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에 나선 ‘작은 정당’들이 있다. 진보적 가치가 실현되는 풀뿌리 정치를 꿈꾸며 존재감을 키워나가는, 작지만 옹골찬 정당들이다.
3월4일 창당한 녹색당. 파릇파릇. 이름에 신선한 맛이 묻어난다. 초짜 정당이지만, 세계 녹색당 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한국 최초의 ‘정통 녹색당’이다. 당원이 벌써 7천 명에 이른다. 한국에서 녹색당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을 뒤엎고 보란 듯이 창당에 성공했다.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것이 역설적으로 성공 요인이 됐다. 이들이 든 녹색 깃발에는 탈핵, 탈토건, 농업과 같은 가치가 담겨 있다.
핵발전소 지역에 출마한‘탈핵 후보’
“우리는 새만금과 4대강에서 자행된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아름답던 생태계가 파괴되고, 우리 삶의 뿌리가 상처 입고 병드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더욱이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생명을 파괴하고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반생명, 비윤리의 결과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중략) 이런 것들은 우리가 정치적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습니다. 우리의 장벽은 정치입니다. 여기에 녹색당의 창당 이유가 있습니다.”(창당선언문 중에서)
가치만으로 정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들도 안다. 그러나 정치를 하지 않고는 녹색 가치를 지킬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기존 정당들은 ‘탈핵’의 가치나 정책을 외면하거나 시늉만 내고 있지 않은가. 녹색당이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에 2명의 ‘탈핵 후보’를 낸 이유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참사에도 아랑곳없이 핵발전소 부지로 지정된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지역에는 영덕 핵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탈핵주민운동을 이끌어온 여성 농민 박혜령(43) 후보가 나섰다. 이곳에는 이미 핵발전소가 6개나 있다. 최근 전원 공급 중단 사고를 일으킨 골칫덩어리 고리 1호기가 있는 부산 해운대·기장을 지역에도 전 부산환경운동연합 대표인 구자상(54) 후보가 출마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연대 협상에서 민주당 후보로 단일화된 곳들이다.
녹색당 창당의 산파이자 초대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는 “영양·영덕·봉화·울진에 나선 민주당 후보는 2005년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한창일 때 지방의원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이 원전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얘기하며 그런 후보를 내보내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해운대·기장을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뚜렷한 입장이나 경험, 정책적 능력이 없는 사람을 전략공천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고 말했다.
탈핵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걸까. 하 변호사는 “새로 짓고 있는 7개 원전의 건설을 중단하고, 고리 1호기 등 수명이 끝난 원전을 순차적으로 폐쇄해 2030년까지 핵발전을 중단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 재생에너지 확대, 전기 소비 줄이기 등 에너지 효율성 강화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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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취소되면 다시 창당하겠다”
녹색당은 3월9일 당원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후보 3명을 뽑았다. 녹색연합에서 14년 동안 활동한 에너지전문가 이유진(37) 후보,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해온 경기도 팔당 두물머리 농사꾼 유영훈(59) 후보, 동물보호단체 카라 활동가인 장정화(39) 후보는 각각 탈핵, 농업, 생명권이라는 녹색당 가치를 상징하는 이들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탈핵과 농업을 더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말한다. 핵발전소 밀집도 1위, 곡물자급률 26.7%인 한국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 녹색당’이 느끼는 절박감이 더 크다는 것이다.
목표는 정당 득표 5%와 지역구 당선이다. ‘정당 투표는 녹색당-I vote green’이라는 메시지를 내걸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을 이용한 돈 안 드는 선거운동을 통해 이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겠다는 전략이다. 김종철 발행인, 조한혜정·조돈문 교수, 선대인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장, 저자인 우석훈씨, 문규현 신부,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등 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녹색당의 친구들’도 지지를 선언하며 함께 발 벗고 나섰다.
어려운 싸움이다. 새누리당과 야권 단일후보의 사실상 일대일 구도가 형성된 총선판에서 ‘작은 정당’들은 언론의 관심 영역 밖으로 밀려나 있다. 3%가 넘으면 비례대표 후보가 당선되지만, 만약 지역구 당선자를 내지 못한 채 정당 득표 2%를 넘지 못하면 ‘해산’이라는 참담한 운명을 맞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녹색당을 접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하 변호사는 “2%가 넘지 않으면 정당 등록을 취소하는 건 악법 중의 악법이다. 학생이 시험을 잘 못 쳤다고 퇴학시키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녹색당은 선거 때 생겼다 사라지는 정당이 아니라 뚜렷한 가치 지향을 가진 정당이므로 혹여 등록 취소가 되면 다시 만들겠다”고 말했다.
