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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일부 회원국들의 재정적자로 전체적인 구조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유럽 통합 과정에서 겪는 최대 위기 시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대단히 구조적 문제이고 전세계의 재정·경제 문제와 직결된 차원이어서 그 심각성이 예사롭지 않다. 유럽 통합 회의론자들이 그야말로 큰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유럽 통합의 종말을 예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도 유럽이 왜 통합의 역사를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그 역사 발전의 추동력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분석하며 현재 상황을 평가해야 한다.
유럽의 존재를 지키기 위하여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평균 25년에 한 번씩 큰 전쟁을 겪었다. 그러던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뒤 유럽 통합을 이뤄오며 66년의 세월을 넘기는 현재까지 한 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명실공히 유럽 통합의 역사가 기여한 중대한 공헌이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 자행된 전쟁은 유럽 통합의 효과가 미치지 못하는 다른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유럽의 역사에서 유럽 통합 과정이 이러한 중대한 가치를 실현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이 한 가지만으로도 유럽 통합이 어떤 위기 상황으로도 쉽게 해체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유럽 통합의 목소리는 유럽이 8세기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침입을 받자 유럽 기독교 세계의 단결을 통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기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유럽 내부의 평화와 공동의 번영을 위한 방책으로 유럽 통합을 외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뒤에는 이러한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어 현실적인 정치적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인들에게 전대미문의 대량 파괴 전쟁이었다. 유럽인들이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만들어준 계몽주의와 과학의 시대, 해외 식민지 개척,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등의 찬란한 업적과 유산들도 대량 파괴의 전쟁 앞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전쟁이 반복되면 유럽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등장했다. 이 전쟁 뒤 유럽 통합 운동이 일정 부분 반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절박한 위기의식에 기인했다. 그러나 전후 처리에 대한 불만 세력들이 민족주의를 왜곡된 방향으로 부추겼고 이 왜곡된 민족주의의 정점으로 파시즘이 창궐했다. 유럽 통합 운동은 단숨에 기세가 꺾였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파시즘 세력이 정권을 잡고 제2차 세계대전을 도발했다. 특히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인종주의 이론과 좀더 조직화된 파시즘 형태인 나치즘이 정책으로 실시돼 전대미문의 반인륜적 국가 범죄가 자행되었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정권과 독일 나치즘 정권에 저항하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전쟁과 국가적 범죄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성찰했다. 그들은 그것이 민족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파시즘으로 이어지는 국가 중심주의 가치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민족주의가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기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타 민족을 무자비하게 해치는 것을 정당하게 생각하는, 즉 애국심으로 인지하는 가치 전도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민족주의가 국가주권이라는 개념을 절대화하고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소홀히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유럽에서 국가주권의 개념을 파기하고 각 국가를 유럽연방의 일원으로 만드는 연방주의 유럽 통합을 구상했다. 이러한 연방주의 사고는 미국과 스위스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민족주의에 의거한 실체적인 나라가 독일이었기 때문에 유럽 통합은 독일이 다시는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통제장치의 역할을 의미하기도 했다. 특히 프랑스 같은 나라에 유럽 통합을 통해 독일을 통제하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었다.
좌초 위기에 더욱 강해진 통합 동력
연방주의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를 실현하려고 전력 질주했다. 그러나 냉전이 진행되면서 실현이 어렵게 되고 반공과 재건의 수단으로 서유럽 통합이 추진되었다. 현실적인 방법상으로도 단숨에 국가체제를 해체하고 연방주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의 경제적 이익이 서로 공유되는 부문부터 통합을 시작하고 그 파급효과를 통해 다른 부문, 경제 전체, 그리고 정치를 통합하는 방법이 구사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유럽 통합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큰 관심을 보였다. 장 모네가 구상하고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이 채택해 1950년 5월9일 제안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는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석탄과 철강의 힘으로 강한 군사력을 빨리 갖추었던 독일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도 있었다. 유럽 통합은 외부세력으로부터 유럽의 생존을 보장하고 내적으로 평화를 구축하며 공동의 경제이익을 추구하는 데서 추동력을 얻어왔다고 하겠다. 특히 독일을 견제하는 장치라는 점은 유럽 현대사에 기인한 특수한 측면이었다.
이러한 유럽 통합의 추동력 요소들은 유럽 통합이 좌초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특별히 강한 힘을 발휘했다. 1950년 프랑스가 제안해 거의 완성 단계에 있던 유럽방위공동체가 프랑스 스스로의 거부로 1954년 무산되었을 때 유럽 통합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때 프랑스는 유럽 통합의 해체로 독일을 통제할 수단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해 유럽경제공동체(EEC)가 만들어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70년대 초 세계적 석유위기로 유럽 각국은 유럽 통합의 대의보다는 각자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폈다. 이는 커다란 유럽 통합의 위기를 야기했는데, 이 위기의식은 유럽의회의 강화, 그리고 1980년대의 놀라운 유럽 통합 성과들의 기초가 되었다. 상품·노동·자본 서비스의 완전한 자유 이동을 보장하는 단일시장을 약속한 단일유럽의정서가 그 정점이었다. 이때에도 회원국 간의 견해 차이가 크고 경제화폐동맹이 큰 불협화음을 내는 등 위기 상황이 자주 재연되었다.
그러나 세계화의 바람과 더불어 밀려오는 미국과 동아시아의 경제력에 대해 경쟁력을 갖추고 평화 속에서 독일 문제를 해결하는 등 유럽 공동의 번영을 위해 유럽 통합을 가속화했다. 동유럽 지역의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독일 통일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유럽공동체(EC)를 EU로 탈바꿈시키며 유럽 통합을 가속화했다. 이를 통해 동유럽 국가들을 새로운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고 통일로 더욱 강력한 국가가 된 독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냉전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EU를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화폐의 통합이 필수적이었다. 화폐 통합의 결과로 재정적·경제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 회원국들이 함께 어울려 유로존을 형성했다. 이것은 재정·경제 위기의 구조적 화근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은 장기적으로 통합의 효과로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EU 효과적 조직화 계기될까?
그런데 현실의 위기는 지금 유럽인들에게 뼈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이 위기에 대한 유럽인들의 대응과 그 결말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까? 이 의문의 답을 찾으려면 유럽 통합 현상을 통시적으로 보며 장기적 관점에서 현 위기의 여파를 예측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재정위기 때문에 앞으로 EU를 더욱 효과적으로 조직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다. 이 위기로 인해 유럽 통합이 더욱 강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노명환 한국외국어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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