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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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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와 함께, 불법 참치잡이 어선을 잡아라

집어장치 등 이용한 마구잡이 참치 포획 감시하는 그린피스 에스페란자호에 타다…

팔라우 경찰과 함께 불법 포획 의심 선박에 오르며 ‘지속 가능한 참치’ 위해 남태평양 누빈 체험기
등록 2012-11-23 18:03 수정 2020-05-03 04:27

위도 04도30분5초(N), 경도 135도32분0초(E).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팔라우에서 320km가량 떨어진 열대 바다 어디쯤이다. 11월6일 오전 그린피스 탐사선 에스페란자호의 고속보트에 몸을 싣고 망망대해를 달렸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적도의 수면 위로 뭉게구름을 비집고 쏟아진 열대의 햇살이 잘게 반짝이며 부서졌다. 출렁이는 파도 위로 ‘77’이라는 숫자가 적힌 육중한 물체가 춤을 추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그것은 낡은 포탄 같았다. “저게 집어장치(FADs)예요!” 보트에 함께 탄 누군가 소리쳤다. 인근 바다엔 이런 집어장치가 4개 더 있었다.



선망어업에서 주로 사용되는 집어장치는 물고기를 대량으로 포획하기 위한 도구다. 집어장치는 작은 물고기들에겐 마치 쉴 수 있는 수초 같다. 작은 물고기들이 몰려들면, 이를 먹고 사는 더 큰 물고기들이 찾아오고, 마침내 먹이사슬의 상층에 있는 대형 어종까지 찾아드는데, 고기가 충분히 모였다 싶을 때 그물로 주위를 에워싸 건져올린다. 어선들이 노리는 것은 참치다.



집어장치 혼획량=11억 개 참치캔

보트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몸을 기울여 수면 아래를 바라보았다. 짙푸른 바다는 거친 파도에 단련된 다이버들에게만 그 신비한 광경을 허락했다. 집어장치 주위로 몰려든 참치방어·쥐치복떼 사이로 작은 장완흉상어가 유유히 물살을 가르고 있다. “여기는 팔라우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집어장치 사용은 법으로 금지돼 있어요.” 팔라우 해양경찰 얼 벤하트(34)가 알려줬다. 집어장치는 참치 통조림 원료인 가다랑어 등을 잡으려고 필리핀 어선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선망어업(거대한 그물로 물고기떼를 둘러싸 포획하는 어업방식)에서 주로 사용되는 집어장치는 빠른 시간 안에 참치떼 등을 대량으로 포획하기 위한 도구다. 집어장치는 작은 물고기들에겐 마치 쉴 수 있는 수초 같다. 작은 물고기들이 몰려들면, 이를 먹고 사는 더 큰 물고기들이 찾아오고, 마침내 먹이사슬의 상층에 있는 대형 어종까지 찾아드는데, 고기가 충분히 모였다 싶을 때 그물로 주위를 에워싸 건져올린다. 어선들이 노리는 것은 참치(가다랑어)다. 하지만 그물에 걸리는 건 참치뿐만이 아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상어·가오리·고래·바다거북 등이 함께 그물에 걸린다. 가다랑어와 함께 다니는 어린 눈다랑어나 황다랑어도 마찬가지다. 그린피스 자료를 보면, 어획량 10kg 가운데 2kg은 치어들이며 1kg은 다른 어종이다. 전세계적으로 집어장치 사용으로 인한 혼획량은 연간 18만2500t으로 11억 개의 참치캔에 들어가는 양과 맞먹는다. 혼획된 어종은 대부분 죽은 채로 다시 바다에 버려진다. 지난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남방참다랑어·대서양참다랑어·눈다랑어·황다랑어·날개다랑어 등 참치 8종 가운데 5종을 멸종 위기 위급·취약·근접 등급으로 분류했다. 이런 사정 탓에 팔라우 EEZ 및 인근 공해(‘공공의 바다’란 뜻으로 특정 국가의 영유권이나 배타권이 인정되지 않는 바다)상의 조업 활동을 관리하는 국제 기구인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는 7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3개월간은 공해상에서도 집어장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참치자원의 보존을 위해 한국·일본·미국 같은 주요 조업국들과 팔라우·미크로네시아 연방국 등 연안국으로 구성된 협의체다.

