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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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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당신을 지지합니다

정규직 PD·기자 파업으로 잔인한 선택에 몰린 비정규직 작가·감독·연기자… 더 넓은 연대를 촉구하며 성금 모금으로 동참
등록 2012-03-14 16:34 수정 2020-05-03 04:26
» ‘방송 3사 공동파업 출정식’이 열린 3월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한국방송본부, YTN지부 노조원들이 촛불을 들고 공정방송을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 ‘방송 3사 공동파업 출정식’이 열린 3월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한국방송본부, YTN지부 노조원들이 촛불을 들고 공정방송을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방송사에 적을 두지 않았어도 그들은 언론인이다. 방송사 쪽이 계약직 작가와 PD들을 동원해 방송분을 메우려 한 탓에 비정규직 직원들이 잔인한 선택을 강요받았다. 계약 해지를 각오하며 파업에 동참한 한 작가는 “언론의 독립적인 미래를 보장받을 때까지 정규직은 물러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정재홍 방송작가, 대안언론운동을 해온 태준식 감독이 방송사 파업을 대하는 심정을 글로 보내왔다. 촬영 중인 연기자 권해효는 인터뷰로 대신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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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희생 그리고 각오

정재홍 문화방송 <pd> 작가</pd>

지갑에 돈이 마르고 있다. 슬슬 허기도 밀려온다. 문화방송 파업 두 달째. 방송작가들은 배가 고프다. <pd> 동료 작가들을 만났다. “대리운전이라도 해볼까?” 민망한 답변이 돌아온다. “운전면허가 없어요.” 너나없이 참 딱하게 살아온 인생들이다.

그나마 <pd>처럼 방송이 중단된 경우는 고민이 덜한 편이다. 계약직 PD가 투입돼 방송을 계속하는 프로그램의 작가들은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의 고희갑 작가는 문화방송을 떠났다. 편집을 남겨둔 상황에서 담당 PD가 파업을 시작하자, 팀장은 계약직 PD와 함께 편집을 해서 방송을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고 작가는 담당 PD의 허락 없이 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거부했다. 그러자 팀장은 새로 투입된 PD와 새로운 방송 소재를 선정해 방송을 하라고 지시했다. 파업에 나선 이들에게 누를 끼칠까 걱정한 고 작가는 이 지시마저 따를 수 없었다. 결국 고 작가는 사의를 밝히고 문화방송을 떠났다. <mbc>팀의 작가들도 마음고생을 했다. 이 파업 때문에 중단되자, 팀장은 그동안 방송된 북극·아마존·아프리카·남극 편의 주요 장면을 모아 를 기획했다. 팀장은 을 담당한 노경희 작가에게 구성을 의뢰했는데, 노 작가는 거절했다. “PD들이 5년간 열정적으로 제작한 프로그램을 PD들이 없는 상황에서 급조해 재방송하는 것은 PD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을 담당한 윤희영 작가가 팀장의 제안을 받았지만 역시 거절했다. “담당 PD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데, 작가가 그들의 작품을 재구성해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을 담당한 고혜림 작가와 이소정 작가도 팀장의 제안을 받았지만 마찬가지로 거절했다. 최근에는 팀의 황가영 작가가 문화방송을 떠났다. “뉴스와 <pd> 등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제작을 중단한 상황에서 만 계속 방송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는 것이 프리랜서의 세계다. 하물며 사 쪽의 눈총을 받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집필을 거부한 작가들의 고민이 오죽했을까?

문화방송 시사교양국 작가들이 며칠 전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작가들은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모금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각자 얼마 남지 않은 돈을 ‘공정방송 쟁취’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기로 했다. KBS구성작가협의회, SBS구성작가협의회, EBS구성작가협의회 소속 작가들도 동참하기로 했다. “우리는 공정방송을 쟁취하기 위한 문화방송 노동조합의 파업을 지지합니다!” 이 성명에는 작가들의 많은 각오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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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잘 다니고 계시는지요

태준식 독립다큐멘터리스트· 감독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2009년 77일간의 파업투쟁을 그린 을 만들었을 때입니다. 한 해고노동자가 안타까워하더군요. 예전엔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잘려나갈 때 한마디도 안 했는지, 공장 담벼락 밖 지역공동체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는지…. 지역 공동체의 싸늘한 시선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을 두고 자책하는 한마디였습니다.

자본은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가르고, 학력 따위를 놓고 노동자들끼리 편을 나누게 하며, 이웃들과의 소통을 방해합니다. 노동자들끼리 분열하게 하고, 노동자가 노동자를 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종국에는 하나의 계급으로 묶이는 것을 막으려는 자본의 의도는 보기 좋게 관철되고 있는 거 같지 않습니까?

저는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방송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지지합니다. 다만 한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자책처럼 파업투쟁을 벌이는 방송노동자들이 만연된 노동자들의 분열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 또한 촉구합니다. 왜냐하면 방송노동자는 쌍용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은 여유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노동자들보다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강력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학교’라고 하지요. 통제되고 막혀 있는 노동의 공간에서 벗어나 자연스레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또한 일터 밖 공동체 일원으로서 자기성찰과 이웃 간의 연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방송노동자 여러분, 쉽게 찾아오지 않는 ‘파업’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잘 가꿔 나아가시길 빕니다. 1500여 일 동안 거리에서 농성하는 재능교육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노숙투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21번째 동료의 죽음에 대해 묵도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함께 일일 희망텐트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카메라에 비친 모습에서 모든 걸 느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파업이라는 시간을 통과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그것입니다. ‘연대투쟁’이 지닌 가치를 온몸으로 학습했다는 사실. 공정방송 쟁취는 물론이고 이 파업이라는 학교에서 노동자로서의 학습 시간을 연대투쟁으로 채워 당당하게 일터로 복귀하는 멋진 모습을 기대합니다. 고생하십시오. 투쟁!

저는 방송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지지합니다. 다만 방송노동자들이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만연된 노동자들의 분열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 또한 촉구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노동자들보다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강력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태준식 독립다큐멘터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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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치유의 시간

권해효 연기자·한국방송 드라마 출연

이번 언론파업은 2008년 이미 예고돼 있었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현직 기자 6명이 해직당한 YTN 사태가 있었고, 방송법 개정을 반대한 문화방송의 파업이 시작된 해였다. 지금까지 파업에 소극적이던 드라마·예능프로 PD들까지 동참한 이유는 지난 4년에 대한 자기반성의 의미가 크다. 예전 언론이 정권을 상대로 싸웠다면, 2012년에는 권력에 입 다물어온 언론계 내부의 비겁함에 대한 싸움이자 자기치유의 시간이 될 것이다. 보도나 시사교양은 물론 드라마·예능국 PD까지 나서서 파업에 동참하는 현실은 한국의 언론 자유가 얼마나 침해당해왔는지 방증한다. 덧붙여서 앞으로 다시는 언론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내부 조직에 숨지 말아야 한다는 자발적인 다짐이어야 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드라마에선 시장의 논리가 지배함에 따라 연출가와 배우들의 자괴감이 깊었다. 연기자로서 이번 파업이 공영방송만이라도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나 창작 작업을 제대로 복원하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정리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pd></mbc></p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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