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퍼런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한낮의 수은주도 모처럼 영상 10℃를 오르내렸다. 하지만 바닷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거센 해풍의 위세 앞에서, 햇살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2월22일 오후 신규 원자력발전소(이하 핵발전소) 후보부지로 선정된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읍내로 들어가는 길은 내내 스산했다.
“밑바닥 민심은 70~80%가 반대”
면사무소가 자리한 교가리 들머리, 풍경이 지난해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삼척시(시장 김대수)가 2010년 12월 핵발전소 유치를 신청한 직후부터 거리를 점령하던 홍보용 펼침막이 단 1개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2~3월엔 삼척 시내에 내걸린 원전 관련 펼침막만 1천여 개를 헤아렸다. 각종 ‘사회단체’는 물론 통·반 단위 ‘주민조직’, 하다못해 식당·여관까지 ‘원전 유치에 찬성한다’고 펼침막을 내건 탓이다.
‘핵발전소 안 돼! 안 돼!’
매월 1일과 6일로 시작되는 날 5일장이 서는 교가리 느티나무 장터 쪽으로 들어서려는데, 뜻밖의 장면이 눈길을 끈다. 빨간색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로고를 제 몸보다 큰 패널로 만들어 목에 건 안호성 예비후보가 ‘원전 반대’라 적힌 명함을 돌리고 있다. 그는 새누리당 동해·삼척 지역구 국회의원 예비후보 5명 가운데 유일하게 ‘반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안 후보는 “여당 후보지만, 미래 세대를 생각하면 절대 찬성할 수 없다”며 “농·축·수산업은 물론 횟집·민박 등 관광산업도 엉망이 된다”고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3월 초 ‘삼척시원자력유치협의회’(대표 정재욱·이하 유치위)는 “삼척시민 96.7%가 원전 유치에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 단체가 같은 해 2월21일~3월6일 벌인 원전 유치 찬성 서명운동에 삼척시 유권자 5만8339명 가운데 5만6551명이 참여했다는 게다. 부재자를 포함해 삼척 유권자의 3.1%에 불과한 1788명만이 원전 유치에 반대한다는 얘긴데, 당시에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난해 말 원전부지선정위원회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밝힌 삼척 지역의 원전 유치 찬성률은 ‘50% 미만’이었다.
안 예비후보는 “핵시설은 (주민들이) 가장 혐오하는 시설임에도, 유치 신청 과정에서 투명성이 전혀 없었다”며 “통반장을 동원해 엉터리 서명부를 만들어 찬성률을 높여놨지만, (선거운동을 하며) 돌아다녀보니 밑바닥 민심은 70~80%가 반대”라고 말했다. 여당 후보의 ‘개심’을 이해할 만도 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도, 공터는 200명 남짓 몰려든 인파로 흥청이고 있었다. 근덕면번영회가 주최한 ‘제34회 영등제·면민 윷놀이대회’가 이틀간의 일정으로 이날 오전 개막한 터다. 고려시대부터 마을의 정자목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는 ‘교가 느티나무’(강원도기념물 제14호) 가지에는 ‘핵발전소 결사반대. 3월11일 오후 2시 삼척시민 궐기대회. 모이자 근덕으로’라고 적힌 펼침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참 치사합니다, 치사해요.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자전거, 라면, 휴지, 가습기, 냉장고, 세탁기, 밥솥, 20kg짜리 쌀 포대가 수북이 쌓여 있는 본부석에서 윷표(윷놀이 입장권)를 파느라 여념이 없던 이웅교(51)씨는 쓴웃음부터 지어 보였다. 이날 오전 10시께 윷놀이 대회가 시작되자 마을 주민들이 몰려들었는데, 면사무소에서 간이 공중화장실 문을 잠가놨다는 게다. 그는 “5일장이 설 때마다 사용하는 화장실은 평소에도 열려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하필 오늘 문을 잠가놓았더라”며 “아침부터 이 사람 저 사람 전화해 욕을 해대니, 오후 2시30분이 넘어서야 슬그머니 문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근덕면 중소 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모임인 번영회는 지역에서 반핵 투쟁을 주도하고 있다. 곁에 있던 윤경희 번영회 사무국장도 거들고 나선다.