코뿔소를 닮은 또 다른 보트를 타고 있던 그린피스 해양 캠페이너(활동가)인 네덜란드 국적의 파라 오바이둘라(35)와 중국 국적의 추위언핑(33)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집어장치에 올라탄 그들이 다양한 언어가 적힌 현수막을 차례로 펼쳐들었다. 그중 하나는 한국어였다. ‘집어장치 사용을 중단하라.’ 우리가 먹는 참치김밥 속 통조림 참치도 집어장치를 사용해 잡아들인 참치가 주종이다.

이날은 에스페란자호가 팔라우 해상과 인근 섬나라 EEZ에 둘러싸인 공해 정찰에 나선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11월24일까지 3주간 이 지역에서 한국·대만·필리핀 등 각국의 참치잡이 어선들의 조업 활동을 관찰·기록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돌며 바다 수호 캠페인을 하고 있는 에스페란자호는 지난 9월 한국을 시작으로 대만·홍콩을 거쳐 팔라우로 향했다. 기자는 지난 11월3일 팔라우 말라칼섬 항구에 입항한 에스페란자호에 오른 뒤 일주일간 그린피스 활동가들과 함께 생활하며 태평양을 누볐다.

11월6일 팔라우 해상에서 발견된 집어장치의 바닷속 모습. 불법으로 설치된 집어장치 쪽으로 물고기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11월6일 팔라우 해상에서 발견된 집어장치의 바닷속 모습. 불법으로 설치된 집어장치 쪽으로 물고기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태평양 섬나라에 심각한 경제 타격

에스페란자호가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나라 팔라우로 향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5천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생겨났다는 팔라우는 ‘신들의 정원’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자랑한다. 수도 코로르를 비롯해 3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 쪽으로 한 걸음만 내디뎌도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육안으로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태평양의 작은 섬들이 그랬듯, 팔라우도 수탈의 역사를 피하지 못했다. 1899년 아시아 진출을 노리던 독일이 스페인으로부터 이 섬을 사들였다. 제1차 세계대전 뒤에는 일본에 되팔렸다. 팔라우 곳곳에서 한국인 징용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건 이런 역사적 배경 탓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았다. 독립국가가 된 건 1994년에 이르러서다. 식민지 역사는 끝났지만, 풍부한 바다자원을 빼앗기는 현실은 여전하다.

전세계인들이 먹는 참치의 60%가량이 중서부 태평양 지역에서 잡힌다. 한국의 참치 어획량 95%가량을 공급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참치 조업국이다. 팔라우 해상이나 인근 공해에서 ‘바다의 귀족’ 참치를 잡으려는 싹쓸이 조업이 늘어 원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그린피스 자료를 보면, 국외 어선들의 불법 조업으로 태평양 섬나라들은 해마다 약 1억3400만~4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11월2일 코로르에서 만난 존슨 토리비옹 팔라우 대통령은 호소했다. “불법 조업은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을 음식뿐만 아니라, 작은 섬 국가들에는 절박한 수익원을 빼앗는 일입니다.” 그날 팔라우 정부는 그린피스가 3주간 펼칠 조사 활동에 경찰과 어업감독관을 파견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공동 감시 협정에 서명했다.

정찰 첫날인 11월5일 이른 아침, 에스페란자호에 탑재된 헬리콥터가 인근 바다 정찰에 나섰다. 얼마 안 돼 대만 어선 한 척을 발견했다. 횟감용 참치를 잡는 배로, 팔라우 정부로부터 조업을 허가받은 어선이었다. 그러나 어족자원을 보호하려는 각종 규제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선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어선들은 간혹 이 해역에서 샥스핀을 노리고 상어를 몰래 잡기도 한다. 포획한 상어의 지느러미만 칼로 잘라낸 뒤 나머지는 바다에 버린다고 했다. 오후 2시쯤, 해양 캠페이너들과 팔라우 경찰·어업감독관이 보트를 타고 나가 어선에 올라탔다. 선적은 대만이었지만 조업 중인 어부 7명은 인도네시아인이었다. 두 다리를 펴고 쉬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911호 표지이야기가 떠올랐다. 한국인들로부터 성희롱과 임금착취를 당한 사조오양의 동남아 출신 선원들 이야기였다. 기사가 다룬 어선들도 참치를 잡았다.

