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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일이 무거운 당신에게 굶기를 권한다. 지난 9월7일 출간된 이 11월1일까지 6만 부 넘게 팔렸다. 하루 한 끼를 먹으라는 이 책에 이어 10월25일에는 이라는 책이 나왔다. 두 책은 모두 일본의 의학박사들이 쓴 책이며, 장수 비결은 굶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건강을 위해 하루 한 끼를 다짐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카페 ‘1일1식’ 회원이 1800명을 넘었다. 건강하게 살려고 차라리 숟가락을 놓는 사람들이다.
배고픔의 힘, ‘공복력’을 강조하는 주장은 체온 건강법이나 해독 프로그램처럼 입증되기 어려운 수다한 건강 이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끼니 열풍이 곧 식는다 하더라도 ‘사람은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진작부터 금이 가고 있었다. 사람은 밥을 만들고 밥은 사람을 만든다. 오랫동안 하루 한 끼니를 실천해온 사람들이 있다. 하루 세 끼가 만든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다.
“책상물림에게 하루 세 끼는 과분하다”
한국모바일캐스트 박세환(48) 대표는 2년 전부터 하루 한 끼만 먹어왔다. 어느 날 문득 93kg인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건강을 걱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가 혈압, 당뇨가 있는 걸로 봐서 그도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우선 탄수화물부터 멀리 했고, 먹는 양이 줄자 점심 없는 점심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점심 금단현상을 겪었다”고 말한다. 오후 2시쯤 되면 어지럼증을 느끼고 말할 기운도 없었다. 당뇨병 환자들이 겪는 저혈당 증세처럼 손발이 저리고 정신이 몽롱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100년 넘게 내려온 삼시세끼의 습관은 빨리 잊혔다. 일주일이 지나자 오히려 점심을 먹으면 정신이 흐릿해지고 속이 답답해 몸과 마음이 터질 듯한 상태에 시달려야 했다. 2년 전에 비해 10kg이 줄어든 몸무게는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시 세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끼니를 줄이자마자 몸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음식이 들어오는 것을 거북해했다. 과하게 먹으면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명경지수라고 해야 하나요. 굳이 참선이나 묵상을 하지 않아도 정신이 맑아지고 가벼워집니다.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을 만큼 마음이 항시 평안하지요.”
박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2005년 침례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교회를 맡지 않고 기관 목사로 활동해왔다. 2008년부터 모바일 회사를 차려 교회나 마을 커뮤니티, 학교를 위해 공동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일을 해왔다. 그가 하루 한 끼를 통해 얻은 묵상의 내용은 이렇다. “식탐도 탐욕인 것이고 탐욕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 결국 육체 노동하지 않고 책상물림으로 앉아 있는 이들에게 하루 세끼는 과분하다는 생각, 소비하지도 못하면서 과하게 섭취하는 일은 장기적인 자살이라는 느낌이지요.” 한국 사람들은 하루에 평균 1505g의 음식을 먹고, 2050kcal 열량을 얻는다.() 일년새 하루 150g 넘게 먹는 양을 늘렸다. 영양 부족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영양과잉 상태인 사람들은 2010년을 기준으로 20%가 넘는다. 박 대표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내가 활동하는 양만큼만 몸에 채워넣는 것이고, 그건 내 삶의 다른 측면도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며 “불요불급하지 않다면 쌓아놓거나 과잉소비할 이유가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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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사는 번역가 김석희(62)씨도 20년 전 단식을 마치고 나서 하루 한 끼를 시작했다. 위장 질환으로 고생하던 그는 ‘속을 비워서 새살이 돋게 하는 게 좋겠다’는 권유에 따라 단식을 했고, 보식 기간을 거쳐 내친 김에 끼니를 줄였다. 속을 비울수록 속이 편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끼니 때마다 챙겨 먹는 수고를 덜어낸 생활의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요리’라는 말은 먹는 준비를 위한 번거로운 노동을 기술적으로 섭취하는 말과 다름없다. 번역이란 같은 일을 하는 부인 조혜경씨와 살며 부부를 위해 생활 습관을 간편하고 소박하게 단장할 이유도 있었다. 밤새워 일하고 새벽 4~5시에 잠드는 그는 정오쯤 일어나서 오후 4시쯤 식사를 한다. 한 시간쯤 산책을 하고 책상 앞에 앉으면 속이 훤하고 머리가 맑아진다. ‘가뜩이나 육지 사람에게는 궁금한 먹을거리들이 많은 제주에서 살면서 끼니를 줄이는 게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사람이 세끼를 다 먹는다고 해서 모두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한 끼만 먹기 때문에 둘만의 식사에 성의를 다한다. 어제 저녁은 제철을 맞은 갈치와 고등어에 김치, 멸치볶음, 오이지를 차려 먹었다. 하루 단 한 끼뿐이기 때문에 상차리는 것도 번거롭기보다는 귀하고 즐거운 노동이 되었다.