“번영회가 주최하는 영등제가 올해로 34회째다. 똑같은 장소에 해마다 내걸었던 행사 안내용 펼침막도 ‘불법’이라고 못 붙이게 했다. 시에서 매년 지원해주던 1천만원가량의 보조금도 올해는 특별한 이유 없이 끊겼다. 행사에 경품을 지원해주던 업체들도 ‘올해는 봐달라’며 빠지는가 하면, 돈이나 물품을 지원하고도 ‘이름은 빼달라’고 한 업체도 있다. 사사건건 방해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화투장으로 말을 삼고, 2명씩 짝을 이뤄 벌이는 윷판이 색다르다. 팽나무·박달나무같이 단단한 나뭇가지를 골라 어른 엄지손가락 크기로 자른 뒤, 낫으로 양쪽을 뾰족하게 깎아 윷을 만든다. 그걸 손에 쏙 들어가는 쇠 종지에 넣고 던지는 게 삼척식 윷놀이다. 종지를 이용한다고 해 ‘종지윷’, 종지에 들어간 윷이 밤송이 터진 것 같아 보인다고 해서 ‘밤윷’이라 부른단다. 한창 열을 내고 있는 윷판 주변에서 껄껄거리던 임순한(76)씨에게 다가섰다. 그는 34년 전 근덕면 영등제를 처음 만든 당사자다.
“이게…, 여야가 따로 없는 행사인데.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지.” 임씨의 얼굴에 금세 시름이 짙어진다. 내친김에 ‘핵발전소’ 얘기를 꺼냈다. 한참이나 숨을 고르던 임씨가 무겁게 입을 연다. “원전이 들어서면…, 바닷가로 갈 수 없게 돼. 경제효과, 경제효과 하는데, 경제를 살리려면 생산기업이 와야 하는 거 아냐? 이만큼 살면 잘사는 거지 더 어떻게 잘살고 싶은 건지, 원….”
근덕면의 ‘반핵 투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3년 삼척 근덕면 덕산리가 핵발전소 후보부지로 유력하게 떠오르자, 그해 8월29일 근덕 주민 9천 명 가운데 7천 명이 근덕초등학교에서 반대집회를 벌이며 본격화됐다. 당시 삼척 시내에서는 상가가 전면 철시에 들어갔고, 근덕 주민들은 상여를 메고 나와 대규모 거리행진을 벌였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밀린 정부는 결국 1998년 삼척 핵발전소 건설 계획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삼척시민들은 이를 기념해 이듬해인 1999년 11월 근덕면 덕산리 마읍천 자락에 ‘8·29 기념공원’을 만들고, 핵발전소 백지화 기념탑과 기념비를 세웠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05년 삼척 원덕읍이 핵폐기장 부지후보로 거론되자 주민들이 다시 들고 일어났다. 그해 7월 한수원이 원덕 이천3리 이천폭포 부근에서 지질 조사를 위한 굴착공사를 벌이려 하자, 주민들은 천막농성을 하며 온몸으로 저항했다. ‘8·29 투쟁’ 때부터 18년째 반핵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이붕희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공동대표 박홍표 도계성당 주임신부·이하 백지화위)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찔러보는 한수원”“핵 문제로 워낙 오래 싸웠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지쳤다. 한 번 시작되면 짧아야 6개월이다.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면 ‘재검토하겠다’는 발표가 나온다. 그 사이에 생활은 엉망이 되고 만다. 크게 보면 1993년 원전 반대 투쟁, 2005년 핵폐기장 반대 투쟁, 2010년 원전 반대 투쟁 등 세 차례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핵 문제와 관련된 이런저런 소문이 10여 차례 돌아 주민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찔러보는 식이었다. 이게 한수원의 전략이다. ‘김빼기’를 통해 주민들을 지치게 하는 거다.”
이번 논란은 2010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대수 시장은 무소속으로 재선에 도전하며 ‘21조원 규모 세계원자력연구원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 시장이 무난히 재선에 성공한 뒤 ‘세계원자력연구원’은 이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7월엔 ‘원자력발전연구원’이라더니, 2개월여 뒤인 9월엔 ‘스마트 원자로’와 ‘원자력 클러스터’란 말이 나왔다.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었다.
탄광 경기가 정점에 이른 1970년대 삼척의 인구는 30만 명을 헤아렸다. 하지만 1980~90년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폐광이 줄을 이어 흥청거리던 도시는 급격히 쇠락해갔다. 1981년 인구 20만 명 선이 무너졌고, 1993년엔 10만 명 선마저 뚫렸다. 불과 12년 만에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 게다. 2010년 말을 기준으로 삼척의 인구는 7만2천여 명, 한창 때와 견줘 4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급격한 인구 감소는 지역경제 파탄으로 이어졌다.
