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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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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를 까마귀가 파먹는데…누가 쓰러져야 일을 멈출 거요

등록 2012-10-16 18:24 수정 2020-05-03 04:27

원인이 뭔지 몰라서 더 불안해요. 그냥 환절기 감기인지, 불산 때문인지…. 사고 현장 부근은 다 위험하다고 하니 마음이 안 놓이죠.” -주민 공아무개씨 

경북 구미시 구미4공단 불산 누출 사고가 있었던 화학제조업체 (주)휴브글로벌 앞 공장에서 직원이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경북 구미시 구미4공단 불산 누출 사고가 있었던 화학제조업체 (주)휴브글로벌 앞 공장에서 직원이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우리는 금오산 기슭의/ 쓸모없는 낙동강변 350만 평을/ 땀과 슬기 단결과 협조로써/ 전자공업단지를 이룩하였다/ 이것은 보람찬 80년대로/ 행하는 하나의 디딤돌/ 하나의 전설/ 잘살기를 발돋움하는/ 민족 의지의 표현 꿈의 실현/ 조국 근대화의 우렁찬 고동/ 바꿔놓은 지도 위에/ 찬란한 태양이/ 영원히 빛나리라.”(박목월 시인이 1974년 발표한 시 ‘구미공단’)

통합시 이름으로 거론되던 ‘박정희시’

경북 구미시 동쪽을 지나 낙동강변에 들어서면 널찍한 ‘구미공업단지’(이하 구미공단)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은 산업화를 일군 ‘박정희 신화’의 심장부이기도 하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유신시대를 연 이듬해, 내륙 최대 규모의 섬유·가정용 전자제품 생산단지를 이곳에 세웠다. 당시 구미공단 조성 사업은 구미 출신 대통령을 둔 지역이 누릴 수 있던 크나큰 혜택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구미공단은 1980년대를 지나 반도체 산업의 호황을 타며 삼성전자·LG전자 같은 대기업의 반도체·전자사업장이 들어서는 등 번영을 누렸다. 이제는 ‘구미국가산업단지’로 불리는 이곳은 구미 사람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구미는 ‘박정희 신화’가 여전히 식지 않는 도시이기도 하다. 구미 시내 한복판에 ‘박정희 체육관’이 있고, 몇 년 전까지 구미·김천 통합시의 이름으로 ‘박정희시’가 오르내리던 것을 보면 말이다.


길을 가다 보면 땅에 떨어진 비둘기를 까마귀가 먹고 있고, 참새들도 7~8마리 떨어져 죽어 있다.” -봉산리 대책부위원장 김상호씨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고추들이 불산에 오염돼 흰색으로 말라버렸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고추들이 불산에 오염돼 흰색으로 말라버렸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그러나 최근 ‘구미의 자존심’으로 여겨지던 이곳에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지난 9월27일 오후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구미4공단의 한 공장에서 유독성 가스인 불산(불화수소산)이 누출되면서부터다. 화학제조업체 (주)휴브글로벌 공장에서 불산을 옮기는 과정에서 11t 규모의 불산이 공기 중으로 새나갔다. 이날 사고로 공장 노동자 5명이 죽고, 구미4공단 일대에 주민 대피령까지 내려졌다. 반도체·전자제품 생산 공정에서 녹물 제거 등 세정용으로 쓰는 불산은 공기와 접촉하면 연기를 내며 자극적인 냄새의 유독성 가스로 기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난대책본부가 집계한 10월11일 기준 자료를 보면, 입원 치료를 받는 주민은 11명, 그 밖에 검진 및 치료를 받은 이들만 모두 8500여 명이다. 정부는 사고 11일 만인 10월8일 뒤늦게 사고 현장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2007년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처음이었다.