하루 한 끼만 먹는다면 두 끼는 잃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거꾸로 두 끼를 버리고 온전한 한 끼를 얻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종교사상가 유영모씨는 세끼를 합쳐서 저녁을 먹는다는 뜻에서 호를 ‘다석(多夕·많은 저녁)’이라고 정했다. 그는 “하루 세끼 음식을 먹는 것은 짐승의 식사법이요, 두 끼는 사람의 식사, 한 끼 음식이 신선의 식사법”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1941년 2월17일부터 하늘로 돌아간 1981년 2월3일까지 40년 동안 한 끼니를 지켰다고 한다. 그의 제자인 함석헌·김흥호도 평생토록 1일1식을 실천한 것을 보면 한 끼니의 뿌리는 꽤 깊은 셈이다. 다석에게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은 마음의 욕심을 줄여 한 점으로 만드는 일이다. 밥이 귀한 줄 몰라서가 아니다. 욕심으로 먹는 것은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먹고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재순) 현대의 ‘한끼주의자’들은 “사람은 생존의 필요와 몸의 요구를 넘어서 너무 많은 생명을 잡아먹는다”는 그의 말을 알게 모르게 따르고 있는 셈이다.
때로 비밀이 되는 그들의 한 끼하루 한 끼니를 결심했다면, 배고픔을 견디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시간과 관계를 공유하는 일, 곧 사교를 하는 것이다. 박세환 대표가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가 1일1식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별나다 생각하고 거리를 둘까 봐” 말을 하지 않는다. 점심 때 약속이 잡히면 먹지는 않으면서 젓가락만 대는 극소식을 한다. 입술만 축이는 셈인데 함께 밥 먹는 이가 아주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잘 눈치채지 못한다. 대신 저녁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잘 먹는다. 그러고보면 우리 주위에도 말하지 않는 한끼주의자들이 꽤 있을지도 모른다.
저녁 때 하루 한 끼만 먹은 지 13년째. 문학동네 강태형(55) 대표는 어지간히 단련됐지만 “아직도 점심 때 만나자고 하면 그 전날부터 몸이 긴장될 정도로 싫다”고 했다. 점심 식사를 거절하지 못했다면 저녁은 과일과 채소로 때운다. 그마저도 안 먹었으면 하는데 저녁 때 먹는 습관 때문이다. 그가 ‘하루 한 끼’를 시작한 것은 2000년 1월부터다. 욕심을 줄이고 싶어서 식사를 줄였단다. “음식이 덜 들어가면 욕심이 덜 생기는 게 맞아요. 기본적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인데다가 출판사를 경영하며 무슨 일이든 전면에 나서서 휘두르는 것을 좋아했다. 밥을 줄이니 남에게 덜 바라게 되고, 내가 객관화되고, 사람이 좀 순해지더군요.”
권투선수 출신인 강 대표는 하루 한 끼를 먹지만 아직도 저녁엔 밥 두 공기를 먹는다. 그런 그도 2007년쯤엔 힘이 모자라고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끼니를 늘리려 했다. 술과 담배에 과로까지. 아침과 점심만 거르다뿐이지 몸에 안 좋은 생활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점도 두려웠다. 그런데 건강검진을 받아보니 의사가 나이에 비해 장내 상태가 아주 좋다는 판정을 내렸다. “알고보니 내가 속이 깨끗한 남자더라”며 좋아하는 그는 에너지 과잉을 경계하는 이 생활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2011년 11월 철학자 김영민(54) 전 한신대 교수는 에 기고한 글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 자는 없지만 그 맛을 아는 자는 드물고, 비록 그 맛을 알더라도 그 경험 속에서 자신과 이웃 세상을 바꾸는 계기를 얻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1일1식의 정치학을 소개했다. “음식을 먹는 일에 나름의 분별을 지켜 자신의 삶의 성격과 성질을 요량할 수 있는 낌새로 삼고, 그것이 버릇과 생활, 세속의 체제와 관련되는 방식을 탐색하는 것은 다만 수행자들의 몫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끝없이 먹어치우는 매끼의 음식도, 음식의 문화도, 그 산업과 체계도 엄연한 정치의 길”( 880호)이라는 것이다. 경남 밀양에 사는 그는 전화 통화에서 “자본주의적인 삶이라는 것이 세끼 먹는 식사와 연동되어 있으니까 다른 생활방식을 얻는 한 가지가 1일1식이다. 다른 이데올로기를 얻기 위한 방식이며 철저하게 생활정치화를 위한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세 끼의 정치’에 반기를 들다8년 가까이 오후 5~6시쯤 저녁만 먹는 1일1식을 지켜온 그는 “사람의 탐욕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먹는 욕심을 버리면 다른 욕심도 대개가 줄어든다”고 했다. 그가 한 끼니를 통해 얻어낸 생활방식은 이렇다. “제일 중요한 것은 친구를 다 잃는다. 밥친구나 술친구가 없어진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생활을 하기 편하고, 다른 관계를 맺기 편하다. 제일 좋은 것은 공부하기 좋다.”
물론 욕심을 줄이고 생활을 소박하게 가꾸려고 모두가 그처럼 한 끼니로 돌아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영민 교수도 “혼자 사는 사람이나 공동체 운동 속에서 하루 한 끼니를 지키는 것은 좋은데, 육체노동을 하거나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다석 강의를 한 후 하루 한 끼 먹기를 10개월쯤 했던 박재순 전 씨알재단 이사는 “체력이 약한 탓인지 몸무게가 너무 줄어 접었다”며 “다석 유영모도 모두에게 1일1식하기를 권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1일1식은 상징적인 어떤 행동과 다름없다. 김영민 교수는 “한 끼, 두 끼를 따지는 것은 위험한 현시가 되기 쉽다. 중요한 것은 밥의 양이 아니고 생활양식이다. 조금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한 필요한 조건으로 끼니를 맞추는 것”이라고 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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