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2기, 담담함으로 다가온다. 4년 전은 설렘이었다. 기대가 컸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지만, 워싱턴에서 훈풍이 불어올 줄 알았다. 그러나 4년이 흘렀을 때,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했다. 그래도 롬니가 되는 것보다 낫겠지. 그럴 거야. 겨우 안도하기엔 우리를 둘러싼 정세가 한가롭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에게 남긴 재앙적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 평화와 공동 번영의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기대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말한다. 결국 문제는 한국의 대선이라고. 과연 한-미 양국에서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엇박자가 아니라, 새로운 감동의 화음을 낼 수 있을까?
2000년 남-북-미 삼각관계 완벽한 선순환
탈냉전 이후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이 화음을 낸 것은 겨우 3년에 불과하다. 바로 1998년에서 2000년 클린턴-김대중 조합이었다. 한반도 역사에서 남-북-미 삼각관계가 그야말로 완벽한 선순환을 이룬 3년이었다. 2000년 그해가 절정이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했고, 조(북)-미 공동선언,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이 이루어졌다.
김영삼 정부 때는 어땠을까? ‘엇박자’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이 그때다. 클린턴 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협상을 할 때, 김영삼 정부는 국내 정치의 시각에서 냉탕과 온탕을 넘나들었다. 제네바 합의 직전에 김영삼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미국이 북한에 속고 있다”고 말하고, 당시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5년을 그렇게 엇박자로 잃어버렸다.
2001년부터 시작된 부시 8년도 마찬가지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순항하던 한반도는 부시의 등장으로 폭풍을 만났다. 그 어려웠던 2001년부터의 2년이 침몰하지 않은 것은 김대중 정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화 자체를 보상으로 간주하는 듣도 보도 못한 네오콘의 세계에서도 금강산관광을 지켜냈고, 개성공단과 철도·도로 연결이라는 ‘평화회랑’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소리가 날 정도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다행스럽게 부시가 말년에 이념외교에서 현실외교로 정신을 차렸을 때, 2차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한-미 양국의 합창에서 주인공은 한국이었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0년의 뜨거웠던 여름도 사실, 김대중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설득해서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어낸 데 기인한다. 부시 8년을 버틴 힘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확고한 남북관계 개선 의지 때문이었다.
오바마-이명박 정부의 조합을 평가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물론 오바마 1기 외교는 험난했다. 부시가 남겨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습하고,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헤쳐나가며,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야 했다. 북핵 문제에 관한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고, 적극적인 관여도 하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을 방관하며,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경제적 실리를 챙겼다.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힘이 약화돼, 이명박 정부의 외교적 자율성이 커진 탓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부정적 방향으로 행사했다. 만약 오바마-정동영 조합이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오바마와 함께 합창할 사람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미-중 관계가 변수다.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힘이 부딪치고 있다. 오바마 2기도 1기 때 설정한 아시아 중시 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아시아가 갖고 있는 경제력을 주목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힘을 견제하려는 전략이다. 한-미 FTA를 기반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밀어붙일 것이고, 버마(미얀마)를 비롯한 중국의 접경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며, 군사적 차원에서 대중 억지를 지속할 것이다.
미-중 협력 공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물론 오바마의 동아시아 전략 추진에 변수도 있다. 바로 영토분쟁이다. 현재 일본 정치의 흐름으로 보면, 내년 아베 신조의 자민당이 집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거사나 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 새롭게 출범하는 시진핑 체제도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영토를 둘러싼 중-일 관계의 대립 상황에서 미국이 지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독도 문제는 결국 한-미-일 삼국의 협력으로 중국을 억지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을 좌초시키는 핵심 변수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이 성공하려면 냉전시대 미국이 만든 전후체제의 유산을 극복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북핵 문제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도 사실 전후체제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오바마 1기의 무책임한 ‘전략적 인내’가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가? 북한의 핵능력만 강화되었고, 북-중 관계의 밀착을 초래했으며, 미국의 동북아시아 외교력만 약화시켰다.
주요 2개국(G2) 시대, 우리 선택은 무엇인가? 미-중 양국의 대립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양국의 협력 공간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외교적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안정적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해서, 더 이상 한반도가 강대국의 패권 경쟁의 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13년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여전히 한반도에서 전쟁은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이것을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게 우리 시대의 과제다. 평화로운 한반도가 미국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전략과 의지를 가진 대통령이 필요하다.
미국 대선에서도 한국 대선에서도 외교는 실종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선거에서 외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 그러나 집권하면 대통령의 능력이 가장 확실하게 발휘되는 영역이 외교다. 한국 대선주자들의 통일·외교·안보 공약이 비슷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비극이다. 공약이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미래는 현실의 연장이다. 일찍이 프로이트가 지적했지만,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것을 꿈꿀 수 없다. 남북관계의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제시하지 않고 어떻게 미래를 말하는가?
지체된 밀레니엄의 새 역사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와 동북아 외교를 망칠 때, 가만있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야권의 공약에 편승하려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 야권 주자들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튼튼한 안보를 강조하지만, 그것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양립할 것인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2012년의 선택은 탈냉전 이후 처음으로 한-미 양국이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화음을 만들어낼 역사적 기회다. 다시 엇박자로 세월을 낭비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지체된 밀레니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보자. 제발.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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