“대피소에 앉아만 있으면 뭐합니꺼. 앉아서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마을에라도 나와 있는 겁니더. 불산이 위험하다 카는데 뭔지 정확히 알려주는 사람은 없고…, 그래도 어떤 검사 하는지는 봐야겠고….”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다음날 찾은 봉산리 일대는 적막함 속에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사고 초기 가득 찼던 매캐한 불산 가스 냄새는 가셨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사고 후유증’에 대한 공포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사고가 난 휴브글로벌 공장 건물과 마주한 봉산리 마을의 한 과수원 앞에 김정준(52)씨가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이들은 대구지방환경청 관계자들이 마을 농작물의 오염도를 측정하느라 건너편 논을 살펴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과수원을 빽빽이 채운 감·자두나무의 잎은 미라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바닥에는 안부터 말라 들어가다 터진 거무튀튀한 감 열매가 가득했다.

“뻥! 뻥! 터지는 소리가 두세 번 났나? 처음에는 불이 났나 싶었죠. 그런데 검은 연기가 아니라 허연 연기가 막 올라오더라고.” 김씨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 대부분은 축산·과수 농사를 하는 탓에 사고 당시 불산을 들이마신 경우가 많았다. 피해 상황은 옆 동네인 임천리도 비슷했다. 구미4공단과 맞닿아 있어 불산의 직격탄을 피하기 어려웠다. 바람이 불어온 흔적을 보여주는 듯, 불산이 훑고 간 곳에는 나무들이 메말라 죽어 있었다. 텃밭에는 ‘불산 누출사고 피해지역 절대 식용 불가’라고 쓴 구미시의 붉은 펼침막이 내걸렸다. 현재 봉산리·임천리 주민 350여 명은 청소년수련원 등 구미 지역의 대피시설에 머물고 있다. 친척집으로 떠난 이도 있다. 봉산리 주민들은 낮에는 마을에 들어와 개와 소의 먹이를 주고, 마을회관 앞 야외에 설치한 천막에 모여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 머물기가 꺼림칙하지만, 사고 수습 과정이 길어지자 낮에는 일을 보러 마을에 나오는 일이 많아졌다. 이들은 잠만 대피소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마을회관 너머에는 국립환경과학원의 대형 버스 위에서 대기 오염도를 측정하는 장비가 돌아가고 있었다.


한때 ‘조국 근대화의 우렁찬 고동’으로 불리던 개발주의의 파편들이 이미 ‘위험사회의 징표’로 변질돼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 걸까. 

주민들이 모두 대피한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에서 경찰들이 야간 방범을 위해 순찰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주민들이 모두 대피한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에서 경찰들이 야간 방범을 위해 순찰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낙동강 페놀 방류 그 뒤 21년

“오늘만 시료 채취하는 거 아닙니다. 비가 오면 또다시 해야 합니다. 지하수 불소 검사 설명해드릴게요. 불산이 물에 녹으면 불소가 되거든요. 지하 음용수 기준은 ℓ당 1.5mg 이하인데요. 지금 여기는 0.2~0.3mg 나오고 있습니다.” 손동훈 대구지방환경청 측정분석과장이 봉산리 마을회관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지하수 오염 검사를 앞두고 마을 주민들은 미간을 찌푸린 채 걱정스런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 과장은 21년 전 전국적으로 떠들썩했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당시에도 현장에서 활동했다. 그는 “두 사건 가운데 뭐가 더 심각하다고 비교해 말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당시 페놀을 낙동강에 몰래 흘려보내 식수원을 오염시켰던 두산전자 공장이 구미2공단에 있었다. 불산 사고 현장과 5km 남짓 떨어진 곳이다.

