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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 카드, MB와 홍준표의 합작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나경원 최고 유력했으나 이석연 전 법제처장 출마 의사 밝히며 흐려진 판세
등록 2011-09-22 15:50 수정 2020-05-03 04:26
이석연 변호사

이석연 변호사

10월26일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한나라당 후보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선거관리위원회 후보 등록 마감일 사흘 전인 10월4일 후보를 결정한다는 일정만 정해져 있다. 여전히 나경원 최고위원의 출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지만,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출신의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를 통해 ‘범여권’ 후보 출마 의사를 밝혀 다시 시계가 흐릿해졌다.

이 전 처장에 맞춰 경선 방식 손볼 수도

이 전 처장은 한나라당 입당에는 부정적이지만, 한나라당 경선을 통해 후보가 결정되면 범여권의 단일화 과정에는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 이후 한나라당 바깥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영입하려고 공을 들여왔다. 절반만 성공함으로써 ‘범야권 단일후보 따라하기’ 모양새가 돼버렸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리며 하루 종일 술렁였다. 반응의 차이는 이 전 처장에 대한 평가와 나 최고위원의 본선 경쟁력에 대한 전망 차이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 부류는 홍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다. 이들은 이 전 처장을, 범야권의 단일후보 가능성이 높은 박원순 변호사에 맞설 맞춤형 맞수로 여긴다. 이 전 처장은 변호사 출신으로 참여연대와 더불어 초창기 시민운동의 양대 산맥이던 경실련의 사무총장을 지낸 바 있어 보수의 약점인 도덕성 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본다. 게다가 박 변호사가 진보적 시민운동에 뿌리를 두고 기부문화 확산 등으로 영역을 넓혀온 반면, 이 전 처장은 행정수도 이전 반대 헌법소원을 이끄는 등 전통적 보수층에 소구력이 있으면서도 중도까지 포괄할 수 있어 확장력이 넓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이 전 처장이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면 최선이겠지만, 야권과 비슷한 경로로 한나라당 후보와의 경쟁에서 이겨 범여권 단일후보가 되어 본선에 나서는 방안도 차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전 처장의 출마 가능성이 언급되자마자 홍 대표 주변에서는 범여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경선 규칙을 손볼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한나라당의 경선 규칙을 준용하거나 여론조사 단일화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정치 신인’인 이 전 처장이 나 의원을 이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홍 대표의 측근인 박준선 의원은 ‘인지도 대비 지지도’ 방식을 거론했다. 일단 범여권의 후보가 되면 인지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경선에서 이 전 처장의 불리함을 보정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상 이 전 처장에게 유리한 경선 규칙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근저에는 ‘나경원 비토론’이 깔려 있다. 홍 대표는 지난 8월 말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 이후 오세훈 전 시장의 사퇴로 원치 않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르게 되자, 후보와 관련해 “제2의 오세훈이나 오세훈 아류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보궐선거가 ‘무상급식 2라운드’로 치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오 전 시장의 정책과 노선을 지지했거나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후보는 열외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다분히 나 최고위원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은 일을 해본 사람이 좋다”는 발언이 보태지자 현 정권의 핵심부 사이에 ‘가이드라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았다. 임기 말이라지만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 사이에 ‘교통정리’가 끝난 상황이라면, 서울시장은 몰라도 경선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만들 힘은 있다.

나 최고의 경쟁력에 대한 전망 갈려

첫 번째 부류의 반대편 극에는 나 최고위원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선 대안부재론이 있다. 이 전 처장에 대해서는 “자신을 박원순급으로 착각하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거나 “당 지도부가 ‘함량 미달’을 찾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평가가 박하다. 한나라당은 지지층이 분산된 야권과 사정이 다른데도 원칙을 잃고 야권을 따라하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잃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전 처장의 출마가 언급되기 하루 전만 해도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나경원 최고위원으로 굳혀지는 분위기였다. 대표적 친한나라당 성향인 세 신문의 9월15일치 기사( 1면 ‘나경원 박원순 격차, 18.6%p→10.3%p로 줄어’, 5면 ‘돌고 돌아 나경원, 너무 나간 박원순’, 6면 ‘박근혜·나경원 동맹의 조건’)를 보더라도 이런 분위기가 강했다. 친박계 대표 인사인 유승민 최고위원이 9월14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서울시장 후보와 관련해 어떤 계파가 당내 어떤 예비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비토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것은 정말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말하자 ‘박심’이 나 최고위원의 출마 쪽으로 기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 지난 4·27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강재섭 전 대표의 패배(손학규 민주당 대표 당선)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대안부재론의 근거 중 하나다. 강 전 대표가 일찌감치 출마 의사를 밝혔음에도 후보 등록 시점까지 정운찬 전 총리 등 외부 인사 영입설이 끊이지 않아 한나라당 후보의 경쟁력을 스스로 떨어뜨려 한나라당의 텃밭에서 패배를 자초했다는 자성의 목소리였다. 정몽준 전 대표도 9월15일 와의 인터뷰에서 “당내 계파 갈등 때문에 ‘내부 사람은 안 되고 바깥 사람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답답한 일”이라며 “여론조사에서 서울시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나경원 최고위원과 당 안팎의 분들을 다 합쳐서 경선을 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이 전 처장의 출마를 반기는 부류와 부정적 부류의 중간이다. 이 전 처장에게 우호적으로 경선 방식이 바뀌는 데는 비판적이면서도, 야권에 비해 활력을 잃은 후보 경선 구도에 흥행 요인이 생긴 대목은 반기는 쪽이다.

나 최고, 경선룰 문제삼아 불출마할 수도

롤러코스터를 타듯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에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나 최고위원은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그동안 말을 아끼며 물밑에서 출마 준비를 해왔는데 갑작스런 복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 최고위원은 9월16일 국회 본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이 정정당당하게 후보를 내야지 후보 선정 절차를 두고 왔다갔다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책임 여당이 당당해야지 야당을 따라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외부인을 경선에 참여시키려고 경선 방식을 바꾸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나 최고위원 쪽은 출마를 선언한 뒤 경선 방식이 이 전 처장에게 유리하게 바뀌거나 양보를 요구받는 상황이 닥칠 경우, 아예 출마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야권 단일후보와 맞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크지 않은데다, 패배할 경우 입을 정치적 상처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 포스터에 누구의 얼굴이 올라갈지를 가늠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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