팔라우 정부 어업감독관 리미르크 카토상(48)이 자를 들었다. 대만 어선이 잡아 보관 중인 눈다랑어와 황다랑어가 포획 가능 수치를 넘었는지 측정하려는 것이다. 튼실하게 차오른 눈다랑어·황다랑어는 1m가 훌쩍 넘어 보였다. 별다른 불법 조업 증거가 발견되진 않았다. 대신, 팔라우 EEZ 안에서 누군가 불법 설치한 집어장치를 봤다는 제보를 선장으로부터 들었다. 다음날 5개의 집어장치는 이런 과정을 통해 발견한 것이었다.

해양 캠페이너인 파라 오바이둘라(오른쪽)와 추위언핑이 집어장치 위에 올라 ‘집어장치 설치 중단’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해양 캠페이너인 파라 오바이둘라(오른쪽)와 추위언핑이 집어장치 위에 올라 ‘집어장치 설치 중단’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지구 바다 지키는 20개국 시민

팔라우 해양경찰인 얼 벤하트가 말했다. “10년 전 동네 바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물고기들 수가 눈에 띄게 줄었어요. 불법 조업 탓이죠.” 팔라우 해역에 몰래 들어와 물고기를 잡다 공해로 도망치는 어선도 적지 않다고 그는 귀띔했다. 팔라우 사람들은 연근해에서 잡히는 참치 대신, 다른 나라에서 가공한 참치 통조림을 먹어야 하는 아이러니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벤하트가 해머를 들어 집어장치를 내리쳤다. 구멍이 뚫린 집어장치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에스페란자호에선 그린피스 활동가뿐 아니라 항해사·갑판원·엔지니어·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생활한다. 이번 항해에는 기자를 포함해 34명이 승선했다. 맡은 역할은 저마다 다르지만, 배를 탄 목적은 하나다. 집어장치를 제거한 날 저녁, 식사를 하는 장소인 ‘메스룸’에서 전체 회의가 열렸다. 지금까지의 활동 내용과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하려는 자리였다. 이번 캠페인의 리더 격인 파라 오바이둘라가 앞에 나섰다. “5개의 집어장치를 발견해 오늘 2개를 제거했습니다. 내일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릴 것입니다.” 소식을 들은 선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에스페란자호에 승선한 34명의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각자의 국적을 셈해보니 20개나 됐다. 이쯤 되면 배 안은 작은 지구다. 선원 가운데 가장 경험이 많은 미국인 엔지니어 마크 데포눅스는 1953년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인근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군인이었다. 바닷가에서 쓰다 버려진 무기를 줍는 것이 어린 시절 놀이 중 하나였단다. 산을 타며 가구를 만들어 생활하던 그는, 1987년 그린피스와 연을 맺었다. 당시 그린피스는 남극에 기지를 건설하고 환경보호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재난구조 교육을 했다. 이후 그린피스 탐사선을 타고 셀 수 없이 많은 나라를 떠돌았다. 유랑민 생활이 피곤하진 않을까. “다양한 문화를 만나는 게 즐거워요.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이런 활동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배 안에서 사람들은 틈틈이 캠페인에 사용할 현수막(배너)을 만들었다. 노란색 천에 들어갈 글자 윤곽을 펜으로 그리고 그 위에 붓으로 검은색을 칠한다. 쭈그리고 앉아 현수막을 만들던 사람들 중에 는 한국어 통역 자원봉사자 김가림(32)씨도 있다. 기자를 제외하고 에스페란자호에 승선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한국 어선을 만날 때는 교신을 돕기도 한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건축회사에 다녔다고 했다. 그린피스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한국에 돌아온 지난해부터다. “대학에서 인테리어를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에코 디자인에 관심이 생겼죠. 그러다 원전 등 환경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그린피스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배를 타기 전 팔라우에 머물며 그린피스 활동을 해야 할 이유를 한 가지 더 찾았다. “스노클링을 하며 팔라우 바다를 관찰했어요. 사람 손이 적게 닿는 곳엔 산호와 물고기가 많은데, 사람이 많이 가는 곳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937호 특집