정작 사고 현장 일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건 ‘보이지 않는 불산의 공포’다. 정부 당국이 사고 대응에 미숙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봉산리·임천리 마을 주민에서 구미4공단 노동자들, 그리고 공단과 떨어진 옥계동 신시가지 아파트 주민들에게까지 불안감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뒤 휴브글로벌 공장에서 반경 1km 떨어진 ‘구미코’(구미컨벤션센터) 건물에는 재난대책본부가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이동진료 버스가 와 매일 사고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피검사와 엑스선 촬영, 소변검사 등의 무료 건강검진을 하고 있었다. 검사 결과는 문자메시지로 나중에 통보해주고 있다. 오전 200명, 오후 200명으로 인원을 제한하고 있는데, 사고 열흘이 넘긴 이날도 하루 종일 대기자가 끊이지 않았다. 사고 현장에서 4km 떨어진 옥계동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공아무개(44)씨도 아침부터 줄을 서 대기자 번호표를 받은 뒤 오후가 되어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머리가 아프고 콧물이 흐르는 증상을 겪었다. 13살 딸과 14살 아들도 증상이 비슷했다. “원인이 뭔지 몰라서 더 불안해요. 그냥 환절기 감기인지, 불산 때문인지…. 사고 현장 부근은 다 위험하다고 하니 마음이 안 놓이죠.” 구미 시내에 살며 한가위 연휴 때 잠시 고향인 임천리를 찾았다는 김아무개(65)씨는 이날 진료를 받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며칠 전부터 가슴이 하도 답답하고 숨이 차 진료 버스를 찾았는데 사람이 많아서 받지 못하고 돌아간다”며 “동네 병원이라도 찾아가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고 말했다.

구미4공단 입주기업에 다니는 이들은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계속 사고 현장 부근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에 입주한 업체 336곳은 대부분 삼성전자·LG전자에 지속적으로 물건을 납품해야 하는 하청업체인 탓에 공정을 중단하기 어렵단다. 사고 당일에도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진 휴브글로벌 바로 옆 건물의 아사히글라스 화인테크노코리아는 LG전자의 디스플레이 부품을 생산한다. 사고가 난 휴브글로벌도 전자용 화학제품을 LG전자 등에 납품하는 일을 했다. 삼성전자에 휴대전화 케이스를 납품하는 금형업체인 크루셜엠스 직원 오경석(32)씨도 이날 오후 차를 타고 나와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는 사고 당일에는 조업을 중단했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정상 근무를 했다. “여기 공장 사람들 모두 안전 불감증이 있는 것 같아요. 동료들끼리는 막말로 누가 불산 때문에 쓰러지는 일이 생겨야 일을 계속해야 할지 말지를 정할 수 있을 거라고 하니까요.”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건강검진 버스 앞에서 만난 한 구미4공단 입주업체 경영진은 “노동청에서도 피해 현황을 적어 내라는 팩스를 보내온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지만, 공장들은 멈출 줄 몰랐다.

불산 누출 사고 피해 지역의 주민들과 공단 직원들이 지난 10월9일 긴급 의료지원을 하고 있는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구미코’에서 채혈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명진

불산 누출 사고 피해 지역의 주민들과 공단 직원들이 지난 10월9일 긴급 의료지원을 하고 있는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구미코’에서 채혈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명진

