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으로 떠나는 20~30대 젊은이들은 그저 도시 속 경쟁에서 밀려난 이른바 ‘루저’(Looser)일 뿐일까? 지리산·제주도에서 만난 젊은 귀촌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삶의 체질을 바꾸고 자신을 치유하려 또 다른 도전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전체적인 살림·소비 규모는 그들이 도시에서 살 때보다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도시에서와 달리 벌레와 함께 숨을 쉬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었다. 도시 생활에 맞춰진 삶이 농촌 특유의 가치를 담고 있는 생태·관계 지향형 삶으로 바뀌었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귀농·귀촌은 사람 간의 단절과 소외를 불러온 도시 문명과는 다른 인간적인 삶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이다.
삶의 체질 바꾸고 자신을 치유하려고
인구 400여 명의 작은 마을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에 위치한 ‘상도리마을 게스트하우스’ 운영자 김종열(32)씨는 귀촌을 통해 ‘공동체의 삶’을 배우고 있다. 서울 성북구 토박이였던 그는 2010년 제주에 홀로 내려와 일당벌이 무 농사, 어린이집 셔틀버스 운전 등 갖은 고생을 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해왔다. 지난 4월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는 원래 노인정이었다. 제주시 지원을 받아 게스트하우스로 변모한 것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젊은 김씨에게 게스트하우스 운영권을 내주었다. 대신 그가 번 수익의 일부는 다시 마을로 돌아간다. 서울 노량진 고시촌에서 5년 동안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김씨는 연이어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도피처가 필요해 처음 발을 디딘 제주에서 그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웠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서울에선 엄두도 내지 못할 운전일을 할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이름에 ‘상도리’를 넣은 건 사람들에게 마을을 소개하고 싶어서예요. 도움을 받았으니 이 지역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제가 남을 배려하는 착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할머니·할아버지가 많은 시골에서 그분들이 할 수 없는 걸 하며 제 삶을 꾸려나가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아요.”
박지희(26)씨는 생태·관계 지향형 삶을 위해 전남 구례군과 서울을 오가는 이른바 ‘반(半)귀촌’ 생활을 하는 경우다. 연극 극단에서 활동하는 그는 서울에서 공연이나 일이 있을 때를 빼고는 구례에서 머물며 생활한다. 지난해 10월 먼저 구례로 내려온 연극계 선배의 권유로 도시를 떠난 그는 귀촌을 하기까지 고민도 많았다. “아무래도 젊은 나이에 서울을 떠나면 하고픈 일을 못하게 될 거라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여기(구례)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제가 미련을 부렸던 것 같더라고요.” 그는 구례에 정착한 다른 연극인과 현지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군민극단 ‘마을’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구례읍에 있는 섬진아트홀에서 올린 창단 기념 공연의 조연출을 맡았다. 충남 예산군이 고향인 그는 성인이 되어서는 서울에서 생활했다. “서울에서의 휴식은 여유가 없어서인지 늘 불안정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여유를 찾고, 열린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이 있어서 사는 즐거움이 더 크죠.”
경제 논리 아닌 섬세한 논의 있어야
사실 20~30대는 한창 경제활동에 참여할 나이다. 그런 이들이 도시를 떠나 대안적인 삶을 갈구하는 바탕에는 여가와 즐거움도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가치관이 깔려 있다. 부모 세대처럼 산다고 하더라도 ‘행복’할 수 없다는 각박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엿보인다. 지난 4월 제주에 정착한 허목(33)씨는 한 달 내내 올레길을 걸으며 신기한 경험을 했다. “정말 가지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하고 있는 고민은 몇 가지로 수렴되더라고요. 대학생이면 대개 ‘좋아하는 걸 해야 하나, 돈 되는 걸 해야 하나’ 고민하고, 4~5년차 직장인들은 ‘회사 옮길까 말까’를 물어보죠.”
이광준 문화연대 시민자치문화센터 공동소장은 귀농·귀촌을 통해 더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흐름을 ‘문화귀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올해 들어 자연을 그저 즐기며 고립되기보다는 ‘적정기술’(공동체의 문화·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대안기술) 등을 익히고 준비해 지속 가능한 삶을 모색한다는 의미가 담긴 ‘생태적 문화귀촌’이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30살에 귀촌해 9년째 구례군에서 야생차 채집을 하는 송영애(38)씨도 “지역에서 만나는 젊은 세대의 독신 귀촌자들을 보면, 다양한 취미나 기술을 익힌 뒤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며 “나처럼 3~4년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일찌감치 준비된 도전을 하는 귀촌 분위기는 바람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홀로 거주지를 옮기는 젊은 세대는 외로움 등으로 지속 가능한 삶이 되기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이광준 소장은 “정부에서는 귀농·귀촌에 대해 경제적 성공을 강조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창의적인 인력 유입 현상으로 바라보는데, 이는 기존 경제적 논리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며 “외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나가려면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과 생태, 사회 등 좀더 넓고 섬세하게 귀농·귀촌을 논의하는 흐름이나 모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 공동체와 유리되면 장기여행자”문화귀촌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지역사회 고유의 문화나 환경에 대한 이해를 쌓고 주민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도시에서 온 젊은 귀촌자 중에는 고령화된 지역 주민들을 배제한 채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삶은 도시에서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많다. 7년 전 구례로 내려와 마을 공동체 활동과 ‘지리산닷컴’ 운영을 함께 하고 있는 권산(49)씨는 “귀촌인들이 각종 활동을 벌이며 마치 ‘외국에 이민 가서 교포들이 밀집한 지역에 사는 것’처럼 마을 사람들과 이원화해 활동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귀촌인들이 마을 공동체에 녹아들지 못한다면 ‘외지 것’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장기여행자에 그치게 된다”고 말했다.
구례(전남)=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제주=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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