‘총공사비만도 24조원이 투입된다’고 했다. ‘향후 60년간 거둬들일 수 있는 지방세수만 6조원에 이른다’는 말도 나왔다. ‘매년 1천억원의 예산 지원’이 돼 ‘청년실업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인구 30만 명 시대를 재현할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오랜 싸움 끝에 지친 주민들 사이에서 눈먼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해 10월18일 김 시장은 간부회의에서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공식 선언하기에 이른다. 삼척시는 2010년 12월 시의회의 동의를 얻어 핵발전소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 무렵 주민들도 백지화위를 꾸렸다.
“창조를 통해 평화를 선물하시는 하느님, 당신의 지극히 아름다운 선물인 자연을 통해, 지구의 자원들이 소수를 위한 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공동선에 이바지함을 깨닫게 하소서.” 이날 저녁 7시께 시내 남양동 백지화위 사무실에서 57번째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수요미사’가 열렸다. 회의 탁자 위에 흰색 보가 깔리고, 그 위에 소박한 촛대가 올려졌다. 박홍표 도계성당 주임신부는 “오늘은 사순절기가 시작되는 첫 수요일”이라는 말로 미사를 시작했다.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원전
부활절을 40일 앞두고 시작되는 사순절의 첫날은 흔히 ‘재의 수요일’로 불린다. 성서의 시대에는 참회의 뜻으로 몸에 재를 뿌렸기 때문이다. 짧은 의식을 마감한 박 신부가 “미사가 끝났으니, 이제 원자력에 대해 공부합시다”며 빙긋이 웃자, 어느새 사무실을 꽉 채운 100명 남짓한 주민들은 “주님, 감사합니다”로 화답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한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사순의 첫날, 삼척 주민들은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일본원전비상대책위원장에게서 인류에게 핵의 위험성을 경고해준 일본 후쿠시마 주민들의 사연을 전해들었다.
이날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4돌을 맞은 날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주장했다. “프랑스가 (에너지)자급률이 105%인데도 전력 80% 이상을 원자력에 의존한다. 독일이 (원전) 폐기한다는 건 다른 얘기다. 프랑스 원자력발전 전기를 가져다 쓰면 된다. 우리가 원전을 쓰지 않으면 전기요금이 40% 올라가야 한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원전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설명은 전혀 달랐다.
“독일은 지난 한 해, 60억kWh가량의 전기를 유럽 전역에 수출했다. 지난해 고리 2호기가 생산한 전력보다 많은 양이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후 가동 중이던 노후 원전 7기를 즉각 폐쇄해 재생 가능 에너지 전기의 비중이 원자력 전기 비중을 앞지르게 되었는데, 전기는 오히려 남았다. 프랑스는 원전 발전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75%로 높음에도 전기난방 등 전기 과소비 패턴이 구조화돼, 겨울에는 주변 나라들에서 전기를 수입하고도 부족해 제한 송전까지 감행하고 있다.”
‘원전 불가피’론은 근거가 약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일본 정부는 가동 중인 원전 54기 가운데 51기를 멈췄다. 원전의 95%를 멈췄음에도 대규모 정전 사태 등 혼란은 없었다. ‘전기요금 인상론’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술 발전에 따라 재생 가능 에너지의 발전 단가는 꾸준히 내려가고 있는 반면, 원전은 사고 위험으로 지속적인 비용 상승을 부르고 있다. 실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향후 2년간 감당해야 할 피해보상 비용만 6조엔, 방사능 오염 제염 비용은 아직 구체적으로 계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핵발전은 깨끗하지도,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 후쿠시마가 인류에게 던진 교훈이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신규 원전 후보부지를 발표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이튿날 오전 교가리에서 차량으로 10분 남짓 떨어진 동막리로 향했다. 백두대간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드는 마읍천 자락을 따라 드넓은 논이 펼쳐져 있었다. ‘동막골유기농단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논바닥에서 푸릇푸릇 새순이 돋아나 있다. 겨울을 이겨낸 보리순·밀순이다. 추수를 마친 11월에 파종해 이듬해 4월 중순 베어내 소먹이(조사료)로 쓴단다. 뿌리는 갈아엎어 그대로 거름으로 쓴다. 길잡이로 따라나선 주민 홍승표(60)씨는 “2004년 유기농 단지로 지정돼, 시에서 30억원가량을 투자해 키웠다”며 “우렁이 농법으로 생산되는 이곳 쌀은 ‘삼척동자’란 브랜드를 달고 전량 도시로 출하돼 좋은 값을 받는다”고 말했다.