당의 존립과 의회 진출을 목표로
진보신당은 ‘두 번째’ 총선을 치른다. 아픈 ‘과거’가 있는 탓에 첫 번째 선거나 다름없다. 진보신당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 탈당한 심상정·노회찬·조승수 전 의원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고, 그해 4월 18대 총선에서 2.96%의 지지율로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게다가 지난해 ‘진보 통합’ 과정에서 이들 ‘유명 인사’가 모두 탈당해, 진보신당은 ‘여의도 정치’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진보신당은 유시민 옛 국민참여당 대표가 합류한 진보 통합에 대해 “진보정치의 가치를 모두 선거에 국한된 정치공학적 셈법 속에 구겨 넣은 것”(홍세화 대표)이라고 비판하며 독자 노선을 가고 있다. “진보신당이 고립을 원한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꿈을 포기한 사람들에 의해 (고립을) 강요당한 것”이라는 항변도 했다. 현실 정치는 냉혹했고, 진보신당은 최근 총선 야권 연대 협상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한솥밥을 먹었던 통합진보당의 반대가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진보신당은 더욱 이번 총선을 ‘제2창당’의 기회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다. 홍세화 대표가 지난해 11월 새 선장을 맡은 뒤, 3월4일 사회당과 통합하는 등 신발끈을 열심히 조이고 있다. 홍 대표는 통합 당대회에서 “2% 미만 득표로 당의 해산을 바라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우리는 당의 존립과 의회 진출이라는 목표를 위해 남은 한 달 열흘 동안 피 말리는 노력을 다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의 총선 목표는 지역구 당선, 정당득표율 3% 이상이다. 전국 27개 지역구에 나섰는데, 이 가운데 경남 거제에 출마한 김한주(44) 후보에게 거의 유일한 희망을 걸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별도의 야권 연대 협상을 통해, 김한주 후보와 장운 민주당 후보, 이세종 통합진보당 후보 등 3명이 3월17~18일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해 야권 단일후보를 내보내기로 했다. 새누리당에서는 검사 출신인 진성진 후보가 나선다.
비례대표 후보로는 7명이 출마한다. 1번은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인 김순자(57)씨다.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1번 후보를 당내 인사 가운데 뽑기로 한 것과 달리,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를 상징하는 인물을 앞세웠다. 울산연대노조 울산과학대지부장을 맡고 있는 김 후보는 3월14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정치는 돈 많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주로 하는데, 그들이 우리를 절대 대신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홍세화(65) 대표는 2번으로 원내 진입에 도전한다. 이후 순번 후보는 이명희(41) 평택교육생협 이사, 정진우(43)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 장혜옥(58)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박노자(39)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박은지(33) 진보신당 대변인이다.
이명희 후보는 ‘녹색 후보’이고, 정진우 후보는 ‘희망버스’ 구속자다. 진보정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해직까지 당했던 장혜옥 후보의 출마에는 통합진보당이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을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운 것에 대한 ‘맞불’ 성격도 있어 보인다. 박노자 후보는 러시아 출신으로 2001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는데, 그동안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진보 논객으로 활약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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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지역에서 완주할 것”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연대가 이뤄지자 진보신당 후보들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는 지역도 적지 않다. 대부분 초접전 승부가 예상되는 수도권이다.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와 이계안 민주당 후보의 ‘주인 대 머슴’ 경쟁 구도로 관심이 쏠린 서울 동작을에는 김종철 부대표가 나서고, 이범래 새누리당 후보와 이인영 민주당 후보의 ‘리턴매치’가 펼쳐지는 서울 구로갑에는 강상구 부대표가 나선다. 진보신당은 “개별적인 야권 연대 협상이 진행되는 영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든 지역에서 진보신당 후보들은 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보신당 역시 선거운동 과정에서 소수 정당으로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 박은지 진보신당 대변인은 “지역구 후보가 있는 선거구 이외의 지역에서는 비례대표 후보들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한 선거법은 문제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거자금을 마련하려고 ‘득표율 연동 펀드’ 모으기에도 나섰다. 정당득표율이 목표치인 3%를 넘으면 득표율만큼 이자를 붙여 돌려주는 캠페인이다. 3%에 미달하면? 특별당비로 납부된다. ‘녹색 가치의 깃발을 든 전태일’이라는 진보신당의 지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을 실어줄지 주목된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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