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중 사람이 아닌 것은? ① 남자 ② 여자 ③ 할아버지 ④ 아저씨. 대부분 답이 없다고 하겠지만, 서울YMCA는 아마 2번 여자라고 답했을 것 같다. 서울YMCA에서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창립 때부터 여성 회원들에게 이사·감사 등 임원 선출권, 총회 의결권, 임원 피선거권을 지닌 총회 구성원(총회원)이 될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던 서울YMCA는, 1967년에 이르러서야 헌장에 규정된 총회원 자격을 ‘남성’에서 ‘사람’으로 수정했다. 그제서야 형식적으로나마 여성 회원도 총회원이 될 자격을 얻었다. 그 이전까지 여성은 그저 일반 회원(단순 시설이용자, 프로그램 참여자)에 만족해야 했다.
» 2006년 2월 서울 종로구 종로2가 서울YMCA 총회장 앞에서 회원들이 총회장으로 들어가는 총회원들에게 여성에게도 총회원 자격을 주라며 시위를 벌였다. <한겨레> 이유진 기자
총회원 자격인 ‘사람’에 ‘여성’ 해당 안 돼
총회원 자격이 ‘남성’에서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여성은 단 한 명도 총회원이 되지 못했다. 여성 회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2003년 “남녀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의문은 남성 회원들만 참석할 수 있는 총회에서 번번이 부결됐다. 총회원이 될 자격인 ‘사람’에 ‘여성’은 해당되지 않았던 것이다. 줄곧 총회원이 될 자격을 요구했던 서울YMCA 회원들은 결국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월27일 대법원 3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김아무개씨 등 서울YMCA 회원 38명이 “성차별로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며 이 단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에게 1인당 1천만원씩 지급하도록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들이 단체 구성원으로서 회비를 부담하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반 회원의 기본적 권리인 총회 의결권 등 행사 기회를 원천적으로 빼앗겨온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가 우리 사회의 법 감정을 벗어나 원고들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일부 회원을 오로지 성별만을 이유로 의사 결정이나 기관 선출에 참여할 수 있는 지위에서 범주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평등권의 원리’에 위배된다”며 “차별 대상이 된 여성 회원들의 인격권 침해를 인정해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사실 총회 의결권을 달라는 서울YMCA 여성 회원들의 소송은 순탄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13민사부(재판장 이균용, 배석판사 박지연·유상현)는 2007년 6월24일 “피고가 구성원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임의단체인데다 여성 회원에 대한 총회 의결권 부여 등은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회원들은 이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 2009년 2월10일 서울고법 14민사부(재판장 이광범, 배석판사 김성수·임성철)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의사 결정 과정 등에서 배제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며 회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상식·법 감정 넘어선 차별 위법”
대법원은 “사적 단체는 그 성격이나 목적에 비춰 구성원의 성별에 따라 달리 취급하는 것이 금지된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도 “성별의 차별대우가 사회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법 감정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날 때는 위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서울YMCA는 부분적으로 공공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봉사적 단체이며 이미 여성 회원이 절반 이상인 단체”라는 점을 판결 근거로 들었다. 그렇게 여성도 사람이 되는 일에 8년이 걸렸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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