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방송 3사에서 줄기차게 쏟아내는 토론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며, 정치·경제·사회 현안에 아주 무지하지 않으면서, 거기에 혈압 돋는 말을 100분 정도 참아낼 수 있는 약간의 인내심만 있으면 된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토론에서 나왔던 말을 자기 말인 양 복기해낼 수 있는 기억력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에서 토론의 결정적 장면을 복기해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토론 코멘터리’다. 대상은 11월6일 밤에 진행된 MBC . 토론 주제는 ‘12월 대선, 필승 전략은 무엇인가’였다. 처절한 토론에서 떨어져나간 논객들의 수급(首級)을 소설가 서해성씨와 기자들이 대신 거둬들이는 자리였다. 토론 이튿날 100분짜리 프로그램을 다시 보며 동시에 떠들자니 참 힘들었다. 토론에 참여했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이인영 민주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 송호창 안철수 후보 공동선대본부장의 직접 코멘터리도 담았다. 경남도지사 보궐선거 새누리당 후보인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깜짝 멘트는 덤이다.
재미있는 토론은 사람을 끌어모은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방송 토론회를 보려고 서울역 대합실 TV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저런 사람이 사실은 위험하다”1부 패널로 이혜훈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 부위원장과 이철희 소장이 맞붙었다.
서해성(이하 서) 선거 사상 최초로 토론회를 중계하게 됐다. 술집에서는 다들 이렇게 보지 않나. 정치 소비자, 토론 소비자 처지에서 토론을 중계하자는 취지다. 미디어 비평 겸 토론 비평 겸 인물 비평 겸 잡소리 정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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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하 기) 두 사람을 평가해달라.
서 이철희 소장의 장점은 실무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말할 때 다른 사람보다 구체적인 예증이 많다. 그런 데서 나오는 힘이 있다. 목소리 톤은 높지 않지만 목적이 분명하다. 이혜훈 부위원장은 새누리당으로 간 사람 중에서 조금 아까운 사람이다. 공부를 많이 했다. 말을 할 때는 똑똑한데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은 합리적이지 않다. 홍준표가 떠난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사실상 박 후보는 대변인이 없다. 워낙 언어를 절약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혜훈)이 나와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TV 이철희 “단일화를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당장 밀실정략이라고 정해놓는 것은 과도하다.”936호 특집1 s1
서 단일화는 새누리당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단일화가 두려우니까 비판하는 거다. 공포를 느끼는 골목 강아지가 심하게 짖는다. 그걸 이 소장이 완곡히 얘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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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이 소장처럼 ‘그쪽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식의 화법이 시청자에게 나름 먹히는 화법이라고 한다.
TV 이혜훈 “단일화는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가치가 다른 분들끼리 밀실에서….”서 새누리당의 전형적인 말의 프레임이다. 실제 밀실에서 이뤄진 게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2주 동안 단일화될 때까지 밀실이라는 말을 계속 쓸 것이다. 이른바 진보개혁 진영이 프레임 싸움에서 늘 진다. 프레임을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비열하지 못해서 그렇다.
TV 이철희 “홍준표 경남도지사 후보가 ‘너무 밋밋한 선거를 하고 있다’며 새누리당 전략을 지적한 것에 공감한다.”서 홍준표 후보한테 전화해보자. (전화 연결) 박 후보가 정치개혁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홍준표 박근혜한테 물어봐라~. (통화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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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오늘 너무 편파 중계다.
서 이 부위원장은 새누리당에서 드물게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언설 구조를 가진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 사실은 위험하다. 중립지대에 있는 시청자는 혹할 수 있다.
기 토론자들의 제스처는 어떤가?
서 토론에서 손은 제2의 얼굴이다. 진중권은 손을 앞으로 내치는 스타일이다.
기 목을 치듯?
서 진중권의 손의 각도가 가장 치열한 각도다. 하하.
기 박 후보는 토론 경험이 많을 텐데.
서 박 후보가 ‘선거의 여왕’이라고 하는데, 사실 가장 중요한 자기 선거는 지지 않았나.
TV 이혜훈 “여성 리더십이 유약한 리더십이 아니다. 갈등을 조정하고 포용한다고 해서 연약하다고 하면….”서 박 후보가 언제부터 갈등 조절자였나. 갈등의 주범, 갈등 유발자였다. 소통도 없었다. 이게 바로 TV 토론의 맹점이다. 본인이 안 나오고 다른 사람이 나와서는 갈등 조정자라는 인상을 만들어주고 있다. 누구나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데. 박 후보는 가장 가부장적인 정치인이다. 어떤 말도 토론도 없고 지시와 명령만 하는 사람이다. 그걸 바로 남성적 권력이라고 부른다. 이럴 때 이 소장이 치고 나와야 했는데. 이 소장과 통화해보자. (전화 연결) 이혜훈 부위원장 어땠나?
이철희 간단치 않았다. 상당히 전투적이고 논리도 있고. 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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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호 특집1 s2
기 이번 토론자들은 어떤가?
서 토론은 상당 부분 순발력이다. 번트를 홈런처럼 쳐야 한다. 이인영 위원장은 정직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이런 기준에서는 토론 달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그렇기 때문에 토론에서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 김진 위원은 철저하게 일방적인 논거를 들이댄다. 타인이 봐도 합리적이어야 하는데, 김 위원의 언어 구조는 그런 면에서 합리적으로 보기 어렵다.
