 수주하거나 건설한 바 있다. 국내의 대표적 ‘핵마피아’ 출신인 이 대통령이 건설사 사장 시절을 떠올리며 모든 정부 부처를 동원해 원전 사업에 뛰어든 셈이다.
‘조직’을 위해 끝까지 충성하는 MB?이 대통령이 무리하게 사업 수주에 매달린 정황은 ‘위키리크스’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09년 11월 리처드 올슨 주UAE 아부다비 미국 대사가 작성한 비밀 전문에는 “한전 컨소시엄의 사업 수주가 유력하며, UAE 쪽이 결과 발표를 미루다가 최종 입찰 기회를 준 것은 3개(한국·프랑스·일본) 컨소시엄의 경쟁을 통해 입찰가를 낮춰보겠다는 속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왜 ‘손해 볼 장사’에 그토록 매달렸던 것일까. 국민을 위해서? 아니면 그의 조직을 위해서?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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