농작물을 마트에서 안 받는다는 흉흉한 소문

재난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구미코 회의실에서 사고 뒤 처음으로 민관 합동 환경영향조사단 회의를 열었다. 봉산리·임천리 등 사고 현장의 주민 대표들과 정부 관계자, 교수·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한데 모였다. 주민들이 미숙한 대응을 보이는 정부의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나서 의견을 조율하고자 만든 자리였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된 회의에서는 이날 오전 환경부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발표한 “구미 불산 피해 지역의 오염도가 기준치 이하”라는 발표 내용에 대한 주민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봉산리 대책부위원장으로 나온 김상호(50·교사)씨는 “길을 가다 보면 땅에 떨어진 비둘기를 까마귀가 먹고 있고, 참새들도 7~8마리 떨어져 죽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안전하다고 얘기하면 믿을 수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천리 주민 김진희(62·농업)씨는 “지금 농민이 농사를 못 짓고 있는데 보름 넘어서 하는 환경영향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냐? 불산 피해가 완치될 수 있는지 안 되는지만 설명해달라”고 다그쳤다. 이날 회의에 참가한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운영위원장은 “(중금속·다이옥신 오염이 드러났던) 인천 부평 미군기지(캠프 마켓)의 민관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처럼, 전문가·환경단체 등이 함께 사후 환경영향평가 작업을 해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사고 현장 일대에 퍼진 ‘불산 공포’는 정부가 내놓을 사후 환경영향조사의 최종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는 수그러들기 어려울 듯하다. 봉산리·임천리 등 사고 현장 주민들의 대피 생활이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임천리 주민 220여 명이 머물고 있는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구미청소년수련원은 피난촌과 다를 바 없었다. 눅눅한 숙소 안에 빽빽이 자리잡은 주민들은 애써 쪽잠을 청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이었다. 이곳에 머무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구미에서 출하된 농작물을 도시의 마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퍼지고 있었다. 이순연(63)씨는 “한창 수확철인데 일도 못하고, 사고 소문이 퍼져 사고가 수습된 뒤에도 이 동네 농작물은 못 내다 팔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월선(67)씨는 “전쟁이 나면 끝나고 들어갈 집이라도 있는데, 이런 사고는 다시 살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산업화의 심장부로 여겨지던 구미가 한순간 공포와 재앙의 도시로 변했다. ‘위험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다. ‘위험사회’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내놓은 이론이다. “합리성을 내세우며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현대사회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일상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를 적절히 통제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구미 일대의 사고 사례를 살펴보면, 정부가 개발·발전 등을 이끈 공업화의 결과물들이 꾸준히 주민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1991년의 페놀 원액 300t 방류 이후에도 2008년 3월 김천의 코오롱유화에서 페놀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구미 일대가 대규모 단수 사태를 겪었다. 페놀 방류만이 단수를 부른 게 아니었다. 지난해 5월에는 낙동강 구미 광역취수장 앞 임시 물막이가 무너져 닷새 동안 상수도가 끊겼다. 같은 해 6월30일에는 낙동강 구미 해평취수장에서 낙동강을 지나 구미4공단으로 공급되는 송수관로에 누수 사고가 발생해 구미4공단 입주 업체와 일대 주민들이 단수 피해를 입었다. 이번 불산 사고 처리 과정에서 심상정 의원(무소속)이 공개한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통해, 휴브글로벌 공장의 불산 누출 사고가 2009년 5월에도 있었다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불산 유출 사고로 주민들이 모두 대피한 구미시 산봉면 봉산마을에 백구 한마리가 아무도 없는 집을 지키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명진

불산 유출 사고로 주민들이 모두 대피한 구미시 산봉면 봉산마을에 백구 한마리가 아무도 없는 집을 지키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명진

교통사고 대비 같았던 사고 대책

이에 대해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박정희 시대부터 엄청난 위험이 도사린 공장 등 시설을 주민들에게는 혜택인 것처럼 베풀어놓았던 개발주의의 문제가 응축돼 있다가 이번 사고처럼 터져나오는 것”이라며 “고리 원전, 경주 핵폐기물 처리장 등의 문제에서 볼 수 있듯 박정희식 개발 시스템의 수혜로 포장된 위험시설을 받아온 지역들에서 ‘악성 위험사회’의 징후가 터져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또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을 상기시키며, “구미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사고 징후가 더 큰 대형 사고로 가지 않으려면 시민사회 영역과 정보를 공유하는 종합적인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고가 난 지 열흘이 넘어서야 국무회의에서 구미 불산 사고를 언급하며 “교통사고 난 정도로 대비해서 너무 소홀히 했다”며 “초기 대응이 미흡한 경위에 대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의 질책이 있은 뒤, 구미시와 환경부는 초기 방제 작업의 책임을 두고 설왕설래를 벌였고,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도 뒤늦게 불산 취급업체의 현황 파악에 나섰다. 한때 ‘조국 근대화의 우렁찬 고동’으로 불리던 개발주의의 파편들이 이미 ‘위험사회의 징표’로 변질돼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 걸까.

구미=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사진 정용일기자yongil@hani.co.kr·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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