TV 김진 “단일화는 정치 선진국에도 없고 정치 교과서에도 없는 편법이다.”서 한국에서 단일화는 거대한 파쇼 세력, 기득권 세력이 있는 한 언제나 요구되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자의 요구다. 제도적으로 결선투표도 없으니….
TV 김진 “정치권력과 시민사회권력의 결합” 비판.서 새누리당은 계속 시민사회 세력과 전통 야당세력을 분리하려고 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영선-박원순 결합 구조가 가장 중요한 모델이었다. 새누리당은 그때의 실패 경험이 가장 두려운 것이다. 새누리당은 앞으로도 그 틈을 벌리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다.
기 김 위원은 다른 토론에서 했던 말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한다.
서 아는 사람한테는 별 의미 없게 들리는 내용이다. 하지만 토론에 나갈 때마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좋다. 김 위원은 토론 자체를 프로파간다로 활용하고 있다. 보수우파 이론을 계속 대중에게 서비스하는 것이다. 신문에 칼럼으로 쓰고 이 방송 저 방송에서 같은 논리를 반복한다. 지지세력들이 저 논리를 재현해 다시 사용하게 하도록 하려는 의도다. 김 위원이 그런 면에서 토론을 잘하고 있다.
기 처음으로 공정한 평가를 하는 것 같다.
서 스킬이 좋다고 했지, 저 말이 옳다고 한 건 아니다.
TV 김진 “정당 후보가 여론조사로 무소속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서 의제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표본조사 방식을 다양하게 하면 된다. 둘이 만나 한쪽이 양보하는 방식보다는 훨씬 낫다. 누가 되는지는 그야말로 국민의 뜻이고 주권자의 뜻이다. 김 위원이 저리 말하는 것은 정통 민주당 세력의 이탈을 끌어내려는 의도다.
기 야당 걱정을 너무 많이 해준다.
TV 김진 “문재인-안철수 세계 복싱 타이틀매치가 벌어졌다. 정당 후보로 단일화돼야 정상 아닌가.”서 비유 자체가 틀렸다. 권투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있지만, 이번 단일화는 둘 다 승자가 될 수 있는 상태로 가자는 것이다. 질 것 같아서 단일화한다기보다 둘로 나뉘어 싸울 이유가 없어서다. 승자만을 가리는 권투가 아니다. 두 에너지를 합치는 과정이다. 이 위원장은 계속 방어밖에 할 수 없다. 김 위원은 새누리당을 대표해서 나온 게 아니니 이 위원장이 공격을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이 위원장에게 불리한 게임이다. 감정적으로 말리지 않은 것은 잘했는데, 한 번쯤 공격을 했으면 좋았겠다.
기 김 위원의 공격에 어떤 식으로 반격하면 좋을까?
서 민주당을 그렇게 사랑하는 줄 몰랐다. 입당하라. 하하. 이 위원장과 전화 통화를 해보자. (전화 연결) 김 위원과의 토론은 어땠나?
이인영 토론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헝클어져버린다. 그래서 내 스타일로 차분하게 나갔다. 상대방이 너무 파이팅으로 나오면 아웃복싱을 하고, 상대가 조용조용하면 내 쪽에서 가끔 골 지르는 식이다. 유시민식 토론이 좋다면 하겠는데, 나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상대에게 치명적이지 않은 칼”936호 특집1 s3
기 송 본부장이 얼굴로는 토론 1등인데. 하하. 목 교수가 청문회처럼 몰아가고 있다.
서 토론이 아니라는 거다. 자기 말만 하고 있다. 타자가 공을 치려고 하는데 투수가 계속 물어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데 말을 끊고 계속 질문하지 않나.
TV 사회자인 신동호 아나운서 “오늘 취지는 캠프 쪽 말을 충분히 듣는 것”이라며 목 교수 질문 제지.서 토론이 안 뜨겁다. 온도가 낮다. 온도가 낮으면 빵이 안 익는다. 질문자는 마치 간호사가 혈액을 채취하듯 혈관을 잘 찾아야 하는데 지금은 엉덩이에 바늘을 꽂으며 피를 뽑자는 격이다.
기 엉덩이에서는 피가 안 나오나?
서 나오기는 할 텐데 한 이틀 걸리겠지. 내용을 떠나 저런 식이면 채널이 돌아가버린다. 진행자가 개입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TV 토론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재미없으면 돌린다. 목 교수는 상대가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질문만 골라서 하고 있다. 승부차기를 하는데 슛이 전혀 위력적이지 않다. 송호창 골키퍼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간다. 칼은 들었으나 상대방에게 치명적이지 않은 칼, 접어지는 칼이다. 송 본부장은 짜증은 났겠지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화 한번 해보자. (전화 연결) 계속 질문만 받은 건데 방어를 잘했다고 생각하나?
송호창 방어? 전쟁에 방어가 어딨다고. 내 목을 걸고 하는 거다. 토론도 목을 걸고 임했다.
기 진중권·전원책 스타일을 부러워한 적이 있나?
송호창 없다.
서 술집에서 50명이 떠들어도 상대방의 말이 들리는 것은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은 기획은 재미있었지만 토론 온도가 체온에 이르지 못했다. 좋은 장비를 들고 중계하러 갔는데 동네 축구였던 셈이다.
진행·정리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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