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가 공교육의 제도 바깥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라면, 시도 교육청 주관 아래 공교육의 틀 안에서 대안을 실험하는 것이 혁신학교다. 혁신학교는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선거공약에서 출발했다. 김 교육감은 당선 직후인 2009년 4월 혁신학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같은 해 9월 남한산초등학교와 덕양중학교 등 13곳을 혁신학교로 지정했다.
공적 영역으로 옮아 온 대안교육 바람
경기교육청이 혁신학교를 시작하며 내건 슬로건은 ‘자발성·공공성·지역성·창의성을 지향하는 학교’였다. 교과과정 편성과 학교 운영의 자율권을 확대하고, 학생의 수업 집중도와 참여도를 높이려고 학급당 학생 수를 25명 이하, 학년당 학급 수는 6개 이내로 편성할 수 있게 했다. 교사들이 교육과 상담에 집중할 수 있게 교무보조 인력과 상담·사서·보건교사를 배치하고, 학생들의 쾌적한 수업 환경을 위해 연간 1억원 안팎의 예산도 지원했다.
교육계 안팎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폐교 직전의 영세 학교에 신입생이 몰려드는가 하면,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 주변 전셋값이 치솟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공교육에 대한 우려와 불만이 그만큼 심각했음을 방증하는 사례였다. 초기 반응에 고무된 김 교육감은 2010년 33개의 혁신학교를 지정했고, 새로운 임기 안에 혁신학교를 200개로 확대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기도의 실험은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서울·광주·전남·전북·강원 지역으로 확산됐다. 서울교육청은 2011년 20개교로 시작해 2014년까지 300곳의 혁신학교를 운영할 계획이다. 다른 지역도 유사한 프로젝트를 착착 실행에 옮기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운영 중인 혁신학교는 157곳이다(초등 84, 중학 58, 고등 15). 경기도가 71곳으로 가장 많고 서울 23곳, 전남 30곳, 전북 20곳 등이다.
혁신학교가 뜨자 속내가 복잡해진 쪽은 대안학교 진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혁신학교는 교과과정과 학교 운영 노하우의 상당 부분을 대안학교에서 가져왔다. 체험학습과 인성·생태 교육, 문화·예술 활동이 강조되고 학교 운영에 교사와 학부모 참여를 확대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대안교육 특성화학교 가운데는 전남 담양의 한빛고등학교처럼 혁신학교 신청을 고민하는 곳도 있다. 교육과정이나 학교 운영에 큰 차이가 없어 전환의 부담이 크지 않고, 혁신학교 지정 땐 적잖은 행정·재정 지원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성화학교인 경기 성남의 이우고등학교는 2009년부터 혁신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재정과 시설이 열악한 미인가 대안학교들은 혁신학교가 늘면서 신입생 지원율이 하락하지 않을까 경계하는 기색이 뚜렷하다. 실제 전북의 한 대안학교는 올해 지원자가 정원(20명)보다 5명이나 적었다. 이 학교는 해마다 입학 정원의 1.5배 정도가 지원해왔다. 전남 지역의 한 대안학교도 1차 모집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해 추가 모집을 해야 할 판이다. 학교 관계자는 “지원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던 서울·경기 지역 출신의 감소세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입시교육의 틀 벗지 못할 것이란 진단도
혁신학교의 등장이 대안학교의 존립에 큰 위협이 되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혁신학교의 실험이 공교육의 제도적 틀 안에서 이뤄지는 한, 수십 년째 이어져온 입시교육의 완강한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실제 많은 학교가 혁신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문제의식 없이 행정·재정 지원이란 ‘당근’만 바라보고 혁신학교를 추진하다 보니, 교과과정과 학교 운영의 실질적 혁신보다 풍족해진 지원금으로 학교 밖 체험학습과 예체능 실기교육을 위한 기자재 구입과 강사 초빙에 힘을 쏟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하지만 대안교육 진영 안팎에선 혁신학교와 대안학교가 서로를 자극하고 견인하는 ‘상생적 경쟁관계’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이치열 대안교육연대 사무국장은 “혁신학교가 많이 생겨나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더 많은 혁신학교가 문을 열고 자리를 잡도록 대안교육 진영이 경험과 노하우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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