937호 특집

그물에 문제 있어도 감독 못해

집어장치가 가라앉은 바다를 뒤로하고 다시 항해가 시작됐다. 11월6일 오후, 배는 팔라우 남동쪽에 위치한 공해상에 진입했다. 중서부태평양의 4개 포켓 공해 가운데 1번으로 불리는 곳이다. 잔뜩 낀 먹구름이 비를 뿌려대던 늦은 오후였다. 갑자기 조정실(브리지)이 부산해졌다. 조업 중인 필리핀 어선 한 척이 발견된 것이다. 필리핀 국적의 크리스티나 니타판(27)이 수화기를 들고 필리핀어로 어선과 교신을 시도했다. 배에 몇 명이 타고 있는지, 어떤 어종을 잡고 있는지, 회사 이름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배는 참치자원 보존을 위해 선망어업이 금지된 이 지역 공해에서 예외적으로 조업을 허가받은 36척의 필리핀 어선 가운데 하나였다.

11월8일 오전, 집어장치를 제거할 때처럼 구명조끼를 입고 다시 보트에 올랐다. 이틀 전 만났던 필리핀 어선에 승선해 조업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이 배는 자동추적장치·국제어업허가서·어업감독관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유난히 거친 파도에 보트가 공중부양했다 하강하기를 반복했다. 꼬리뼈가 통증으로 얼얼해졌다. 배는 그린피스 보트 2개를 합쳐놓은 크기였다. 작고 지저분한 배 위에는 2개의 거대한 집어장치와 그물, 밧줄 뭉텅이가 빼곡했다. 갑판 위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린피스 활동가들을 구경하러 나온 선원들이 줄잡아 10명은 넘어 보였다. 하나같이 순박한 얼굴이었다. 저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누울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속이 울렁거렸다.

‘왜 여기서 조업을 하느냐’는 물음에 ‘필리핀 근해에는 참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팔라우 어업감독관 리미르크 카토상은 이들이 사용하는 그물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물코가 너무 촘촘하다는 것이었다. “저렇게 촘촘한 그물을 사용하면 허가받은 참치뿐 아니라 다른 작은 어종들이 다 걸려들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공해는 팔라우 정부의 감독 권한이 미치지 않는다. 필리핀 어선으로부터 승선해도 좋다는 동의를 얻은 뒤에야 조사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린피스는 일부 어선에 예외적으로 공해를 개방하는 규정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항구로 돌아와 잡은 물고기를 하역하도록 한 규정을 지키지 않고, 해상에서 몰래 다른 배로 물고기를 옮겨 실은 뒤 제한 어획량을 초과하지 않은 것처럼 속이는 사례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11월5일 팔라우 해상에서 참치 조업을 하던 대만 어선에 오른 어업감독관 리미르크 카토 상이 황다랑어의 길이를 측정하고 있다. 11월6일 팔라우 해양경찰 얼 벤하트가 자국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불법 설치된 집어장치를 망치로 부수고 있다. 일과를 마친 11월5일 밤, 에스페란자호 선원들과 활동가들이 항해 중에 사용할 다양한 언어로 된 배너를 손수 만들고 있다(왼쪽부터).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제공, 박현정 기자

11월5일 팔라우 해상에서 참치 조업을 하던 대만 어선에 오른 어업감독관 리미르크 카토 상이 황다랑어의 길이를 측정하고 있다. 11월6일 팔라우 해양경찰 얼 벤하트가 자국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불법 설치된 집어장치를 망치로 부수고 있다. 일과를 마친 11월5일 밤, 에스페란자호 선원들과 활동가들이 항해 중에 사용할 다양한 언어로 된 배너를 손수 만들고 있다(왼쪽부터).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제공, 박현정 기자