“울진이 지척, 사고나면 여기도 피해”
유기농 단지에 접한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면 바로 신리마을이다. 이곳은 삼척시가 의욕적으로 조성해온 방재산업단지 공사 현장이다. 애초 올해 6월 완공 예정이던 공사는 지난해 8월 중순부터 중단된 상태다. 80여 개 업체가 입주하기로 양해각서까지 체결했지만, 정작 본 계약을 체결한 업체는 단 1곳도 없었단다. 조성 단가가 워낙 비싼 탓이었다. 분양이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질 무렵, 삼척시는 돌연 공단 부지를 포함한 근덕면 일대 200만 평의 땅에 원전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소낭기(소나무)가 없어지니까, 먼지 때문에 살 수가 없어.” 공사장 한가운데를 지나 대진포구로 넘어가는 언덕배기에 자리한 한나리마을에서 주민 김아무개(75·여)씨를 만났다. 오랜 세월 울창한 숲을 이뤘던 소나무를 공사를 시작하며 모조리 베어낸 터다. “이 마을도 원전 후보부지로 선정된 것을 아느냐”고 묻자 김씨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나라서 하는 일을 누가 반대할 수 있나. 이 지경으로 만들어놨으니 여기서 어차피 살 수도 없다. 아침에 쓸어놔도 바람만 한 번 불면 그만이다. 먼지 때문에라도 이사를 나가야 할 판이다.” 그의 마음은 이미 마을을 떠나 있는 듯 보였다. 곁에서 그물을 정리하던 형제로 보이는 30대들에게 원전 얘기를 꺼내자, “할 말 없으니 그냥 가라. 바쁘다”는 퉁명스러운 말만 돌아왔다.
대진포구에는 막 조업을 마치고 들어온 소형 어선이 몇 척 정박해 있었다. 중년의 사내 여남은 명이 배 한 척을 선창으로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자미 철은 아직 안 오고, 요즘은 딱히 잡히는 게 없다. 그저 걸리는 대로 문어도 몇 마리 잡고 하는 거지.” 바닷일을 묻자 시원시원하게 말하던 이들이 원전 얘기를 꺼내자 ‘의미 있는 눈짓’을 주고받더니 입을 다문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40대로 보이는 남성은 “난 절대 반대”라며 웃는다. 다들 싱거운 웃음을 흘린다.
“정부가 하는 거 반대하면 빨갱이다.” “왜 외지 사람들이 와서 반대운동을 하느냐.” 말참견을 하던 노인들이 대신 입을 연다. 한참이나 말머리를 찾지 못하던 이들이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한다. 대진포구에서 나서 한평생을 살아왔다는 유태규씨는 이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방재산업단지 공사를 시작하며 대진항에 40억원을 들여 회센터를 지어주겠다고 시에서 약속했다. 먼지 덩어리를 참아가며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원전 유치를 하게 돼 안 된단다. 원전이 들어서면 누가 와서 회를 먹겠느냐고. 그럼 다른 명목으로라도 약속한 금액만큼 지원을 해줘야 할 거 아니냐. 여기 사람들 모두 힘들게 살고 있다. (원전이 들어오면) 보상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게 잘 좀 써달라.”
유씨의 친구라는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노인이 말을 거든다. “울진이 지척이다. 이미 원전이 들어선 거나 마찬가지다. 울진에서 일 터지면 여기도 안전하지 않다. 그나마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난 뒤니까, (삼척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짓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
대진포구에는 이미 ‘원자력발전소 대신 화력발전소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방재산업단지 조성 부지를 동부건설이 매입한 지난 1월부터다. 40대로 보이는 한 주민은 “화력발전소 집진 시설을 믿을 수 있는가. 핵발전소보다 그게 더 나쁘다고 하더라”며 아는 체를 했다. 또 다른 주민은 “원자력발전소 대신 화력발전소가 들어와도 어장 시설물이랑 영업권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모두들 대진포구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시리도록 푸른 대진 앞바다의 파도가 말 없는 선창을 때려대고 있었다.
삼척=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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