그린피스는 지난 9월 한국 3대 참치 통조림 브랜드인 동원·사조·오뚜기의 참치잡이에 대해 지속 가능성을 평가해 발표했다. 세 회사 가운데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성이 높음’을 뜻하는 ‘그린’(green) 등급을 받은 곳은 없다. 특히 국내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 동원F&B는 설문에 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집어장치를 사용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한국 업체, 지속 가능성 평가 낮아

이 해역 공해상의 조업 활동을 관리하는 건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다. 11월24일 정찰 활동을 마치는 에스페란자호는 조사 결과를 갖고 이번 캠페인의 최종 목적지인 필리핀으로 향한다. 12월2∼6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WCPF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린피스는 총회에서 △선망어선 수 및 어획량 감축 △집어장치 사용 전면 금지 △공해에서 전면적 어업 금지 △독립적인 어업감독관 승선 등 규제 시스템 강화를 위원회 쪽에 촉구할 예정이다. 그린피스의 해양 캠페이너 추위언핑은 “한국 정부는 집어장치 사용 금지엔 찬성하고 있지만, 공해 폐쇄나 선망어선 어획 쿼터 감축 등은 지지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기자가 에스페란자호를 떠난 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명백한 불법 조업 현장을 포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해상에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어선 3척이 WCPFC 소속이 아닌 캄보디아 국적의 운반선에 불법적으로 가다랑어와 황다랑어를 옮겨 싣는 게 발견됐다. 필리핀·인도네시아 어선은 WCPFC 규정을 어겼고, 캄보디아 운반선은 규제와 감독을 받지 않은 불법 조업이다. 사실상의 해적 행위를 한 셈이다.

참치 싹쓸이 조업으로 해양생태계가 파괴된다는 우려가 커지자, 최근 유럽 등에선 윤리적으로 참치를 소비하자는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무분별한 대량 포획 방식으로 잡지 않는 ‘지속 가능한 참치’(Sustainable Tuna)를 먹자는 것이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한정희(34) 해양 캠페이너는 “영국 등 서구에서는 참치 통조림 업체들이 집어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참치만 원료로 사용하겠다는 친환경 정책을 세워 공개 선언을 하는 등 지속 가능한 참치 공급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거대 식료품 공급업체 세이프웨이도 올해 초 집어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잡은 참치를 통조림 원료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린피스는 지난 9월 한국 3대 참치 통조림 브랜드인 동원·사조·오뚜기의 참치잡이에 대해 지속 가능성을 평가해 발표했다. 세 회사 가운데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성이 높음’을 뜻하는 ‘그린’(green) 등급을 받은 곳은 없다. 특히 국내 시장점유율 50%가 넘는 동원F&B는 설문에 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집어장치를 사용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오뚜기는 집어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사조는 자사 홈페이지에 지속 가능성 정책을 게시해놓았지만 집어장치 사용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동원F&B는 당장 집어장치 사용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태도다. 회사 관계자는 “모든 업체가 사용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중국·대만 업체들과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당장 집어장치를 포기해 어획량이 줄어들면 기업 운영이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런 물고기를 먹는 것은 정당할까?”

에스페란자호에서 헬기를 타고 팔라우로 귀환하기 하루 전인 11월9일 밤, 기자는 칠흑같이 어두운 뱃머리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무선 설비 담당 닐 브루스터(48)와 바다를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브루스터는 이날 오전 기자가 올라탔던 필리핀 어선 이야기를 꺼냈다. 심한 악취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던 배다. “그 선원들 기억하지요? 당신이라면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간 일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먹는 것은 과연 정당할까요?” 침묵하던 수면 위로 섬광이 스쳤다. 배의 움직임에 자극받은 플랑크톤떼가 반사적으로 뿜어내는 빛이라고 했다.

팔라우=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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